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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한국의 역사 930: 조선은 어떤 사회였는가? 35

 

 

 

 

한국의 역사 930: 조선은 어떤 사회였는가? 35 

  

                                                          서울 성벽 전 

 

 

 

 

 6. 애국이란 단어는 없었다

 

 

절대로 1등은 하지 마라

 

 

조선 시대 청백리의 운명

조선 시대에 청백리는, 의정부.육조.한성부의 2품 이상 당상관과 사헌부.사관원의 수직 관리들 중에서 추천하여 선정한 청렴한 벼슬아치로 후세에 귀감으로 삼게 했던 관기숙정의 제도이다.

 

이에 선정이 되면 자손들은 과거 없이 벼슬에 나가는 특전이 부여되었다. 숙종 이후로는 이런 청백리의 자손들이 많아지자 전부 특채하지 못하고 대개 5명 정도로 그쳤다.

 

조선 시대 청백리는 태조 5명, 태종 8명, 세종 15명, 세조 7명, 성종 46명, 중종 8명, 명종 45명, 선조 23명, 인조 13명, 숙종 22명, 경종 6명, 영조 9명, 정조 2명, 순조 4명이다.

 

흔히 청백리를 애기할 때 우선 망하는 사람이 황희, 조사수인데 조사수는 명종 때 판서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그에 대해서는 중종 시대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중종은 조정 신하들을 모두 거느리고 청백리를 뽑는 행사를 치렀다. 중종은 대궐 마당에 각각 예문, 청문, 탁문이라는 이름의 3가지 문을 세워놓고 예문은 보통문이요, 청문은 깨끗한 문이며 탁문은 더러운 문이다. 즉 자신이 판단하여 본인이 청백리라고 생각하면 청문, 탐관오리라고 생각하면 탁문, 이도 저도 아니라면 예문을 통과하라 일렀다.

 

모든 백관들은 왕이 있는 앞에서 '나 깨끗하오'하며 청문을 지나갈 사람도 없었고 '나 더럽소'하고 탁문을 지나갈 사람도 없기에 눈치를 보다가 모두 예문을 지나갔는데 한 사람만이 아무렇지도 않게 청문을 지나갔다. 바로 조사수였다.

 

또 어느 날 영의정 심연원과 함께 임금을 대하는데 심연원이 "요즘 백성들이 나라 법에 맞지 않는 큰 집을 짓고 잇어 분란이 많다"고 아뢰자 조사수가 대뜸 '그것은 영상대감부터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질책을 했다. 실제로 영의정 심연원은 법에 밪지 않는 큰 집을 지어 놓고 살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난 뒤 돌아가자마자 당장 집을 뜯어 고쳤다. 이런 조사수 역시 파직을 당하고 유배를 기고 그런 사람이 나중에 청백리도 지목되었다. 이게 바로 조선의 관행이다.

 

위명단에 들어 있는 사람 중 대부분 그런 고초를 당했다. 평생 비가 새는 단칸집에 살면서 베옷과 짚신만을 신었던 세종 때의 유관 역시 유배형을 받았다.

 

그는 비가 오는 날이면 방 안에 우산을 쓰고 피하였는데 "우리는 우산이라도 있지만 우산도 없는 백성들은 어쩌지?"하고 걱정을 한 사람이다.

 

그의 사는 모습을 전해 듣고 태종은 남몰래 집 울타리를 세워주었고 세종은 그의 부음을 받자 흰옷을 입고 애도한 그런 사람인데도 모진 탄핵을 당해내지 못하고 유배형을 받은 것이다.

 

정조 시대 유일한 청백리인 이익필이 평안병사로 부임했을 때 "그 자는 본시 영남출생으로 내력도 분명치 않은데 서북의 요충지인 자리로 순서를 뛰어 넘어 임명되었는바 극구 사양하는 법도 없이 늘름하게 부임하는 것을 보고 의심하고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즉시 파직하소서"라는 탄원이 올라갔다.

 

명군이었던 정조가 "또 어찌 그렇게 당파를 가르는가"라고 일축해 버렸지만 다음 해에는 다른 구실로 탄핵이 이어지면서 결국 고령으로 유배를 가고 말았다.

