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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66 (남명) 본문
중국의 역사 66 (남명)
남명
남명 황제
대수 | 묘호 | 시호 | 성명 | 연호 | 재위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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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 공종 (明恭宗) (남명 안종 추숭) |
모천부도정순숙철수문 현무성경인의효황제 (慕天敷道貞純肅哲修文 顯武聖敬仁毅孝皇帝) |
주상순(朱常洵) | - | - |
제1대 | 명 안종 (明安宗) (명 질종<明質宗>) |
처천승도성경영철찬문 비무선인광효간황제 (處天承道誠敬英哲纘文 備武宣仁度孝簡皇帝) (난황제<赧皇帝>) |
주유송(朱由崧) | 홍광(弘光) | 1644년 ~ 1645년 |
임시 | - | 화황제 (和皇帝) (노왕<潞王>) |
주상방(朱常淓) | - | 1645년 |
비정통 | 명 의종 (明義宗) |
시천제도공화양정헌문 경무명덕숙인성황제 (侍天制道恭和襄定獻文 敬武明德肅仁成皇帝) (노왕<魯王>) |
주이해(朱以海) | - | 1645년 ~ 1655년 |
임시 | - | 평황제 (平皇帝) (정강왕<靖江王>) |
주형가(朱亨嘉) | - | 1645년 |
- | - | 혜황제 (惠皇帝) (남명 소종 추숭) |
주우온(朱宇溫) | - | - |
- | - | 순황제 (順皇帝) (남명 소종 추숭) |
주주영(朱宙栐) | - | - |
- | - | 단황제 (端皇帝) (남명 소종 추숭) |
주석황(朱碩潢) | - | - |
- | - | 선황제 (宣皇帝) (남명 소종 추숭) |
주기성(朱器墭) | - | - |
제2대 | 명 소종 (明紹宗) |
배천지도홍의숙목사문 열무민인광효양황제 (配天至道弘毅肅穆思文 烈武敏仁廣孝襄皇帝) |
주율건(朱聿鍵) | 융무(隆武) | 1645년 ~ 1646년 |
제3대 | 명 문종 (明文宗) |
정천응도소숭영문굉무 달인성선민효절황제 (貞天應道昭崇寧文宏武 達仁成宣閔孝節皇帝) (당왕<唐王>) |
주율오(朱聿鐭) | 소무(紹武) | 1646년 ~ 1647년 |
비정통 | 명 평종 (明平宗) |
규천현도지인정신덕문 분무정숙돈강원황제 (揆天顯道知仁貞信德文 奮武靖肅敦康元皇帝) (한왕<韓王>) |
주본현(朱本鉉) | 정무(定武) | 1646년 ~ 1664년 |
- | 명 예종 (明禮宗) (남명 소종 추숭) |
체천창도장의온홍흥문 선무인지성효단황제 (體天昌道莊毅溫弘興文 宣武仁智誠孝端皇帝) |
주상영(朱常瀛) | - | - |
제4대 | 명 소종 (明昭宗) |
응천추도민의공검경문 위무예인극효광황제 (應天推道敏毅恭檢經文 緯武禮仁克孝匡皇帝) (계왕<桂王>) |
주유랑(朱由榔) | 영력(永曆) | 1646년 ~ 1662년 |
비정통 | 명 경종 (明敬宗) |
충천융도소의흠성정문 양무분인예효화황제 (忠天隆道昭義欽成靖文 襄武奮仁睿孝和皇帝) (회왕<淮王>) |
주상청(朱常淸) | 동무(東武) | 1648년 |
정성공(鄭成功, 1624년~1662년)은, 명나라 멸망 후, 아모이나 타이완 섬에서 명나라 부흥 운동을 주도한 일본계 중국인 무장이다. 시호는 연평무왕(延平武王). 아버지는 중국인 정지룡(鄭芝龍), 어머니는 일본인이었다. 일본 나가사키의 히라도에서 태어나 7세 때 중국에 이주했다. 푸젠을 거점으로 하는 해상 무역 상인이었던 아버지는 명나라의 고관도 맡고 있어, 그 영향으로부터 정성공은 난징의 태학(太學, 당시 중국의 최고 학문소)에서 학문을 배웠다.
명나라 멸망 후, 명나라 황제의 유신들은 명나라 황족을 옹립 해, 남명을 수립했다. 정성공은 청나라의 군대에 쫓기고 화남(華南, 중국 남부)으로 도망친 륭무제(隆武帝, 이름은 주율건; 朱聿鍵)를 수행(隨行)하여, 명나라 황족의 성인 '주(朱)'씨가 주어졌다. 그 후, 명나라의 부흥을 포기한 아버지는 청나라에 항복했지만, 정성공은 수군을 인솔해 아모이 및 진먼 일대를 지배하고, 그곳을 본거지로 삼아 "항청복명(抗淸復明)"의 싸움을 계속했다. 1658년 난징을 공격해 패배했지만, 1661년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타이완에 진격해, 네덜란드인을 구축(驅逐)하고 새로운 근거지로 삼았다. 그러나 그 직후, 39세에 병사했기 때문에 타이완을 개발하지는 못했다.
1949년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완에 거점을 둔 이후 정성공에 대한 존경심이 강조되어 왔다.
상기의 타이완어 표기는 정성공의 타이완어 표기가 아닌, 존칭인 국성야(國姓爺)에 대한 타이완어 표기이다. 명나라 황족의 성을 하사 받았기 때문에 나라의 성을 가진 어르신이라는 의미로 국성야라고 불렸다.
영력제(永曆帝, 1623년~ 1662년) 또는 영명왕(永明王)은 남명의 제4대 황제이며 명나라로는 20대 황제이다. 이름은 주유랑(朱由榔)이다.
부왕 주상영은 만력제의 셋째 아들이었다.
1650년 청군이 중국 남부 경동과 구이린을 합락시키고 1656년 주산열도를 점령하였다. 1659년 운남까지 차지하자 영명왕은 버마로 도주하였다. 1662년 청나라에 투항한 오삼계가 버마까지 쳐들어와 영명왕을 살해하였고 이로서 명나라는 완전히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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