본문 바로가기

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이슬람, 그들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지키는가?

 

 

이슬람, 그들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지키는가?

 

이슬람, 그들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지키는가? 그들은 전세계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가? 그들의 종파는 어떻게 분류되고 있는가? 꾸란(코란)이란 무엇이며 그 내용은 무엇인가? 그들이 지켜야하는 다섯 가지 기둥이란 무엇인가? 신앙고백이란 무엇이며 왜 하루 다섯 번씩이나 예배를 드리는가? 단식과 희사는 어떤 의미를 가지며 성지순례는 이슬람 사회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삼위일체를 거부하는 이슬람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가 아니다
                                

 

 

이슬람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지키는가?

 

종교는 일반적으로 종교의 창시자, 그 종교가 발생했던 공동체 또는 국가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다. 예를 들면 기독교는 선지자였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불교는 석가모니의 이름에서, 조로아스터교(배화교)는 창시자 조로아스터에서, 유태교는 유대인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은 그렇지 않다. 이슬람은 어떠한 개인이나 민족과는 무관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이슬람교는 회교(回敎),회회교(回回敎), 마호메트교 등으로 불려졌다.

 

이슬람교에서는 마호메트를 믿지 않가 때문에 잘못된 표현이며,회교,회회교는 중국에서 위구르족을 지칭하는 회흘(回紇),회골 등이 믿는 종교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회교,회회교라는 용어도 잘못된 표현이다.

 

이슬람은 종교와 문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며, 종교를 구분해서 사용할 때는 이슬람교, 여타의 경우에는 이슬람으로 폭넓게 사용한다.

 

                     

 

 

그러면 이슬람의 의미,그들의 신앙관

이슬람(Islam)의 언어학적인 어원은 '평화'이고, 신학적인 의미는 '복종'이다. 즉 이슬람 사상의 요체는 알라(유일신)에게 절대복종을 통해 평화를 얻는 것이다. 평화야말로 이슬람의 핵심이요,삶의 구체적이고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슬람은 히브리어어의 '살롬'과 같은 어근으로 '평화'라는 뜻이다. 그러나 평화라는 의미를 가진 이슬람 종교가 우리에게 가장 평화와는 거리가 먼 폭력적이고 호전적인 종교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잇다. 우리의 편견과 서구 시각에 의한 교육과 홍보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예이다. 그리고 이슬람의 종교적 의미는 복종이다. 누구에게 복종하느냐? 그것은 유일신 하느님께 절대 복종한다. 그 절대자 하느님을 아랍어로 '알라'라고 한다. 영어로는 대문자 'God'이고,중국어로 '唯一神'(유일신), 우리말로는 '하느님' 아랍어로는 '알라'라고 한다. 하느님의 아랍어 표기에 불과한 하느님을 '알라신'이라고 부르면 '하느님신'이란 뜻이 된다. 그래서 반드시 '알라' 또는 '하느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따라서 이슬람은 하느님인 절대자 알라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통해 평화를 얻고자 하는 종교이다. 

 

알라(하느님)의 예언자들은 각기 어느 한도의 범위내에서 일을 하고자 모든 나라와 사회에 계속해서 보내져 왔다. 예를 들어 모세와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보내졌고, 이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시대가 흐름에 따라 하느님의 계시는 인간의 손에 의해 덧붙여지거나 삭제됨으로 인해 잘못 이해되고 변질되어 갔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예언자들이 새로운 계시를 가지고 나왔고, 인류의 역사는 진행되어 왔다.성장기에 도달한 인류는 하나의 가족이 되었고,분파적인 계시가 아닌 완전하고 최종적인 계시가 전 인류와 모든 시대에 걸쳐 내려지게 되었다.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완전한 마지막 계시가 내려졌다.

 

종전의 모든 계시를 요약하여 종교의 통일성에 결론을 내린 이 계시가 바로 '이슬람'이고, 이 계시를 간직한 것이 '꾸란' 경전이며, 그 예언자가 인류의 마지막 예언자인 '마호메트'(아라비아 원음으로 '무함마드')이다.

 

이슬람교는 마호메트를 아담,아브라함,모세,예수를 이은마지막 예언자로 보며,유일신인 알라(하느님)에게 절대 복종하고 우상숭배를 금지할 것을 강조한다.그리고 만인의 평등과 형제애를 가르침으로써 하층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메카의 지배층인 귀족들로부터 박해를 받아 622년 포교의 중심지를 북쪽의 상업 도시인 메디나로 옮겼는데, 이를 '히즈라'라 하여 이슬람력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이슬람의 실천강령과 신앙체계는 흔히 오주육신(五柱六信)으로 압축되는데, 무슬림의 5대 의무는 신앙의 증언, 하루 다섯 차례의 예배, 자선을 위한 구빈세, 라마단 한달 동안의 단식, 능력있는 사람에 한해 평생에 한번 메카 성지순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종교가 생활속에 완전히 자리잡아 일체감을 이루는 것이다. 또한 믿음은 6가지로 나눌수가 있는데, �째는 창조주 유일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고, 둘째는 천사나 사탄,정령들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다. 셋째는 성서들에 대한 믿음이고, 넷째는 선지자 및 예언자들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다섯째는 심판의 날에 대한 믿음이고, 끝으로 여섯째는 하느님의 섭리대로 이루어 진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이슬람의가르침은 무함마드가 신으로부터 받은 계시내용을 담은 꾸란에 집대성되어 있으며, 꾸란과 함께 무함마드의 선별된 언행록인 하디스가 이슬람교의 경전으로 삶의 구체적인 지침이 되고 있다.

 

 

 

이슬람 분포

 

국가별 신자 분포 

국가별 신자 분포

 

주로 중동 터키, 중앙아시아, 중국 서부(신강위구르자치구), 북아프리카, 러시아(주로 남부지역), 카프카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에 이슬람교가 존재한다. 여기서 동남아시아의 무슬림은 과거 이슬람 상인들의 활발한 무역 활동으로 이슬람 신앙을 갖게 된 이들이다.

 

유럽에서는 알바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주로 코소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이슬람교가 존재한다. 일부는 독일, 이탈리아, 몰타, 그리스, 스웨덴에도 존재한다. 프랑스 에스파냐에서는 이슬람교가 제2의 종교 세력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유럽의 무슬림들은 이슬람에 대한 편견, 무슬림에 대한 차별(취업, 교육) 등의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

 

아메리카에서는 미국, 브라질에 이슬람교가 극소수로 존재하며, 오세아니아에서는 파푸아뉴기니가 극소수로 존재한다. 실례로 유명한 흑인운동가인 말콤X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후에 개종한 무슬림이다. 대한민국에는 약 10만 명의 이슬람교도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한국전쟁당시 터키군의 선교 활동과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공화국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에 의한 것이다. 한국인 신도는 약 2만명 정도이다. 오마르 트루시에도 처음에는 개신교 가정에서 필리프 트루시에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2006년 모로코로 이민하면서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이름도 필리프에서 오마르로 바꿔 지금은 오마르 트루시에가 되었다.

 

 

이슬람 종파

 

이슬람에는 기독교와 같은 ‘이단’의 개념은 없다. 하지만 다수 신도는 스스로를 주류, 수니 무슬림이라고 부른다. 전 세계 무슬림의 83% 이상이 순니 무슬림이다. 그 외에는 16%의 시아 무슬림과 나머지 종파이다.


1. 순니 무슬림

무슬림 공동체 즉 움마의 순나(sunnah 관행)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순나란 꾸란, 하디스 및 예언자와 정통 칼리파의 선례에 바탕을 두고 있다. 4대 법학파(하나피, 말리키, 샤피이, 한발리)로 나뉘어진다.

2. 하와리즈 파

무함마드 사망 25년 뒤, 칼리파 우스만 이븐 아판이 살해를 당하자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그 뒤를 이었다. 우스만의 6촌인 다마스쿠스 총독 무아위야 1세는 알리가 우스만의 복수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 내란 속에서 알리 지지자들은 주전파와 협상파로 갈라졌다. 그중 주전파는 절대신 알라만이 중재를 할 수 있고 인간은 현 상황에서 계속 싸워야 한다면서 알리 진영을 떠난다. 이들이 이슬람 역사상 최초의 종파 하와리즈(탈퇴자)이다.

