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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던 후배가 유방암으로 떠났다. 영안실에서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도 허탈감에 빠져 소파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망연하게 TV를 바라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물 먹고 여러 사람이 나았대요. 기적의 물이래요”
민머리에 피골이 상접한 후배가 마지막 지푸라기로 잡은 그 물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듣자하니 그 물을 만든 사람은 학위도 논문도 이론도, 물은 물론 건강 보조식품들도 다 가짜라고 한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생생하게 이어졌다.
후배가 그 사실을 모르고 떠난 것이 다행스러운 반면 임종 때 까지도 세상의 부조리에 농락당한 사실이 더 불쌍하고 왠지 내가 미안했다. 그리고 그 안에 몸담고 사는 우리네가 참 초라하게 느껴지고 또 다른 색깔의 슬픔이 밀려왔다.
오랜만에 오래 알고 지내는 시골 아주머니를 만났다. 수척하고 풀이 죽어보여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남편에게 쫓겨나서 밖에서 지낸다고 했다. 도무지 짐작 가는 일이 없어 의아했다.
“제이유 아시지요? 1억을 당했어요. 모아 놓은 돈하고 남편 몰래 집과 밭을 잡혀서 보태고 해서….” 그녀의 1억은!? 거의 반생을 안 먹고 안 입고 손톱이 뭉개지면서 흘린 땀의 결정이다.
“그 회사에도 가 봤어요. 진짜 멋쟁이들이 바글바글 하데요. 뭐가 씌웠지요. 나 말고도 우리 동네 여럿 당했어요.”
내 친구가 거금을 당하고도 창피해서 ‘아야!’ 소리도 못한다는 소문이 귓속말로 퍼졌는데 이런 두메의 순박한 아주머니까지 당했다니 해가 꺼멓게 보이고 귀가 먹먹했다.
개인정보를 이용한 기상천외한 전화사기도 기승을 부린다. 외국에 있는 아들을 들먹이는 바람에 사기를 당할 뻔 했던 지인은 아들하고 암호를 정해두었다고 한다. 이제 사기는 이 시대의 역병이 되고 있다. 허약한 사람이 전염병에 먼저 걸리 듯 물정에 어둡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피해자는 혹독한 인생의 독감을 앓을 것이고 후유증으로 불행의 늪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작가들 모임에서 ‘사기 예방백신은?’ 하고 주제를 내 놓아보았다. 욕심 부리지말 것. 순리대로 살 것. 혼자 결정하지 말고 가족이나 주변에 조언을 구할 것. 정보에 밝을 것. 사례를 많이 알 것. 공짜 좋아하지 말 것. 합리적으로 생각할 것. 정신 바짝 차릴 것 등 다양한 처방이 나왔다. 또 무엇이 있을까?
정연순(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