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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1 : 개관 본문

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한국의 역사 1 : 개관

두바퀴인생 2010. 9. 4. 03:52

 

 

 

한국의 역사 1 : 개관

 

중국의 역사에 이어 한국의 역사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의 역사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며 민족의 역사를 망각해가고 있다. 역사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실한 민족치고 우뚝선 민족은 없었다. 한국사를 다시 살펴보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되찿고 잊어버린 역사를 다시 살펴 과거의 그들과 대화를 통해 오늘의 이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찿고자 함에 있다.

 

우리의 역사를 살피면 살필수록 답답하고 억울하며 분노에 차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약소국으로 주변 강대국의 침략과 강점속에 수모와 굴욕을 견디내며 비참하게 살아온 조상들의 삶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역사속에서도 나라가 없어지지 않고 오늘날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던 것은 우리 조상들이 눈물과 고통속에서도 어려운 삶을 이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였다. 무능했던 왕조때는 외침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여 국토가 유린되고 백성들은 파리목숨같은 희생을 당하였고 우리들의 부녀자들은 그들에게 겁탈당하고 끌려가 성 노리개로 전락하여 이국 땅에서 노예처럼 살다 사라졌다. 나라가 망하자 수많은 젊은이들이 탄광이나 전장터로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거나 정신대로 죽기보다 더 치욕스런 삶을 살았다. 전국의 산천은 그들의 말발굽에 유린당하고 수많은 문화재와 왕릉이 도굴되었고 산마다 쇠못이요 고을마다 통곡소리가 넘쳐 흘렀다. 오욕의 역사요 치욕의 역사였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미래의 우리들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는 역사속에 답이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사를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살피면서 우리들이 기억하지 못하고 잊고만 있었던 우리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을 되새기고 무능했던 군주와 지배층에 대해서는 무엇이 문제였던지를 살펴 오늘과 미래에 또다시 치욕스런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역사를 살피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한국의 역사 개관

 

한국의 역사
한국의 역사 (연표)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환인
환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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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
진국
삼한

 



 
 
 


 
 
 


   

   
 


고려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삼별초의 항쟁
홍건적의 고려 침공
조선
역대국왕 / 조선왕조실록
임진왜란 / 병자·정묘호란
경복궁·창덕궁·종묘·화성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정기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한국의 역사(韓國-歷史)는 구석기 시대 이후 주로 한반도만주연해주, 넓게는 동아시아 지역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온 한민족의 역사이다.

 

한국 역사의 시대 구분은 구석기 시대에서부터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구분되는 선사시대고조선의 성립 이후 원삼국시대,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후삼국시대까지의 고대, 고려시대인 중세, 조선시대인 근세, 대한제국 수립이후 오늘날까지의 근·현대 등으로 구분된다.

 

한국의 역사는 고찰하고자 하는 영역에 따라 한국의 경제사 , 한국의 생활사, 한국의 정치사 와 같이 분야별 역사로 나뉘어 다루어지기도 한다.

개관

고대

한국의 역사는 전기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토기는 기원전 8000년 무렵의 것이며, 기원전 6000년 이전에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고, 기원전 2500년 무렵에 청동기 시대로 이어졌다. 삼국유사를 비롯한 다른 고려 중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 왕국이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고 한반도에서 만주에 이르는 영토를 확보했다고 한다 고조선은 기원전 3세기에 멸망하여 여러 나라들로 나뉘었다.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삼국시대를 맞아 고구려, 백제, 신라원삼국시대의 여러 국가들을 정복하였고 한반도와 만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다. 이들 세 국가는 경제와 군사 면에서 서로 경쟁과 협력을 반복하였다. 고구려백제는 강력하였고, 특히 고구려는 대규모의 군사행동을 하곤 하였다. 신라의 힘은 점진적으로 커져서 결국 676년에 한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첫 통일국가를 세우게 되었다. 한편 전직 고구려 장군인 대조영은 고구려의 뒤를 이어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 발해를 건국하였다.

 

중세

신라가 9세기 후반에 국력이 쇠퇴하자, 후삼국시대가 시작되었고, 왕건이 건국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종식되었다. 비슷한 시기, 926년 발해가 거란족에게 멸망한 이후 많은 발해 사람들이 고려로 넘어왔다.