 

하와리즈파는 전투적인 행동주의자여서, 지하드(jihad 주로 ‘성전’으로 번역한다)를 여섯번째 ‘신앙의 기둥’으로 삼았다. 661년 이들은 알리를 살해했다. 하와리즈파는 메카의 부족 꾸라이쉬의 자손만이 칼리파가 될 수 있다는 순니파의 전통적 견해를 비난하고, 독실한 무슬림이면 누구나 칼리파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민 평등주의적 입장과 아랍 귀족층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베드윈과 비아랍계 무슬림 추종자를 얻을 수 있었지만 내분으로 뒷날 저절로 약화됐다. 현재는 알제리 튀니지 베르베르 지역,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아라비아 반도의 오만에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청교도적인 정신은 18세기 사우디아라비아 건국의 기반이 된 와하브(Wahhab) 운동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3. 시아파

빼앗긴 칼리파 자리를 살해당한 알리 가문에 되돌려주려는 운동으로써 시작된 것이 시아 이슬람이다. 시아는 '쉬아 알리(Shia Ali)' 즉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에서 나온 명칭. 초기 칼리파들의 뒤를 이은 우마위야 왕조(661-750)와 압바스 왕조(750-1258)는 무함마드의 '혈통'을 중시한 쉬아를 억압하는 정책을 펼쳤다.

 

시아파는 우마위야 왕조 창시자 무아위야 1세가 알리와 파띠마의 장남인 하싼(Hasan)을 살해했다고 주장한다. 하싼의 동생 후세인(Husayn)은 680년 이라크의 카르발라(Karbala)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참혹하게 살해됐다. 카르발라와 인접한 나자프에는 이맘 알리, 이맘 후세인 사원이 지금도 남아 있어 시아파들의 최대 순례지가 되고 있다.

 

후세인의 제삿날인 이슬람력 정월(Muharram) 10일, '모하라 아슈람'은 시아파들의 최대 추모제 날이자 명절이기도 하다. 신자들은 이날 길거리에 나와 행렬을 지어 후세인의 고통을 체험한다. 시아파는 초기의 희생자들을 순교자로 떠받드는 것에서 시작했으나 훗날 유대 유일신교의 한 분파인 그노시즘(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순니의 이슬람 주류와 신학적으로도 갈라섰다.

 

시아파와 순니파의 큰 차이 중 하나는 '이맘'이라는 인도자의 존재. 순니가 말하는 이맘은, 꾸란을 독경하고 예배를 인도하는 정도의 사람을 가리킨다(전통적으로 이슬람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즉 '성직자'를 인정치 않으며 모든 신도가 직접 신앙의 힘으로 신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쉬아의 이맘은 알리와 후세인의 후계자, 꾸란의 신비를 밝혀주어 신도들을 빛과 은총으로 이끄는 사람으로 격상됐다. 이란의 아야툴라 루흘라 호메이니와 그 뒤를 이은 최고 종교지도자 알라 하메네이 같은 이들이 가장 최고위급의 이맘들이다.

 

희생과 순교를 중시하는 시아파들은, 이 지점에서 구세주 신앙과 만난다. 특히 알리 이후 열두 이맘의 시기가 지나고 마지막 12대 이맘이 873년 사라졌다고 믿는 '열두이맘파'에게서는 메시아사상의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사라진 12대 이맘이 오랜 은둔에서 벗어나 언젠가 지상에 구세주(마흐디)로서 나타날 것이라 믿고 있다. 훗날 많은 이들이 '마흐디'를 자처하면서 등장하기도 했다.


4. 열두 이맘파와 자이드파

시아파의 85%를 이루고 있는 열두 이맘파는 이란과 이라크 인구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아라비아 반도에는 드물게 분포하고 있고, 레바논과 파키스탄, 인도 등지에 소수파로 존재한다.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경우 왕가는 알리의 자손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순니 말리키파다. 자이드파는 후세인의 손자 자이드(Zayd)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열두 이맘 중 후세인의 아들인 4대 이맘까지만 인정하는데, 여기에 자이드를 포함시켜 다섯 이맘파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자이드파는 알리 이후 순니파 칼리프들을 인정치 않는다는 점을 빼면 교리상 순니와 같다. 예멘 지방에 많이 남아 있다.


5. 이스마일파와 암살단파

시아파 중 가장 논쟁의 여지가 많고 매력적인 것, 그런 이유로 옛 문헌이나 소설에 가장 자주 소재로 다뤄졌던 것이 이스마일파 즉 일곱 이맘파다. 그들은 열두 이맘파의 7대 이맘 무사 대신 6대 이맘 자아르 알 싸디끄(765년 사망)의 장남 이스마일을 추종하기 때문에 이스마일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들은 빈민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압바스 왕조 칼리프에 맞서 인기를 모았다. 10세기 한때 메카를 점령하기도 했다.

 

이스마일파의 또 다른 분파는 북아프리카에서 아랍족과 베르베르족 사이의 긴장을 이용해 권력을 잡고 파티마 왕조(909-1171)를 세운 우바이둘라 알 마흐디(909-934) 세력이다. 이들은 969년 이집트를 정복하고 옛 수도 푸스타트 근처에 까히라(al-Qahirah 승리자; 오늘날의 카이로)라는 도시를 세웠다. 칼리프조는 까히라에 거대한 도서관을 짓고 이슬람 교리의 본산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는 알 아즈하르(al-Azhar)성원(聖院)을 만들었다. 이 칼리파조는 11세기 초 국력을 키워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등지를 세력권에 넣었으며, 바그다드의 칼리프도 한때는 카이로의 세력에 맥을 못 췄다. 그러나 1171년 아이유브 왕조 살라흐 앗 딘(1138-1193; 살라딘)에 멸망했으며 이집트와 시리아는 다시 수니파의 손으로 들어갔다.

 

암살단파는 '산상의 노인'이라 불렸던 이란계 지도자가 11세기 말 파티마조와 결별하고 이란과 시리아를 잇는 산악지대에 요새를 만들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마약의 일종인 해시시에 중독돼 암살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아사신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이는 영어 assassination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중세 십자군 전쟁을 다룬 기록들이나 마르코 폴로의 '세계의 서술(동방견문록)' 등 옛 문헌들에는 '산상의 노인'에 대한 전설이 많이 나와 있다. 암살단파는 자객을 이용, 주로 순니파 칼리프들을 살해했다. 현대의 학자들은 암살단파가 예루살렘을 놓고 전쟁을 벌였던 기독교 세력보다는 오히려 순니 기득권층에 더 큰 위협이 됐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에 살해된 최초의 희생자는 셀주크 투르크 술탄 말리크 샤 1세(1072-1092)의 재상으로 유명한 니잠 알 물크(1091년 사망)였다.

 

암살단파는 순니 지도층을 살해, '숨은 이맘'의 통치체제를 전 이슬람권에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13세기 내분이 일어나면서 약화됐고, 이란을 점령한 몽고군에 의해 섬멸됐다. 시리아의 분파도 이집트, 시리아에서 득세한 맘루크조에 의해 제거됐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추종자는 소수에 불과하며, 암살이 아닌 사업에 종사해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무슬림 부유층을 형성하고 있다.


6. 알라위파(Alawis)와 드루즈파(Druzes)

이스마일파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종파들로, 오늘날 레바논과 시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슬람 주요 교리에서 워낙 벗어나 있어, 쉬아 무슬림이라기보다는 순니-쉬아 이외의 제3의 종파로 분류되곤 하며 심지어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로까지 분류되기도 한다.

 

알라위파(Alawi)는 시아파의 알리 숭배를 극단화시켜 신격화했는데, 창시자인 무함마드 이븐 누사이르(Muhammad ibn Nusayr)의 이름을 따 '누사이리파'라 불리기도 한다. 레바논, 시리아에 많은 성스런 나무숲을 숭배할 뿐 아니라 기독교 의례까지 받아들여 부활절까지 축하하곤 한다. 시리아에서도 인구의 1%만이 알라위파이지만 장기집권했던 하페즈 알 아사드 전대통령과 그 아들로 세습정권을 이어가고 있는 바샤르 알 아사드 현대통령이 이 종파인 덕에 권력층이 되어 있다.

