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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 '대북(對北)' 불안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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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 '대북(對北)' 불안하다.

두바퀴인생 2008. 1. 15. 15:23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의 특별기고]

이명박의 첫 ‘對北’ 불안하다

위클리조선|기사입력 2008-01-15 13:29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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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선자 측의 반응, 또는 남쪽 당국자들의 해석을 보면서 저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 세력이 웃고 있을 표정을 상상하면 우리는 이명박 시대에도 계속 북한 당국과 친북세력에 이끌려 다녀야 한다는 것인지 한숨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대북(對北) 자세가 불안하다. 이 당선자는 지난 1월 1일 KBS·SBS TV 신년대담에서 북한이 기왕에 약속한 북핵신고 기한(지난해 12월 31일)을 어긴 데 대해 “조금 늦어지더라도 성실한 신고가 중요하지 않겠느냐”면서 “신고 기한을 지키는 것보다 확실히 신고해줌으로써 신뢰가 생기고 진정한 폐기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한(時限)보다 신고가 중요하다는 인식인데 그렇다면 애당초 시한은 왜 설정했을까.

이 당선자 측은 북한이 북핵 신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실보다 북한의 신년 사설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선거 직전까지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을 온갖 욕설로 매도하던 북한이 신년 사설에서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해 한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북한이 이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현실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판단된다”(주호영 당선자 대변인)고 반겼다. 대단히 고맙고 감사하다는 투다.

이 당선자는 후보 시절 대북문제에 관한 한 집권세력 측과 별로 다른 점을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명박씨의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대선 막판에 이회창씨가 끼어들면서 내놓은 ‘명분’이 이명박씨의 불투명한 대북노선 때문이었다고 했을 정도다. 선거전에서도 그 점을 맹공했다. 그만큼 이 당선자의 대북정책 노선은 좋게 보면 유화적이고, 비판적으로 보면 불투명하고 아리송했다.

본인은 그것을 자신의 리버럴한 철학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일부 평자는 그가 대북노선에 유화적인 측근과 참모들에게 둘러싸인 데다 중도노선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 대북 포용적 자세를 취한 포퓰리스트적(的)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그라면 북한의 북핵 신고 약속 파기에 엄격할 리 없고 북한의 다목적 신년 사설에 고무되지 않을 리 없다. 그는 북핵 자체에 별다른 공포감이 없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청계천 상가 철거 때 보인 ‘대화와 설득’에 스스로 매료된 듯, 북한에도 그것을 병행하면 북한도 자기 손 안에 들어올 것이라는 나이브한 환상(?)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태는 그의 자신대로 전개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그가 생각한 만큼 녹록한 상대가 아니다. 북한 당국은 기실 별로 가진 것도 없으면서 세계 최강의 미국과 친선적인 중국을 상대로 그들을 가지고 놀 정도의 배짱과 능란함을 보여왔다. 그 동안 얻을 것은 다 챙기다가 북핵 신고 약속 만기일에 즈음해 “6자회담 참가국들이 맡은 경제적 보상의무 이행이 늦어지고 있다. 불능화의 속도를 조정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현학봉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고 오리발을 내밀 정도로 교활하고 담대한 상대다.

북한 당국의 술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북한의 사설은 한마디로 이 당선자를 시험해보려고 던진 ‘미끼’라고 볼 수 있다. 저들은 ‘이명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기들에게 계속 ‘경제원조’를 해줄 것인가의 여부를 타진해온 것이다. 안 건드릴 테니 원조는 계속하라는 메시지다. 다른 말로 하면 원조하지 않으면 그땐 다시 보겠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우연인지 국내의 친북 유화적인 학자와 논객들은 이명박 정부가 북핵 폐기 여부와 상관없이, 또는 평화와 공존을 담보 삼아 대북 퍼주기를 계속하도록 여론 조성에 나섰다는 낌새가 있다.

이 당선자는 여기에 넘어가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여론조사상 자신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 지지(80%)와 대북지원 계속(50% 이상)에 고무돼 김정일 세력에 ‘단호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 당선자는 근자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신에게 ‘경제를 살려 달라’고 주문하는 숫자가 압도적인 사실에 너무 고무되고 그로 인해 너무 안이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노무현식(式) 표현을 빌리자면 “경제만 잘되면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좋다”는 자만감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경제문제는 비록 시간이 걸리고 부작용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수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북문제는 한번 잘못 빠지면 수정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그가 대북문제에서 ‘내용’에 지고 있다기보다 김정일과의 ‘전술전략’ 면에서 지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북한의 신년 사설은 저들의 고도의 전술을 담고 있다. 단어 한 마디, 문장 하나 하나를 새심히 골라 거기에 리트머스 시험지를 얹어서 던진 뒤 남쪽 당국자들의 반응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이것을 좋은 기회로 잡아야 한다. 북한의 북핵 신고 약속 불이행과 신년 사설을 계기로 삼아 그가 전임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언제나 남쪽을 윽박지르고 명령하는 버르장머리를 지금 고치지 않으면 그의 임기 내내 골칫거리로 남을 것이다. 김정일이 노린 것도 바로 그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당선자는 북한이 약속시한을 스스로 파기했을 때 엄중히 대했어야 했다. 북한과의 게임에서는 내용(성실신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절차(시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터득했어야 했다. 더구나 북한 당국자의 설명대로라면 미국 등이 ‘경제적 보상’을 해주지 않아서 시한을 안 지키는 것이라는데, 거기다 대고 “성실하고 확실한 신고를 위해서라면 좀 늦어도 괜찮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그의 상황 파악 능력을 의심케 한다.

이 당선자 측의 반응, 또는 남쪽 당국자들의 해석을 보면서 저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 세력이 웃고 있을 표정을 상상하면 우리는 이명박 시대에도 계속 북한 당국과 친북세력에 이끌려 다녀야 한다는 것인지 한숨이 나온다. 이 당선자는 알아야 한다. 북한의 제스처에 속지 말고 단호히 대응하는 것이 진정 북한을 돕고 화해를 이끌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그에 앞선 십수년 모든 남쪽의 지도자들이 북한문제에 항상 설득·대화·신뢰를 내세워 유화적인 척했으나 상황이 나아진 것은 없다. 대북문제에 관한 한, 이명박씨도 어쩔 수 없는, 그렇고 그런, 여러 정치인 중 하나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