 

고려 시대에는 고대보다 법률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과거제가 소개되었으며, 불교가 번성하였다. 993-1019년 동안 고려는 거란과 전쟁을 벌여서 거란을 격퇴하였다. 1238년 몽골이 침입하였고 30년에 가까운 전쟁끝에 양 측은 평화 조약을 맺었다. 그 후 공민왕의 자주개혁이 있기 전까지 의 간섭을 받았는데, 이 시기 성리학이 한국에 전래되었다.

 

근세

1392년 이성계위화도 회군을 일으킨 이후 신진사대부와 손을 잡고 조선을 건국하였다. 세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 한글이 창제되고 측우기, 앙부일구와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도 이루어졌다. 그 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지만, 수군을 이끈 이순신 장군의 노력과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을 비롯한 저항이 거세게 일어난 덕분에 결국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1620년대와 1630년대에 걸쳐 조선은 청나라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근대 태동기

붕당 정치가 변질되고 그 폐단이 심화되면서, 노론과 남인 위주의 일단 전제화 경향이 두드러졌다. 조선 후기 사회에서 서민은 점차 경제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생산력도 증가하였다. 이후 조선에서는 영조, 정조 시대에 다시 중흥하였다. 이때 실학이 융성하였고, 천주교가 일부 남인에 의해 학문의 일부로서 전래되었다. 그리고 양명학이 전래되었으며 천문학과 의학, 농업과 상업 분야에서의 기술적 성과가 산업 발전을 촉진하였다. 한편으로는 양반층이 증가하고 농민의 분화가 이루어지는 등 반상제의 신분제가 동요하였다. 세도정치 시기에는 삼정의 문란으로 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홍경래의 난, 임술 농민 봉기, 등은 조선의 신분제 사회가 갖고 있던 문제점과 지방 관리의 학정이 결합하여 일어난 것이다. 문화적으로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판소리, 탈춤, 한글 소설, 서민 음악이 유행하였고, 생활 도예가 공예의 중심이 되었다.

 

근·현대

19세기에 들어 조선에는 이양선과 같은 외세의 접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위기 속에 흥선 대원군은 철저한 봉쇄정책으로 일시적으로 접근을 막았으나, 이후 주위의 열강들과 무력분쟁을 겪는 등 제국주의와 맞서게 되었다. 1870년대 초반에 일본은 조선에 무력으로 압력을 행사하면서 이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청나라와 충돌하였고, 한국을 일본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하였다. 1894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과 요동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였으나 삼국간섭에 의해 잠시 물러섰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들에게 암살되었다. 1897년 조선은 대한제국 (1897-1910)으로 국호를 새롭게 정하였고, 고종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일본의 부당한 요구와 간섭은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한국의 곳곳에서는 의병들이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4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었다. 1905년 일본은 대한제국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함으로써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었고 1910년에는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이 두 조약 모두 강압에 의한 것이며 법적으로는 무효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제국의 점령에 저항하고자 노력하였다. 1919년에는 곳곳에서 비폭력적인 3.1 운동이 일어났고, 뒤이어 이러한 독립운동을 총괄하고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되어 만주와 중국과 시베리아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20년대에는 서로군정서와 같은 독립군일본군과 직접적인 전쟁을 벌였고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와 같은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한국은 해방을 맞았다. 해방부터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성립되는 시기까지를 군정기 또는 해방정국이라 한다. 해방정국에서 남과 북은 극심한 좌우 갈등을 겪었다. 북에서는 조만식과 같은 우익 인사에 대한 탄압이 있었고, 남에서는 여운형과 같은 중도 좌파 정치인이 암살되었다. 국제사회에서는 모스크바 삼상회의를 통해 소련미국에서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신탁통치를 계획했지만, 한국에서의 극심한 반대와 함께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로 폐기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가 별도로 수립되면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군사분계선이었던 38선은 두개의 국가로 분단되는 기준이 되었다. 분단 이후 양 측 간의 긴장이 이어졌고 수시로 국지적인 교전이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조선인민군이 일제히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침략하여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