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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개혁과 실패한 개혁

두바퀴인생 2008. 1. 10. 19:38

 

[아침햇발] 성공한 개혁과 실패한 개혁 / 정남기

한겨레|기사입력 2008-01-10 19:17 기사원문보기
[한겨레]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1999년 방한했을 때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덩샤오핑 전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비교한 적이 있다. 똑같이 개혁·개방을 추진했는데 왜 고르바초프는 실패하고, 덩사오핑은 성공했을까? 그의 답은 간단했다. “고르바초프는 이상주의자였고, 덩샤오핑은 현실주의자였다.”

고르바초프는 성급하게 정치적 민주화부터 시작했다가 큰 사회적 혼란을 불렀다. 그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준비 없이 사회를 완전히 개방하는 바람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또 “어떤 개혁이든 속도가 관건이다. 당시 사회가 변화의 속도에 견디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덕분에 국민들은 10년 이상을 참혹한 고통과 혼란 속에 시달려야 했다.

덩샤오핑은 경제개혁을 앞세웠다. ‘사고의 해방’을 강조하면서도 관념적인 이념투쟁에 몰입하지 않았다. 사실상 ‘계급투쟁’이란 용어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수용했음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또 서두르지 않았다. 인구가 밀집한 농촌 개혁부터 시작해 국민 생활을 안정시킨 뒤 경제특구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경제특구를 통해 축적한 부와 자원의 분배에 대해서도 너무 빠르면 평등주의에 빠지고, 너무 늦으면 양극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라’는 지론대로 항상 적절한 시기와 대안을 탐색했던 것이다.

어설픈 개혁의 결과는 항상 처참하다.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오히려 개혁 반대 세력의 입지를 넓혀준다. 소련과 중국의 개혁은 이념과 방향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둘 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추구했다. 다만 개혁의 시기와 방법이 달랐다. 그것이 성패를 갈랐다.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한 뒤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념적 혼란에 빠져 있다. ‘시대 흐름이 보수화하고 있다’, ‘시장주의와 물질주의가 득세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진보진영이 몰락했다’는 책임전가식 주장과, ‘방향은 옳았지만 절차가 조금 잘못됐을 뿐’이란 자기 합리화까지 등장한다.

하지만 국민은 이념에 따라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다. 시장주의나 물질주의에 빠지지도 않았다. 어설픈 개혁에 실망했을 뿐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뒤 국민의 실생활과 아무 상관 없는 4대 개혁 입법으로 1년 이상을 허비했다. 국가보안법·과거사법·사립학교법·언론관계법 등이 대부분 이념 논쟁으로 번졌던 사안들이다.

거창한 담론으로 출발하는 개혁은 십중팔구 실패한다. 성공하는 개혁은 중국 샤오강의 인민공사 개혁처럼 작은 데서 출발한다. 또 치밀한 계획과 준비를 통해 이뤄진다. 진보냐 보수냐, 평화냐 전쟁이냐 그런 식의 관념적인 논쟁으로는 실질적인 변화와 개혁을 끌어낼 수 없다. 반대 세력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고, 정치적 논란에 지친 민심은 떠나간다.

진보적 지식인들에게서 민주-반민주 구도가 무너졌으니 앞으로 이명박 정권의 시장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국민을 개혁으로 이끌어가기 전에 자신부터 개혁해야 한다. 진보와 보수라는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또 시장주의니 물질주의니 하면서 국민을 탓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말고 국민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게 진보세력이 살아나는 길이다. 중단 없는 개혁을 외치면서도 항상 현실에 발을 붙이고 시선을 아래로 두었던 덩샤오핑의 현실적인 개혁 노선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정남기/논설위원
jnamk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