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우면산의 새벽 6 (종교 간의 갈등과 정치참여) 본문

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우면산의 새벽 6 (종교 간의 갈등과 정치참여)

두바퀴인생 2010. 12. 20. 03:43

 

우면산의 새벽 6 (종교 간의 갈등과  정치참여)

 

                              

   

    

범어사 방화

 

"범어사 방화는 불교계에 대한 방화다."

범어사 방화 사건에 대해 그 파장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정치권과 종교계가 갈등을 빗고 있다.

 

부산 범어사 천왕문이 화재가 방화로 인한 화재에 무게가 실리면서 불교계가 격분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도 안이한 문화재 관리를 질타하는 동시에 종교 갈등 등 메가톤 급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김무성 원내대표 등이 급히 범어사를 방문,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템플스테이 예산 누락 등으로 또다시 불교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범어사 방화 사건의 불똥이 자칫 한나라당으로 옮겨 붙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16일 오전 불교계는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천왕문이 가진 상징성을 고려할 때 허술히 넘어갈 부분이 아니라며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 자리에서 주지 정여스님은 흐느끼며 "천년고찰 범어사의 소중한 성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참회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불교청년회도 긴급 논평을 통해 "이명박 정부 들어 부쩍 증가하고 있는 종교편향, 불교폄훼, 훼불사건 등이 이어지고 있다"며 "최근 졸속적이고 폭력적인 국가예산안 통과와 민족문화 선양을 왜곡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퇴보시킨 정부와 여당을 불교계가 한 목소리로 규탄하고 있는 시점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사건으로 천년고찰 범어사의 문화재 소실에 깊은 우려와 경약을 금치 못한다"고 개탄했다.

이어 대불청은 "범어사 천왕문 방화범에 대한 신속한 검거,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상규명과 철저한 수사를 하라"며 "정부는 문화재와 국가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근본적인 보호대책을 수립하라"고 정부에 공세를 퍼부었다.

경찰은 범어사 CCTV 화면을 정밀 분석한 결과 이번 화재를 방화에 의한 것으로 보고 수배 전단을 제작하는 등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CCTV에는 화재 발생 직전에 천왕문에 들어온 한 남성이 검은색 비닐봉지를 사천왕상 쪽으로 던지는 장면이 담겨져 있다. 일각에서는 정신병자의 소행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불교계에 앙심을 품은 특정 종교 신자의 범행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번 천왕문 방화 사건 전에도 이같은 참사의 조짐은 있었다. 그동안 부산 범어사가 위치한 금정사에 원인 모를 화재가 종종 있었던 것. 범어사에 있는 큰북이 찢겨진 일도 있었다. 그 때마다 경찰은 단서 부족으로 범인 검거에 실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이맘때도 전남 향일암 대웅전에서 화재가 발생해 불교계와 시민들을 좌절감에 빠뜨린 바 있다. 당시 경찰은 특정 종교 신자들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며 별다른 성과 없이 수사를 종결해 원성을 샀다. 그리고 1년 만에 부산 범어사에서 유사한 방화가 발생한 것이다.

이번 화재로 충격에 빠진 범어사와 불교계는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불교신문' 등 불교 매체들도 이 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방화범의 정체와 수사진행 과정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방화범이 특정종교 신도로 밝혀질 경우 종교계 전반에 강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종교의 태동과 갈등

 

종교 간의 갈등은 인류의 역사와 같이 출발하였다. 

