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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 건설에도 폐족들 걷어내라

두바퀴인생 2008. 1. 13. 06:03

 

대운하 건설에도 폐족들 걷어내라

데일리안|기사입력 2008-01-12 11:10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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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자들을 정신질환자로 모는 아집, 무조건 된다는 독선 척결을
‘삼가고 또 경계하는’ 다산 정약용의 흠흠(欽欽) 되새길 것


[데일리안 박재목 시인]2008년 1월 7일은 《데일리안》이 선제(先制)한 한반도 대운하의 역사적 가치가 삽질과 토목에서 디지털 클릭으로 급격히 이동된 날이었다. 사회적 담론을 제기한 칼럼 “대운하가 삽질과 토목공사라고?”를 기점으로 언론과 운하 관계자들이 대운하 인식을 한반도 국토재창조, 왓트컴 신문명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또한 지구온난화에 따른 탄소경제와 기후산업으로 연계되는 ‘네오(NEO) 파워’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새롭게 구상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대운하 가치가 전근대적 토목에서 생태문명과 기후변화의 국토재창조 차원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 전환은 한국은행이《지구온난화 대책 및 기후산업 선제화 전략》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실용적 그린 이니셔티브 국가적 선제화와 고령화 대책이 앞으로 미래적 성장동력의 양대 축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논리에 국민과 언론이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왜 진작 대운하를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가? 친환경 생태의 NEO 관점, 세계화 소통의 가치혁신, 지구온난화 탄소시장,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경제, 자원 민족주의와 에너지 국가주의, 기후변화의 쓰나미, 생태지구 하천 준설, 신재생에너지의 와트컴 첨단벤처, 레저·스포츠 등 신문명 창조와 연계하려는 구상을 왜 진작 추진하지 않았을까?

왜 진작 국가 생존단위인 식량과 사료를 75% 이상 외국에서 사들이고, 97% 이상의 에너지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서 미국과 브라질같이 유채·옥수수·콩 등의 바이오연료 대체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창조적 발상을 모색하지 않았을까?

왜 진작 탄소금융, EuP, CAFE, WEEE, RoHS, REACH 등의 Green 무역장벽과 교토의정서·발리로드맵 등 선진국의 21세기 십자군 전략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환경과 문화강국, 그린 Korea 지구촌 이니셔티브의 브랜드 구축으로 그린 신성장 동력을 확충해 나가지 못했을까?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한반도 대운하 역사적 과제를 정책 실효성 차원의 찬반 논란에서 탈피시켜야 한다. 역사적, 미래적 정언(定言)으로 새롭게 모색해 나가는 인식의 가치전환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또한 이 문제를 앞에서 언급했듯이 삽질과 토목의 밀어붙이기 방식의 논란에서 북한의 핵문제와 인권, 식량 및 에너지 확보 차원의 한반도 평화와 생존의 전제조건으로 극복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전 국토의 소통과 새로운 발전을 기약하는 21세기 친환경 탄소경제 시대에 걸맞은 창조적 사고를 확장해 나가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국민소득 4만불 경제발전 재도약의 전기(轉機) 차원에서 대운하(大運河) 가치를 적극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새롭게 부상한 네오(NEO) 파워의 ‘E’를 경제(economy) 관점과 함께 환경(environment), 진화(evolution), 에너지(energy), 감성(emotion), 비용(expense), 생태(ecology), 엔트로피(entropy) 차원으로 접목시켜 나가야 한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미래적으로 성찰해야

4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 방문 후 세심한 검토 끝에 국토재창조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내 놓은 경부고속도로에 대해 당시 삽질과 토목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선천적인 역적놈들 대대손손 역적질”, “국민의 피 같은 세금으로 길 닦아 유한마담 고급승용차 놀러 다니게 만드는 나쁜 길”이라고 극력하게 반대했다.

여기서 필자는 대운하와 경부고속도로를 동일한 시각으로 보자는 주장이 아니다. 다만 폐족(廢族)의 안타까운 시각을 거두자는 것이다. 최근 폐족(廢族)이 사회적 담론으로 저어하게 떠올랐다.

여기에 대해 국민들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 “전하! 신을 죽여주십시오.”라고 대드는 신하를 보며, 과연 임금은 진정한 충성심과 반성의 태도를 느꼈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섬뜩한 공포’의 저주를 느끼고 있다. 폐족(廢族)을 외치는 이미지는 역사와 시대, 국민과 미래에 대해 충심어린 반성과 성찰의 자세가 아니다. 반면에 “그래! 한번 끝까지 해보자.”는 독선과 오기의 무서운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 사회의 가치 수준이 정말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하는 자괴감을 들게 한다.

본질에 담긴 엄청난 가치 탐색을 새롭게 시작해야

불쌍한 국민을 곁에 두고 지독하게 가난했고, 이승만 독재에 끝까지 항거했다가 권력에 의해 학교 선생에서 쫓겨났던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1908~1967)이 1940년 대 만주에서 친일한 행적인 ‘만선일보’의 기사가 최근에 폐족(廢族)적 시각에서 발굴되어 지금 상당한 논란을 빚고 있다.