 

조선 시대의 탄핵은 일방적인 주장이나 소문 모함에 의한 것이 많아서 <실록>에는 주장하는 자의 내용만 들어 있지 해명하는 쪽의 변명은 찿아보기가 힘들다.

 

관심 있는 분은 위 청백리들의 생애를 한번 뒤적여 보시기 바란다. 과연 온전하게 관직을 미친 사람이 명이나 되는지, 태반이 귀양의 경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선의 청백리 명단

 

태조조의 청백리록(5)

안성 : 광주 - 참찬 .    우현보:단양 - 찬성사 . 류순:진주 - 제학

길재: 선산---------.    서견 연일 - 장령




태종조의 청백리록(8)

경의; 청주 - 절도사. 김약항:광산 - 대사성. 최유경:전주 - 참찬

박서생:비안 - 대사헌. 이지직:광주 - 참의.     이백지;용인 - 관찰사

이원 : 고성 - 좌의정 . 최사의: 경주 - 판돈령




세종조의 청백리록(15)

정척 : 진주 - 판윤. 황희 : 장수 - 영의정 . 맹사성:신창 - 좌의정

이석근:전주 - 익평군. 홍계방:남양 - 참의 . 이정보:경주 - 관찰사

황효원:상주 - 좌찬성. 김장 : 광산 - 장령. 최만리:해주 - 부제학

류관 : 문화 - 영의정. 류겸 : 진주 - 좌참찬. 민불탐:여흥 - 주부

박팽년:순천 - 승지. 이지 : 경주 - 판관. 류염 : 진주 - 이판




세조조의 청백리록(7)

. 박강 : 반남 - -판중추. 기건 : 행주 - 판서 노숙동:풍천-대사헌

김종순:경주 - 판윤. 정문형:봉화 - 우의정. 이언 : 흥양 - 부윤

곽안방:현풍 - 군수




성종조의 청백리록(46)

정성근:진양 - 직제학. 성형 : 창년 - 참찬. 허심 : 양천 - 우의정

윤석보:칠원 - 직제학. 이훈 : 한산 - 참찬. 김겸관:광산 - 판서

양관 : 남원 - 동지돈. 조지서:임천 - 보덕. 이신효:전의 - 관찰사

이약동:벽진 - 지중추. 임정 : 이안 - 예판. 허종 : 양천 - 우의정

박열 : 밀양 - 찬성. 구치관:능성 - 영의정. 이현보:영천 - 판중추

안팽명:광주 - 사성. 박처륜:고령 - 부제학. 민휘 ; 여흥 - 대사헌

이순 : 우봉 - 참판. 류훈 : 문화 - 판서

김전 : 연안 - 영의정. 강숙둘:금천 - 사간. 이선장:한산 - 군수

류헌 : 전주 - 대사간. 이화 : 전의 - 병판. 김종직:선산 - 형판

정갑손:동래 - 찬성. 정창손:동래 - 영의정. 류빈 : 진주 - 이판.

이숭원:연안 - 이판. 류희철:문화 - 집의. 김은 : 연안 - 공참.

손중돈:경주 - 참찬. 표빈 : 신창 - 시정. 조원기:한양 - 판중추.

양지손:남원 - 예의. 김연수:안동 - 첨정. 박상 : 충주 - 이판.

윤사익:무송 - 판중추. 이철균:성주 - 대사성. 이언적:여주 - 찬성.

김정 : 경주 - 판서. 유찬 : 기계 - 수사. 한형윤:청주 - 형판.

신공제:고령 - 이판. 김양진:풍산 - 공판





중종조의 청백리록(8)

정매신:진주 - 판관. 조사수:양주 - 이판. 최명창:개성 - 형참

권빈 : 안동 - 전직. 김무 : 안동 - 공판. 조치우:창녕 -사웅전

오세한:나주 - 병사. 송흠 : 신평 - 판중추




명종조의 청백리록(45)

정연 : 동래 - 군수. 윤부 : 파평 - 병참. 이세장:전주 - 관찰사.

정종영:초계 - 찬성. 안현 : 순흥 - 좌의정. 박수량:태인 - 참찬.

김순 : 경주 - 정랑. 임호신:풍천 - 지돈령. 임보신:풍천 - 형의.

이명 : 예안 - 좌의정.이영 : 영천 - 수사. 홍섬 : 남양 - 영의정.

