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갈등의 핵, 유태인 1

 

갈등의 핵 태인 1





베들레헴 전경

 


베들레헴 시내 모습





<갈등의 핵, 유태인>

 

오늘날 전세계 노벨상,금융,사상,법률,예술,문학 등 모든 방면에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민족 유태인, 현재 전세계 금융시장을 주무르는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이 안주하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는 왜 그들을 그렇게 편애하며 그들의 대변인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가? 왜 그들은 이렇게 우수한 민족인데도 나라를 잃고 2천년 동안 세계 각지를 방황하며 살아야만 했던가? 왜 그들은 같은 형재들인 기독교권과 이슬람권 사이에서 그토록 미움을 받고 있으며 그들과 분쟁을 유발하고 있는가? 그들의 사상과 가치관은 무엇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삶은 무엇인가? 또 그들이 가는 곳마다 분쟁이 발생하고 그 분쟁의 중심에서 어떠한 핍박과 고난속에서도 그것을 기회로 다시 불꽃처럼 일어나는 그들은 과연 무슨 힘으로 그렇게 항상 되살아 날 수가 있는가?

 

우리들은 나라를 잃었다가 겨우 되찿았지만, 지난 고난의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외침과 일제 식민지까지 지내면서 살아온 기구한 민족이다. 그러면 우리도 그들처럼 고난과 핍박속에서 살아온 민족으로 그들처럼 뛰어난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이며 앞으로 세계 지배를 꿈꾸는 그들에게 우리들은 어떤 자세로 그들을 상대하며 그들을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들은 이제 세계 제일의 권력자로 음지에서 비밀리에 전세계를 조종하고 있다. 그러한 유태인에 비해 우리들의 현재의 모습을 볼 때 우리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편견과 아집으로 얼룩져 있으며 우물안에서 안주하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미래 한국을 이끌어 나갈 사람이라면 이 책은 한 번쯤 반드시 읽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서초동-

 

--------------------------------------------------------------------

 

저자 김종빈. 서울 문리대 언어학과 졸. 경향신문사, 서울신문사 문화부 차장, 한국경제시문 외신부장 및 주미 특파원 역임. 도미 후 동아,중앙일보 워싱턴 지사 편집국장 역임. 워싱턴에서 '뉴스 서비스 어소시에이트'를 경영하며 많은 유태인,아랍인들과 교류를 통해 중동 문제에 대한 많은 칼럼을 현지 언론에 기고. 현재 저널리스트와 문예평론가로 활동 중. 저서로 <아메리카니즘의 몰락>, <정보 사회의 기업 문화>,<한국인답게 사는 길>외 다수가 있다.

----------------------------------------------------------------------------------------

 



<저자 서문>

 

 '갈등과 분쟁의 몸통은 언제나 유태인이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 금융 거래의 총 본산인 세계 무역센타 빌딩이 두 대의 비행기가 충돌하면서 검은 연기를 내뿜다가 얼마후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한국은 12일 새벽이었는데 TV를 보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로 방송하는 내용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에 처음에는 단순히 고층 빌딩에 불이 난줄 알았다. 전 세계는 조금후 TV로 생중계되는 그 현장을 보다가 경악했다. 처음에는 비행기가 불의의 사고로 충돌한 줄 알고 놀랐으나, 조금후 다시 한대의 비행기가 옆 건물에 충돌하면서 세계인은 더욱 놀라고 있었다. 누군가 조직적인 자살 공격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가 있었다. 얼마후 뉴스는 아랍 테러 집단의 소행으로 잠정 밝혀지면서 전 미국의 공황이 패쇄되고 용의자 검거 선풍이 불고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그후 전 세계는 이 끔직한 태러를 보도하는 미국 현지의 소식에 관심을 집중했다. 팔레스타인 분쟁이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으로 옮겨 붙은 것이었다.

