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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봄 14 : 봄꽃이 비바람에 흩어지듯이......

 

 

강남의 봄 14 : 봄꽃이 비바람에 흩어지듯이......

 

 

 

 

4월이 잔인한 달이라지만 꽃다운 나이의 젊은 청소년들이 아타까운 죽음을 당했다. 못한 나라 못난 어른들 때문에 삶의 시작이 되기도 전에 봄에 핀 꽃이 비바람에 흩어지듯이 이세상을 달리했다. 온 국민들이 안타까워했고 무능한 정부의 재난구조대책에 분노했다. 조문행렬이 줄을 잇고 노랑 리본이 도로옆에 개나리꽃처럼 수없이 매달렸다. 부패한 권력과 무능한 정부, 그리고 자본주의 탐욕이 부른 너무나 억울한 기막힌 어처구니 없는 참사였다.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 후진국형 정부,  통제도 질서도 없는 준구난방식의 재난구조 조직과 절차, 그리고 무책임한 태도, 기본도 양심도 없는 무책임한 관료주의와 개인주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 기업주의 얽히고 섥힌 재물에 대한 탐욕과 종교를 이용한 사기행각, 종교적 천국의 망상에 빠진 우매한 신도들, 그 헌금을 이용하여 거미줄 같은 유령기업을 만들고 대출을 받고 비자금을 만들어 자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기업주, 무리한 불법개조와 상실된 안전의식, 형식적인 안전검사기관과 뿌리깊은 부패고리, 해수부,해양경찰의 뿌리깊은 마피아조직들, 무리한 취재와 까발리기에 여념이 없는 언론 등등 이러한 모든 사회적 모순이 이번 참극을 불러왔다고 생각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자라 그 사회에 구성원으로 한 시대를 살아가게 된다. 그 시대가 고난의 시대이던 풍요의 시대이던 각자의 삶은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정복전쟁이 치열하던 고대와 중세, 근대까지 인류는 서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무리를 이루어 정복과 피정복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왔다. 그것은 민족적인 우월감, 피압박에 대한 저항으로, 이념적인 대결, 경제적인 필요, 영토 욕심, 세력 과시, 종교적인 영역 확장 및 분쟁, 고토 회복의 미명아래 자행되었던 잔인한 정복전쟁 와중에 젊은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현대에 와서 문명이 발달하면서 이념, 민족, 영토,  종교, 자원 분쟁을 제외하고 대규모 전쟁은 사라졌으나 경제개발과 문명의 발달로 풍요를 가져왔고 그 풍요가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물신주의, 탐욕주의, 인명경시풍조, 성의 혼란과 정채성 상실,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 등 자본주의 말기 현상이 드러나면서 인간들의 재물에 대한 탐욕이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촌부도 재물이 많아지면 거드럼을 피우고 머슴이 복권에 당첨되면 넓은 집, 좋은 외제차에 고급 양복을 걸치고 양아치 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며 주변 사람들에게 거드럼을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는 성공한 기업인, 권력층,  종교단체, 종교지도자를 비롯하여 재물을 착취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번 참극은 이러한 자본주이 사회의 병리현상을 여실히 보여준 증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호가 침몰하고 있다

이 나라가 이 지경에까지 온 데에는 짧은 세월에 집단화되고 경직화된 관료, 사회적 윤리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말초적이고 탐욕적인 언론, 정의와 공정, 도덕성과 멀어져 있는 법조계, 국방의 중차대함에 비해 관료적 보수주의에 빠져 개혁을 시도하지 못하는 군, 무엇보다도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확대 재생산하는 무능한 정치계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이 막강한 집단들을 어찌해야만 한단 말인가. 나라가 변하고 살만한 곳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들이 변해야 하는데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힘 없는 국민에게 이들은 어찌할 바 없는 절망일뿐이다.

 

대한민국의 관료화는 이조 시대 수준을 반복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의 마피아를 척결하라는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던 모양이다. 해수부에 마피아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으나 기획재정부에 그런 것이 있다는 말을 들은 지는 수십 년이 되었다. 명시적이건 암묵적이건 공직사회에 존재하는 사조직은 그것이 군이건 관료이건 해로운 것으로, 왜 그런지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경직화의 끝에 사조직이 생기고 그것이 권력집단화하면서 무리를 이루어 력과 유착하여 망국의 길로 끌고간 조선을 보라.