청마의 작품 중 '들녘', '전야', '북두성' 등에 대한 친일 논란과 더불어 산문 형식의 청마 글이 이번에 친일 근거로 발굴된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그 당시 패전을 직시(直視)한 일제는 분명히 만주에서 정미소와 농장을 운영하다가 부도를 맞은 청마에게 대가성 친일 동조를 강요했을 것이다.

1967년 부산 산비탈 학교에서 교장을 하다가 급작스런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한 청마는 엄청나게 잘 살았던 친형 동랑(東朗) 유치진과는 달리 지독한 가난을 선택했다. 우물도 없던 산비탈 판자촌에서 초라하게 살았다. 교장으로 받은 월급은 소위 백수건달이었던, 경우가 없이 무작정 청마에게만 매달렸던 당시의 수 많은 문인들의 술값으로 몽땅 날아갔다.

지난 반민족 역사에서 민족 반역과 친일 배신의 근거는 창씨개명과 돈, 그리고 직장이었다. 지조와 민족정신, 일제가 망할 것이라는 역사적 신념을 가졌던 사람들은 절대 창시개명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리고 총독부, 헌병, 경찰, 교사, 공무원, 면장, 군인장교와 오장, 은행원, 수리조합, 산림조합, 식산은행, 척식회사, 고등계 형사 끄나풀이가 명백한 친일의 표상이었다. 그들은 돈과 첩, 그리고 좋은 집을 그들의 왕인 은혜로운 천황의 하사품으로 감사하게 받았다.

1942년 2월 6일자 만선일보(滿鮮日報)의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청마의 글은 아주 짧다. 그런데 그 짧은 행간에 “나라가 잇서야 산하도 예술도 잇는 것을 매거(枚擧)할 수 업시 목격하고 잇지 안습니까.”라는 말이 저어하게 나온다.

청마는 자신이 가진 강인하고 수려한 문장력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강요에 못 이겨 겨우 이 정도의 아주 짧은 글을 쓰면서도, 그 속에 엄청난 민족의 아픔과 분노에 찬 시대정신의 숨겨진 역사적 메시지를 행간에 남겼다.

“바비론 이상의 현란한 문화를 건설하여야 할 것은 오로지 예술가에게 지어진 커다란 사명이 아닐 수 업습니다.”에서 ‘바비론’은 인간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우상의 파괴인 허망한 일제를 빗대어 말한, 항거의 되돌릴 수 없는 징표를 남겼다.

그래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서 청마의 친일 논란을 ‘하사품과 직장’이라는 본질적 관점에서 새롭게 간파해야 한다. 전광석화 같이 뻔뜩 떠오르는 가치의 본질적 의미를 긍정적으로 탐구해 나가는 전향적 자세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다.

폐족(廢族)적 무지와 오만을 먼저 척결해야

이러한 사실 왜곡과 오도 관점에서 볼 수 있듯이, 앞으로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문제를 반대에 대한 단순 반박 논리와 자기 집착의 옴파로스적 경직과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자기변혁의 자세를 가져야한다.

그리고 지난 매립지 오염물질 유입, 부영양화, 생태 파괴의 대표적 상징인 시화호와 새만금 간척사업에서 보았듯이, 국가는 미래를 담보하는 중요한 국토개발 정책을 가지고 절대 국민들을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 단순한 거짓말이 그동안 우리 삶의 현장과 국토의 안전을 어떻게 파괴하고 악화시켰는지를 먼저 세심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국민들도 21세기 지식실용 관점에서 한반도 대운하 가치를 생태환경 복원의 국토재창조 시각으로 바라보는 창조적 관용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스스로 가치를 왜곡하는 오만의 유혹을 차단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선진화, 생태복지 사회, 뜨거워진 지구를 식히는 기후변화 대책에 앞장서는 ‘좋은 발전 - 착한 자본 -생태 문명’의 그린 경쟁력을 선도해 나가야 한다.

끝으로 한반도 대운하의 국민적 가치와 공감을 확산시키는 정책홍보 전략을 공자의 정의로운 경제 관점인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차원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대운하 추진 관계자들의 엄정한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그들의 뇌리에서 가장 먼저 대운하 반대 국민들을 ‘국토 파괴라는 과대망상과 정신질환 수준’으로 보는 ‘폐족(廢族)적 아집’을 긁어내야 한다.

“운하는 무조건 된다.”, “하루 먼저 물건을 만들고, 배에서 배로 화물을 옮기면 시간단축이 되어 경제적이다.”, “운하 만드는 건 별거 아니다.“, ”이명박이 하기 때문에 더욱 반대하는 걸로 보인다.“, ”스크류로 강물을 정화한다.” 등의 무식이 넘치는 아둔한 자들을 ‘정의롭지 못한 이익’으로부터 하루 빨리 척결해 나가야 한다./ 데일리안 박재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