이몽필:전주 - 이참. 홍담 : 남양 - 판서. 성세장:창녕 - 호판.

윤춘년:파평 - 판서. 윤현 : 파평 - 찬성. 류흔 : 문화 - 부정.

우세겸:단양 - 부정. 박영준:고령 - 이판. 박민헌:함양 - 참판.

이증영:전의 - 공정. 김몽좌:김해 - 직장. 이준경:광주 - 영의정.

주세봉:상주 - 찬성. 김개 : 광산 - 판서. 안잠 : 순흥 - 별좌.

이황 : 진성 - 찬성. 송찬 : 진천 - 판중추. 허세린:양천 - 좌윤.

김팽령:경주 - 사용. 강윤권:진주 - 사재정. 오상 : 해주 - 이판.

신잠 : 고령 - 목사. 김우 ------- 부사. 이중경:광주 - 이참.

안종전:죽산 - 군수. 김광 : 영안 - 부사. 유언겸:창원 - 정랑.

변훈남:초계 - 현령. 김약묵:강진 - 집의.노진 풍천-판서

신사형:영월 - 목사. 김취문:선산 - 대사간. 송익견:봉화 - 우의정.




선조조의 청백리록(23)

심수경:풍산 - 우의정.허잔 : 양천 - 이판. 이기 : 한산 - 이판.

이우직:여주 - 예판. 이원익:전주 - 영의정. 류성룡:풍산 - 영의정.

이항복:경주 - 영의정.이직언:전주 - 찬성. 백인걸:수원 - 참찬.

장필무:구례 - 병사. 최흥원:삭녕 - 좌의정. 이제신:전의 - 병사.

안지유:순흥 - 이판. 김쉬 : 안동 - 판중추. 이광정:연안 - 참찬.

성영 : 창녕 - 이판. 심희수:풍산 - 우의정. 이유중:덕수 - 대사헌.

허욱 : 양천 - 좌의정.김장생:광산 - 참판. 최여립:전주 - 승지.

오억령:동복 - 판서. 이기설:연안 - 장령.




인조조의 청백리록(13)

김상헌:안동 - 영의정. 민여임:여흥 - 참판. 김덕함:상주 - 대사헌.

성하종:창녕 - 병사. 이시백:연안 - 영의정.신경진:영월 - 대사헌.

김신국:청풍 - 영중추. 김시양:안동 - 판관. 이안눌:덕수 - 이판.

이명준:전의 - 참판. 최진립:경주 - 공참. 홍명하:남양 - 영의정.

김신국:청풍 - 영중추




숙종조의 청백리록(22)

이상진:전의 - 좌의정. 조경 : 한양 - 판중추. 강백년:진주 - 참찬.

류경창:전주 - 이참. 최관 : 전주 - 지중추. 성이성:창녕 - 부사.

조동 : 풍양 - 진선. 홍우량:남양 - 수사. 이태영:진주 - 부사.

강세구:진주 - 대사간. 강유후:진주 - 부사. 윤지인:파평 - 병판.

조석윤:배천 - 이참. 박신규:밀양 - 참찬. 이지은:공주 - 좌윤.

이후정:연안 - 참지. 홍무 : 남양 - 정랑. 강열 : 진주 - 부사.

이세화:부평 - 판서. 윤추 : 파평 - 장령. 최경창:해주 - 부사

이제 : 전주 - 우윤.




경종조의 청백리록(6)

류상운:문화 - 영의정. 강석범:진주 - 도정. 김두남:안동 - 헌납.

송정규:여산 - 관찰사. 이명준:연안 - 부사. 이하원:광주 - 판서.




영조조의 청백리록(9)

허영:양래(천川)수사. 윤용 : 파평 - 형판. 정형복:동래 - 형판.

윤득재:해평 - 병판. 이겸진:덕수 ㅡㅡㅡ. 이병태:한산 - 부제학.

한덕필:청주 - 참판. 최유현:삭녕 - 세마. 이태중:한산 - 호판.




정조조의 청백리록(2)

이의필:전주 - 참찬. 이단석:전주 - 참판.




순조조의 청백리록(4)

남이형:의령 - 부사.    서기순:대구 - 판서. 한익상:청주 - 관찰사.

심의신;청송 - 관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