 

어째서 뉴욕의 맨하탄인가? 오늘의 유대인은 어제의 유태인들과는 달리 팔레스타인의 좁은 지역에 있지 않고 세계 자본주의 총본산의 심장부인 뉴욕의 증권가, 곧 유태인으로 채워져 있는 금융자본시장의 한복판에 있다. 아랍 테러 리스트들은 유태민족의 심장부가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나 엘루살렘의 통곡의 벽이 아니라 세계 금융투자 회사의 총집결지인 뉴욕 맨하탄의 무역센타에 있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뉴욕이 유태민족과 아랍권의 새로운 대결장으로 변한 것이다. 그 결과 세계 자본주의의 수출국인 미국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아랍권과의 대결 당사자로 등장했다.

 

21세기 벽두에 벌어진 이 참혹한 전쟁의 현장을 전세계가 목격했다. 유태인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 금융시장의 핵심부가 어이없게 무너져버린 광경을. 이렇다면 이것이 끝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 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유태인들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하여 이런 대결과 갈등 그리고 비극을 온몸으로 수없이 겪고 되풀이해온 민족이다. 그런 타격 후에는 반드시 그 손실을 넘어서는 반사이익을 거두었다. 더구나 오늘날 유태인들은 더 이상 그들끼리 도시마다 모여 살던 '게토(Ghetto)'의 담장안에 갇혀 있지 않다. 전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사실상 실세이며 초강대국인 미국의 정치를 배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테러리스트에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역센타를 그 자리에 다시 곧 세울 것이다." 라고 당시 '줄리아니' 뉴욕시장이 폐허로 변해버린 무역센타를 보고 선언했다. 비극 직후의 이 선언은 아랍권과 기한 없는 길고 지루한 대리 전쟁을 치루겠다는미국의 의지를 천명했다.

 

"21세기의 새로운 전쟁"이라고 명명한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결전의 의지를 천명했다. 그러나 이 대결이 어느날 갑자기 테러를 당했다고 대결구도가 결정된 것이 아니라 기원전부터 내려온 피할 수 없는 길고 긴 대결의 역사가 있다.

 

분쟁의 몸통인 유태민족의 세계사 등장은 기록으로 보아 인류문명의 여명기인 기원전 2천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아브라함이 눈에 보이지 않는 유일신이란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세상에 소개하고 그 아이디어를 신봉한 부족들을 이끌고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하면서부터다.

 

유태민족은 특출난 민족이다. 남다른 민족이기에 언제나 시대에 앞서가는 파문을 던졌고, 그것이 주변의 주목과 질시 그리고 갈등과 대결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유일신 사상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가장 보편적인 종교 사상일지는 모르나, 유태민족이 처음 이 아이디어를 내놓은 기원전 2천년경에는 주변의 여러 민족들의 반목과 대결을 가져온 원인이 되었다. 다신교를 숭상하던 그 당시 여러 민족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을 섬기는 유태민족이 이교도로 보였을 것이며 그로 인하여 이민족과의 분쟁으로 역사는 시작하고 마감하는 질기고 고된 삶을 이어간다. 유태민족의 고난의 역사는 구약성경에 잘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유태민족이 기록한 구약성경은 자신의 민족사를 기록한 유태민족만의 고전이 아니다. 그것이 씌어진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헤브라이즘'은 큰 줄기를 이루어 서구 정신문화사의 한 주류를 이루어왔다.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끝없는 대립을 은유적으로 암시한 흥미있는 기록이 구약성경에 있다. 유태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삭'과 '이스마엘'이다. 그런데 장자인 이스마엘은 아내인 '사라'의 몸종인 '하갈'이란 여인에게서 낳았고, 둘째 아들 이삭은 정실부인 사라가 낳았다. 자연히 아브라함의 적통을 잇는 과정에서 대립이 일어났다. 결국 적자인 이삭이 적자로 유산을 잇게 되고 이스마엘은 어머니 하갈과 함께 눈물을 머금고 쫓겨난다. 이삭은 유태인의 조상이 되고, 흔히 이스마엘이 아랍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본다.

