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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의 여름 9 : 6월, 호국보훈을 생각하며...5 본문

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우면산의 여름 9 : 6월, 호국보훈을 생각하며...5

두바퀴인생 2011. 6. 9. 09:02

 

 

 

우면산의 여름 9 : 6월, 호국보훈을 생각하며...5

 

 

 

                                                                     방배동 재개발 지역 전경 . 몇 십만평 규모이다.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고 어제 방송에는 날씨를 이렇게 예보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밖을 보니 흐린 날씨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비가오면 하루 쉴 생각을 한건데... 아니다, 비가 오더라도 자전거를 타자! 침대에서 딩굴러봐야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서둘러 복장을 챙기고 냉동 커피를 자전가에 싣고 출발했다. 교대를 지나 강남역 일대를 가도 비는 오지 않았다. 요즘 우리 나라 기상청의 애로를 알 만 했다. 기상청은 외국인 전문가를 고용하고 슈퍼 컴퓨터를 도입하여 운용하고 있지만  지구 기후 변화의 변덕을 예보하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닐 것이다. 기상청은 잘하면 본전, 틀리면 갖은 욕을 먹고 심지어 기상 예보를 믿고 있다가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비가 내릴 것 같아 방배 카페거리를 지나 바로 방배역을 돌아 집으로 빨리 돌아왔다. 2시간 반 정도 시간이 걸렸다. 쉼터에는 쉬었지만 오늘따라 배가 좀 이상한체 출발하였는데 반포 아파트 쉼터에 도착하니 화장실에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들어갔다. 통상 아침 운동을 하면 대변이 잘 나온다. 그것도 며칠 동안 뱃속에서 지내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아침 운동은 장에도 좋은 현상을 가져온다고 생각된다. 최고의 연예인이요 미인이거나 새초롬한 아가씨라도 사람의 체격에 따라 다르지만, 누구나 사람의 벳속에는니 4~5킬로그램 이상의 대변을 가지고 있다. 잘 먹고 잘 배출하는 것이 건강에 제일 좋은 일이니 활발한 배변을 위한 화장실 이용은 건강의 특징이다고 생각된다. 

 

 

 

 

의약품 슈퍼 판매 문제로 당.정간에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연일 도마위에 올라 여론의 중심이 서 있다. 대통령의 지시에 약사회 반발을 설득하지 못해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능력이 미천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닐성 싶다. 우리 나라 약사회와 의사회는 단결력이 뛰어나 성토대회, 데모, 폐업 등 갖가지 수단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최선을 다하는 집단이다. 국민들의 건강과 국가의 정책도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권에만 집착하는 파렴치한 집단일 뿐이다.

 

이에 동조하여 제약회사들도 의.약사회의 압력에 자유롭지 못하다. 검.경찰과 판사. 변호사들이 담합하여 현재의 허술한 법 개정을  거부하고 마음대로 짓주무르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만들듯이, 약사-의사-제약회사들의 먹이사슬은 리베이트 문제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으나 전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일부 한의사나 약사들이 다단계 회사에 단체로 가입하여 환자들에게 다단계 회사 제품을 처방해주고 수당을 받는 것이나, 제약회사들이 의사들의 출장, 논문, 강연, 회의, 연구비 등의 명목으로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리베이트를 주고 받으며 그 제약회사 약품을 처방토록하는 의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민들의 질병과 목숨을 담보로 비싼 약을 팔게 만들고 환자들은 비싼 약을 사먹어야 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파렴치한 집단들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아픈 역사 잊지말고, 기억하자 호국보훈!

 

길거리에 나붙은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기리는 플랭카드 구호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들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있으며, 호국보훈에 대하여 국민들이 기억하고 추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전쟁이 벌어지면 도심은 이런 모습이 될 것이다. 한국동란 후 전국토가 이런 모습으로 초토화되었다.

 

조선의 눈물은 계속된다.

 

 

11. 낙동강 방어

적의 계속적인 공격으로 전선은 점점 남으로 밀려나고 있었고 연합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하였다. 북쪽 낙동강 전선은 한국군 제1,6,8,9,3사단이 다부동-팔공산-영천-포항을 연결한 전선에서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으며, 다부동 전투, 영천회전, 포항 형산강전투에서 적의 공격 예봉을 꺽으면서 전선을 버티고 있었고, 대전지역에서 미 24사단이 무너지자 미군은 낙동강 중부-남부전선에 미25사단, 미 기병7사단, 해병 여단, 영국.터키.호주의 참전국 부대 등이 마산-창녕-진주-합천- 추풍령-구미-왜관 전선에 투입되었다.

