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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미래사회

쇼의 탄생,전략,성공...

 

 

쇼! 쇼의 탄생… 쇼의 전략… 쇼의 성공…


작년 9월 KTF 임원회의서 결정 한달 만에 부정적 이미지 씻어 “하루 1만 명씩 가입자 늘고 있어”
 

‘W(더블유), SHOW(쇼), Vyond(비욘드), WHAT?(왓?), Wing(윙)’

작년 9월 초 KTF의 임원회의에는 낯선 상표 5가지가 올라왔다. KTF가 전략적으로 준비해온, 영상통화가 가능한 3.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에 붙일 브랜드 후보였다. 3000여개의 브랜드를 대상으로 선정작업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5개로 압축한 것이었다.

브랜드 작업을 담당한 비즈전략은 ‘W’는 3.5세대 이동통신 방식인 WCDMA(광대역 코드분할 다중접속)를 의미하고, ‘SHOW’는 나를 보여주면서 통화하는 영상통화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Vyond’는 visual(눈에 보이는)과 beyond(무언가를 넘어서)의 합성어, ‘WHAT?’은 궁금증과 놀라움의 표시이고, ‘Wing’은 ‘WCDMA를 하고 있는(ing)’이라는 의미와 날개의 뜻을 동시에 포함한다는 내용도 곁들였다. 소비자 호감도 조사결과 ‘W’가 1위로 나왔다는 자료도 첨부됐다.

“어떤 게 좋을까요?”

회의를 주재한 조영주 사장은 임원들에게 물었다. 시장조사 결과를 토대로 W가 안전할 것 같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하지만 조 사장은 “쇼(SHOW)가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조 사장의 뜻밖의 발언에 회의장은 술렁거렸다. 조 사장은 좀 더 강한 어조로 “쇼로 결정합시다”라고 말했다.

“시간 끌어봤자 손해입니다. 쇼로 결정하고, 마케팅 전략을 잘 세워서 반드시 성공합시다.”

사장이 책임진다는 발언이었다. 올 상반기 브랜드 마케팅 부문에서 가장 성공한 것으로 평가 받는 ‘쇼(SHOW)’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조 사장이 쇼를 선택한 자신감은 비즈전략실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됐다. 비즈전략실은 WCDMA라는 통신기술을 의미하는 W보다, 서로 얼굴을 보여주면서 통화한다는 쇼(SHOW)가 소비자들의 감성을 쉽게 파고들 수 있다는 의견을 올렸다.




쇼(SHOW)는 앞세우고, KTF는 숨겨라

브랜드를 결정했지만, 처음부터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우선 ‘쇼’라는 말이 나이든 세대에선 ‘가짜’ 또는 ‘거짓말’로 쓰이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컸다. 비즈전략실 임직원들은 고민 끝에 쇼가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정면으로 뛰어넘기로 했다.

그래서 광고 문구에 ‘쇼 하고 있네’, ‘쇼를 하라’ 같은 표현을 일부러 넣었다. 비즈전략실 홍석범(42) 부장은 “처음 쇼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좋다’와 ‘나쁘다’가 반반 이었으나, 광고를 시작한 지 1개월 정도 지나자 ‘좋다’는 의견이 80% 이상으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쇼(SHOW)’ 브랜드를 시각적으로 보여줄 로고를 정하는 과정도 어려웠다. 신훈주(36) 차장은 “소비자가 친근하게 느끼도록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글자체를 찾았고, 가능하면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개발했다”고 전했다.

경영진은 쇼(SHOW) 광고에서 ‘KTF’라는 회사이름을 전혀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KTF를 앞세울 경우 자칫 ‘이동통신 업계 2위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도 있기 때문. 음성통화 중심의 2세대 이동통신 시장에선 2위였지만, 미래의 3.5세대 이동통신에선 1위 업체로 도약한다는 경영전략이 성공하려면 KTF 대신 쇼(SHOW)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이는 도요타가 미국시장에서 고급차 렉서스 브랜드를 성공시킨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지난 89년 미국에서 고급차 렉서스를 출시할 당시만 해도 도요타는 ‘값싼 차’의 이미지가 강했다. 도요타 브랜드를 내세우면 고급차인 렉서스의 이미지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그래서 도요타라는 회사이름을 철저히 숨기고, ‘렉서스’라는 브랜드만 앞세웠다.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회사 이름이나 기존 브랜드를 숨기는 ‘단절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KTF도 이를 따랐다. 대리점 간판도 모두 ‘SHOW’로 바꾸고, 간판 속의 KTF는 지웠다.