 

드루즈파는 11세기 이스마일파에서 나온 다라지(Darazi)라는 인물이 숨은 이맘 '마흐디'를 자처하면서 창시했다. 비밀주의가 강하며, 레바논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신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따르는 이슬람과 달리 하킴이라는 칼리파가 신의 현신이라 주장하며 일신론을 믿는다. 일부다처제는 금지돼 있고 여성들의 지위는 남성과 동등하며 영혼은 윤회한다고 믿는다. 이슬람의 하지(순례) 기간 축제를 열긴 하지만 순례 자체는 하지 않으며 라마단 금식도 하지 않는다.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는 경우가 많으며 금욕적인 생활을 찬양한다. 교리와 관행으로 보아, 이슬람이라기보다는 별도의 종교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7. 바비파(Babis)와 바하이

19세기 중반 이란에서 나타난 바비파는 아랍어로 '문'을 뜻하는 '밥'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는 진리의 문을 뜻한다. 바비파는 구약성서와 조로아스터, 중국에서 전해져온 유교 사상과 불교 등의 예언자들을 모두 인정했다. 이들은 이란의 부패한 왕정에 반대하다가 잔혹한 탄압을 당했다. 대량학살에서 살아남은 추종자들은 바하울라라는 예언자를 추종하는 바하이파로 계승됐다. 바하이의 가장 큰 관용과 사회의식이다. 이들은 이맘 알리가 남긴 메시지는 사회를 개혁하고 살기 좋게 만드는 것이라 믿는다. 여기에는 여성 평등, 교육과 국제평화 등이 모두 포함된다. 바하이는 대부분 평화주의자로서 양심적 병역거부와 금주 금연, 채식 등을 선호한다. 이들도 이란 정부의 박해를 받았으며, 왕정이 끝나고 1979년 이슬람혁명 세력이 정권을 잡은 뒤에도 계속 탄압을 받고 있다.

 

8. 수피(Sufi) 사상

이슬람 쉬아에서 갈라져나온 신비주의 수피즘은 종교라기보다는 철학, 사상에 가깝다. 현대 서구문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수피즘은 금욕적인 자기수양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꾸란'(코란)

 

꾸란은 서기 610년에서 632년까지 23년간 무함마드가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자의 소명을 받고,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인정되는 공식적인 말씀과 이야기들을 모은 것을 일컫는다. 꾸란에 쓰여진 언어는 그 당시 아라비아 반도의 히자즈 지역 유목민이 사용하던 언어인 아랍어가 사용되었다.

 

꾸란의 특징은 그 의미와 언어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아랍어로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것이다. 하느님이 무함마드에게 언어로 계시하지 않고, 의미상의 영감만 주고 예언자가 해석한 것은 꾸란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하디스(예언자 언행록)로 취급할 뿐이다. 또한 하느님과 관련해 무함마드가 언급한 것도 꾸란으로 간주하지 않고 하디스로 구분함으로서 꾸란과 구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꾸란 내용을 인용할 때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란 문구를 사용하는 반면, 예언자의 말 즉 하디스를 인용할 때는 "예언자가 말씀하시기를,..." 라는 문구를 사용한다.

 

꾸란은 아랍어의 읽다,암송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 까라아(qara'a),에서 파생된 단어로 잃혀지는 것 또는 암송해야 하는 것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전세계 모든 무슬림들이 하루 5번의 예배를 통해 꾸란 구절을 아랍어로 낭송한다.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은 완벽한 번역일지라도 게시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꾸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즉 아랍어로 꾸란이 게시되었고 다른 언어로 완전하게 번역될 수 없기 때문에 번역본의 가치는 꾸란 원전에 비할 바가 못된다는 판단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꾸란의 해설이나 번역이 확실한 지식과 굳건한 믿음에 기초한다 할지라도 외국어로 번역된 것은 단지 구란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해설서로 간주하며, 비록 같은 아랍어로 꾸란의 내용을 설명하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연고로 꾸란은 계시 후 1,4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변형되지 않고 계시상태로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꾸란이 책으로 편찬된 것은 무함마드 사후 10여년이 지난 칼리프 오스만 재위(644-656)시대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의 정복 영토가 광대해지고, 비아랍권에 이슬람이 확산되어감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인 꾸란의 낭송이 왜곡될 소지가 생기게 되었다. 물론 꾸란은 무함마드 생존시부터 집대성이 이루어졌고, 적어도 꾸란의 전 구절을 암송하는 사람이 수백명에 달해, 경전의 전달과정에서 인위적인 조작이 개입될 여지는 예로부터 불가능했다.

 

따라서 오늘날 꾸란은 계시 당시의 원전이 획하나 점하나 틀리지 않고 내려오는 것으로 무슬림들은 절대 믿고 있으며 이 사실이 무슬림이 갖는 절대적 신앙의 원천이 되고 있다.

 

종교경전으로 꾸란의 독특한 특징은 이 경전이 인류를 인도하기 위하여 하느님이 보내신 계시의 전체 과정을 확인하고 완성한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가지고 있다. 이 내용을 꾸란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내가 오늘 너희를 위해 너희의 종교를 완성했고 너희에 대한 나의 은혜를 완전케 하고 너희를 위해 이슬람을 너희의 종교로 선택했노라"(꾸란 제5장 3)

즉, 태고시절부터 있었던 게시를 이제 한데 모아 종결짓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실로 내가 이 계시를 내려 보냈으니 내가 그것을 지키리라"(꾸란 15장 9)

이 절은 하느님 스스로 꾸란의 보호와 보존에 대한 약속이며, 꾸란의 기원이 하느님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절이다.

 

 * 구성

꾸란은 전체가 30부분이며, 장이라 불리는 114개의 수라(Surah), 절이라 불리는 6236개의 아야(Ayat)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80,000여 개의 단어가 사용되었다. 114개의 수라 중 86개는 메카에서 계시된 메카 장이고, 28개의 수라는 메디나에서 계시된 메디나장으로 구성되어 잇다.

 

여기서 장(수라)이라고 불리는 이유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꾸란의 장들을 읽음으로써 계급이 높은 지위에 이르게 된다.2) 꾸란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 각각에 대하여 시작과 글을 알리는 표지의 역활을 한다.3) 그 장들은 모두가 하나의 고상한 정신적인 건축물과 같다. 4) 각 장이 완전한 주제를 담고 있다. 원래 수라는 담벽이나 포도넝쿨의 이어진 것을 일컫는 히브리어에서 나왔다.

 

각 장마다 분량이 다양하다. 처음 시작하는 파-티하 장이고 맨 마지막 114장의 나-스 장이다. 가장 긴 장은 제2장인 바가라 장으로 286개 절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장 짧은 장은 제108장 카우사르 장으로 3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다.

 

한 개의 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장의 앞에는 '비스밀라 히르라흐마니 라힘', 즉 번역하면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라고 시작한다. 이는 꾸란 계시가 모두 신의 은총이며 축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외된 한 개의 장은 신을 믿지 않는 불신자에 대한 최후의 경고를 담고 있기 때문에 서언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순결한 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만질 수 없느니라"(꾸란 제56장 79). 이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가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하늘의 지식인 보물임을 의미하며 이러한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항상 순결한 마음을 지니고 접근해야 하며 또한 하느님의 구원을 끓임없이 간구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또 도덕적.정신적 문제에 관계되는 모든 문제들이 근본적인 하늘의 순리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각 장의 의미의 중심이 된다.

 

꾸란의 내용에 대해 서구인들이 어렵고 모호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경전이라고 비판하지만 기독교의 성경이나 불교의 경전이나 모두 어렵고,모호하고,재미없고,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에는 곤란하다는 사실은 마찬가지이다.

 

» 이란의 이슬람혁명을 이끈 호메이니.

 

 

다섯 가지 기둥(5주:五柱)

 

이슬람은 다섯가지의 기본적인 의무가 있다. 이것들은 정규적으로, 정확하게, 진지하게 시행되어져야 하며, 이러한 의무는 무슬림의 삶이며, 창조자의 뜻에 따르는 것이다. 이 의무에 대한 성실한 실천은 사회에서의 정의,  평등, 의로움의 실현을 격려하며, 불법과 거짖 그리고 학대를 시정하는데 고무된다.

모슬렘의 기본적인 의무는 다섯개의 기둥으로 되어있다.

