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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감동의 정치

 

 

[아침논단] 국민은 ‘감동의 정치’에 목마르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입력 : 2007.05.30 22:51 / 수정 : 2007.05.30 23:04

    • ▲강규형 명지대 교수

     

  • “반도(半島)기질.” ‘다양한 문화의 융합적(融合的) 성격’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부정적 자아관을 심기 위해 자주 썼으며, 우리가 자기비하를 할 때 ‘엽전’이란 말과 더불어 많이 사용한 단어이다. 대체로, 대륙의 호방함도 없고 섬의 아기자기함도 없는 급한 성질과 좀스러움을 뜻하기에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다. 하지만, 요즘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우리에게 정말 반도기질이 있지나 않은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행태를 보이며 지리멸렬하는 범여권 인사들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할 가치를 못 느낀다. ‘기획탈당’이니 ‘헤쳐모여’는 뭐고, ‘사생결단’은 또 뭔가? 요즘 그들에게는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정책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간판 바꾸고 내부수리 조금 한 ‘신장개업’ 통합 깜짝쇼나 상대편 약점잡기로 유권자들을 현혹시키는 좀스럽고 얕은 수나 부리며 정권연장에만 신경 쓰는 것 같다.

    그러면, 현재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야권 대권후보들을 보자. 이명박, 그는 공허한 구호가 난무하는 한국정치에서 ‘이바구’가 아닌 행동으로 뭔가를 보여줬다. 살벌하고 품위 없기로 유명한 정치판에서 박근혜만큼 절제되고 기품 있는 사람을 봤던가?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 진영의 행태는 선이 굵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대신 너무나 예측 가능하다 못해 진부하기까지 하다. 지엽적인 문제를 놓고 으르렁대고 인신공격을 하다가 간신히 봉합된 한나라당 내분은 실망을 안겨줬다. 본인들이야 여러 이유를 대며 해명하고 싶겠지만, 국민들은 그런 구구절절한 이유에 대해 관심이 없다. 최근 양측이 경선결과 승복을 약속했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치열한 경쟁은 좋다. 그러나 한국호(號)를 제대로 이끌 정책을 놓고 더 경쟁하라. 그래서 그제부터 시작한 정책비전대회에 대한 기대가 크다.

    손학규, 나는 그에게서 한국정치의 미래를 봤었다. 대통령 후보가 되건 안 되건 “살풀이 시대를 넘어” 민주화와 산업화 세력의 화해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할 인물이라 생각했기에….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마셔온 우물에 침 뱉는 식의 성마른 탈당으로 인해 (자신의 표현대로) “독배(毒杯)를 마셨다”. 그는 탈당 회견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정작 울고 싶은 자는 아무 이해관계도 없이 마음속으로 성원하던 나 같은 사람들이었다. 아직도 그가 해야 할 역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자락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한국정치사에서 매우 불행한 일이었다.

    정치인들이 다 그렇게 호흡이 짧았던 것은 아니다. 유석(維石) 조병옥처럼 선 굵은 정치인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적어도 대통령당선 이전까지는 그랬다. 그는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정치인이었다. 대표적인 예는 아마도 김영삼 전 대통령일 것이다. 그도 결점이 많은 정치가였다. 솔직히 누가 그를 지성적이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전성기 시절 잔재주 피우지 않고 큰 가닥을 잡아나가는 행보는 경탄할 만했다. 70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아슬아슬하게 (그리고 본인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역전패 당하고도 김대중 후보를 위해 군말 없이 백의종군하던 모습을 생각해 보라. 후에 최측근이 된 김덕룡 의원은 김영삼씨가 전남 구례에서 처연하게 김대중 후보 지지연설 하는 것을 보고 ‘상도동 식구’가 될 것을 결심했다 한다. 수틀리면 경선결과 불복이나 탈당·분당을 불사하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사뭇 다르지 않은가. 만일 그랬다면 훗날의 김영삼은 없었을 것이다.

    정치란 감동을 주고 비전을 제시하는 예술이어야 한다. 감동이란 일상의 무료함을 벗어나는 의외성에서 나오고, 비전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미래지향적인 정책에서 나온다. 애석하게도 오늘날 한국정치인들에게는 그런 것이 드물다. 주어진 환경에서 동의한 룰에 따라 정정당당히 정책으로 경쟁하고 결과에 겸허히 승복하는 자세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토양은 이런 당연한 일조차 의외로 여겨질 정도로 척박하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 정도의 감동이라도 받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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