광고제작을 맡은 제일기획도 광고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쇼는 뭔가 다르고, 지금까지 없던 것이며,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서비스라는 것을 표현해 달라는 것이 KTF의 요청이었다.

김태해(39) 제일기획 국장은 “직원들이 실제로 휴대폰을 들고 버스와 지하철에서 기이한 행동을 해보면서 광고 아이디어를 짜냈다”고 말했다. 2월부터 시작한 쇼(SHOW) 브랜드 광고는 처음부터 소비자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심었다. 특이한 행동을 하는 등장인물과 빠르고 경쾌한 배경음악, 강한 목소리, ‘쇼를 하라’는 반복적인 대사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자극했다.


1000명 중 998명이 아는 브랜드로 성장

‘쇼’ 브랜드 마케팅은 일단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올 1월말 4만121명에 불과하던 3.5세대 서비스 가입자는 올 3월 본격적인 브랜드 마케팅 활동에 나선 후 가입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달 6일에는 100만명을 돌파했다. 영상통화가 가능한 3.5세대 이동통신 시장만 놓고 보면 독보적인 1위다.

KTF 조영주 사장은 “요즘은 하루 1만 명씩 가입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입자 중에 20대가 가장 많고, 가입자당 월평균 매출액이 이전보다 높아진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쇼’ 브랜드 출시 초기에 업계에서 우려했던 점도 해소됐다고 회사측은 보고 있다. 영상통화가 대표적이다. 경쟁업체들은 영상통화 사용률이 10%가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쇼 가입자들의 실제 영상통화 사용률은 35.6%로 나타났다고 KTF는 밝혔다.

쇼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람에 소비자들이 ‘쇼’는 알지만 KTF는 모른다는 지적도 사실과 달랐다. 홍보담당 유석오 상무는 “최근 조사결과 13세부터 45세까지 사람 1000명 중 998명이 ‘쇼’ 브랜드를 안다고 답했고, 이중 80%가 ‘쇼는 KTF의 3.5세대 이동통신 브랜드’임을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최근 ‘쇼’는 해외출장이 많은 비즈니스맨을 가입자로 빨아들이고 있다. 이는 해외에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는 자동로밍 서비스 때문. 쇼에 가입하면 국내 휴대폰을 들고 나가 해외에서 그 번호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통화료가 다소 비싸지만, 기업에서는 요금보다 업무효율이 높아지는 쪽을 택한다.

KTF의 해외 로밍 이용자 수는 작년보다 225% 증가했다. 해외 로밍으로 인한 매출액은 167% 늘어났다. 쇼 전화기로 자동로밍이 가능한 나라는 110개국에 이른다.

‘쇼’ 광고를 제작한 제일기획도 광고업계 1위 업체로서의 자존심을 세웠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요즘 기업의 광고를 유치할 때 장황한 설명 없이 ‘쇼’의 성공스토리만 이야기하면 대부분 신뢰감을 표시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시장 점유율 확대가 대표적인 문제. KTF는 3.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인 쇼 가입자가 100만명 이상으로 늘어났지만, 전체 이동통신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제자리 걸음이다. 마케팅 비용이 급증해 수익성이 악화된 것도 부담이다. 조 사장은 “올해는 열심히 투자하고, 내년 이후부터 수익을 거둬 들이겠다”는 전략이다.

대신증권 이동섭 연구원은 “KTF가 ‘쇼’의 마케팅 성공을 수익성으로 연결하려면 자기 회사의 2세대 이동통신 가입자를 쇼 서비스로 전환시키는 데 만족하지 말고, 경쟁회사 고객이나 신규 가입자를 끌어와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