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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히 무너지는 나라기강...

두바퀴인생 2007. 9. 4. 08:51

 

 

[사설] 급속히 무너지는 기강을 걱정한다

중앙일보 | 기사입력 2007-09-04 00:54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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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권력과 국민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우리 젊은이들이 나라의 위상을 잔뜩 올려놓으면 못난 권력, 못난 집권자들이 끌어내린다. 일찍이 대통령은 “대통령 노릇 못해 먹겠다”고 했다. 그의 하산(下山)이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정말 국민 노릇하기가 힘들다. 못난 정권의 마지막 추태 때문이다.
 

 건국 이래 우리의 젊은이들이 요즘처럼 기세를 떨친 적이 없다. 박태환은 세계의 물살을 갈랐고, 김연아는 세계의 얼음을 지쳤다. 젊은 국민은 콩쿠르를 휩쓸고, 마술·비보이(b-boy)·영화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어느새 최경주는 타이거 우즈의 맞상대로 우뚝 섰다. 반도체 공장과 조선소의 젊은 땀방울이 이 분야 세계 1위를 지켜내고 있다. 이런 자랑스러운 결과들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묵묵히 일한 국민 덕분이었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경망스러운 언행과 위헌적 행태로 나라 위상에 상처를 주었다. 386 그룹과 권력 주변 부류는 정권의 부실기행(不實奇行)을 합작했다. 그런데 임기 말에 들어 그 하락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급락이다. 병든 군사정권에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국가의 기강이 해체되고 있다.

 

 대통령은 PD연합회 모임에서 “조진다” “깜도 안 된다” “난리를 부린다”는 표현을 썼다. “조진다”는 상스러워 윗사람 앞이나 점잖은 자리에선 쓰지 않는 표현이다. 그런 단어가 국민이 보는 앞에서 대통령의 입에서 또 나왔다. 독재권력 하의 제한된 언론, 정권인수위(2002년) 때의 과잉 경쟁과 오보, 일부 사무실 무단출입… 이런 기억의 편린을 갖고 대통령은 2007년의 언론을 보고 있다. 그러면서 기자실 통폐합과 취재 제한을 옹호했다. 코끼리 다리만 만져 봤던 작은 기억을 갖고 “코끼리는 기둥 모양”이라고 우기는 시각장애인 같다. 세월이 흘러 언론이 어떻게 성장해 있는지 그는 모른다.

 

 흔들리는 대통령 때문인가. 권력 종사자들의 양태도 가관이다. 세계 13위 경제대국의 정보부장이 테러·납치 집단의 안마당으로 날아가 연예인처럼 행동했다. 사진 찍히고, 회견하고, 자화자찬의 보도자료를 뿌렸다. 처참히 살해된 국민 두 명의 체온이 식지 않았는데 정보기관장이 세계 앞에서 웃었다. 선글라스를 낀 국정원 협상가는 비서처럼 그런 원장에 붙어다녔다. 선글라스와 카메라… 세계가 웃을 코미디다. 청와대 대변인은 “21세기형 정보기관”이라고 두둔했다. 어느 정보기관이 이런 노출형 정보기관을 믿고 고급 정보를 교류하겠는가. 정보기관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풋내기들의 행동이다.

 

  어느 장관은 대선 주자와 상의하더니 갑자기 장관 직을 버리고 선거캠프로 갔다. 이런 장관 자리를 누가 존경하겠으며 그런 존경 없이 나라가 어떻게 운영될 것인가. 주류 언론인 범주에 들어가 보지 못한 ‘콤플렉스’ 언론인 출신들이 권력 앞잡이가 되어 기자실을 부수며 “선진화” 운운하고 있다. 급기야 국제언론인협회(IPI)가 항의하고 나섰다. 민주화를 말로만 외쳤지 언론의 감시를 받고 싶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여기에 정권 말이면 으레 닥치는 권력형 부패가 꼬리를 보이기 시작했다. 검찰은 제 역할을 못하고 감싸기에 급급한 인상이다. 학력을 위조한 한 젊은 여자를 위해 청와대의 핵심이 총대를 메고 나왔으나 왜 그런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개혁 운운하면서 출발했던 이 정권도 결국은 과거 정권과 똑같은 유형의 황혼의 길을 걷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임기 말을 꼭 이렇게 보낼 수밖에 없을까. 마지막 하루까지 성실히 국정을 챙기고 나라의 위신을 지켜가는 그런 대통령은 만날 수 없을까. 대통령은 개인적 경험과 불쾌한 추억이라는 나무에서 벗어나 국가와 국정이라는 큰 숲을 봐야 한다. 남은 6개월, 그동안 떨어뜨린 나라 위상을 바로 세우고 나가 주기를 진정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