 

고대부터 인류는 다양한 신을 우상숭배하면서 생로병사의 모든 문제를 구원받기 위해 신에게 기원드리고, 수시로 발생하던  자연의 재앙에 대해서도 천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렵 시대를 거쳐 농경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은 자연에 더욱 의지하게 되었고 한 부족을 이끄는 부족장은 자연재해로 식량을 생산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부족이 굶주림으로 멸망하는 사태를 야기하므로 신에 대한 재사는 부족의 가장 큰 행사였으며 부족장은 통상 이런 행사의 재사장이 되었다. 그래서 부족 단위로 비상시에 대비하여 식량을 비축하고 식량이 부족한 타 부족은 무력을 동원하여 식량을 탈취하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전쟁이라는 역사가 시작하였다. 그러는 한편 신앙은 부족을 결집시키는 수단이 되었고 권력을 유지하는 방편이 되었다. 고대로부터 수많은 종류의 신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그러한 신들을 형상을 만들어 우상숭배가 시작되었으며 그러한 신을 모신 거대한 신전이 곳곳에 세워졌고 이는 바로 권력의 강약을 나타내는 징표가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형상을 볼 수 없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숭배하는 유일신 사상이 나타났는데, 바로 유대민족에 의해서다.  유대민족의 지도자인 아브라함이 유일신 사상을 내세우면서 유대인을 이끌고 지금의 터키 지방인 하란에서 살다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약속의 땅을 찿아 가나안 땅으로 유대민족이 이동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곳은 타 민족이 이미 터를 잡고 살고 있었으며 흉년과 가믐으로 식량을 구하기가 어려운 터라, 다시 식량 자원이 풍부하던 나일강 삼각주 근방의  이집트 지역으로 들어간다. 당시 유일신 사상은 획기적인 이단으로 주변으로부터 많은 질시를 받았으나 그들은 아브라함의 지도력에 순종하면서 유일신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곳에서 세월이 흐르면서 세력이 커지자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휘말리게 되고 파라오의 모반에 관여하여 반정이 실패하자 유태민족은 모두 노예로 전락하여 고통스런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모세라는 인물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는 이집트 왕자라는 이야기와 유대인, 아니면 타 민족이라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암튼 그의 영도력은 대단하였던 모양이다.

 

모세는 모세 5경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느님의 영력을 받아  갖가지 도술을 부려 이집트 파라오를 위협하여 유대민족의 이집트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이집트를 탈출하게 되는데, 유대민족은 모세의 통솔 아래 이집트군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홍해를 건너 시나이 반도를 방황하다가 40년 만에 가나안 땅이 보이는 언덕위에서 모세는 세상을 달리한다. 이 스토리를  근거로 만들어진 영화 '십계'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는 시내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10계명을 받들어 유태민족의 율법으로 삼았으며 그의 후손들은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장기간 피나는 전쟁을 통해 원주민을 쫒아내고 남의 땅을 무단 점령하여 그곳을 '약속의 땅'이라면서 유대 국가를 설립하게 된다. 이후 가나안 땅에서 여호수아-판관기-사뮤엘기-열왕기를 거치고 드보라.삼손.사뮤엘.사울.다윗.솔로몬.로호보암이라는 인물들이 나타나 유대민족을 통치하면서 성장하다가 내분으로 분열이 일어나 르호보암 시대에 이르러 북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다 왕국으로 남북조로 분단된다. 2개의 왕국 중 북쪽 이스라엘은 209년간 지속되면서 혼란을 거듭하다가 당시 신흥 강국 앗시리아에 멸망당하고, 남쪽의 유다 왕국은 345년간 지속되다가 앗시리아를 정복한 바빌론에 의해 멸망당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폐되었고 페르시아 시대에 유폐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후 가나안 땅은 알렉산드-이집트 지배를 거쳐 최종적으로 강대국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된다.

 

어쩌면 오늘날 과학적인 견해로는 허황된 이야기로 전설같은 이야기지만 모세 5경은 유대민족의 기록된 역사로 인정하면서 오늘날까지도 유대민족 후손들에게 그들 조상의 위대성과 굴욕의 역사를 매일 유대교 회당에서 주입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창세기를 포함한 모세 5경이 당시의 이집트, 바빌론, 중동의 여러 나라 설화,민담,전설,종교,생활,문화를 자신들의 역사 이야기로 꾸며 만든 조작된 이야기라는 설이 강하다.

