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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이공대가 죽아야 이공계가 산다

 

 

[포커스] 理工大가 죽어야 理工系산다

[매일경제 2007-05-2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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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역사소설 '무영탑'의 전설은 로맨틱하다. 신라 경덕왕이 어느 초파일 밤 불국사로 행차를 떠난다. 그 일행에 끼어 있던 구슬아기는 석가탑의 정교한 솜씨에 감격하고 석공 아사달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 버린다. 하지만 아사달은 고향 백제에 두고 온 아내 아사녀가 있었다. 아사녀는 그리운 남편을 만나러 서라벌에 왔지만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연못에 빠져 죽는다. 아사달은 탑을 완성하지만 아내의 죽음을 전해 듣고 울음을 터뜨린다. 아사달을 연모했던 구슬아기도 사랑의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만다. 아사달 역시 가슴에 한을 품고 연못에 빠져 죽는다.
 
한 석공의 사랑과 예술을 다뤘던 이 소설을 오늘날 '이공계 위기'라는 입장에서 재해석해 본다면 어떨까. 수천 년간 찬사를 받는 석가탑이 탄생했지만 그 이면에는 석공 엔지니어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한꺼풀 벗겨 들여다보면 엔지니어 아사달은 탑을 만드는 데 동원되어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가정이 파탄나고 목숨까지 잃었다. 석공들에게 오두막이라도 하나 지어주고 아내와 함께 살면서 밥을 지어주도록 배려했다면 제2, 제3 석가탑이 건축되었을 것이다.
 
이공계 위기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서 뚱딴지처럼 무영탑의 전설을 인용한 것은 10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공계 처방이 대부분 현장과 동떨어진 내용이 많다는 점이다. 그동안 이공계 위기에 대한 해법은 이공계 교수나 연구소 대표들, 정부 시각에서 주로 이뤄져 왔다. 현장의 젊은 연구원, 미래 공학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커다란 이견을 보인다.
 
몇 가지만 옮겨보면, 먼저 오피니언 리더들은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를 외면한다고 불평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이공계 인력이 공급과잉이라고 말한다. 한국 이공계 대학생 비율은 40%에 가깝고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높고 선진국의 두 배다. 이공계 대학생 비율을 OECD 평균인 30%대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잉공급된 이공계 인력은 임금 저하, 사회적 지위 약화, 직업 불안정을 부른다는 것이다. 미적분도 못하는 학생이 많다는 푸념도 이율배반적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안 뽑아도 되는데 뽑는 이유는 대학과 교수들을 먹여살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 이공대 졸업 후 사회에 나가도 연구원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며 정규직이라도 40대부터 고용불안을 고민해야 한다. 진짜 공부하려는 이공계 학생들의 희소가치를 높여야 몸값도 올라가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양보다 질이 문제라는 얘기다. 수학과 물리학이 어려워서 이공계를 기피한다고 말하지만 공대 못지않게 공부하기 까다로운 유명한 의대로 인재들이 몰리고 공대생들이 왜 사법고시에 도전하겠는가. 희소가치에 따른 고소득과 직업 안정성 때문이다.
 
둘째, 이공계 위기로 잘못된 정책을 지적하지만 연구원과 학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지도교수가 석ㆍ박사 과정 학생들의 인건비를 착취하거나 무능한 대학행정을 보면서 고급인력들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스스로 그만두는 게 다반사라는 것이다. 고급인력이 학교에 남는 이유도 대학교수가 편한데 뭐하러 처우가 별로인 산업계로 가겠느냐는 항변이다. 주변 환경이 이공계 위기를 부추긴다는 얘기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대목이다.
 
 셋째, 초ㆍ중ㆍ고교 때부터 과학에 흥미를 갖게 해야 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학을 많이 배우지만 대부분 흥미를 잃고 만다. 진도가 너무 빠르고 지식중심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도 "재미를 가미한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흥미를 잃고 상상력을 꺾는 사회는 아무리 인재가 많아도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도를 배출할 수 없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이 지적했듯이 "이공계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가 죽는다"는 각오로 수요자의 눈높이에서 파괴적인 발상을 해야 할 때다.

[과학기술부 = 이병문 차장 leemo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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