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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시대의 흐름

격동의 제약산업...

 

 

[격동의 제약산업] (上) 성장세 반토막…

             2010 '제약 빅뱅' 온다

[한국경제 2007-04-10 17:56]    

국내 3위 제약업체 유한양행은 제약업계 내에서 다소 이질적인 존재로 통한다.

대부분 제약사와 달리 오너가 없어 영업 홍보 마케팅 등에서 덜 공격적이고 의사결정도 느렸다.

그러나 유한양행도 최근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선진국 수준의 시설투자를 단행하고 특허 관련 전담 조직도 꾸렸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화상회의 시스템도 도입했다.

유한양행이 이 같은 변화를 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뀌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유한양행 관계자)이다.

유한양행뿐 아니라 국내 제약업계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약제비 적정화 방안,생물학적 동등성 파문 등 작년 한 해 동안 메가톤급 악재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 데다,최근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까지 타결된 까닭이다.

 

이를 두고 국내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 최고(最古) 제약업체 동화약품 창립 이후 110년간 이어졌던 '평화'가 깨졌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제약업계에서 '각종 정책 변화가 중·소 제약업체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업계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울한 시나리오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지 고잉(easy going)' 시대 지났다

 

국내 제약시장 규모는 10조원에 조금 못 미친다.

 

세계 1위 다국적 제약사인 화이자의 1년 연구개발(R&D) 투자 규모(약 8조원 내외)와 엇비슷하다.

반면 국내 제약업체 수는 무려 300여개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제약업계에는 유독 '○○년 연속 흑자' 또는 '○○년 연속 흑자 배당' 등을 자랑하는 기업들이 많다.

 

물론 이 같은 흑자 행진의 일차적 공로는 제약업계 임직원들의 노력 덕분이다.

그러나 산업 자체의 특성이 일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임진균 대우증권 연구원은 "제약산업은 정부 규제가 많지만 그걸 잘 뚫고 들어가면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조차도 그동안 국내 제약사들은 △완제 의약품 수입 △손쉬운 복제약 개발 △리베이트 등을 통한 영업 등으로 '손쉬운 장사'를 해왔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사면초가에 내몰린 제약산업

 

2007년 이후에는 제약업계에서 더 이상 '평화'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실시한 생동성 재검증에서 상당수 복제약이 오리지널 약과 약효가 동등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아 일부 복제약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또 한·미 FTA 체결과 약제비 적정화 방안 시행 등으로 복제약을 만들기가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만든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우수 의약품 제조기준(GMP)을 2010년까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향후 제약업체들은 설비투자를 대폭 늘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환경 변화로 인한 위기감은 한국경제신문이 매출 1000억원 이상의 15개 제약사 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도 잘 나타난다.

 

설문에 응한 국내 제약사 임원 절반 이상(60%)은 약제비 적정화 방안 시행,한·미 FTA 체결 등으로 국내 제약산업의 성장률이 향후 5% 이하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000년 의약분업 실시 이후 국내 제약산업이 보여온 성장률(10% 내외)의 절반에 그치는 수준이다.

 

또 응답자 전원은 최근 정책 변화로 중소 제약업체들은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으며 응답자의 80%는 향후 국내 제약시장에서 다국적 제약사의 입김이 더욱 세질 것이라는 데 공감을 나타냈다.

 

 

◆2010년 제약업계 압박 본격화

 

정부는 지난해 FTA 반대 여론이 비등할 때 "국내 산업이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 체결이 필수적"이라며 국민들을 설득했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국내 산업의 선진화'라는 FTA 체결 효과가 제약산업만큼 극명할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도 드물다.

 

신약 특허권 보호 등으로 국내 제약사들도 좋든 싫든 신약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한·미 FTA 체결이 제약산업의 체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약효'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내 제약업계와 시민단체 등은 오히려 한·미 FTA 체결이 국내 제약산업의 공멸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2004년 미국과 FTA를 체결한 호주는 현재 살아남은 자국 제약사가 10개도 안 될 정도로 경쟁력이 약해졌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으로 인한 약가 인하,한·미 FTA 발효(2009년 예상),우수 의약품 제조기준 업그레이드(2010년 완료) 등이 2010년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제약업체들에 타격을 주기 시작할 것"이라며 "이때부터 제약업계 구조 재편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