경제 관료들의 경제권력 독점화는 이제 위험스런 수준이다. 그들을 찾기 위해 고개를 많이 돌릴 필요도 없다. 그리고 관료의 독점적 권력화는 다른 분야에서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법조마피아, 금융마피아 등등 우리나라는 마피아 천국이다.

 

죽은 아이들 옆에서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는 관료적 특권의식과 인식 부족이 관료 한 사람의 경우만이 아니다. 독점에 큰 비용이 따른다는 것은 경제원리만이 아니다.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우리의 청년실업과 저성장의 작지 않은 책임이 경직화되고 권력화한 규제의 회전의자 뒤에 숨은 관료집단에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어떤 것인지는 논할 필요도 없으리라. 사회가 막혀 있을 때 중심을 잡고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언론이고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중요한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남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 취할 수밖에 없는 사적이고 선정적인 담론들이 언론의 마음과 정신은 아니지 않은가. 이번 사건의 보도에서도 왜 우리는 이처럼 답답함만을 느끼는 것일까.

이 땅의 법이 혹은 그 행사가 정의롭지 않다는 인식은 우리의 오해일까. 권력과 부를 가진 자에게 더 정의로워 보이는 법 때문에 국민의 선택이 더욱 왜곡되고 있음을 생각은 해보는 것일까. 우리 군은 점점 왜 미덥지 못한 모습에 더 익숙해져 가는 것일까.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달나라 출신들의 잘난 정치의 지배에서 슬퍼야만 할까.

나라의 핵심이 석화하고 있다. 누구도 분해하거나 치울 수 없는 거대한 바위로 굳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우리의 어린 목숨과 소중한 것들이 변방에서 소멸하고 있다. 꽃은 올해 왜 이리도 일찍 피고 어느새 지고 없는가. 없는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이상한 봄이다. 다시 살아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왠지 미안한 위로를 보낸다. 수상한 세월만이 우리의 유일한 위로가 아니길 바라면서.

 

 

 

 

'악마의 맷돌'에 걸린 초위험 사회

참사는 불의(不義)의 총합이었다. 수천, 수만의 불의가 어느 날 한 줄로 늘어선 행성들처럼 우연 같은 필연으로 하나의 시간과 공간에서 만나 대재앙을 만든다.

 

326명의 목숨을 앗아간 1970년 남영호 침몰이 그랬고,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화성 씨랜드 수련원 화재,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가 그랬다. 불과 20분 만에 192명의 사망자와 146명의 부상자를 낸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만 해도 저가낙찰과 설계 결함, 불량 내장재 사용, 화재경보 무시, 상황판단 착오 등 수많은 구조적 오류와 위기대응 실패가 순식간에 집중된 참사다. 두 달 전 무너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강당 지붕도 이 참사의 법칙이 어김없이 짓눌렀다.

참사 이후의 대응도 우린 안다. 그 어떤 참사든 눈에 보이는 희생양을 찾아 단죄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관련 법규를 뜯어고치고 소관기구를 합치거나 떼어 낸다. 온 나라가 법석을 떤다. 그러곤 싹 잊는다. 신속한 대한민국은 참사 앞이라고 다를 게 없다. 사건 발생부터 망각까지 속도전이다. 비통해하지만 성찰하지 않는다. 다짐은 있으나 결코 이행은 없다.

아직도 바다에 아이들이 잠겨 있는데 국가 개조론이 나오고, 내각 총사퇴론이 나오는 건 그래서 슬프다. 5년마다 찾아온 외침이 낳은 유전자 때문일까. 왜 우리는 늘 이렇게 둘러보지 않고, 앞으로 달리려고만 하는가.

국가 개조, 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녕 이대로는 안 된다. 개각? 존재 이유라 할 국민 안전조차 못 챙긴 정부는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낙하산을 타고 이런저런 이권의 먹이사슬에 내려앉아 온갖 탈법과 비리를 저지르며 배를 불리는, 기업형 조폭들이 형님으로 모셔야 마땅한 ‘관료 마피아’들과 그 카르텔도 반드시 색출하고 해체해야 한다. 7000t에 가까운 대형 여객선을 월급 270만원짜리 바지선장에게 맡기고는 접대비만 한 해 6000만원씩 써가며 갖은 부정과 편법으로 수천 억원의 재산을 굴리는 탐욕의 선주도 꼭 단죄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당장 때려잡고 도려내면 정말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는 참극에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까.