 

                                                   

                                                                         낙동강 전투 전황도

 

적의 계속적인 공격으로 낙동강 전선의 공방은 뺏고 빼았기는 전투가 계속 전개되고 있었다. 연합군은 미 제8군사령관 '워커'장군의 강력한 지휘아래 내선작전의 잇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방어선을 지탱하고 있었다. 왜관일대 적 밀집지역에 대한 공중 융단폭격이 실시되었고 미공군의 지상전 지원은 방어선 지탱에 큰 힘이 되었다. 제공권은 미공군이 적을 제압하고 있었다. 

 

 

 



▲1950년 6월 28일, 북한은 남침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다. 북한군 105전차여단의 뒤를 따라
시가행진으로 서울에 진입하는 북한군 보병부대 ⓒ연합

 



▲북한군의 공격에 국군과 UN군은 개전 35일만에 낙동강전선까지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데일리NK

 

UN군이 참전했지만 전투력의 열세는 여전했다. 북한군은 파상공세로 밀고 내려왔고, 국군과 UN군은 최대한 적의 전진을 지연시키며 전투력을 회복하는 지연전을 벌이며 1950년 8월 1일에는 낙동강까지 후퇴했다.

 

부산까지 점령하여 적화통일을 완수하고자 하는 북한군과 이를 막으려는 국군과 UN군은 낙동강 을 사이에 두고 맞서게 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지의 주인이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형산강 전투, 영천전투, 다부동 전투를 통해 국군과 UN군은 마산-대구-포항선을 사수하는데 성공했고, 북한군의 전쟁목표를 꺾어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지 못했다면 한국 정부는 제주도에서 망명정부를 수립해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낙동강에서의 승리는 방어 전투에서 공격 전투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에 주둔한 미군이 노획했던 160만 페이지 분량의 북한 극비문서 가운데 일부. 남침 10일전 포병부대의 전 포탄에 신관을 장착하라는 지령 등이 적혀있다. ⓒ연합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즉시 전투태세에 돌입하여 반격에 나섰지만, 병력과 무기 등
 모든 면에서 불리했다. 남쪽으로 향하는 피난민과 북쪽으로 향하는 군인 ⓒ연합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을 위해 군입대를 기다리고 있는 장병들 ⓒ연합

 

 



▲북한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기차 ⓒ연합

 

 

 



▲북한군의 공격으로 폐허가 되어 불타는 마을 ⓒ연합

 

 



▲남쪽으로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가는 피난민 할아버지. 지게에 많은
짐이 실려있다. ⓒ연합

 

 



▲전쟁으로 인해 파괴 된 건물 앞에서 홀로 주저앉아 있는 소녀 ⓒ위키백과

 

 



▲기차로 몰려드는 피난민 ⓒ연합

 

 



▲1951년 1월 8일, 수많은 피난민들이 강릉의 매서운 눈을 뚫고 남으로 향하고 있다. ⓒ위키백과

 

 



▲1950년 11월 1일, 전쟁으로 파괴된 서울 ⓒ위키백과

 

 



폐허가 된 서울 시가지에서 사람들이 땔감을 찾고 있다. ⓒ위키백과

 

 



▲UN군의 참전 지원에도 불구하고 국군은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1950년 8월 1일에는 낙동강까지 후퇴했다. 국토의 90%를 빼앗긴 국군으로서는 낙동강이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사진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중인 북한군과 UN군 ⓒ연합 

 

 



▲왜관-다부동 일대에서는 1950년 8월 3일부터 국군 제1사단과 미군 제1기병사단이 전차로 증강된 북한군 5개 사단의 공격을 45일간이나 방어한 '다부동전투'가 치러졌다. 이는 6.25 최대의 전투로 기록될만큼 치열했다. 사진은 파괴된 낙동강 철교를 사이에 두고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아군. ⓒ연합

 

 



▲낙동강 전선에서 부상당한 동료병사를 부축하는 군인들 ⓒ연합

 

 



▲치열한 전투에 지친 나머지 탄약박스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군인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