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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대박과 쪽박 사이...

 

 

대박 꿈꾸는 자유인인가

쪽박이 두려운 백수인가?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한다. 성공한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주식은 피를 말리듯이 서서히 쪽박을 찬다고 한다. 증권사 출신의 전문가도 대박을 챙기는 경우도 있으나 쪽박을 차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대박과 쪽박 사이를 왕래하며 초초감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주식투자가들의 슬픈이야기다.

 

주간동아 | 기사입력 2007-06-13 09:30

[주간동아]

5월25일 아침 6시. 경기 광주시 전업투자자 K(45)씨는 기대와 불안을 안고 눈을 떴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경제신문 국제면부터 훑기 시작했다. 중국 증시가 오늘 어떻게 전개될지 단초라도 얻기 위해서다. 거래일 기준 하루 전인 23일(24일은 석가탄신일이어서 증권거래소가 쉬었다) 사놓은 1500만원어치 코스피200 6월물 선물 풋옵션 포지션 때문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평소 사무실로 이용하는 한 증권사 지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곧바로 2대의 컴퓨터 모니터를 켜는 것으로 오늘의 ‘전투’ 준비를 마쳤다. K씨는 이런저런 자료를 훑어보다 9시가 되자 컴퓨터에 눈을 고정했다. 장이 열리자마자 서울 증시가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입가엔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그는 그동안 서울 증시가 너무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에 한 차례 조정이 있으리라 예상하고 풋옵션에 ‘베팅’했던 것. 당일에 거래를 청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그가 풋옵션 포지션을 다음 날까지 가지고 간 것은 그만큼 자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베팅 금액은 1500만원으로 제한했다.

 

3000만원으로 7년 안에 100억 번 투자자도 있어

하락 폭은 시간이 가면서 커졌다. 오전 10시 무렵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5포인트나 떨어졌다. 바로 그때 그는 풋옵션 포지션을 청산했다. 수익은 400만원. 이후 지수가 2포인트 더 떨어지자 ‘너무 일찍 청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지수가 반등하자 어제 친구들과 골프를 치면서 새삼 절감했던 ‘진리’ 하나가 떠올랐다.

 

“그날 벙커 뒤쪽에 꽂혀 있던 깃대를 바로 공략하려는 욕심을 부리다 공을 벙커로 빠뜨리면서 점수를 많이 잃었다. 이날도 크게 먹겠다고 더 떨어지길 기다렸다면 큰 손해를 봤을 것이다. 반대로 공이 깊은 러프에 들어갔을 땐 한 타 손해 본다 생각하고 안전한 페어웨이로 공을 빼내야 하듯, 투자에서 손실을 보고 있다면 바로 손절매하는 게 상책이다. ‘더 기다리면 오르겠지’라고 생각해 무리했다간 더 많이 잃는다.”

 

이날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거래도 한 번으로 끝냈다. 하루 수익으로는 제법 괜찮은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날 매매를 분석하는 일지를 작성했다. 그는 “일지 작성을 하면서 실패 이유를 분석하는 등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후 이런저런 자료를 훑어보다 오후 6시 무렵 증권사 지점을 나섰다.

 

그는 평소 하루 10번 정도 주가지수 선물을 단타매매한다. 수익은 하루 150만~200만원. 그가 선물을 선택한 이유는 코스피지수가 내릴 때도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종자돈은 2억원. 그는 “내 실력은 준프로급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언론에 나오는 것을 꺼려서 그렇지, 주변에 주식으로 거금을 번 사람이 널려 있다”고 말했다.

 

그보다 12세나 어린 Y씨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K씨가 증권사에 다닐 때부터 알았던 Y씨는 지방대 재학 시절 주식투자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주식을 공부하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전업투자자로 나서 성공한 경우다. 그는 당시 주변에서 빌린 3000만원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7년 만인 지금은 100억원대를 굴리고 있다고.

