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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본래의 정신...

 

 

[황규학 칼럼] 부패와 악에 대해 저항하는 게

개신교 본래의 정신

데일리 서프라이즈 | 기사입력 2007-06-16 11:12 기사원문보기
루소는 국민의 일반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루소의 사회 계약론에서는 국민개개인의 의사가 일반의지(총의)로 집약된다. 국민개개인의 의사는 중요시 되지 않는다. 전체속에 개인의 의지가 약회되다 보니 홉즈의 절대국가의 통치형태로 변질될 소지가 있다. 실제로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지 않는 루소의 총의는 히틀러나 뭇솔리니한테 이용당했다.

이와는 달리 존로크는 위임정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국민이 직접 선택한 사람들에게 모든 권한을 이양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대의 정치의 이론적 배경을 제시해준다. 대의정치는 국민들에게 기속되지 않는다. 간접민주주의이기 때문에 국민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에 구속됨이 없이 자율성에 입각하여 자신의 생각대로 정치할 수 있다.

의회의 독재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의회의 독재가 대두한 적이 있다. 토크빌의 말대로 대의 독선주의가 생기게 된다. 다수의 독재가 탄생되는 것이다. 국민의 총의가 너무 강조되다 보면 또한 국민 개개인의 인권에 대한 존중이 약하게 된다. 이러한 국민총의론은 항시 악한 독재자들한테 이용당한다.

국민들로 하여금 결단을 하게 해놓고 자신들은 국민의 의지가 자신을 지지한다며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승만, 박정희, 전두한한테 이용당했듯이 말이다. 따라서 무능한 국민의 결단이라든가 총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교인들의 맹목적 일반의지, 독재사제들에게 이용당할 우려있어

오늘날 교회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교인들의 일반의지가 너무 강조되면 히틀러나 뭇솔리니 같은 강력한 통치자들은 교인들의 맹목적인 힘을 갖고 권위를 행사하게 된다. 대형교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대형교회의 신도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기회가 거의 없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방송국을 때려 부수라고 하면 가서 모조리 부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폭군들의 권력을 제어하기 위하여 입헌군주제가 필요하다. 즉 당회가 필요하다. 당회가 독재 권력을 가진 교황같은 리더를 견제할 수 있다. 그러나 폭군 리더를 견제하기 위한 당회의 권한이 지나치면 선한 리더까지 심각하게 견제하게 되고 결국 다수의 독선주의에 빠지게 된다. 대의정치를 통한 악의 발로이다.

인간은 죄성을 띠고 태어났기 때문에 다수이건, 홀로이건 힘만 갖게 되면 독재나 독선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민주주의 형식을 띤 독선이 내면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국민의 대의는 직접선거를 통해 국민의 전체 일반의지를 무시한 대의 정치가들을 심판을 하는 것이다.

국민의 일반의지는 독재들한테 이용당하기도 하지만 독재자들을 압박하기도 한다. 그것은 6·10 항쟁처럼 저항권을 토대로 일어나기도 한다. 오늘날 대형교회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교인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은 저항권의 발로이다. 저항권은 민주시민이 폭군군주와 독재의회를 대항하기 위한 혁명의 일종이다. 저항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개개인들의 의식이 성장해야 한다. 현재 한국인들은 경제라는 이유로 국민들의 일반의지는 획일화되어 도덕과 윤리성에 무감각해져있다.

교회에서 교인들의 주권과 당회의 권한은 맞물려 있어

국민의 일반의지가 현실화되면 히틀러의 출현을 용이하게 만들고 국민의일반의지를 토대로 하지 않은 대의정치가 강하게 되면 다수의 독선으로 독재정치를 지지하거나 대통령을 탄핵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교인의 일반의지가 중요시 되면 교인개개인의 의사가 무시되어 절대군주의 출현을 용이하게 된다.

대형교회의 후임자를 전임자가 임명할 때 교인들은 거의 95% 이상 절대 지지를 보낸다. 종교독재자들은 교인의 총의를 자신의 의지의 실현으로 만들고 있다. 교인의 총의는 획일화로 흐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조용기 목사나 김홍도목사가 시청이나 여의도로 모이라고 하면 선과 악의 분별 상관없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모이고 본다.

이는 교인들의 일반의지의 발로이다. 개인의지가 중요시 되지를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목회자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것을 하나님과의 관계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독재리더, 다수의 당회권력에 교인들이 이용당하게 된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의지란 분별력 없는 맹목적인 데가 많이 있다.

이러한 맹목성이라는 일반의지는 절대독재자와 다수독재자들에게 이용당하게 된다. 일반의지가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권리와 인격이 존중되고 의식이 발전해야 한다. 개인의 정체성을 알고 시민의식이 결집될 때 그러한 합의는 독재자와 폭군지도자들에 대해서 저항권으로 결집되어 나타난다.