 

유대인은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는 자녀들에게 5가지를 질문하게 하는데 무엇이던지 질문하면 부모는 성실하게 이해가 되도록 설명해줄 의무가 있다고 한다. 항상 모든 문제에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하는 것은 머리에 남는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어린 시절부터 기부를 생활화하고 있으며 어려운 동족들을 지원하고 창의적인 기업과 사업에 자금이 지원된다.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창업 자금으로 수억원씩 지원하게 된다. 세계 금융의 요람지 월가를 지배하는 것은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지금 금융자산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유대인들이 세계 노벨상의 3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질문은 없고 암기만 하는 우리들의 교육 방식과는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조상들의 역사도 잊고 창의성도 없고 천재도 둔치를 만드는 평준화 교육으로 일관하고 있는 서글픈 현실이다.  

 

세월이 흘러 유대국가는 남북으로 분리되어 멸망당하고 허수아비 정권이 가나안 땅을 통치하게 된다. 그러다가 로마의 침공으로 로마총독이 지배하는 시절을 겪게 되고 로마 통치하에 무단 통치의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유대인은 분열되고 타락하기 시작하였고 고통스런 삶이 계속되자 유대민족은 새로운 메시아를 기원하게 된다. 이 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예수다. 그는 뛰어난 설법과 감동, 그리고 병을 치유하는 영력 등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각 지역을 돌며 현실의 문제점을 설파하면서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게 된다. 몰론 그는 기득권을 가진 유대인 상층부으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급기야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의 세력이 커지자 그들은 예수를 불순분자로 로마 총독에게 고발하여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된다. 십자가 처형은  당시 로마에서 가장 엄한 처형이었으며, 반란을 일으켜 로마를 궁지에 몰아넣다 실패한 '스팔타카스의 난'을 일으킨 검투사와 반란 참여자들이 모두 십자가 형을 당하였다. 

 

기원후 70년 유대인들은 로마의 폭정에 로마군을 공격하고 살해하는 등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에 로마는 군단을 파견하여 유대 반란 진압 작전을 전개하게 된다. 유대인들의 완강한 저항과 토벌적전이 전개되고 마지막으로 성지 예루살렘 공방전을 3년 동안이나 전개하였으나 결국 로마군에게 점령당하여 모든 유대인들이 살륙되거나 노예로 끌려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천혜의 요새 '마사다 요새'에서 유대교 광신도들이 로마군에 끝까지 저항하였고 이들을 로마군은 3년에 걸쳐 공략하여 9백 명이 넘는 극렬 광신도들이 모두 자살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유대 반란은 막을 내리게 된다..

 

3년 간의 예루살렘 공방전 당시 유대인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고난을 겪고 있던 로마군은 처음 '갈루스' 장군의 시리아 주둔군을 투입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베스파시안' 장군이 지휘하는 로마 정예부대를 투입하게 된다. 로마군에는 유대인 종군기록 사학자인 '요세프스'가 당시의 역사를 기록하였고 유대인 랍비인 '벤 차카이'는 유대 민족종교와 민족문화를 지키는데 큰 공로를 세우게 된다. 벤 차카이는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가 베스파시안 장군을 만나 회담하면서 그가 황제가 될 운명임을 점쳐주고 유대 민족연구소격인 '야브네'를 설치하도록 허락을 받게 된다. 베스파시안 장군은 혼란을 거듭하던 저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로마 원로원의 추대로 결국 황제가 되었다. '야네브'는 오늘날 '에시바'라는 '유대인 민족문화연구소'의 출발이 되었다. 그래서 유대인은 나라가 망하고 없어지고 사라져도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으로 남겼으며 오늘날 탈무드의 교과서로 사용하고 있는 민족성경인 '토라'이다. 

