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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다가 90년 만에 이름을 바꾼 이유

두바퀴인생 2008. 1. 17. 01:19

 

[태평로] 마쓰시타가 90년 만에 이름 바꾼 이유

조선일보|기사입력 2008-01-16 23:05 기사원문보기
김영수 산업부장
일본 최대 가전업체인 마쓰시타 전기산업은 지난 10일 창업 후 90년 동안 사용해온 회사명 '마쓰시타'를 버리고, 수출용 브랜드인 '파나소닉'으로 회사이름과 브랜드를 통일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NHK 방송은 마쓰시타가 회사명을 바꾼 이유 중 하나가 '삼성에 비해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마쓰시타가 삼성 브랜드를 따라잡기 위해 회사 이름을 바꾸다니? 예전 같으면 감히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마쓰시타가 어떤 회사인가.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던 고(故)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가 1917년 창업한 이래 일본의 국민(나쇼날) 브랜드로 사랑을 한몸에 받아왔다. 일본 언론은 마쓰시타를 '행복이 수돗물처럼 흘러내리는 일본의 자존심 같은 기업'이라고 불렀다.

지난 15일 마쓰시타가 이름을 바꿔서까지 따라잡으려 하는 삼성에 특검 수사관이 압수수색을 벌였다. 같은 시각 같은 빌딩 지하 1층에서는 삼성전자가 수백 명의 내외신기자를 초청해서, 2007년 4분기 실적이 좋아졌다는 발표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외신기자까지 불러 한참 회사 성과를 자랑하는 마당에 수사관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물론 특검의 압수수색은 당연한 것이고, 삼성의 비자금 조성이나 로비 의혹은 철저하게 파헤쳐져야 한다. 하지만 하필이면 기자회견이 예고된 날에 압수수색을 벌인 것은 '삼성을 망신 주려고 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만했다.

삼성, 현대차, LG, SK, 포스코는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50년이 압축된 '한국의 얼굴' 같은 브랜드다.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 브랜드를 만나면 애국심이 생긴다. 유럽 어느 거리를 걷다가 현대차나 삼성 애니콜 광고가 눈에 띄면 최경주나 박태환이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와 같은 뿌듯함을 느낀다.

반대로 해외 경쟁 업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 브랜드는 눈엣가시일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국내에서도 우리 브랜드를 혼내주지 못해 안달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소버린이라는 해외 투기 자본이 글로벌 에너지 브랜드인 SK를 잡아먹기 위해 공격했을 때, 일부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하지 못한 재벌 해체를 외국계가 해낸다'고 소버린을 격려하고 칭찬하기까지 했다.

이런 반(反) 기업 정서와 함께, 장기간에 걸친 수사로 인해 어렵게 쌓아 올린 우리 대표 브랜드가 훼손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특검은 신속하게 삼성의 위법 사실을 가려내고, 빨리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삼성도 대표 브랜드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여주어야 한다. 특검 수사에 경황이 없는 점을 감안해도, 태안 원유 유출 사고에 사과 한마디 없이 '나 몰라라' 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는 검찰 수사나 대중의 반기업 정서를 얘기하기 전에 스스로 브랜드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다.

필립 코틀러 미국 켈로그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앞으로 착한 기업, 즉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만이 성공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유명 브랜드 중 스토니필드(Stonyfield)라는 유기농 제품 판매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매년 이익의 10%를 자선기관에 기부한다. 또 학교에 설치된 자동판매기가 건강식을 파는 것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환경보호 차원에서 대중교통 이용자에게 공짜 요구르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평소에 기업의 이윤을 공익으로 자연스럽게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브랜드는 단순히 기업이나 제품 이름이 아니다. 소비자와 교감하는 생명체이다. 잘 키우기는 어렵지만, 망가뜨리기는 너무 쉽다. 오는 8월 전 세계 시청자들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메인 스폰서인 삼성의 로고를 보면서 무슨 이미지를 떠올릴까 걱정이다.

[김영수 산업부장
yskim2@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