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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의 세계화 한계

 

[포커스] `빨리빨리` 세계화의 한계

[매일경제 2007-05-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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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안에 국외 매출을 10%에서 40%로 높이자.' '중국과 인도 진출만이 살 길이다.' '글로벌화가 당면한 최대 목표로, 앞으로 사업은 외국에서 하겠다 .'
 

국내 대기업들은 최근 이구동성으로 '신성장동력 발굴'과 '글로벌화'를 외치고 있다. 한국 시장이 좁은 만큼 외국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신성장동력을 밖에서 찾겠다는 기업들의 의지는 크게 칭찬해야 마땅하다. '안주하면 망한다'는 게 기업의 숙명인 이상 외국에서 성장동력을 찾고 돈을 벌겠다는 움직임은 적극 권장해야 한다.

 

문제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화가 '빨리빨리' 속성을 지니고 있어 실패 위험이 높다는 것. 현지에 공장을 짓거나 법인을 설립해 매출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겠다는 목표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현지화에 실패하고 한때 잘 나갔다가 곤두박질치는 일도 많다.

 

글로벌 기업 사례를 보면 '빨리빨리'야말로 글로벌화를 추진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요소로 생각된다.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췄다는 GE를 보자. GE는 100년 이상 역사를 자랑하며 지난해 매출 1630억달러와 이익 207억달러를 기록했다. 100여 개국에서 활동할 만큼 가장 글로벌화가 잘된 기업이기도 하다.

 

이 같은 GE에 2007년은 기념비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이외 매출, 즉 글로벌 매출이 처음으로 전체 매출에서 절반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80년대에 글로벌 매출이 35% 내외였으니 15%포인트 높이는 데 20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황수 GE코리아 사장은 GE 사례를 설명하면서 "국내 기업이 외국에서 신성장동력을 찾겠다고 나선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10~20년 걸리는 것을 너무 단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얘기했다.

 

실제로 포천 500대 기업에 포함되는 글로벌 기업들도 외국 진출 역사가 매우 길다. 기본이 50~60년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다양한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력도 지녀야 하고 국가적 유연성도 갖춰야 하며 학습능력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이 글로벌화에서 부딪치는 도전 요소는 무엇일까

 

첫째, '글로벌 인력' 확보다. 세계 무대에서 뛸 수 있는 역량과 문화적 소용, 마인드 등을 갖췄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 지배구조 변화다. 한국 중심적인 경영 방식과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외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될지 의문이다. 국내 기업은 국외사업을 할 때 타당성을 조사한다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보내는 경향이 있으나 과연 이러한 관행이 옳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셋째, 경험 축적이다. 세계 자동차 업계를 제패한 도요타의 생산방식은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나온 대작이다. 그래서 다른 기업이 쉽게 모방하기 어렵다. 글로벌화도 마찬가지여서 성공을 위해서는 '성공과 실패의 다양한 경험'이 축적될 필요가 있다.

 

넷째, 경영진의 단명을 개선하고 글로벌 기업에 적합한 경영자를 육성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고경영자는 대부분 단임에 그치며 수명이 짧다. 당장 이익을 올려야 수명이 길어지는 이들에게 20~30년 걸리는 글로벌화를 위해 장기적인 시각을 갖추라고 요구해봤자 먹혀들기 어렵다.

 

다섯째, 제품과 서비스에 따라 글로벌화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원가 경쟁력이 뛰어나야 팔리는 제품이 있고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야 성공하는 사업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마다 글로벌화 개념이 정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전요소가 두루 해결돼야 글로벌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외환위기 당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21세기는 '자원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국외 유전이나 광산 등을 대거 팔았던 것이다. 1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결과 한국은 자원개발 경쟁에서 크게 뒤처지게 됐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먼 미래를 내다보며 '빨리빨리' 조급증을 떨치는 자세'. 글로벌화를 추구하는 한국 기업에 가장 필요한 마인드가 아닌가 싶다.

[산업부 = 김상민 차장 wisek@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