 

그 후 로마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인을 영구히 축출하였다. 이로써 유대인은 2천 년 동안 세계 각지를 떠돌아 다니면서 망국의 설움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한마디로 예수는 유대교 입장에서 이단이다. 유일신 외에는 우상 숭배를 절대로 거부하는 유대교 입장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며 예수를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그리스도교를 유대교를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이 예수를 신격화하면서 말씀을 전도하였고, 많은 제자들에 의해 첨가되고 부풀려져 바이블로 태어나게 된다. 그들은 수많은 탄압과 순교를 통하여 마침내 결실을 거두게 된 것은 동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한 그리스도교의 공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힘과 권능을 이용하여 중동. 지중해. 발칸, 유럽 지역으로 급속하게 퍼져 나갔고 종교전쟁, 백년전쟁, 십자군 전쟁, 황실 후계자 계승 전쟁 등 수많은 전쟁을 통해 권력을 확대하였고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면서 교황에 의해 세계는 통치되었고 종교와 정치가 일체화되는 시대를 맞아하게 된다. 그러나 정치의 모든 논리가 바이블에 의해 해석되면서 이성과 과학이 배척받고 마녀 사냥이 불법적으로 저질러지고, 예수를 부정했던 유대인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과 차별이 저질러진다. 또 타 종교에 대한 철저한 탄압이 이루어지면서 사회와 문화가 침체기를 걷게 되는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다.

 

 

 

 

럴 즈음 아라비아 사막에서 또 하나의 이단이 나타나는데 바로 마호메트에 의해 나타난 이슬람교이다. 마호메트는 신격화한 그리스도교의 예수를 부정하고 오로지 알라신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슬람교를 창시했다. 마호메트의 이슬람교는 당시 급격하게 성장하던 아랍 국가들의 영토 확장 전쟁과 힘을 타고 중동 지역. 스페인, 북아프리카, 아시아 일대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그리스도교와 피나는 영역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슬람교가 신속하게 확산된 것은 마호메트의 경전과 바이블의 차이도 있지만 형식과 절차, 그리고 사상에서 그리스도교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슬람은 우선 평등 사상이다. 그리고 기도의 생활화이며 형제애와 베품 사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서 모여 기도를 올린다면 이슬람은 언제 어디서나 지정된 시간에  매일 5번의 기도를 올리며 알라신을 찬양한다. 그만큼 신앙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고 매일 일정시간 기도를 통해 가족과 주민들이 하나가 되는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축제일이 되면 음식을 준비하고 양과 염소를 잡아 누구던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축복받는 일로 생각한다. 축일 성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경우에는 모두 백색의 옷을 입고 왕과 천민이 구분이 없이 예배를 올리며 천민의 엉덩이 뒤에서 왕이 절을 올리며 예배를 드린다. 왕이라고 특별히 자리도 없다. 선착순이며 지위고하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리고 평생 꼭 한 번은 성지를 순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들이 매년 성지 순례 모습은 백색의 물결이 마호메트 묘지를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그들은 알라신을 찬양하고 기뻐하며 영혼의 안락함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교가 권력과 야합하면서 부패해지고 이리 저리 분파되면서 분리되고 사회를 토탄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하자 마호메트는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맹점을 비판하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개선하여 만든 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은 유대교-그리스교-구교-신교로 갈라지며 이슬람교도 결국은 그리스도교에서 갈라진 한 뿌리에서 태어난 종교에 불과하다. 이후 그들끼리 영역싸움으로 인류의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기록하였으며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종교 갈등으로 인한 참화가 계속되고 있다. 아브라함은 인류에게 큰 죄악을 지은 것이 그들 후손들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가 분파되면서 세계는 질곡과 고난의  역사를 이어왔다는 점일 것이다.

 

유럽에서 부패의 극을 달리던 그리스도교는 루터와 칼빈의 종교 개혁으로 진통을 겪으면서 신교가 태어나고 신교파와 구교파가  나누어지면서 왕과 제후들, 국가 간에 종교로 인한 장기간의 영역 다툼을 벌인 끝에 대부분의 신교파들은 새로운 땅을 찿아 신대륙 아메리카로 이주하게 된다. 스페인.포르투칼의 남아메리카 식민 지배는 원주민을 철저히 학살하고 문화 유적을 파괴하였으며 약탈하였다. 그들은 식민 지배를 통해 구교를 전파하여 지금 대부분의 나라들이 구교 세력이다. 한편 그리스도교는 아시아 지역에도 꾸준히 선교하여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영국 정교회로 분파되기도 하였다.