 

1. 신앙고백(샤하다)

이슬람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으로 이슬람교 신자가 되는 선서를 말한다. 이것을 아랍아로 '샤하다'라고 말하며 알라(하느님) 한 분만의 존재를 믿고 그 분의 사자가 무함마드라는 것을 인정하면 누구나 이슬람교 신자가 될 수 있다.

 

무슬림의 신앙고백은 "앗쉬하두 알라 일라하 일랄라, 와 앗쉬하두 안나 무함마다르 라쑤룰라"(There is no God but God, and Muhammed is the Apostle of God. 나는 알라 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선언)하나이다. 또한 나는 무함마드가 알라의 사도임을 증언(선언)하나이다)를 외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알라의 유일성과 이슬람이 알라의 최종 종교임을 확신하고 무함마드가 최후의 사도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라이외에 신은 없다'라는 구절은 이슬람의 기초이며 토대이며 본질이다. 이 표현으로 무슬림과 불신자, 그리고 무신론자를 구별하며, 이것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반대 그룹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무슬림이 이슬람교에 입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이 샤하다를 선언해야 한다. 따라서 이슬람에서의 입교의식 절차는 매우 간소하고 쉬운 것이 특색이다. 그러나 입교 후에는 믿음을 실천하고 생활화하는 신앙인의 자세를 견지해야만 샤하다를 통해 알라와 약속한 진정한 신앙인이 될 수 있다.

 

2. 예배(살라)

예배는 이슬람 신자가 하루 다섯 번씩 자신의 신앙을 반복하고 새롭게 하는 매일 매일의 기도로 한 인간이 완전한 무슬림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배는 인간이 하느님께 맹세한 것을 생각나게 해주며,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새로이 해주고 최후심판의 날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유지시켜 주는 행위이다. 예배는 인간이 예언자를 따르며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훈련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훈련은 사상에 행위를 일치시키기 위한 엄한 훈련이다.

 

                              

 

 

신을 믿는 것은 모든 종교의 근본 원칙으로 그 실천적인 방법이 예배이다. 신에 대한 확신은 자신 속에서 진정으로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진정으로 믿는 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또 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마음속으로 신성을 의식하는 것이 바로 예배행위이다.

 

이러한 예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개인 예배이고 다른 하나는 집단 예배이다. 개인 예배가 인간의 내적 자아 개발을 위한 것이라면, 집단 예배는 인류단결의 강력한 힘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예배는 알라를 경배하는 경건한 의식임과 동시에 신앙을 행위화하는 효시이며 모체이다. 따라서 이슬람교에서는 정규적으로 행하는 하루 다섯번의 예배 의식이 있고, 1주일에 한번 모든 무슬림이 함께 참례하는 합동 예배가 금요일 낮시간에 실시된다. 하루 다섯 번의 예배는 성원이 아닌 가정이나 야외 등 깨끗한 공간에서도 행할 수 있고 예배 소요시간도 불과 10분 정도로 짧다.

 

본래 예배란 예의를 갖추어 절을 하는 것으로 무슬림은 선 자세로 꾸란을 낭송 혹은 암송한 뒤 반절과 절을 몇 회 반복함으로써 예배는 언제나 조용하고 엄숙한 가운데 진행된다.

 

예배시 낭송 혹은 암송하는 꾸란 구절은 꾸란의 언어인 아랍어로 통일이 되어 있으므로 언어와 국적이 다른 무슬림들에게 동질성과 일체감을 조성하고 국제적인 무슬림 형제애를 진작시키는 계기가 된다. 또한 일렬 횡대의 예배 대열은 피부색, 국적, 빈부귀천을 초월함으로서 알라 앞에서 만민이 평등함과 존엄성을 갖게 한다.

 

1일 5회의 예배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1. 파즈르: 새벽 예배(동트기 전)

  2. 주흐르: 낮 예배(정오를 조금 지나)

  3. 아스르:오후(주흐르와 마그립 중간)

  4. 마그립:저녁(일몰 시간)

  5. 이샤: 밤(마그립 예배 후 약 1시간 반정도 뒤)

 이 외에 근행되는 예배 종류는 축제예배, 장례예배, 따라위(라마단 단식월 이샤 예배 후에 근행하는 특별예배) 등이 있다.

 

                                 

                                  이슬람 라마단. 이슬람의 경건의 시간으로 여겨지는 이 기간동안

                                  믿음이 흔들리는 무슬림도 다시 회복한다

 

집단 예배의 가장 중요한 점은 사회적 계층의 차이를 없애준다. 일단 사원 안에 들어서면 모든 무슬림들은 평등과 사랑의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창조주 앞에서 그들은 모두 어깨를 맞대고, 왕과 신하,화려한 옷을 입은 부자,넝마를 걸친 걸인,백인,흑인 등 모두가 함께 서게 된다. 뒷줄에 선 왕이나 부자는 신 앞에 엎드리다보면 앞줄에서 노예나 걸인의 발꿈치 쪽에 머리를 놓게 된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효과적인 평등화 작업은 없다. 계급,부,색깔의 차이가 모스크(이슬람 성원) 안에선 사라지고, 아주 새로운 분위기, 형제애와 동포애,평등과 사랑의 분위기, 바깥 세계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가 이 성역안에 퍼지게 된다. 투쟁과 갈등,적의와 질투속에서 나와 완전한 평화와 사랑의 분위기 속에서 매일 다섯 번씩 호홉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는 인생의 교훈이며 평등과 우애, 사랑이 인류 행복의 진정한 근원임을 깨닫게 된다. 한 번의 예배에 약 10분의 시간이 소요되므로 하루 약 50분의 시간을 통해 하느님의 경외하심과 인간 본연의 나약함을 깨닫고 오히려 겸손해지며 세태의 온갖 부당한 행위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가 있다면 이 이상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을까?

 

사실 매일 다섯 번씩의 집단 예배를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슬람의 바탕인 평등과 우애라는 이론적 가르침을 실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설교를 통해 평등과 우애를 설파하여도 예배를 통해 일상 생활에 접목되지 않으면 어렵기 때문이다. 유능하고 대단한 이론가들이 실제 행동에서는 대부분 자신의 이론을 실행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일상 생활에 접목되지 못하는 허황된 이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종교들이 설교,강론,집회를 통해 사랑,봉사,헌신,평등,양심,자선 등의 구호를 줄기차게 외쳐도 수많이 모인 사람들, 즉 그 종교를 선택한 사람들이 스스로 행동에서는 그러한 강론을 실제 생활에 접목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즉 습관화 되지 못한 행동 이론은 무용지물이며 입으로만 외쳐대는 가식적이고 위선자들을 양산할 뿐이다. 

 

이슬람엔 안식일이 없다. 유대교나 기독교처럼 하루가 예배를 위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하루는 일하지 않고 기도하고,엿새는 일하고 예배 안하는 것은 무슬림의 생활 규칙이 아니다. 예배는 인간의 일상사 중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아침에 해뜨기 전에 잠에서 깨어나 하는 � 번째 기도가 있고, 두 번째는 정오에, 세 번째는 오후에,네 번째는 석양 때쯤, 자러가기 전에 다섯 번째 예배가 있다. 무슬림에겐 예배가 그날의 � 번째 일이고, 마지막 일이며 그 사이 일하는 시간 동안에 다른 예배도 있게 된다.

 

이슬람은 인간이 거쳐 나가게 될 모든 다양한 상태 속에서 그의 영혼이 늘 성령과 접해 있어야 함을 요구한다. 아주 바쁠 때 일지라도 그는 잠깐만이라도 모든 속세의 일로부터 자신을 비우고, 예배에 의지해야만 한다. 그 목적은 인간이 모든 상황하에서 신의 존재를 느껴야 한다는 것이고, 일을 하면서도  신이 자신의 마음속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짜임새가 일상 업무에서 도덕적 힘으로 예배의 가치를 얼마나 지대하게 향상시켰는지 쉽게 볼 수 있다.