 

K씨의 최근 성적은 이렇다. 5월21, 22일엔 이틀 연속 200만원씩 잃었다. 23, 25, 28일의 수익은 각각 100만원, 400만원, 50만원이다. 그는 “요즘 같은 급등 장에서는 오히려 주도주에 묻어놓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지만, 당분간 내 방식대로 투자할 생각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과거와 달리 요즘엔 조정도 없이 거침없이 오르기만 해 함부로 베팅하기 겁난다”고 덧붙였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투자일지에 그날그날 손익 액수·요인 꼼꼼히 기록

그는 현재 서울 증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장은 중국 증시라고 말한다. 그는 증권사에 몸담고 있던 1년 반 전부터 고객에게 중국 투자를 권유했다. 당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증시 시가총액 비율이 선진국(100% 이상인 경우가 많다)에 비해 낮은 20%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1200 수준이던 상하이 종합지수는 현재 4300대를 넘나들고 있다.

 

그는 이틀 연속 손실을 내는 날이면 여섯 살짜리 딸의 손을 잡고 인근 공원을 산책한다. 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인 셈이다. 그는 손실을 낸 사실보다 자신의 예상이 빗나간 것 때문에 더 짜증이 난다고 말한다. 이럴 때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붙잡고 자문을 구할 사람도 없으니 산책하면서 머리를 식히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K씨가 전업투자자로 나선 것은 지난해 12월 초. 다니던 증권사를 정리하고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홀로서기’를 결행했다. 증권사 브로커로 일하면서 남 좋은 일만 하는 데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 돈을 벌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처음에는 아내가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리는 것이 낫다고 설득했다. 직장에선 더 이상 미래가 없고, 나중에 등 떠밀려 나가느니 내 발로 걸어나오는 게 훨씬 떳떳하지 않느냐는 말에 아내도 고집을 꺾었다. 이젠 생활비를 꼬박꼬박 갖다주니 싫지 않은 눈치다.”

K씨의 결단은 적어도 지금까진 성공적이다. 요 며칠 사이 실적이 좋지 않았지만, 그동안 100% 정도의 수익률을 올렸기 때문이다. 하루에 2000만원의 수익을 올린 날도 있었다. 수익은 바로 출금해 일부는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저평가된 가치주에 묻어놓고 있다. 투자의 정석인 장기투자를 통해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가 최근 ‘발굴한’ 종목은 기아자동차(이하 기아차). 그는 주당 평균 1만1000원에 5000만원어치를 사뒀다. 기아차가 자산가치만 주당 1만원인 만큼 저평가됐다고 판단한 것. 그는 기아차가 이처럼 저평가된 이유는 재무구조 악화에 대한 시장의 과도한 반응 때문이라고 본다.

 

대박냈던 전업투자자 몇 년 뒤 쪽박차는 경우 허다

5월3일 동아일보사 주최 투자설명회에 참가한 일반투자자들.

그는 앞으로 5년 정도 더 이런 생활을 해 30억원을 모을 계획이다. “그 정도만 있으면 매일 단타매매하느라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이, 일부는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가치주에 묻어놓은 뒤 오랫동안 기다려도 되기 때문”이다. 그는 “남는 시간은 가족과 함께 보내고 친구들과 골프나 치면서 여유 있게 지낼 생각”이라고 희망을 피력했다.
 

 

물론 그라고 해서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전업투자자가 모두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한때 수십억원을 벌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쪽박을 찼다는 사실도 잘 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 많은 수업료를 지불했기 때문에 이제는 결실을 거둘 때라고 확신한다.

 

그가 주식투자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무렵이다. 벌써 20년이나 된 셈이다. 88서울올림픽 당시에는 은행주로 재미를 보기도 했다. 당시 한 달 용돈으로 700만~800만원을 썼을 정도였다고. 그러나 그 역시 97년 외환위기 때 ‘깡통’을 찼다. 그때부터 투자 일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째. 일지는 그의 재산목록 1호다. 그는 단언한다.

 

“자기만의 투자 기법을 터득하지 않은 채 전업투자자로 나선다면 100%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나는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내공’을 쌓았고, 내 나름대로 장을 보는 눈이 생겼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직장을 뛰쳐나온 것이다.”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