 

범 아랍민족의 정신적인 지주인 이슬람교는 7세기 중엽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서 태어난 '마호메트'에 의해 창설된다. 마호메트는 이미 오래 전에 씌어진 유태교 경전인 구약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바로 이슬람교의 핵심신앙인 체계적인 '창조주 유일신 사상'이다. 물론 뒤이어 탄생한 후 이미 그 시기에 확고한 기반을 닦아 신약의 기독교 신앙에서도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의 새로운 종교 체계를 다듬어갔다.

 

마호메트가 창시한 이슬람교는 구약성경 서두에 나오는 아담에서 시작하여 '노아,아브라함,모세,다윗,솔로몬,예수'까지 하느님이 선정한 예언자 모두를 계열에 묶어 놓고 마지막 최대 예언자의 위치에 마호메트를 올려 놓고 있다. 다시 말해 마호메트가 창조주 유일신 종교의 대단원적인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이다. 그 유일신은 유태교나 기독교의 '야훼'라는 명칭 대신 '알라'라고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 최고의 예언자인 마호메트 이후 어떤 예언자도 이 세상에 출현할 수도 출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느님(알라)이 절대적인 유일한 존재인 이상 같은 자격을 가진 누구도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로 기독교와 분명한 선을 긋는다.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나, 이는 하느님의 '독생자'가 아니라 하느님이 보낸 '예언자'이며 한 사람의 '사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예수를 하느님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다면, 유일신 이외에 또 하나의 유일신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이슬람교는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 교리'를 배격한다. "알라신 한 분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 가 이슬람교의 마호메트가 창설한 핵심사상이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은 마호메트가 20년에 걸친 종교적인 명상기에 유일신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계시를 담고 있다. 그가 받았다는 계시는 그때 그때마다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낙타의 뼈나 가죽에 기록되었다. 그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집대성이 되어 모두 114장으로 편찬되었다. 그 속에는 유태교 경전인 구약성경의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모세'의 이야기가 있으며 이슬람교가 유태교의 결정적인 영향으로 탄생되었음이 확인된다.

 

코란에 의하면 유일무일한 하느님 '알라'신은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하느님, 다시 말해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직접 나타난 '인격신인 하느님'이라고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믿었던 하느님은 바로 '알라'신이었고, 아브라함의 종교는 유태교는 물론 그 뿌리에서 나온 기독교도 아니며, 이 두 종교는 본원적인 뿌리가 되는 유일한 알라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요약하면 이슬람교는 유일 인격신의 종교인 유태교 그리고 기독교라는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완결된 영원불멸의 유일 '인격신 종교'라는 결론이다. 

 

그리고 보면 이슬람교는 유태민족이 뿌린 유일신이라는 종교적인 텃밭에서 자란 쌍생아라고 할 수 있다. 천 수백 년의 역사가 흐르면서 이제 세계는 같은 사상의 텃밭에서 발아한 유태교와 기독교 문화의 한 묶음인 서구 세력 이른바 '유데오-크리스체니티(Judeo-Christianity) 문명권'과 이슬람의 '범아랍문명권'의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종교 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 자존심에 불이 붙기 시작한 범아랍민족권은, 신생 이스라엘을 미국 제국주의가 인위적으로 아랍민족의 깊숙한 심장부에 박아놓은 사생아이며 그 첨병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해 거주지를 잃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생겨 이 난민문제가 생존과 갈등의 꺼지지 않은 불씨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 견해에서 이스리엘의 건국이 아랍권 중동 지역의 화약고가 된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해 유대아가 망한 이후, 유태인들은 팔레스타인 고토를 잃고 뿔뿔이 흩어져 2천 년에 이르는 이른바 '디아포라스(Diaspora) 를 맞게 되었다. 반면 후발 종교인 이슬람교는 마호메트의 본고장인 아라비아 반도에서 일약 중근동 지역은 물론 아시아 일부까지 석권하는 강대한 이슬람 세력의 아랍권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중세에도 오늘날처럼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양대 세력으로 나뉘어 졌다. 이 시기의 대결은 여섯 차례에 걸친 이른바 '십자군 전쟁'이 잘 설명해 준다. 양대 거인의 충돌과 대결이 거듭되는 이 시기에 유태인들은 비대하게 성장한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의 양 진영을 넘나들며 잉여 공간의 국외자로서의 생존을 영위했다. 강요된 배교나 탄압은 오히려 기독교권에서 심했던 시기다.  후발종교로 막 성숙기를 맞은 이슬람교권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기독교권에서는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인의 멍에를 짊어지고 3류 시민으로 숨죽이며 살던 시기다.