 

이슬람의 예배 양식은 단 한가지 목적,신의 실체를 깨닫는 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우두(예배 전에 손,입안,콧속,얼굴,팔,머리,발을 닦는 행위), 정중하게 선 자세,허리 굽혀 절하기,바닥에 앞이마를 대고 무릎 끓고 절하기,공경하는 자세로 앉기 등 모든 것이 신의 실재를 하나의 사실로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예배자는 말뿐만이 아니라 온 몸으로 예배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창조주 하느님에게 영광을 드리는 기쁨을 알게 된다. 예배를 볼 때는 겸허한 정신이 온 몸의 자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예배동작 하나하나가 장엄하고 진지한 일이어서 예배자는 다른 것에 주의를 돌려서도 아니 되며, 예배자세를 흐트러뜨리거나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어떠한 움직임에도 빠져 들어가서는 안 된다. 또한 예배는 시종일관 신에 대한 명상이어서 이슬람에선 음악을 동반하지 않고, 신의 사랑,자비,능력과 지혜에 관한 꾸란 구절의 낭송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예배 의식 중 고려된 점은 신의 실재를 느끼고 공경의 몸가짐을 취함으로써 그 분의 위대함,영광,사랑을 숙고하게 된다. 이슬람의 예배양식은 서 있거나,앉아 있거나,허리 굽히기나 또는 엎드리는 행위를 통해 가능한 한 모든 공경하는 자세를 결합한 것이다.

 

3. 희사(쟈카트, Zakat)

희사의 참뜻은 우리에게 희생정신을 길러주고 이기심을 버리게 해준다는 데 있다. 재정형편이 어느 일정 수준 이상인 무슬림은 자신의 생활에 필요한 돈을 제외하고 자신이 1년 이상 보유하는 수익금이나 재산의 2. 5%를 1년에 한번 희사해야 한다. 예컨대, 필요 이상의 돈을 은행이나 집안 금고에 보관하거나 남에게 빌려준 것, 유가증권, 주식에 투자한 금전, 물건을 팔아 보관하고 있는 돈, 상품화할 수 있는 금, 은, 보석 그리고 사업이나 장사하는 데 투자한 순 자기자본, 금이나 이로 인한 이익금, 그리고 곡물이나 가축 등이 모두 쟈카트의 대상물이 된다.

 

희사는 일종의 자선이나 혹은 세금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단순한 친절의 표시도 아니다. 희사는 이 모두를 합친 이상으로 보다 풍요케 하는 영적인 투자로 사회 전체를 위해 하느님께서 명하시고 무슬림들이 떠맡은 의무이다.

 

희사의 문자적 의미는 단순한 청결이다. 이 말의 기술적 의미는 재산을 가진 무슬림들이 정당한 수령자들에게 분배해 줘야 하는 현품이나 현금의 액수를 가리킨다. 그러나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이다. 마음이 병들면 모든 육체가 병들어 사회 공동생활의 핵심인 가족이 병들고 나아가서는 공동체와 국가, 그리고 전세계가 같은 원리에 적용된다.

 

재물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허욕, 빈자와 부자에 대한 시기와 질투,증오와 저주,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축적하려는 경쟁에서 오는 투쟁,불안과 초조 그리고 마움 등이 가득한 인간의 마음은 희사라는 행위를 통해서 정화되기 때문이다. 부자가 내는 희사는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부의 재분배라는 의미와 함께 스스로는 마음의 평안을 갖게 되고, 희사로 수혜를 받은자는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재물을 축적하기 위한 경쟁과 투쟁의 마음이 정화되고 시기와 질투가 사랑과 협동으로 정화된다. 또한 가난하고 불쌍한 사회 구성원들의 고통을 최소한도로 덜어주는 역활을 하여 기부자와 수혜자는 가장 이상적이고 안정적인 현실사회를 이룩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얻는 행복은 물론 더 나아가서 영원한 내세적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천국으로 그들이 인도된다는 영적 행복까지 얻게 된다. 기부자에게는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은 득을 보라는 따뜻한 권유이다.

 

이렇듯 희사는 이기적 탐욕과 사회적 불화,파괴적 이데올로기의 침투에 대한 건전한 형태의 내부적 방위 수단이다. 기부자에게는 사회적 책임의 정신을,수혜자에게는 안전감과 귀속감을 길러주는 효과적인 도구 구실을 한다.

 

희사는 개인과 사회가 서로 화답하여 상호 작용하는 영적 인도주의적 정신의 생생한 시현이다.

 

또한 쟈카뚤 피뜨르라하여 이슬람력 10월 1일 가족 수에 따라 지불하는 희사금이 있다.

쟈카트는 구빈세와 같은 세금의 일종임과 동시에 희사금이나 자선금의 의미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쟈카트의 어의는 정화, 증진, 축복으로써 쟈카트를 함으로써 마음이 정화되고 소유한 재물이 순수해지며 희사의 행위로써 재물이 증가됨을 의미한다.

 

또한 재물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부정한 마음을 정화하고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가질 수 있는 시기심과 증오, 저주로부터 보호함과 아울러 자선의 미덕을 증진시켜준다. 사회적으로는 부익부 빈익빈의 부의 편중현상을 완화시켜 경제적 안정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쟈카트의 수혜자는 다음과 같다.

  1. 가난한 자

  2. 불쌍한 자

  3. 노예

  4. 채무자

  5. 여행자

  6. 종사자(희사금 수금원 등)

  7. 알라의 길에서 노력하는 자

  8. 위안을 받을 자(이슬람을 이롭게 하는 인사들)

"진정한 신앙이란, 알라와 내세와 천사들과 성서들과 선지자들을 믿고 알라를 위해서 가까운 친지들에게, 고아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여비가 떨어진 여행자에게, 구걸하는 자와 노예를 해방시켜준 자에게, 예배를 드리고 이슬람세를 내며 약속을 했을 때는 약속을 이행하고 고통과 역경에서는 참고 인내하는 것이며 이들이야말로 진실하게 사는 의로운 사람들이라." (알 바까라, 꾸란 2:177)

 

"언제나 밤낮으로 알게 모르게 자선을 베푸는 자들에게는 주님으로부터 보상이 있으며 두려움도 슬픔도 없노라."(알 바까라, 꾸란 2:274)

 

"실로 자선금은 가난한 자와 불쌍한 자와 거기에 종사하는 자와 그들의 마음이 위안을 받을 자와 노예와 채무인 자와 알라의 길에 있는 자와 그리고 여행자들을 위한 것이니 이는 알라로부터의 명령이라. 알라는 아심과 지혜로 충만 하시니라." (앗 타우바, 꾸란 9:60)

 

4. 단식(사움)

단식은 이슬람력(히즈라)으로 9월달인 '라마단' 달 한 달간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체의 음식이나 음료, 성행위를 금하는 행위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언행을 삼가한다.) 사움 혹은 시얌(단식)이란, 절제를 뜻하며 식욕, 성욕 등 본능의 절제로부터, 언행과 모든 악에 대한 내적 절제까지를 포괄한다.

 

이맘 무슬림이 전하는 하디쓰에도, "단식이란 정신적, 물질적 차원에서의 절제를 뜻하며 일생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음식물을 동트기 전부터 일몰까지 금하고 모든 악의 요소로부터 멀리해야 하느니라" 고 하셨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1개월간의 단식 기간은 신앙심을 높이고 신앙인으로서의 자질과 심성(인내심과 절제심 등)을 함양하는 특수 수련기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기간에 굶주림을 직접 경험함으로서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의해 쓰여지는 시간을 신앙 생활에 할애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 이 라마단 달은 성 꾸란의 말씀이 지브릴(가브리엘)을 통해 사도 무함마드에게 최초로 계시되기 시작한 자비와 구원의 성스러운 달이기도 하다.

 

단식은 사람들에게 가장 훌륭한 도덕적 교훈을 가르치는 훈련장이다. 그 교훈은 그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에 빠져드느니 차라리 가장 큰 궁핍을 당하고도 가장 어려운 시험을 견디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은 부정한 선욕을 느낄 때 라마단 달에 관계없이 수시로 단식을 한다. 또 다른 단식의 이유는 배고픈 사람들의 고통을 알려고 하는 것으로서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체험하고 희사로써 그들의 물질과 정신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단식의 영적인 의의를 언급해보면, 진정한 사랑의 원칙을 가르쳐주며, 창조적 희망과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지게 한다. 게다가 누가 보던지 보지 않던단식을 하기 때문에 건전한 양심을 배양한다. 그리고 인내심과 비이기심을 고취하고, 사회적 귀속, 화합과 형제애, 하느님과 법 앞에 평등하다는 참다운 정신을 진작한다.

