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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시대의 흐름

휴대폰,그녀 이야기...

 

 

[디지털컬처 & 리빙] 휴대폰, 그녀 이야기

[디지털타임스 2007-04-27 06:02]    

"이젠 당신의 새 친구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것 같아요"

휴대폰 가입자 4100만명시대

그중 1800만명이 번호이동


 

나와 늘 함께 호흡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내 일부나 마찬가지죠. 그녀는 단 한순간도 나를 떼어놓고 다니질 않아요.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술을 먹을 때도. 여행갈 때는 더더욱 나와 함께 해요. 그녀는 혼자만의 비밀 공간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한 곳까지 나와 함께 동행해요. 그녀의 따뜻한 살갗의 느낌이 난 참 좋아요

 

내가 울 때 그녀는 따스한 손으로 날 감싸 안고 내게 입맞춤해요. 그녀의 입술이 닿을 때는 흠칫흠칫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내게 확인시켜주는 사랑의 증거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집착과도 같은 지독한 매달림인지도.

 

내겐 세상을 담을 수 있는 눈이 있어요. 가끔 그녀는 내 눈을 통해 세상을 보아요. 예전에 난 그런 프로포즈를 받은 적이 있어요. "나...당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싶어." 이런 기절할 멘트를 듣고 한순간 마음을 빼앗긴 사람도 있었죠. 내 눈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두 번째 눈인 셈이죠.

 

그녀와 가장 가까이 있다보니, 난 그녀의 모든 것을 알게 돼요.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때론 아픔이기도 해요. 그녀의 기쁨, 그녀의 한숨, 그녀의 슬픔, 그녀의 이별, 그녀의 새로운 이끌림, 그녀의 실연...그녀의 모든 감정변화와 삶의 변화를 곁에서 지켜봐야 해요.

 

때론 그녀의 입술이 내게 다가와 울음 섞인 목소리를 토해내요. 그녀의 젖은 두 뺨과 젖은 목소리가 내게 전해져 오는데, 난 그녀에게 메마르고 둔탁한 목소리를 전달해야할 때가 많거든요. 그땐,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내 볼에도 고여요.

 

그런데 요즘 내게 고민이 생겼어요. 그녀가 다른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손길이 다른 곳에 닿고,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금방이라도 그녀의 마음이 날 떠날 것만 같아요. 난 알아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 다는 것을. 같이해온 시간이 갖는 의미보다, 때론 순간적인 끌림이 훨씬 강력한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마음이 아프지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은 새로운 것에 끌리는 인간본성에 대한 이해예요. 세상엔 광속처럼 빠른 네트워크를 타고, 더 아름다운 눈을 통해 세상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그리고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더 많이 담아낼 수 있는, 더 멋지고 날씬한 친구들이 너무 많잖아요. 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졌지만, 새로운 친구들에 비하면 침침할 정도예요. 아름다운 세상의 일부만을 담아내는 데도 힘겨워요.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잖아요. 아주 오랫동안 그녀 곁에서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잖아요. 그녀의 손길로 내 몸의 색깔은 희미해졌고, 그녀의 기억들이 내 몸 안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단 말예요. 그녀가 뻗은 엄지손가락의 눌림으로, 내 몸의 뼈마디는 무디어졌어요. 그녀가 들여다보는 내 창은 상처투성이예요. 내 울음소리는 새 친구들의 것처럼, 화려하지 못해요. 하지만 난 믿어요. 그녀와 내가 만들어 놓은 추억이, 더 잘 볼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고, 더 아름다운 선율을 내는 능력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마음이 아파요. 그녀와 모든 것을 함께 한 시간을 뒤로하고, 내 운명이 내일 끝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아파요. 하지만 그녀의 손과 입술에 닿을 새로운 누군가를 위해 제 자리를 비워줘야겠죠. 임윤규기자 dt.co.kr

 

*2007년 3월말 현재 우리나라 이동전화 가입자는 4100만명을 넘는다. 유선전화 가입자가 2300만명을 약간 넘은 것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 수치다. 사람들이 통신수단으로 유선전화보다 휴대폰을 더 많이 이용한다는 의미다. 휴대폰의 통신수단 점유율은 63.5%. 휴대폰은 이제 통신수단이 아니라 각 개인의 분신과도 같다. 쓰던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서비스 회사를 옮기는 번호이동성제도 도입에 따라, 2004년부터 3년3개월 동안 서비스회사를 옮긴 가입자는 1800만명을 넘는다. 그냥 휴대폰만 바꾸는 가입자를 제외고 번호이동을 통해 새 휴대폰으로 교체한 사람이 1800명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