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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궁에 들어간 그녀들...

 

 

  궁에 들어간 그녀는 행복했을까?

   ’조선왕조실록-숨겨진 절반의 역사’

 

연합뉴스
입력 : 2007.05.30 06:29

  • 조선 태종 이방원과 형 방간은 어려서부터 개경에서 함께 자랐다. 나이 차도 적어 형제간의 정도 깊은 사이였다.

    그러나 정종 2년 방간이 군사를 이끌고 이방원을 공격했다. 제2차 왕자의 난이었다. 이방원은 형과 칼을 맞대고 싸워야 하는 현실을 한심하게 느꼈는지 냉정함을 잃고 눈물을 보였다.

    주저하는 이방원에게 갑옷을 입혀 나가 싸우도록 설득한 인물이 원경왕후 민씨다.

    태종은 훗날 그 때를 떠올리며 세종에게 “네 어머니의 공이 유씨의 제갑(提甲)보다 크다”고 말한다. ’유씨의 제갑’이란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기 위한 거사를 앞두고 주저하자 부인 유씨가 갑옷을 입혀주며 싸우기를 격려했다는 고사다.

    태종 스스로 원경왕후 민씨의 내조 덕분에 자신이 즉위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 셈이다.

    그러나 태종의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민씨는 궁에 들어간 뒤 배신과 악몽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외척이라면 이를 갈았던 태종은 민씨의 친정을 사실상 멸문시켰다. 태종은 한 술 더 떠 민씨의 몸종을 빈으로 삼아 민씨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자 민씨는 궁궐에서 나와 왕비가 되기 전에 살던 살림집으로 돌아간다. 큰 아들 양녕대군이 가끔 그를 찾아왔고 왕이 된 셋째 아들은 정성을 다해 효도했다.

    궁에서 나온 뒤에야 민씨는 가슴에 맺힌 한을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었다. 궁궐생활은 화려한 감옥에 불과했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신명호 씨가 펴낸 ’조선왕비실록-숨겨진 절반의 역사’(역사의아침)는 엄격한 유교 국가를 표방한 조선의 그림자에 묻힌 왕비 7명의 삶을 세심하게 그려냈다.

    태조 이성계의 부인 신덕왕후 강씨는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이었다. 그는 이성계의 경처(京妻)로 향처(鄕妻) 한씨의 자식인 이방원을 자기 자식처럼 정성껏 교육했으며 남편의 정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정몽주를 암살하는 모의에도 적극 개입했다.

    그러나 세자책봉을 둘러싸고 이방원과 갈등을 빚은 신덕왕후는 4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다. 태종은 태조가 세상을 뜨자마자 도성 안에 있던 신덕왕후의 무덤을 도성 밖으로 옮겨버렸다.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의 삶은 지독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남편과 시아버지의 갈등에 휘말린 홍씨는 남편과 아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비정한 갈림길에 섰다.

    혜경궁 홍씨에 대한 평은 양극단으로 갈리지만 그의 일생이 한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는 점에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선조의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 김씨는 19세에 51세의 왕에게 시집갔다. 나이 어린 국모는 왕실의 적자를 생산하지만 비극의 싹만 키웠을 뿐이었다. 인목왕후 김씨는 광해군에게 친정 아버지와 아들 영창대군을 잃고 10년 동안 유폐된 채 삶을 이어갔다.

    반정을 일으킨 능양군(인조)이 책봉을 청하자 인목왕후는 한동안 묵묵히 듣고 있다 쌓이고 쌓인 원한을 토해냈다.

    “반드시 광해군 부자의 머리를 먼저 가져오시오. 내가 직접 그 살점을 씹은 후에 책봉하겠소.”

    저자가 소개하는 7명의 왕비들은 하나같이 평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오히려 불운하고 비참했다. 매순간 긴장하며 살았고 후궁과 경쟁하며 자식과 친정을 위해 권력과 결탁했다. 때로는 남편과 목숨을 걸고 맞서기도 했다.

    권력의 중심지 궁궐에서 평범한 여성의 행복은 그토록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동화 속 예쁘고 착한 아가씨는 궁궐에 들어가 행복하게 살았다지만 역사에 기록된 왕비의 삶은 동화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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