 

단식을 제대로 하게 되면, 자제심과 인간이 가지는 정욕을 다스릴 수 있게 되어 모든 악의 유혹을 물리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를 안정시키고 그 존엄성과 성실성을 회복하며  악의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것이다. 또한 실생활과 떨어진 것이 아니며,가까이 근접되어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슬람의 단식은 태음력인 이슬람력에 따라 9번째인 라마단 달과 더불어 오기 때문에 일년 사계절을 포함하여 교대로 왕복 순환하게 된다. 영적인 의미에서 낮이 짧고 추운 겨울에 때로는 낮이 길고 무더운 여름에 영적인 묘미를 느끼게 한다.

 

이런 단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의무사항은 아니다. 특히 14세 이하의 아이들과 자기행위에 책임을 질 수 없는 정신이상자들, 노약자들, 단식하면 건간이 악화될 환자들,장거리 여행자들, 임산부와 수유기의 산모, 생리기간중인 여인들에게는 모든 조건이 정상화 될 때까지 연기된다. 또한 단식을 거행하다가 이것을 깨는 행위를 한 경우 자기가 하는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깨ㅔ닫는 순간에 그 행위를 멈추면 단식은 무효화되지 않으며 그대로 유효하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먹거나,마시거나,흡연하거나,또는 성교를 하게 되면, 그날의 단식은 무효가 된다. 무엇이던지 입을 통해서 몸속으로 들어가게 해도 역시 단식은 무효가 된다.

 

디른 관점에서 보면 단식은 사회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무슬림들은 계급에 관계없이 이 달에 단식하는 것을 지켜야만 한다. 이런 것은 필연적으로 인간이 모두 동일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고, 그리함으로써 인간 사이에 사랑과 형제애가 생기도록 한다. 라마단 기간 동안 악이 자취를 감추는 대신 선이 나타나고, 모든 곳에는 경건과 결백이 가득 차게 된다.

 

"너희 선임자들에게 단식이 의무화된 것처럼 알라을 믿는 너희에게도 단식은 의무라. 자제함을 통하여 의로워질 것이라. 정하여진 날에 단식을 하면 되나 병중에 있거나 여행 중에 있을 때는 다른 날로 대응하되 불쌍한 자를 배부르게 하여 속죄하라. 그러나 스스로 지킬 경우는 더 많은 보상이 있으며 단식을 행함은 너희에게 더욱 좋으니라. 실로 너희는 알게 될 것이라. 사람을 위한복음으로, 그리고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라마단 달에 꾸란이 계시 되었나니 그 달에 임하는 너희 모두는 단식을 하라. 그러나 병중이거나 여행중일 경우는 다른 날로 대체하면 되니라. 알라는 너희의 고충을 원치 않으시니 그 일정을 채우고 너희의 편의를 원하시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복음을 주신알라께 경배하며 감사하라." (알 바까라, 꾸란 2:183-185)

 

5. 성지순례(핫지)

성지순례는 정해진 기간에 행하는 대순례(핫지)와 기간 외에 행하는 소순례(우므라)로 구분되며 핫지는 무슬림들의 마지막 의무로써 건강과 재력이 허용하는 한 일생에 한 번 사우디 아라비아의 성지 메카를 순례하는 것이다.

 

핫지는 이슬람력(히즈라) 12월달인 '둘 힛자' 8일부터 5-6일간에 걸쳐 정해진 순서와 방법에 따라 순례의식을 근행하는 것이다. 특히 이 핫지 기간에는 전세계로부터 약 2백만명 이상의 무슬림 순례객들이 같은 순례복을 착용하고 인종과 신분, 빈부귀천의 차별없이 신앙의 대행렬에 참가함으로써 신앙을 다지고 확인하며 국제 무슬림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순례 의식의 고행을 통해 예언자 이브라힘(아브라함)과 이스마일(이스마엘)의 유일신에 대한 투철한 믿음과 선례를 답습함으로써 신앙적 깨달음을 얻고 나아가 자신의 믿음으로 확신하고 확고히 할 수 있다.

 

순례는 정상적인 무슬림이 이성이 들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잇는 정신적인 능력을 갖춘 다음 여행과 순례하는 과정에서 오는 육체적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육체적 건강을 갖추었을 때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순례는 정신적,융체적 그리고 물질적 신앙생활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신앙생활이라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인종,국경,신분 등의 차이를 초월한 전세계의 모든 무슬림들이 한곳에 모여 서로의 공동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연례 최대 신앙집회요, 나아가서는 가장 큰 국제회의의 기능까지를 대신하고 있어 신앙생활과 집회를 통한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신앙생활이라는 데서 또 다른 의의가 있다. 게다가 보편성과 형제애 그리고 평등사상이 순례기간 중 동시에 실현된다.

 

각 국가,사회 각계각층에서 창조주의 부름에 응하여 성지순례에 나선 무슬림 신도들은 똑같은 형태의 성지순례 옷을 입게 되고 같은 규정 같은 예식에 같은 시간 같은 목적을 하느님께 갈구한다. 따라서 이 기간에는 빈부의 구별, 상하의 구별, 그리고 지위의 구별이 없는 부편성과 평등사상이 고취되며 나아가서는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되고 서로가 서로의 공동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형제애가 조성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순례의 의의는 죄악으로부터 영혼을 정화하여 그 영혼이 내세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 준비를 하는 데 있다. 예언자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을 받아 건설한 메카의 카바 신전을 7차례 도는 행위와 그 옆에 위치한 '마르와','사파' 동산을 걷도 뛰면서 7차례 왕복하고 아라파트 지역에 체류하면서 그 외의 순례의식을 근행하는 것이 성지순례이다. 이 순례는 재정적,정신적,신체적으로 능력있는 무슬림에 한해서 일생에 한번 이상 하는 것이 의무로 되어 있다.

 

슨례는 정신적,육체적 그리고 물질적 신앙생활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신앙생활이;라는 데서 � 번째 의의를 �을 수가 있다. 숨례 때는 인종,국경,신분 등의 차이를 초월한 전세계의 모든 무슬림 신도가 한곳에 모여 서로의 공동문제를 다루고 각종 정보가 공유된다는 점에서 연례 최대 신앙집회이며, 정보교류의 장이다. 나아가서는 가장 큰 국제회의의 기능까지를 대신하고 있어 신앙생활 집회를 통한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신앙생활이라는 데서 또 다른 의의를 �을 수가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의의는 참가자 스스로 예언자의 행적을 쫓아 행하고 고행과 하느님을 간구하는 신앙을 통하여 영적인 감동을 받을 수가 있다. 특히 아브라함과 그의 장손 이스마일이 행한 신성한 의식을 답습하면서 영적인 감화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의의는 죄악으로부터 영혼을 정화하여 그 영혼이 내세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 준비를 하는데 있다. 순례가 끝난 후 이슬람교 양대 축제의 하나인 희생제(이드 알하드하) 축제가 열린다. 

 

희생제 축제의 목적은

�째, 하느님의; 축복을 추구하는 데 있다.

둘째, 예언자 아브라함을 선례를 따르는 순나이다.

셋째, 축제날 가족을 기쁘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불우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데 있다.

네째, 인간에게 가축을 일용할 양식으로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결론적으로 성지순례(핫즈)를 하면 영적으로 풍성하게 되고 도덕적으로 재무장하며 열렬하게 헌신하게 되고 수련을 체험하며 인도주의적인 관점과 고무적인 지식의 여정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융화되어 이슬람이라는 하나의 제도 속에 통합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대순례는 명시된 달에 행하되 순례를 행하는 자는 성욕과 간사하고 사악한 마음을 갖지 말 것이며 언쟁도 하지말라. 그리고 선행을 행하라. 그리하면 알라께서 아실것이라. 내세를 위한양식을 마련하되 가장 좋은 양식은 이성이 있는 자들의 정직한 품행이라. 그러므로 현명한 자들아, 나를 두려워하라." (알 바까라, 꾸란 2:197)

 

여섯 가지 믿음(6신:六信, Iman)

1. 창조주 유일신 '알라'에 대한 믿음

이슬람 가르침 중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이며 기본적인 것이 바로 신의 유일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서든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유일신 사상을 말한다.

