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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심드롬과 김수현 문화권력...

두바퀴인생 2007. 6. 30. 23:04
‘내 남자의 여자’ 신드롬과 김수현의 문화권력

 

 

[칼럼] 아직도 김수현이 통하는 한국사회 문화적 편협성
입력 :2007-06-19 11:04:00   김헌식 문화평론가
▲ 류경옥 작가에 의해 표절시비 논란을 겪고 있는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가 18일 23회분에서 남녀주인공인 김상중과 김희애의 파격적인 베드신으로 주목을 모았다. ⓒ SBS 

어느 감자탕 집에 갔더니 주인은 물론이고 종업원들이 쪼르륵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손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많은 손님을 제쳐두고 푹 빠져서 보는 프로그램은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는 김수현의 <내남자의 여자>였다. 김수현 드라마인지 모르고 보고 있었다. 김수현 드라마이기 때문에 보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내용에 우선 빠져든 것이다.

어느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에 와이프와 딸이 드라마에 빠져가지고 죽겠다고. 그 드라마를 보면서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욕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 남자의 직업이 바로 교수라 죽을 맛이라는 것이다. 그 드라마가 바로 <내남자의 여자>.

그렇다면 여자만 보는 드라마인가? 다른 교수가 식사 자리에서 요즘에 드라마에 빠져 있다고 했다. 그 역시 <내남자의 여자>를 보고 있었다. 너무나 아쉽다고 했다. 그 드라마가 끝나니. 김희애가 자신의 첫사랑을 많이도 닮았다고 한다. 나보고는 이런 말을 했다.

“그런 경험 없지?”

불륜 경험이 없으니까 <내남자의 여자>를 욕하고 돌아다니는 것?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객관적으로 비평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이번 주에 끝나니 참 아쉽다고 했다.

이 교수만이 아니라 생전 텔레비전을 보지 않을 것 같은 학술적인 교수도 즐겨보고 있다는 말에 새삼 당황스러웠다. 이 교수들은 내로라하는 분야의 실력자들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이었다. 하긴 불륜과 사랑이야기에 학력과 지식여부, 직업에 따른 차이가 있을 리 만무하다.

<내남자의 여자>가 누리는 인기는 무엇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우리 시대의 최대 고민은 불륜인가? 아니면 김수현 드라마의 마력 탓인가. 둘 다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사실 김수현 작가가 불륜이라는 코드로 다시 돌아온다고 했을 때 또 불륜인가라는 반문을 가지게 되었다. 계속 불륜 드라마가 범람해 왔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김수현이 불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궁금증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김수현 드라마의 본질적인 속성이 온존한 드라마였다. 김수현 드라마에 대해서 어느 주간지에서 다른 평론가와 함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한 이유는 김수현이라고 하는 한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김수현은 막강한 문화권력으로 사람들의 인식체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그 영향력에 비해 역부족이었다.

사실 김수현은 한국 드라마계에서 1세대에 속하는 작가다. 데뷔 당시 재미삼아 라디오 극본에 응모했지만, 라디오 드라마 전성기를 넘어서 한국의 모든 드라마의 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꾸로 한국 드라마에 문제가 많다면 그러한 문제는 1세대에게 있고 그 1세대의 중심에 김수현이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김수현 작가에 대한 비판은 금기사항이다. 어느 프로에 나가서 김수현 드라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심한 이야기다 싶은 부분은 잘랐다. 그 작가는 방송이 끝나고도 걱정이 된다고 했다. 방송작가협회 회원인데 김수현 작가에게서 한소리 들으면 어쩌나 싶다는 것이었다.

김수현 작가에 대해서 비판하는 기사를 잘 볼 수가 없다. 내로라하는 대중문화 기자들이 김수현 비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많이 보니까 좋다는 식의 주례사 비평이 횡행한다. 여성을 주체적으로 그리고 약자의 편에 있는 듯이 보이므로 진보적 매체에서도 호평 일색이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지 이상하게 말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좋은 것에는 항상 그늘이 있기 마련이고, 강한 밝음은 언제나 사람을 고사 시킨다.

김수현 작가는 동물적인 작가다. 인간의 본능 아니 동물의 본능을 잘 알고 있으며 인간이 숨기고 싶은 감정이나 느낌을 직설적으로 내쏟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관점과 세계관을 자신의 언어로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작가다. 따라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대사들을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언어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한다.

그러한 대사들에는 인간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들어 있다. 물론 그것은 현실일 수도 있다. 인간에 대한 냉소와 불신에서 오는 가학성은 인간의 쾌감을 증가시킨다. 그런데 그것을 가부장적 질서로 바로잡고 싶어 한다. 또는 프로이트와 같이 본능을 이성으로 통제하고자 한다.

눈길을 뗄 수 없는 감각적 상황의 전개를 위해 그의 드라마에서 갈등은 끊임없는 연속성의 비틀기를 이룬다. 상황은 항상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감히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현실 가능성은 부차적이다. 약자의 편에서 강자로 규정된 대상에 공격이 속사포와 같이 이루어진다. 그 강자는 대개 남성이다.

이건 시청률 확보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 강자에 대한 폭력과 가학, 독선은 매번 합리화된다. 갈등과 분란은 궁금증을 더하지만 결말은 봉합에 그친다. 그의 드라마에 해법이 없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 현실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직관에 따른 느낌, 그리고 동물적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에 해법은 없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되었기 때문이다.

▲ 김헌식 문화평론가 
또한 애초에 해결점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통한 궁금증을 일으키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연속극 작법에 아주 적합한 작가지만 시나리오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상하게도 볼 때는 재미있는데 끝나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이유일 것이다. 김수현 드라마를 두고두고 보았다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내남자의 여자>가 끝나면 호평일색의 기사들이 넘쳐 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남자의 여자>같은 작품들이 드라마의 모범 모델로 당분간 한국 드라마 계에 범람할 것이다.

김수현 드라마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 말법이나 캐릭터 자체를 접하기만 해도 싫어하는 이도 있다. 그들이 왜 김수현 드라마를 싫어하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김수현 드라마 체제 아니 한국 드라마가 세계 드라마가 되지 못하는 장애 요인 극복의 수순인지 모른다. 21세기에 아직도 김수현 드라마가 통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문화적 편협성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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