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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언론의 숙명적 불편함

 

 

[장용성 칼럼] 권력과 언론의 숙명적 불편함

매일경제 | 기사입력 2007-06-06 20:02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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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느 나라건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이나 총리는 언론과 숙명적인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독재국가가 아닌 한,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서로 불편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게 오히려 정상이다. 언론의 본질적 존재 가치가 권력에 대한 감시 내지 비판기능에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성군이었던 세종대왕도 그 당시 자유로운 언론이 존재했다면 때때로 언론의 비판 대상이 됐을 것이다.
 

위대한 미국을 주창했던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대단한 연설가였지만 시시콜콜 따지는 기자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백악관 기자회견 도중 골치 아픈 질문이 나오자 기자들을 향해 '개××(s.o.b)'라는 심한 욕을 내갈기고 퇴장한 적도 있다. 백악관 기자들은 위대한 대통령의 뒷모습이었던 '이란 콘트라' 사건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영부인 낸시 레이건이 대통령 출장중에 가수이자 배우였던 프랭크 시나트라와 백악관에서 밀회를 즐겼을 것이라는 추측성 스캔들 기사도 등장했다.

 

기자는 워싱턴특파원 시절 현 부시 대통령 아버지인 시니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존 메이저 영국 총리 간 정상회담을 취재하던 중 영국총리실 기자단이 총리실에 대한 불만으로 동행취재를 전원 보이콧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당황했던 적이 있다. 미국 측 기자실만 북적이고 영국 측 기사실은 텅 비었다.

 

캐나다에서도 작년 5월 23일 비슷한 사건이 터졌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티븐 하르퍼 총리가 수단에 대한 캐나다의 원조를 발표하는 기자회견 도중 총리실 출입기자 24명이 집단 퇴장해버렸다. 총리실 출입기자단은 신임 총리가 종래 관행적인 메이저 언론사들의자유로운 질문권을 보장하지 않고 총리실이 미리 정한 언론사만 가능하도록 질의응답 방식을 바꾼 게 다분히 우호적인 보도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하고 집단행동을 한 것이다.

 

퇴임 직전 65%라는 높은 국민 지지도를 받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언론의 혹독한 검증을 받아야 했다. 아칸소주지사 때 부동산 금융 스캔들인 화이트워터 게이트를 비롯해 제니퍼 프라워스, 폴라 존스, 모니카 르윈스키 등과 같은 여자문제를 포함해 무려 32개 게이트에 대한 언론의 끈질긴 추적을 받았고 급기야 탄핵 위기까지 몰렸다.

 

현재 부시 대통령도 대테러 전쟁을 하면서 국내적으로는 미국 언론과도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작년 6월 테러 혐의자에 대한 금융계좌 추적이 단행되고 있다는 보도를 했을 때 부시는 '수치스러운 보도'라고 직접 비난했고 백악관은 국가안보를 해칠 염려가 있다며 다른 신문이 뒤따라 보도하지 말도록 요청했다. 2005년 12월 뉴욕타임스의 법원영장 없는 도청 행위, 2005년 11월 워싱턴포스트의 CIA 동유럽 비밀 감옥 운영도 미국 정부에서 격렬한 비난을 받았지만 이 보도들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03년 7월 뉴욕타임스 여기자 주딧 밀러는 발레리 프레임이 CIA 비밀요원이라고 보도했다가 검찰 소환을 받았다. 그녀는 그 말을 해준 소스를 끝내 말하지 않아 85일간 감옥살이를 했고 그 사건으로 딕 체니 부통령과 그 심복들이 기소를 당했다.

 

미국 백악관이나 한국 청와대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언론을 미워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언론관은 사뭇 다르다. 백악관은 언론의 태생적인 존재 가치를 인정해주면서 경쟁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반면 청와대는 무시하면서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요즘 청와대와 언론 간 불편한 관계에 대해 원로 언론학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언론 정책이 무슨 시스템적인 접근이나 연구결과를 근거로 해서 나온 게 아니고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혐오증, 편견, 불신 등 개인적인 생각에 의해 추진되는 것 같다 . 언론사들이 무릎을 꿇으면 결론이 나겠지만 임기를 앞둔 대통령에게 그럴 이유도 없고 또 거대 야당은 호기를 잡은 것이고…, 그러나 노 대통령도 이런 결과를 충분히 예측하면서 즐기고 있는 것 같다 ."

 

스티븐 클레이먼 등 UCLA대학 연구팀은 48년분 백악관 기자회견에 대한 조사결과 "워치 독(watch dogㆍ언론)은 경제가 나빠졌을 때 가장 심하게 짖었다"며 "특히 실업률과 이자율이 높아졌을 때 백악관 기자실이 가장 공격적이었다"는 흥미있는 자료를 내놨다. 비록 미국사례지만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다. 나라 살림을 잘하고 정치를 잘하는 게 언론을 잠잠하게 할 수 있는 첩경이다. 한ㆍ미 FTA 협상 타결 때 거의 전 언론이 노 대통령의 용단을 극찬했던 게 단적인 예다. 완력으로 재갈을 물리는 일은 남미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나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