'알라 이외에 신은 없다'라는 구절은 이슬람의 기초이며 토대이자 본질이다. 여기서 알라라는 단어는 예배를 받는 분, 즉 위대하고 능력이 잇기 때문에 공손하게 예배 받고 경배 받으며 복종 받는 존재라는 뜻이다. 또한 무한한 능력, 즉 다른 존재를 압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라는 뜻도 포함된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존재,신비한 것이라는 의미도 있어 보이지 않는 존재,느낄 수 없는 존재를 뜻한다.

그래서 알라라는 단어는 하느님의 가장 중요한 이름으로 우주를 통털어 예배 받을 수 있는 분은 알라 이외에는 절대 없고, 그에게만 복종과 경의로서 고개가 수그러지며, 모든 능력을 가진 유일한 존재이고, 모든 것은 그의 은총을 필요로 하고 그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신은 전지전능하며, 과거의 것, 그리고 지금의 것, 그리고 미래에 올 것을 모두 만드신 창조자이며, 선과 악을 구분하는 정의로운 심판자이며, 예언자와 성전을 통해 인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자비로운 안내자이다. 신에게는 필적할 아무런 상대도, 협력자도, 자손도 없으며, 그의 권능을 막을 어떤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직 한분 이시고 영원하시며 성부와 성자를 두지 않으셨으며, 그분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꾸란112장)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수호하시니, 하늘과 땅의 열쇠들이 그 분의 것이로다 ."(꾸란39장62-63)

꾸란에서 위와 같이 언급하고 있듯이 세상 모든 삼라만상의 존재와 소멸은 바로 그 분, 하나뿐인 신으로부터 시작되며 결정지어지고 또한 그 모든 것을 거두는 것도 그분이다. 또한 이 모든 권능은 오직 한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이를 대신할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음을 "라 일라하 일랄라 /La Ilaha Illallah : 그분외에는 신이 없다"이 구절을 통해 사도 무함마드(그분에게 평화가) 또한 모든 이에게 그 사실을 기억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신앙인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이슬람 사상의 바탕이며 기둥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에서는 '유일신', 그 존재를 의심하거나 비하 혹은 인격화시키는 것을 용서받을수 없는 가장 큰 죄로 간주한다.
 

인간의 가장 오래된 역사나 고적을 살펴보면 어느 시대나인간은 자연신을 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대까지도 지구상에 있는 원시사회로부터 문명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의 민족들이 자연신을 섬기고 있다.

무지의 시대 초기에는 인간은 장엄한 자연적 대상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그것이 인간을 해칠 수도 있으며 실제적인 권능을 지니고 잇고, 따라서 그것은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연유로 인간은 나무,동물,강,불,비,공기,천체,기타 다른 것들을 숭배했다. 이는 무지의 최악의 형태이다.

무지가 어느정도 가셔지고 인간의 정신에 지식과 빛이 들어오면서 인간은 자연적 대상이 별로 쓸모가 없고 의존적이며 인간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지식과 학문이 더욱 발전하고 인생과 존재문제에 대해 더욱 더 깊이 생각하면서 인간은 우주를 움직이는 전능한 법칙과 광범위한 통제력을 발견하게 된다. 빈틈없는 규칙성에 의해 태양이 뜨고 지고,바람,별,비,가 내리며,계절이 변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마다 다른 무수한 힘들이 한데 얽혀 일정하게 움직이는 우주의 갖가지 요인들이 한데 얽혀 일정하게 움직이고 우주의 갖가지 요인들이 일정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연법칙은 얼마나 강력하고 지고한가, 자연법칙의 이러한 통일성,규칙성,비에외성을 보고 있노라면 다신교일지라도 모든 신들 위에 군림하면서 최상의 권능을 행사하는 신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2) 천사,사탄,진(JINN)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존재에 대한 믿음
무슬림들은 신의 창조물들 중 모두가 인간에게 보이거나 들리거나 느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진(Jinn)"이라고 불리는 영마(靈魔)는 지상에서 많은 선과 악을 행하며 이는 꾸란에 나타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강력히 신의 계획을 따르는 피조물은 신의 심부름꾼에 해당하는 천사들이다. 천사는 남녀의 구별이 없으며 인간보다도 낮게 창조되었다. 신은 꾸란을 직접 무함마드에게 계시한 것이 아니다. 천사인 가브리엘을 통해 꾸란을 내려보냈다. 이 천사의 개념은 유대교나 기독교의 개념과 거의 동일하다. 대천사 가브리엘이나 미카엘이 있고 최후의 심판일을 알리기 위해 나팔을 부는 이스라필 천사도 있다. 아랍어로 이브리스(Iblis) 또는 알 샤이탄(al-Shaytan)이라 불리는 악마는 원래 천사였으나, 아담을 경배하라는 신의 계율을 조롱함으로써 신의 은총에서 버림받아 인류를 타락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 하나님(Allah)의 천사(Al malaika)에 대한 믿음
천사(Al malaika)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서 인간의 능력이나 어떠한 특별한 과학적 지식 또는 특별한 육감으로는 그 존재 유무에 대해 증거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 또한 큰 죄임을 꾸란에서는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주지해야 할 것은 '천사'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로서 그 존재를 믿어야 하지만 그것이 경배의 대상이나 구원의 주체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인간과는 달리 천사에게는 선택을 위한 자유의지가 부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서는 물질이나 육체적 욕망으로 인한 범죄의 속성을 찾아볼 수 없으며 그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뿐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에 의해 창조되어진 피조물로서 다음과 같이 구분되어 진다.

. 가브리엘 /Jabril
모든 천사들을 관장/ 사도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한다.

. 이스라필 /Israfil
최후의 심판 때 나팔을 두 번 불게 되는데 첫번째 나팔을 울려 지상의 모든 생명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며 두 번째 나팔은 최후의 심판을 위해 죽었던 모든 생명체를 부활케 한다

. 메카일 /Mackerel
창조되어진 모든 세상과 자연의 섭리를 관리한다

. 이즈라일 /Azrail
인간의 영혼을 거두는 역할을 한다

. 자비니스 /Zabanis
지옥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 리드완 /Ridwan
천국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 문카 , 니키르 , 무바쉬르 , 바쉬르
최후의 심판 날까지 인간이 지은 죄만큼 그들을 단죄하는 역할을 한다.

. 아티드 , 라킵
(인간에겐 수많은 천사들이 항상 동행하지만 그 중에 특별히) 인간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선과악을 기록하는 역할을 한다

3) 성서들에 대한 믿음
무슬림들은 신이 인간들 중에 정의로운 한사람을 예언자로 선정해 그의 입을 통해 복음을 전하도록 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복음들이 성서가 되었다. 인간이 타락하고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마다 신은 예언자들을 통해 복음을 내렸다. 언제 어떤 민족들에게 어떤 예언자들을 통해 어떤 복음들이 내렸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부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다윗에 의해 전해진 시편, 모세가 유대인들에게 전한 토라(Torah, 구약), 예수가 기독교인들에게 전한 인질(Inzil, 신약),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함마드가 무슬림에게 전한 꾸란이 그것이다. 하지만 무함마드 이전에 계시된 성서들은 번역과정을 통해서 내용이 변질되었거나 위정자들이 정치적·경제적 목적으로 일부 내용에 수정을 가했기 때문에 그것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무슬림들은 유대인 자신들이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고 묘사하기 위해서 구약(Torah)의 몇 구절을 바꾸었거나, 또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신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복음서를 다시 쓴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오직 꾸란만이 계시된 이후부터 한 점 한획 의 변질없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진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꾸란은 계시된 장소에 따라 메카에서 계시 된 장과 메디나에서 계시 된 장으로 나뉜다. 뒷부분의 짧은 장들이 주로 메카에서 계시된 장들로서 길이가 짧은 대신 상징적·은유적인 표현이 많아 이해하기 어려우며 신의 전능과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대한 경고를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앞 부분의 긴 장들은 메디나에서 계시된 장들로서 실생활의 구체적인 규범들로 가득 차있다. 꾸란은 아랍어로 계시되어졌지만 그것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내용의 오역이나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렇게 번역된 것은 단지 '주해서' 혹은 '해설서'로 간주될 뿐이다.

