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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마을
한니발 전쟁: '자마회전'(제 8회전) '스키피오'가 제시한 강화조건을 로마 원로원과 민회는 승인하였으나 카르타고의 장로회의만 의결하면 성립될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아마 카르타고는 한니발이 돌아오면 최선의 방안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시간을 끌었던것 같다. 통상 강화교섭 동안은 휴전하는 관례에 따라 '스키피오'도 군사행동을 자제했다. 그런데 휴전기간 동안에 사고가 발생했다. 로마에서 '스키피오'에게 가는 보급선단이 태풍을 만나 수도 카르타고 해안 40키로미터 가까이 피신을 했는데 카르타고 해군이 이 보급선단을 나포하여 수도 항구로 예인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키피오'는 즉시 카르타고에 반환을 요구했다. 이러한 '스키피오'의 요구에 대하여 카르타고 장로회의가 의견이 갈라져 있을때, 한니발이..
한니발 전쟁: 제2차 포에니 전쟁 후기 (기원전 210년-기원전206년) * 스키피오의 등장 한니발 전쟁이 일어난지 9년째. '칸나'전투에서 참패 당한지 6년째인 기원전 210년. 이해의 집정관으로 선출된 두 사람 가운데 '마르겔루스'가 파견된 곳은 이탈리아 남부 '폴리아' 지방이고, '레비누스'가 파견된 지방은 시칠리아였다. 최전방에 파견된 '마르겔루스'는 한니발과 직접적인 접전은 회피하되 소규모 전투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적군의 병력감소를 꾀하고, '폴리아' 지방의 요충인 '타란토' 탈환을 준비하는 것이다. 4년동안 성공적인 군사.외교 전술로 '마케도니아' 봉쇄작전에 성공한 '리비우스'는 동부전선을 전 집정관 '갈바'에게 인계하고 시칠리아 전선으로 갔다. 시칠리아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