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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부채질 하는 정부

 

 

[시론]투기 부채질 하는 정부

[세계일보 2007-05-27 22:12]    
오는 6월 분당급 신도시 건설 발표를 앞두고 일찍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몇 개를 건설할 것인가 한 차례 논란이 있더니, 요즘은 입지가 어디인지 맞추는 숨은그림찾기 게임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에는 더 이상 땅값이 오르기 전에 신도시 계획을 조기에 발표하라는 주문이 힘을 얻고 있다.
 

수도권 신도시 건설 계획의 발표는 매번 위태로운 외줄타기와 같다. 가까이는 지난해 11월 인천 검단과 경기도 파주의 신도시 발표를 앞두고 부동산 시장을 완전히 흔들어 놓은 적이 있지만, 판교신도시나 송파신도시 발표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모든 혼란은 근본적으로 인구 30만명 이상 대규모 신도시를 추진하기 위한 기본적인 제도조차 마련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신도시 건설은 국토나 수도권 공간구조뿐만 아니라 부동산 시장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해야 한다면 우선적으로 다음 사항을 반드시 검토하고 대비해야 한다.

 

첫째, 현 시점에 반드시 신도시를 건설해야 하는 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2008년 이후부터 이미 계획 중인 수도권 신도시와 택지개발지구에서 주택공급이 본격화하면, 공급 과잉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신도시 건설을 구상하던 시점에 비해 그동안 부동산 제도와 시장 상황이 엄청나게 변했다. 현 시점에서 주택 수요와 공급 물량을 재추정해 신도시 건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둘째, 신도시가 필요하다면 어떤 수요를 대체하고 흡수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끊임없이 강남을 모방하는 ‘짝퉁’을 만들겠다고 공표하는 순간 ‘명품’ 강남의 가치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강남에서 멀면 강남 수요를 대체하기 어렵고 강남에서 가까우면 경부 축에 혼잡을 더할 뿐이다. 신도시 건설은 서울과 수도권, 더 나아가 국토의 균형발전을 동시에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

 

셋째, 특정 지역의 수요를 대체하기 위해 신도시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 입증됐다면, 최적의 입지에 건설할 수 있는 계획과 개발 체제를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 신도시 건설은 특별법인 택지개발촉진법에 의해 추진되므로 국토종합계획, 수도권정비계획, 도시기본계획과 무관하게 입지가 정해진다. 현 제도에서는 개발예정지가 결정되면 땅값이 폭등할 것이기에 장기계획에 반영조차 하기 어렵다. 상위 계획에 반영되지 않은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면 기존 장기계획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인구 목표가 달라지고, 녹지체계와 도로·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 구상이 모두 달라지기 때문이다.

 

넷째, 지금까지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발생했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신도시 예정부지나 인근 지역에서는 이미 땅값이 폭등하고 있다. 난개발을 막기 위해 신도시를 건설한다지만 주변지역의 난개발을 막을 수단이 없다. 주변지역을 계획적으로 제어할 수 있었다면 신도시 예정지역도 계획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는 말이기에 원래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조원에 이르는 보상금이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는 문제도 아직 제대로 된 대응 수단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현재와 같은 제도 여건에서는 신도시를 최적의 입지에 건설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신도시 개발이 예정돼 있고 누구나 개발이 타당하다고 예측할 수 있는 훌륭한 개발입지는 개발계획이 발표되기도 전에 땅값이 올라 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도시 건설과 관련 있는 책임자의 무책임한 돌출발언은 부동산 투기라는 열풍에 기름을 끼얹어 부동산 가격을 폭등하게 한다.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기도 전에 땅값이 올라 버리고 나면 정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신도시 입지를 새로 찾아내든지, 아니면 이미 올라버린 땅값을 반영해 분양가를 올리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이 모두가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나 부동산 정책 면에서나 엄청난 비용이고 부담이 되고 만다.

이 시점에서 최우선 과제는 개발예정지의 부동산 투기와 땅값 상승을 피해 엉뚱한 입지가 신도시로 개발되지 않도록 대규모 개발 계획과 개발, 보상체제를 재정비하는 것이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부동산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