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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지구가 끝장나기 전에...

 

[세상읽기] 지구가 끝장나기 전에 / 조효제

[한겨레 2007-05-24 17:27]    

[한겨레] 환경·생태 담론을 잘 실천하는 독자는 이 글을 읽기 위해 굳이 5분을 투자하실 필요가 없다. 하지만 스스로 공동선 쪽에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환경의식을 말로만 실천하는 분, 자신의 진보 밥상을 모양 좋게 꾸미느라 환경을 고명으로만 얹어놓는 분들은 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환경에 대한 절체절명의 위기감 없이는 발전이고 진보고 모두 공염불이라는 것이다. 필자 스스로도 많이 반성하고 있다. 현재 외견상으로 미국사회의 관심사는 이라크전, 대통령 선거, 전국민 의료보험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고민은 지구 온난화와 에너지 문제다. 며칠 전 캘리포니아에서 전화가 왔다. 이십년 전에 이민 온 동창생이 내게 물었다. “그 쪽은 기름값이 어떠냐?” 서부는 유가 때문에 자기처럼 개인사업을 하는 사람은 타격이 크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컴퓨터를 틀자 한국에서도 고유가 문제가 심각하다는 뉴스가 인터넷에 떠 있었다.

 

미국에서, 그것도 석유산업에 그토록 호의적이고 환경운동에 그토록 적대적인 부시의 미국에서 환경문제가 핵심 정치의제로 떠올랐다면 사태가 진짜 심각하다는 말이다. 여러 군데서 이런 조짐이 보인다. 먼저 대법원. 지난달 초 대법원은 연방환경보호청이 청정공기법을 어기고 지구온난화 배출가스를 규제하지 않은 것이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보수적인 대법원이 환경문제를 다루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연방기관에 철퇴를 내린 것이다. 언론은 이를 환경문제의 분수령이라고 했다. 이제 입법부와 행정부는 기후변화에 대해 총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비영리섹터의 움직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지난주 클린턴재단 주최로 뉴욕에서 열린 세계 대도시 기후정상회의(C40)는 친환경적인 도시를 가꾸기 위한 세계 공동계획에 합의했다. 2009년에는 서울에서 이 회의가 열릴 예정이라 한다. 전세계 도시를 횡으로 연결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주의적 발상이다.

 

미국 대중의 여론도 많이 바뀌고 있다. 적어도 교육받은 사람들은 지구온난화에 책임이 큰 미국이 반성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앨 고어가 출연한 다큐물 <불편한 진실>은 언제나 대여 중이라 빌리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대기업들도 연방 차원의 통합적인 환경지침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환경문제에 소극적인 기업은 주주총회에서 소액 주주들의 몰매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제일 극적인 변화는 정보기관의 움직임이다. 이달 초 하원은 기후변화가 2025년까지 국가안보에 끼칠 영향을 국가 정보기관 16곳에서 함께 산출해서 공식보고하라는 법을 통과시켰다. 대테러전쟁 와중에 어떻게 정보기관이 ‘한가하게’ 환경보고서나 쓰고 있느냐는 반대의견은 묵살되었고, 조사예산으로 480억달러가 배정되었다. 나는 돈 액수를 도무지 믿을 수 없어 신문지 여백에 동그라미를 몇 번이나 쳐보았다.

 

이제 환경·생태·에너지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는 문제가 되었다. 나는 인권을 공부하는 사람이지만 지구가 끝장나는 것 이상의 인권문제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 현실을 보라. 아직도 화석연료 시대의 정신연령을 가진 정치인들이 집단자살과 같은 개발론과 고도성장론으로 국민을 부추기고 있다. 시민사회는 통상적인 갈등과 이해관계를 뛰어넘을 줄 아는 녹색정치 리더십을 제시하고 정치인들을 변화시켜야 한다. 또한 환경피해가 약자계층을 제일 먼저 골병들게 만든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환경문제는 개개인의 실천도 중요하다. “백만 개의 작은 상처가 골리앗을 쓰러뜨린다”는 말이 있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살아남으려면 각자가 친환경적 삶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

 

조효제/하버드대 로스쿨 펠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