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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6.25와 평화체제

 

 

[중앙시평] 상기하자 6·25, 이룩하자 평화체제

중앙일보 | 기사입력 2007-06-19 21:01 기사원문보기
[중앙일보 김기봉] 역사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 시인의 노래처럼 역사가에 의해 부름을 받은 과거다. 신생아는 이름이 호적에 올라야 하나의 사회적 존재로 태어나듯이 역사가에 의해 이름 붙여진 과거만이 역사가 된다.
 

이름이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의미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작명을 통해 사람의 운명을 점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과거의 이름인 역사도 미래를 담보한다. 예컨대 1950년 6월 25일부터 3년 1개월 2일 동안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는 단순히 과거를 지칭하는 것을 넘어 현재적 의미와 미래의 전망을 함축한다.

 

전통시대 역사적 사건의 명칭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미사변처럼 60갑자를 성(姓)으로 하고 그 사건의 내용을 이름으로 붙이는 방식으로 정해졌다. 삶의 템포가 빨라진 근대 이후에는 60갑자 같은 연도(年度) 대신 3.1, 4.19, 5.16, 5.18처럼 날짜를 성으로 하고 운동, 혁명, 군사정변, 민주항쟁의 의미를 이름으로 하여 역사용어가 구성됐다. 중요한 것은 앞의 날짜가 아니라 뒤의 의미규정이므로 역사 논쟁은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남한과 북한은 1950년 6월 25일부터 53년 7월 27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각기 다른 용어로 부르는 한편 기념하는 날짜도 다르다. 북한의 남침을 강조하는 남한은 6.25전쟁이란 이름으로 기억하고 기념하지만, 북한은 정전된 7월 27일을 전승절로 정해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벌인다. 이전의 명칭인 6.25사변의 의미도 남북이 각각 다르다. 남한에서 사변은 변고라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지만, 북한 사람들에게 사변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 긍정적인 사건을 지칭한다.

 

분단 극복을 위해서는 먼저 용어의 차이를 해소해야 한다. 최근 학자들은 6.25전쟁 대신 한국전쟁을 선호한다. 연세대 박명림 교수는 "50년 6.25에서 53년 7.27까지의 역사적 사건 전체에 대해서는 이념이나 성격, 특정 현상과 요인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성이라는 면에서 '한국전쟁'이 가장 합당한 명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은 외국인들이 붙인 명칭이라는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자국사의 틀에서 벗어나 역사인식 지평을 동아시아와 세계로 넓힌다는 장점을 가진다. 6.25라는 시간이 아닌 한국이라는 공간을 상수로 하는 역사용어의 작명법은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처럼 세계사적 문제와의 연관성을 함축한다. 김일성이 남침을 감행할 수 있었던 필요조건은 소련-중국-북한을 잇는 동아시아 공산주의 삼각동맹이었다. 마오쩌둥에 의한 중국혁명이 성공하지 않았다면 이 동맹은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 동맹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공산주의 삼각동맹은 깨졌다. 그럼에도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은 엄존한다. 아직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는 냉전의식은 '통일전쟁'의 이름을 붙인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하나의 학문적 주장으로 수용할 수 없게 만든다. 나는 강 교수 발언 자체보다는 우리 사회에 내면화된 통일담론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통일 신화로부터 깨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종래 남북한 정부가 군부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일 이데올로기를 고취했다면, 이제는 냉전의 벽이 만든 사고의 감옥에서 벗어나 당위가 아닌 현실로서 통일에 대한 냉철한 사고를 해야 한다.

 

이전에는 "어떻게 통일할 것인가"를 화두로 삼았다면, 이제는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냉전시대 통일은 전쟁을 의미했다. 전쟁을 통한 통일보다는 통일 없는 평화가 더 바람직한 현실에서 우리는 평화를 최우선적 가치로 추구해야 한다. 통일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라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수단이어야 하며, 이 같은 취지를 살릴 수 있는 6.25를 부르는 이름을 생각해 봐야 한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 ·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