 

그리스도교가 중국, 일본 지역에는 전파되기는 하였으나, 전통적인 민간신앙, 그리고 유교.불교가 민간 신앙으로 널리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었고, 국가적인 안정으로 인해 타 종교가 쉽게 전파되지 못했다. 지금도 중국과 일본에는 그들이 소수 종교로 겨우 자리메김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고구려 시대에 불교가 전파된 이래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불교에 대한 대대적인 확산 정책으로 수많은 사찰이 건축되었고 한편으로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백성들의 호국사상을 통합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 시대에는 호국불교로 자리메김하기 시작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는데 몽고군의 침공 가운데서도 만들어 낸 팔만대장경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러나 고려는 엄청난 불심의 노력으로 대장경을 만들면서 부처님께 기원을 드렸으나 결국은 몽고군에 항복하고 속국이 되고 말았다. 조선 시대에는 유교가 국가경영의 지침 사상으로 채택되면서 불교가 배척당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불교는 민가에서 철수하여 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근근히 맥을 이어오다가 임진왜란시에는 승병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투에 참여하는 호국불교의 역활도 마다하지 않았다. 왕족들이 권력에서 퇴출되면 스님이 되었고 국가적인 지원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불교는 우리 민족에게 민족 신앙으로 자리메김까지 하였다.

 

천주교(구교)는 소현세자가 청나라 볼모에서 풀려 돌아오면서 중국에서 아담 샬을 만나 천주교를 소개받고 신문물과 각종 서적을 들여오면서 조선에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민간에서 음성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남인들이 숙청되면서 천주교가 탄압받기 시작하였고 흥선대원군 대까지 선교사들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었고 수많은 순교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민간에 음성적으로만 확산되었을 뿐 실질적으로 자리메김 하기는 어려웠다. 천주교는 주로 북부 지방에서, 나중에 들어온 기독교(신교)는 남부 지방에서 주로 확산되었는데, 무능한 조정과 탐관들의 학정 속에서 신음하고 있던 일반 백성들은 자신을 인정해주고 사랑을 베풀어주는 남모르는 사람들에 이끌려 성당으로 교회로 따라갔으며 그 결과 민간에서는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는 조선의 유교 사회가 백성들과 괴리되어 있었고 학정과 탄압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신분의 차이를 넘을 수 없는 신분제가 철저하게 적용되었던 사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조선이 망하고 일제 강점기 동안 천주교와 기독교는 민중들에게 위안의 종교였으며 독립을 기원하는 희망의 종교였다. 그러면서 민중들에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고 해방을 맞아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삶이 척박해지자 종교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불교는 전통적으로 시골에서 교세를 가지고 있었지만 도시에서는 기독교가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천막에서 출발하여 교세를 확산하고 이단으로 지탄받으면서도 교세가 성장하면 인정받는 정통과 이단의 반복된 출현과 성장으로 우후죽순처럼 교세가 확산되었던 것이다. 서울의 밤하늘은 붉은 십자가가 주택가 곳곳에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아마 보았을 것이다.

 