 

그러던 유태인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인권을 주장하는 계몽주의와 자본주의가 성숙하면서 서구 기독교권 문명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면서부터다. 그러자 잠자던 유태인의 독특한 자질이 되살아나 어제는 서구 문명권의 정식 동반자로 여겨지는가 싶었는데, 아차 하는 사이에 어느듯 서구 자본주의 문명사회의 명운을 좌우하는 핵심 종족으로서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오늘날 유태인을 빼 놓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이슬람교의 행동양식를 잠깐 살펴보자. 이슬람이라는 명칭은 본래 자기 자신을 절대자 앞에 내던지며 그 뜻에 완전히 맡긴다는 아라비아어에서 비롯됐다. 하루 다섯 차례 시간을 정해 온 몸을 던져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예배에서 그런 의지가 잘 드러난다. 절대 유일신에 대한 이런 절대복종의 신앙 체계에서 기도는 마음속으로만 드리는게 아니라, 군대의 각개전투처럼 반복 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몸이 유시시 반사적으로 행동하는 식의 동작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행동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슬람은 출발부터 보다 일상생활과 밀착된 종교였고 일찍부터 사회성이 강한 역동적인 종교였다. 아마도 강한 기반을 이미 구축했던 같은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방어적인 자세에서 이와 같이 구체적으로 행동화한 신앙 양식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슬람교는 현세에 대한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자세를 견지한다. 현실 세계가 악과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면 이를 피해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연히 이와 대결해 알라신의 뜻에 따르는 악이 없는 세계로 변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종교적인 목표가 필연적으로 현실 세계에서의 정치 권력과도 밀착될 수 밖에 없었다. 창설 이후 강한 행동력을 지니며 아라비아 반도를 석권하고 지역별  지배력을 확보한 칼리프들이 제정일치의 조직적인 정치 권력을 행사하고, 우수한 군사력으로 중근동 지역을 넘어 아시아 일부까지 진출한 것도, 이와 같은 행동의 신앙 체계가 그 동력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기독교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의 틈바구니에서 잉여인간 그룹으로 끼어 있던 종족이 20세기 초입부터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하고, 이제는 양대 문명세계의 뇌관으로 자리메김되기까지 유태민족은 미증유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기독교 세계의 복판에서 벌어진 인류의 가장 끔직한 대학살극, 바로 나치스의 6백만 유태종족 인멸극이다.

 

유태인 역사를 살펴보면, 유태민족은 반드시 형극의 역사를 영광의 역사로 바꾸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이 잘 드러난다. 이런 사실은 유태민족사의 전편에 흐르는 실증된 역사다. 나치스의 학살로 인해 당시 유럽 거주 유태인 인구의 3분지 2가 인별되었다. 인류사에 일찌기 그 예를 찿아 볼 수 없는 미증유의 종족 말살 참극이었으니 차별과 억압 속에서 연명해 왔던 소수 유태민족으로서는 종족 존속의 종말을 가늠하는 참화였으리라.

