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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우리들의 슬픔

광신자와 지혜있는 자...

두바퀴인생 2007. 9. 2. 13:23

 

 

 

광신자와 지혜있는 자

프로메테우스 | 기사입력 2007-09-01 11:55 기사원문보기
아프간 피랍과 이랜드 사태를 보며

[프로메테우스 권태훈 기자]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지혜있는 자들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근대적인 ‘지식인’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보여주고 실천한 볼테르가 한 말이다.


광신자들이 사회를 몰이성의 상태로 몰고 가는 것도 결국 광신도 사회가 생산한 것이라는 면에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런 광신을 보고도 지혜있는 자들이 행동에 나서는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뜻이다.

 

나는 볼테르의 이 말을 곱씹을 때마다 ‘광신자의 열성’보다는 ‘지혜있는 자들의 열의 없음’이 더욱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광신자들이야 어느 사회에나 항상 있기 마련이고, 사회구조의 산물인 한 어느 사회에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 사회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발전은 ‘광신자들의 열성’이 사회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혜있는 자들의 열의’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결국, 한 사회의 민주주의와 합리적 소통의 수준은 광신자들의 존재보다는 지혜있는 자들의 열의에 의해 보증될 수밖에 없고, 이런 이유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유지하는데 ‘지혜있는 자들’의 책임이 훨씬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제 탈레반 피랍되었던 한국인 인질들이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 결과 풀려났다. 그 기사가 언론에 대서특필되자 인터넷은 다시 피랍자들에 대한 비난과 옹호로 뜨거워졌다.


물론 이번에 피랍된 분들이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고 이슬람을 사탄으로만 보는 광신도들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서슴없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서 '순교'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무슬림을 사탄취급하며,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주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거리행진을 하겠다는 등 일부 한국교회의 광신적 행태가 이번 사건을 불러온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이는 탈레반이 피랍자 석방의 조건으로 한국인의 철수와 한국인 기독교 선교활동 중단을 요구했다는 점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부 양심있는 기독교인들을 제외하고는 이번 피랍사태에서 하나의 중요한 배경을 이루는 한국 일부 기독교계의 광신적 행태에 대해서 공론을 형성하지 못했다. 다른 종교를 일방적으로 배타시하며, 부패와 비리로 얼룩져 있는 족벌체제를 형성하고, 십자가보다는 성조기를 들고 기도하는데 더 열중인 이들의 행태는 소통과 조중을 거부한다는 면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소이며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리고 이번 피랍사태는 이들의 이런 광신적 행태에 대한 준엄한 비판여론을 형성할 계기로 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지혜있는 자’들이 침묵함으로써 광신자들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열성’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파업 두 달을 넘긴 이랜드 사태도 우리 사회의 광신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사장이 기독교도라고 회사의 사원에게 기독교와 기도를 강요 - 이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상의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는 행위이다 - 하는 것부터, “성경에는 노동조합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며, 노동자들에 대한 몰상식한 착취와 탄압을 감행하는 것까지, 이랜드의 행태는 가히 광신자들이 보여줄 수 있는 악행의 만신전(萬神殿)이라 할 만하다.

이제 광신은 개인적 광신을 넘어 사회적 피해자를 양산하며, 단순한 종교를 넘어 차별과 착취의 논리로 전화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혜있는 자들"은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 전혀 "열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피랍사태에서 무분별한 선교행위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일부 양심적 기독교계도 이랜드 사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반(反)기업적으로 보일까봐, 기독교도들의 표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오히려 광신자의 편에서 서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이 정도면 소수의 "광신자들의 열성"이 문제가 아니라 광신자들이 다수가 되어 우리 사회의 불관용과 배제와 차별과 착취를 더욱 깊게 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다.

 

광신자들이 사회를 좌지우지 할 수 없도록 하는 건강한 상식과 자정기능을 잃은 사회는 말 그대로 ‘미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합리적 소통이 막힌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민주주의와 합리적 이성을 지키는데 더 큰 책임이 있는 “지혜있는 자들”은 분명히 스스로를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광신자들로 부터 우리 사회를 지키기 위해 결연히 나서야 한다.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기독교인부터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참여와 평등을 지키고 확장하고자 하는 ‘지혜 있는 우리 모두’가 손을 잡고 나서자. 더 이상 얌전이나 빼고 있어서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급격한 후퇴를 막을 수 없다. 모두 일어서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무기'로 들고 싸워야 할 때이다. 이럴 때만이 광신자들을 광신의 굴레에서 꺼내오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권태훈 / 사람연대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