근대화의 그늘에서 싹튼 ‘위험사회’를 경고한 울리히 베크의 눈으로 본다면 2014년 대한민국은 초위험사회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이끌 정부와 정치권, 사법부는 진작 대중에게 신뢰를 잃었다. 대중 또한 계층과 이념, 세대, 지역으로 갈려 서로에 대한 불신을 키워가고 있다. 권위와 가치는 무너졌고, 소통은 끊겼다. 사회적 자본은 고갈됐고 편법과 반칙, 각자도생의 승리지상주의가 그 자리를 메웠다. ‘세월호’는 갖가지 패덕(悖德)이 촘촘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불신의 생태계에서 툭 삐져나온 조각배일 뿐이다. 세월호 탈출 1호 선장 또한 기본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불의를 함축한 상징이자 스스로 그런 부조리 앞에서 진작 주저앉은 또 다른 패자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세월호는 대한민국이고, 그 선장은 우리 모두의 아바타다.

세월호를 가라앉힌 범인을 쫓다 보면 그 끝엔 결국 ‘돈’이 있을 것이다. 선사는 돈 때문에 안전을 버렸고, 관리감독은 돈 때문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푸른 우리 아이들은 빛나는 4월의 하늘 아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탐욕의 제물이 됐다. 자본이 사회공동체를 파괴시킬 것이라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악마의 맷돌’에 21세기 대한민국이 짓이겨졌다.

더 울어야 한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러진 아이들의 영문 모를 주검 앞에서 우린 더 통곡해야 한다. 아이들 때문에 울고, 아이들을 못 지켜준 우리 때문에 울고, 병든 대한민국 때문에 울어야 한다.

세월호 아이들이 남겨준 우리의 마지막 기회다. 눈물 고인 지금 그 눈으로 서로를 마주보자. 아이들이 멈춰 놓은 이 시간에서만이라도 발을 멈추고 우리를 돌아보자. 그리고 묻자.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린 누구인가. 그 답을 찾은 다음 걸어도 늦지 않다. 아니, 그래야 아이들에게 물려줄 나라를 만든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우리사회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이러한 참사의 악순환은 언재라도 다시 발생할 것이다. 연안해양분야의 뿌리깊은 부패고리를 과감하게 잘라내고 정리해야한다. 재난구조의 구조적 문제점을 혁신해야 한다. 대규모 참사를 한 개의 구조업체에 맡기는 이해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하고 모든 가용자원을 통합한 통일적이고 일원화된 재난구조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소홀했던 감독당국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선박개조, 무리한 증개축을 금지시키고 선박별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여 감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안전기획부, 해수부와 해양경찰 출신의 마피아 조직을 척결하고 해양관재를 일원화하고 선박 정기검사, 감독기관을 보강시키고 제도를 혁신적으로 개혁시켜야 한다.

 

메뉴얼에 대한 숙지 상태를 강화하여 선사, 선원을 포함한 승무원의 교육을 강화하고 기준을 정하여 자격여부를 정기적으로 결정하고 처우조건을 개선시키고 규정화해야 한다. 선박 장비물자 적재기준을 강화하고 재난대비훈련을 수시 상시화시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여객선 출발전 승선인원에 대한 재난훈련, 장비점검, 훈련동참, 반복된 재난훈련 규정 숙지와 훈련 강화가 필요하다. 

 

실종자에 대한 구조를 최대한 강화하여 마무리하고 모든 피해자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위로가 병행되어야 한다. 살아남은 사람도 정신심리치료와 후속관리에 정부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빨리 선체를 인양하여 사고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고 법적으로 미약한 처벌규정을 강화하고 관련자들에 대해서 철저한 징벌을 가해야 한다. 살아남는 우리도 이제 눈물을 정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 참사로 경기가 침체하고 사회가 얼어붙어 있다. 오늘의 슬픔을 승화시켜 미래를 향한 힘찬 한 걸음을 더 나아가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