꾸란은 수많은 아랍 민족들을 시·공을 초월해 하나로 묶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즉, 꾸란의 언어는 북 아프리카 서쪽 끝에서부터 아라비아 남부의 예멘에 이르기까지 아랍어를 사용하는 20여 개국의 표준어일 뿐 아니라, 1400여 년 동안 변함없이 꾸준하게 읽혀져 내려왔기 때문에 계시 당시의 아랍인이나 현대의 아랍인들이 별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하나님의 성서(Al Khutub)에 대한 믿음 내가 너희에게 복음을 내려 보낼 것이니 나의 복음을 따르는 자 두려움도 그리고 슬픔도 없을 것이며, 방황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을 것이라 /꾸란 2장38절, 20장123절
하나님으로 부터 지상에 내려진 계시(성서)는 총 10.000편의 수흐프와 4권의 책(Khutub)이있었으나 현재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거의 대부분은 유실되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성서의 대부분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 받은 원서라 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일종의 번역서 혹은 개정서 라 밖에 할 수 없다.

그 예로써 아브라함에게 계시된 수흐프는 현재 지구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도 그 원본은 없는 수정 보완서 일 뿐이다.

또한 사도 예수에게 계시된 신약(Injil)은 새로운 것에 대한 계시가 아니며 이는 이전의 사도들에게 내려 졌으나 분실 또는 손상되어진 구약 서를 다시 회복코자 계시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역사의 흐름을 거쳐 많은 부분이 또다시 수정 왜곡됨으로 인해 현존의 성서는 그 정통성을 상실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성서의 정통성과 그 의미를 위와 같은 성서들과는 달리 변질 없이 그 정통성 지키고자 내리신 것이 인간 세계의 마지막 성서인 꾸란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성서를 내려주시고 이것이 변질되지않게지켜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심을 꾸란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꾸란85장22절)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1천4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꾸란 낭송시 원문 그대로의 원어로 읽기를 권장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며 하나님의 약속대로, 계시받은 꾸란의 원본은 일 점 일 획의 변환없이 그 정통성을 유지하며 보존되고 있다

이같은 성서들이 변질되었건 변질되지 않았건 간에 최초에는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성서들임을 믿는 것이 무슬림의 세번째 믿음이다.

4 ) 선지자 및 예언자들에 대한 믿음
사도(使徒), 예언자 혹은 선지자라 함은 신의 복음을 인간들에게 전하기 위해 신에 의해 선택된 인간을 말한다.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마지막 예언자임을 강조하지만, 구약, 신약, 꾸란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 즉 아담, 노아, 아브라함, 요나, 욥, 등을 인정한다. 무슬림들은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을 이단으로 규정함에도 불구하고 모세나 예수 역시 예언자로 간주해 존경과 찬미를 보낸다. 꾸란은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을 인정하지만,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거나 또는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한다. 또한 심판의 날까지 더 이상의 예언자는 오지 않는다.

- 사도와 선지자에 대한 믿음
사도(Al Rasul)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어진 인간을 뜻하는 단어로 이는 선택된 사람의 신앙심이나 사상 또는 그 사람의 배경이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특별한 뜻, 섭리에 의해 결정되어 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듯이 그분으로부터 선택되어진 사도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하나님의 사도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역시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어진 사도라 할지라도 그들 또한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경배의 대상도 구원의 주체자도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선택을 받은 사도들에 대한 그 믿음에 차별을 두어서도 안되며, 받은 계시에 대하여 인간으로서 그 경중을 따져서도 안된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나님의 말씀이며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역할의 차이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보면 수 많은 사도들이 그들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으며, 그 수에 대해서는 정확한 숫자가 전해지고 있지는 않지만 대략 124,0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등이 있는데 이중 아브라함은 신의 친구(Khalil)로 택함을 받았을 정도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를 경배하였으며(꾸란4장 125절),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모세5경/토라를 계시 받은 모세(Kalimullah:신과 직접 대화를 나눈 사람),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꾸란3장 47절) 신의뜻에 따라 승천(꾸란4장 158절)하기 까지 많은 기적을 이룬 사도 예수 등이 꾸란에 잘 명시되어 있다.

이중 특히 사도 무함마드는 최후의 사도로서 이전의 사도들에게 계시되었으나 그후 많은 왜곡을 통해 변질되었던 성서를 온전하게 회복, 완성하셨으며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경배의 길을 가르칠 것을 계시받았다.

5) 최후심판일 (來世)에 대한 믿음
최후의 심판 일을 믿는다는 것은 내세를 믿는다는 말과 같다. 이 운명의 날에 모든 산 자들은 죽을 것이며, 그들은 그 이전에 죽은 자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행한 선과 악한 행위를 심판 받기 위해 신의 권좌 앞에 소환될 것이다. 그들의 죄과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 꾸란은 천국을 시원한 샘물들과 풍성한 음식과 음료 그리고 아름다운 시종들이 있는 그늘진 정원이라고 묘사한다. 지옥은 무서운 짐승들, 잔인한 고문, 유독한 안개, 썩은 음식과 끊는 물만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지옥에는 평화도 조화도 없는 곳이며, 신은 나타나지 않고 형벌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곳이다.

- 최후의 심판과 부활에 대한 믿음
일반적으로 이슬람 사상에서는 인간의 육체적 발달 과정을 3단계로 보는데 그 첫번째가 흙의 단계(꾸란 )이며 두 번째가 자궁내의 단계(꾸란 ) 그리고 마지막이 탄생의 단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적 단계 또한 생명이 주체이기는 하지만 아직 자의식이 없는 상태로 모체에 있는 시기, 그 후 호흡을 갖고 살다 죽음을 통해 무덤에 이르는 중단단계, 그리고 마지막 부활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위에서 구분한 바, 영혼의 중간 단계에서 마지막 단계로 이르는 과정에서 인간은 누구나 그 삶에 대해 옳고 그름을 행한 대가를 심판 받게 되는데 이는 마지막 단계에 있는 최후의 심판과는 또 다른 의미로써 이 중간 단계에서 내려지는 심판은 인간 사회의 법처럼 상황에 따라 또는 지휘나 가진 것에 따라 타협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행한 만큼 그대로 심판 받게 되는 것이다.

그 후 우리는 영혼의 마지막 단계의 최후의 심판 날에 이르게 되는데 이 시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단정지을수 없으며 이는 창조하시고 거두시는 절대자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다.(꾸란40장59절,34장3절,7장187절) 심판의 날에 모든 인간은 그가 생애에 행했던 모든 선행과 악업에 따라 분류되어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워진다.

6) 정명(定命)에 대한 믿음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를 중요시한다. 즉, 다른 피조물과 달리 신은 인간에게만 '이성'이라는 축복을 내렸기 때문에 그 이성에 따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중시함과 동시에 자유의지의 선악에 따라 최후의 심판 일에 심판을 받는다.

-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
현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많은 부분을 과학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 과학의 발전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많은 부분에 있어 삶의 질은 어느정도 향상되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좀더 본질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과연 과학의 발전이 언제나,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삶의 질의 향상이라기 보다는 단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과정상의 시간 단축 즉 편리성에 대한 기술적 진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답은 아닐는지… 또한 모든 사람들이 마치 유토피아라도 건설할 수 있는 과학과 전문 기술의 세기가 도래한양 기다려 마지않던 21세기가 되었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것 만큼 그에 따른 많은 문제 또한 발생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굳이 그 예를 나열하지 않아도 연일 매스컴을 통해 귀가 따갑도록 접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이러한 노력들 뒤엔 자연의 섭리, 인간의 섭리와 같은, 이 세상을 운용하고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섭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그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집착이 있는것은 아닐지.. 물론 발전을 위한 노력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실제로 이슬람에서는 현세의 삶도 내세의 삶만큼이나 중요시 하며 현세의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과연 발전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그 가치들이 함께 고려되고 있는가? 과연 무엇을 위한 발전이며 그 결과가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는 유한적 생명체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도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특권이며 동시에 신성히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을 활용하되 그 권리와 의무의 한계를 벗어나려 해서는 안되며 노력한다 해서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또한 우리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자손들이 그럴 것 처럼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의 운영섭리에 속하는 피조물이며 그것이 인간에게 허락된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인정하고 믿으며 그 안에서 노력할 때에 우리의 방향을 올바로 볼 수 있으며 발전에 대한 가치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