 

그런데 유태인은 이 대학살극을 민족 부흥의 발판으로 전환한다. '홀로코스트' 비극을 2천 년 전에 실종된 민족국가인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매듭짓는다. 비극의 어두운 심연에서 밝은 영광으로의 탈출을 연출했다. 그것은 마치 4백년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모세에 의해 결사적인 탈출을 시도하고,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민족국가를 건설한, 아득한 지난 역사를 시대를 달리해 재연하는 듯하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고토에 재건됨으로써 중동이 다시 세계 분쟁의 핵심 지역으로 등장하는가 싶던 게 바로 어제의 일이었는데 그 무대가 21세기 벽두 미국의 심장부로 옮겨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유태민족 중추 세력이 바로 자본주의 총본산인 미국의 심장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초강대국 미국호의 조종석에 앉아 있는 조종자가 유태인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이유로 미국 자존심의 본바닥인 뉴욕 '월스트리트'의 '월드트레이드 센타'가 아랍 테르리스트에 의해 박살났고, 세계에 군림해온 슈퍼파워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 여기서 쉽게 그 바닥을 예측하기 어려운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지만, 미국에서는 아무도 이런 끔직한 재난의 원인을 유태인에게 돌리려 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유태인의 야욕이라던가 세계 경제계를 지배하려는 유태인의 검은 손 등을 이야기해왔다. 유태민족이 세계 분쟁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고 말하고, 세계가 이들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진실일 수도 있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실 유태인이 있는 곳에 갈등이 있었다.

 

그렇다면 유태인에게 이런 저런 분쟁의 원죄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 유태인은 자신의 민족 종교를 지키고 민족유산을 보존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뿐이다. 유태인이 온갖 분쟁의 몸통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어디 유태인들만의 탓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유태민족이 개입된 역사적 분쟁사을 보면, 역경을 역이용한 유태인의 뛰어난 생존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보아야 옳다.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을 지키고 고집을 부리며 능력의 한계에 도전해온 유태인의 독특한 민족적인 자질과 그 특징이 정치. 문화. 종교적으로 이런 저런 갈등과 분쟁의 몸통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일신이란 아이디어를 만들었을 때 얼마나 많은 주변 이민족의 질시를 받았던가? 그러나 창조주 유일신 사상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씨앗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고, 그 영향을 받지 않은 인류가 어디 있는가? 0.3%의 세계 인구로 노벨상의 약 20%를 움켜쥔 민족이 유태인 말고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예술가.학자를 양산한 유태인의 목소리가 억눌려 지내온 소수민족 답지 않게 크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격동의 20세기 물리학의 최고봉에 우뚝선 '아인슈타인', 인간의 의식 세계를 무의식의 언덕 너머로 확대한 '프로이트', 한 세기를 소요와 동란의 세기로 만든 '칼 마르크스' 등을 세상에 내놓은 유태민족이다 그 가설과 역설 등 이들이 내놓은 주장은 언제나 일파만파의 논란과 소용돌이의 중심이 되어 왔었다. 옰았다거나 틀렸다거나 항상 시대에 앞선 새로운 지평선을 내다보았고 역동적인 인류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했다.

 

다시 말하지만 세계의 돈 줄을 주무르는 뉴욕 맨하탄 남단부, 월드트레이드 센터와 그 주변의 금융가는 유태계 세계 금융의 본바닥이다. 금융투자기업이라는 미래 핵심 사업을 벌써 19세기 초에서부터 다져온 유태인이니, 오늘날 미국 같은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큰손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분명히 유태인은 세계 분쟁의 몸통이다. 세계는 이들로 인해 홍역을 치러왔다. 그러나 유태인은 스스로 원해서 분쟁의 몸통이 되지는 않았다. 온 몸을 던져 언제나 새로운 한계에 도전하였기 때문에, 정치.경제.문화.사회 모든 면에서 갈등과 분쟁이 따랐고 그 몸통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유태인을 바로 보자 아무런 선입관이나 전제 없이 있는 그 얼굴 그의 유태인을 보자. 세계 분쟁의 몸통인 유태인을 보면 현재를 넘어선 미래가 보인다. 이 책은 그런 독자를 위해서 준비된 것이다.

                                                                                      -작가 김종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