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만 ㈜티맥스소프트 전략마케팅본부장 겸 해외사업영업본부장
최근 한국의 주요 소프트웨어 기업 대표이사 몇 분들과 모처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결같이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이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주요 산업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우수인력 확보 등 여러 난제들 때문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소프트웨어 기업들 중에 많은 돈을 버는 스타 기업이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는데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높은 고용유발 효과와 함께 여타 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는 점에서 국가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핵심산업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산업의 범위는 산업의 디지털화에 따라 그 영역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어지고 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휴대폰의 개발원가 중 약 70%를 소프트웨어가 차지하고 있으며, 휴대폰 한대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의 양이 어지간한 지방은행의 기간시스템 수준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소프트웨어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산업육성을 위한 여러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로 지적이 되어왔던 소프트웨어 제값 받기를 위해 소프트웨어 분리발주 정책도 실행단계에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의 소프트웨어 산업발전의 방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소프트웨어산업의 초점은 응용 소프트웨어에 맞추어져 있는 느낌이다. 막강한 경영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시장은 우리가 뛰어 들어봤자 성공 가능성이 낮고 기술적 진입장벽 또한 높아 우리가 쉽게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배경이 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글로벌 거대기업들의 영향력이 약하고 기술적 진입장벽 또한 크게 높지 않는 응용 소프트웨어를 해야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응용 소프트웨어 산업의 육성은 비교적 단기간 내에 성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육성의 시각에서 보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최근 몇 년간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그런 차세대 응용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이 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응용 소프트웨어에 치중하다 보면 모든 컴퓨터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시스템 소프트웨어는 외국의 거대기업 기술에 점점 더 종속이 심화되는 문제점에 부닥치게 된다.
해외의 상황을 살펴보자. 전 세계 소프트웨어 산업은 현재 서비스 지향 아키텍처(SOA)와 웹 2.0이라는 새로운 사상으로 인해 지각변동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응용 프로그램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 소프트웨어 내지 시스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제품과 기술의 컨버전스 트렌드로 인해 종합적 기능을 제공하는 플랫폼 제품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기존의 기술로 세계 시장을 독식해왔던 글로벌 기업들도 이 큰 변화의 물결에서 살아 남기 위해 새로운 제품의 기획 및 기존 제품의 변화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비교적 짧은 기간의 소프트웨어 산업 역사 중에서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의 정도 및 속도는 가히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한 산업이 패러다임 변화를 일으킬 때는 독창적인 기술로 민첩한 대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시장 진입자에게는 큰 기회를 제공하는 법이다.
전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이 겪고 있는 대규모 변화의 물결과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현주소를 같이 놓고 보면 우리에게 좋은 전략적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외국의 거대기업들이 독식하고 있던 시스템 소프트웨어 분야에 우리가 도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이다. 그들도 기존의 제품기술을 대규모로 손봐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최소한 기술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이전의 기술적 진입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도 기술력에서만큼은 그들보다 앞설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급성장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있다. 이제 여타 산업의 경쟁력에 결정적 파급효과를 가지는 이들 시스템 소프트웨어 기업에 정책적 초점을 맞춰볼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는 글로벌 기업들과 맞대결 하기에 아직 몸집이 작은 우리기업들을 제대로 키우고 소프트웨어 산업을 한국의 핵심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획기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이다.
우리 소프트웨어 기업 대표 분들과의 자리를 파하고 돌아가는 길에 문득 작년에 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했던 어떤 교수 분의 말씀이 떠올라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현재와 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부가 한해에 한 개씩 피라미드를 건설한다는 심정으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