신도가 늘어나면서 종교 단체에 시주와 헌금이 늘어나자 신전과 절을 증축하고 신축하며 땅을 사들이고 건물을 사들였다. 그들은 재정적으로 부자가 되었고 신도들의 숫자면에서 표밭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도시 속으로 스며들었고 신도들이 늘어나자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유화제스처가 종교단체마다 증가하고 이에 따른 종교인들의 자만심과 발언권도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친북.종북 성향의 종교인들도 늘어나고 반정부 활동도 신도들의 힘을 이용하여 선전.선동으로 혹세무민하는 종교인들이 늘어났다. 즉 종교의 정치참여가 노골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정치인들은 표를 잃을 것을  염려하여 종교인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자 종교단체가 이제는 언론과 같이 정부 정책에 일일이 간섭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정치인과 야합하여 권력을 등에 업고 치부를 일삼으며 교세를 확산하여 대궐같은 성전을 짓고 천국같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모습이 마치 중국 청나라 말기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난'을 연상하게 만든다. 결국은 그들끼리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사이비 종교 집단의 우두머리의 생각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탐욕이 항상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포화상태의 한국 땅에서 서로 영역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들이 설교와 설법을 통하여 민중들을 교화시키고 성인군자인척 해도 결국은 탐욕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에 불과하다. 내부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사람인데... 종교를 탄압하지 말라..며 의의를 제기한다. 물론 일부이지만  수도원.교회.사찰내에서 일어나는 항명 사태.사기.불륜,성폭행.치부.재산다툼.부동산 투기.음모 등 상상할 수 없는 추악한 사건들 계속되고 있는 것은 모두가 그들이 위선자요 표리부동한 인간임을 증명하고 있다. 나 아니면 모두 나쁘고 틀리다는 배타적인 신암심이 마음속에 있는 한 그러한 종교는 절대로 자리메김하지 못할 것이다. 서구에서 쫒겨온 종교요 버림받은 남의 종교를 우리는 자신들의 민족 신앙과 문화를 잊고 그것이 새롭고 대단한 신앙으로 생각하는 불쌍하고 심약한 민중들이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간이 갈수록 종교 집단은 교세를 확산하고 권력을 탐하며 치부를 일삼고 있다. 종교인과 종교단체가 벌이는 추악한 재산분쟁, 부동산 투기, 불법 선교 활동, 종북.친북 행위, 반정부 선전선동 행위 등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로 무언가 종교적인 사회혁신을 기하지 않으면 종교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한편으로 종교가 민중들에게 심리적 위안을 주고 정신적으로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또 사회적으로 병든자와 가난한 자를 위하여 봉사하며 병원과 고아원을 짓고 노인 요양원, 나병촌 봉사 등 정부가 하지 못하는 어두운 곳을 찿아 구원자적 자세로 평생을 바치는 존경받는 종교인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인과 종교 집단은 점점 광신도 집단으로 변질되고 그러한 가운데 그들끼리 서로 영역 다툼으로 종교간 갈등의 심화는 국론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또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만큼 종교는 권력화되면서 부패하게 되고 종교 본래의 참노선를 망각하고 턈욕스러워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 봉원사 사건이나 범어사 방화 사건 등 특정 종교에 대한 파괴 공작은 이 사회를 더욱 갈등의 심연으로 몰아가고 있는 듯 하다. 수도권에 적의 포격이 언제 날아올 지 모르는 오늘의 현실에서 저들끼리만 잘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그들의 모습이 추악스럽기 그지없어 보인다.   

     

 

      

 

 

사찰이여 무너져라!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종교간 갈등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15일 밤 부산 범어사 천왕문 화재사건이 방화로 판명되고, 용의자가 현상금 1000만원에 공개수배됐다. 이후 트위터 등 인터넷 공간에서는 방화범이 특정 종교 신자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4년 전 어느 기독교단체가 이번에 불이 난 범어사를 ‘무너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내용이 담긴 집회 동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3분38초 분량의 이 영상은 1907년 개최된 평양 부흥회를 기념해 ‘어게인 1907 인 부산’이라는 주제로 2006년 부산 BEXCO에서 열린 개신교 집회를 촬영한 자료다. 영상의 앞부분에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축하 메시지가 나온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에서는 부산을 구역별로 나눠 해당 지역의 사찰이 무너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특히 금정구의 경우, 113개 교회의 부흥을 기도하면서 절 94개가 무너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바로 이 장면에 해당 지역의 대표적 사찰인 범어사와 안국선원이 명기돼 있다.

트위터에서는 “기독교가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듯한 기분이다. 회개하고 돌아오라”, “분노한 불심에 기름 붓는구나” “종교가 아닌 병이구나”, “이건 해도해도 너무 심하군요” 등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거의 5년도 지난 어떤 집단의 내부 기록을 가져와서 이거 문제라고 말하고 범어사와 결부짓는건 너무 심한 비약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으나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