서구의 시민혁명과 종교개혁은 저항권의 발로

서구의 시민혁명과 종교개혁의 역사는 시민들의 저항권의 발로이다. 의식이 함양된 시민들의 저항권이 있었기에 종교개혁, 명예혁명, 프랑스대혁명, 미국독립전쟁,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이 가능했다. 이는 악을 물리키기 위한 국민개개인의 의식이 결집되어 생겨난 민주 행동의 표시이다.

이제 비상식적인 목회와 독재를 일삼는 사제나 당회원, 부패 대선 후보들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은 의식을 갖고 그들을 견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전두한 독재시대처럼 법치주의가 효력을 상실하고 법이 굴곡되었을 때는 거리로 나가야 한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불법으로 교회당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있거나 불투명하게 재정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목회자들에 대해서 교인들은 의식을 갖고 들고 일어나야 한다. 목사나 당회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새로운 제 2의 종교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일이 발생되지 않기 위해서 교회는 목사의 권한, 교인의 주권과 당회의 권한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목사와 당회의 독재를 막기 위해서는 교인들의 주권이 중요

당회가 독선으로 갈 때는 교인들의 권리와 주권이 강화되어야 한다. 목사는 교인의 선동을 부추켜서는 안된다. 모든 것이 그들의 개인결단과 자발적 의식함양에 따라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목회자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화되어있고 당회나 교인들의 의식이 너무나도 약한 상태이다. 여인들이 교회에 많고, 오랫동안 시민의식 함양보다는 맹종의식이 신앙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이는 전근대적인 교인들의 의식이다. 전근대시대에는 사제들이 무조건 교황형태로 나갔다. 교인들은 맹종파들이고 당회원들 역시 교인들의 대의를 반영하는 국회의원이라기 보다는 적당한 기득권을 누리면서 때에 따라서는 목사를 하나님 받들듯 받들며 아부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지나친 견제를 하여 목회하는 사명까지 잃어버리게 만드는 기득권 귀족으로서 자리매김해왔다. 귀족주의와 기득권의 당회로 나간다.

임기제도가 없는 지구상의 모든 제도는 독재의 형태로 나갔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 중세의 사제들도 임기가 있었다면 부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교단은 당회가 독선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임기제를 실시하고 교인의 주권이 강화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장로교는 민주주의의 효시

장로교는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발달한 민주주의의 효시이다. 대의민주주의는 군림이나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국민주권은 국민의 일반의지나 전체의지가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되어 각개개인의 견해를 표출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선거할 수 있는 권한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교회가 민주화 되기 위해서는 목회자나 당회, 교인다수의 견해가 서로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하며 교인들의 의식이 함양되어야 한다. 시민혁명이나 종교개혁은 시민개개인들의 권리와 의지가 강조되었을 때 나오는 결집된 힘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시민혁명이나 종교개혁은 저항권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래서 저항하는 사람들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부르는 것이다. 저항은 단지 뒤집어 엎기 위한 정치적 혁명이 아니라 악에 대한 저항이다. 프로테스탄트는 자신이 지지하는 목사의 정책이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을 위해 항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투명한 재정을 일삼고, 교회의 재산을 교인들의 동의없이 함부로 팔아먹는 탐욕주의적인 사제들과 이러한 교황같은 사제를 지지하고 더불어 기득권에 안주하며, 기만과 허위의식으로 교회권력에 편승하여 교인들의 생각을 전혀 대의하지 않고 오히려 교인의 맹목적인 일반의지를 이용하는 귀족주의적인 당회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이다.교황처럼 행동하는 사제들과 귀족처럼 행동하는 당회원들에 대한 저항이다.

부패한 대선후보에 대해서도 저항해야

이는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교인 개개인의 권리와 의식, 철학 등으로 형성된 개개의 의지가 결합되었을 때 가능한 행동의 표시이다. 아직도 우리교계에 교황과 귀족들이 득세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세력견제와 분산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수직의무인 교인 개개인들의 맹종의식보다 개인의 수평권리가 강조된 법치주의의 문화가 속히 정착되어야 한다.

연말에는 대통령을 선출한다. 진정한 개신교도라면 대통령 후보의 도덕성과 윤리성이 문제가 있을 경우, 여야를 막론하고 저항해야 한다. 부패에 대해서 저항하는 것이 개신교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기독교계 인터넷 매체인 크리티앙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필자인 황규학 씨는 현직 목사로 크리티앙의 운영자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크리티앙과의 기사제휴 계약에 의해 게재합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 사이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황규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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