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定義)란 무엇인가?
정의 (正義; Justice)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공정하고 올바른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는 가치로, 대부분의 법이 포함하는 이념이다. 정의는 실제로는 애매모호한 개념이며, 철학 영역에서는 정의의 올바른 뜻을 확립하고자 많은 고민을 해왔다.
조리는 경험칙, 사회통념, 사회적 타당성, 신의성실, 사회질서, 형평, 정의, 이성, 법에 있어서의 체계적 조화, 법의 일반원칙 등의 이름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
안대를 두르고 저울과 칼을 든 유스티치아는 정의의 상징이다.
의미
다른 많은 도덕적인 가치, 특히 ‘선’(善)과 비교할 때 정의는 비교적 현대에 와서 더욱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치이다. 정의는 으레 평등의 실현을 골자로 하는 가치로 여겨진다. 그래서 정의의 뜻을 해설할 때에는 ‘각자에게 그의 몫을 돌려주고자 하는 항구적인 의지’(울피아누스), ‘정당화될 수 없는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추구하는 것’(존 롤스)과 같은 주장이 있었다. 예부터 전해 오는 가장 뛰어난 정의론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다음 세 가지 정의의 분류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의 본질이 평등이라고 주장하면서 정의를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로 구분했다. 평균적 정의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가치로 현대에서는 정치·사법 분야에서 강하게 적용된다. 평균적 정의는 개인 상호간의 매매와 손해 및 배상 또는 범죄와 형벌의 균형을 찾아 내려는 것이다. 둘째, 사회의 일원으로서 개인이 사회 때문에 져야 할 의무에 관한 일반적 정의이다. 셋째, 배분적 정의는 각자가 개인의 능력이나 사회에 공헌·기여한 정도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가치로 사회·경제적인 측면에 적용된다.
원리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의 창조를 위한 꾸준한 노력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본다. 인간이 최초로 군집(群集)하게 되었다고 추정되는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문명 이래로 그들은 자신의 존엄성을 향상시키고 가치 창조의 계속을 위한 중요한 방편으로 자유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 특히 그중에서도 정치사는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고 말한다손치더라도 그것은 과히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자유란 무한한 것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자유가 무제한일 경우에 인간은 오히려 자신의 운명이 파멸에 이르리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간에 계약에 의하여 자신의 자유를 필요에 따라 제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에 의견의 합치를 보았다. 그리고 계약된 범위내에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능력의 양태(樣態)를 권리라고 명명(命名)하였으며, 그 권리에 대한 대가로 의무를 부과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권리의 본질을 음미해 볼 때 그것은 수레의 한 쪽 바퀴에 불과한 것이며 다른 한 쪽의 바퀴, 즉 의무가 부가되지 않는 한 권리는 그 존재 의의를 상실하게 된다.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며 의무는 준수(遵守)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권리를 존중하고 의무를 준수함에 있어서 이를 일관하는 하나의 원리가 필요하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권리와 의무가 그 수익자 또는 수탁자의 자의(恣意)에 따라서 아무렇게나 해석될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이와 같은 해석상의 문제점이 비일비재할 경우 권리와 의무는 애초의 존재 목적을 상실하게 되는 바 여기에 권리·의무 이행에 있어서의 일관된 원리의 필요성이 내재하고 있다. 그러한 원리란 단일 어휘로 요약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숱한 원리 중에서도 권리의 존중과 의무의 준수(遵守)를 위하여 먼저 필요한 것이 곧 정의의 원리이다. 이런 정의의 원리는 오랜 역사를 통하여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것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측에서도 이를 준수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권리를 제한하는 측에서도 이 원리에 준거(準據)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인간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긴 역사에 걸쳐 전개됐으나 그것이 근대적 의미의 권리장전으로 문서화된 것은 1215년의 대헌장(Magna Carta)에서부터 비롯된다. 영국의 국왕 존(John)이 제후들의 주청(奏請)에 의해 승인한 이 대헌장은 그 전문이 인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으나 특히 그중에서도 제38조에서는 '증인 없이는 어떠한 관리라도 국민을 처단할 수 없음'을 규정하고 제39조에서는 '적법한 판결에 의하지 않고서는 자유민이 체포·감금·약탈·추방되는 일이 없음'을 밝혔으며, 제52조에서는 '적법한 판결에 의하지 않고 토지·성채(城砦)·특권·기타의 권리를 박탈당한 국민의 권익을 회복해 줄 것'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절대왕권 앞에서 무기력하게 움츠러들기만 하던 인민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최초의 문전(文典)으로서 가치를 갖는 것이다.
대헌장에 명시된 이와 같은 민권사상은 그 후에도 그치지 않고 계속 지지를 받아 1628년의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과 1689년의 권리장전(Bill of Right)에 그 근본 이념이 연면히 흐르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대헌장이나 권리청원이나 권리장전에 포함되어 있는 민권 이념이란 하나의 특색을 동일하게 갖추고 있다. 즉 권리장전 이전의 민권 투쟁이란 절대군주권의 횡포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것이 그 본질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근대적 의미에 볼 수 있는 통치권의 적극적인 후원과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1776년의 버지니아 주 권리장전(The Virginia Bill of Right)에서부터 민권 사상에 정의의 권리가 두드러지게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즉 버지니아 주 권리장전 제14조에 의하면 "정의와 중용과 절제와 질소(質素)와 덕성을 굳게 지키지 않거나 근본적인 원리에로 되돌아가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자유통치도 어떤 자유의 축복도 생성·유지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민권이나 통치권은 정의의 원리, 바꾸어 말한다면 사회 정의에 입각하지 않고서는 그 본연의 참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러한 청교도적(淸敎徒的) 정의감은 미국의 건국 이념에로 전승되어 "그러나 아무리 참는다고 하더라도 동일 목적을 추구하기 위하여 한결같이 반복되는 학대와 강탈의 계속적인 행위로 인하여 인민을 절대적 전제하에 영원히 억압하려는 계획이 명백하여질 때에는 그러한 정부를 감연히 분쇄하고 인민의 장래에 대한 안전책을 확보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이며 동시에 의무이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적 문헌과 사상을 총망라하여 근대 민권 이념의 금자탑을 이룬 것으로는 역시 1789년의 프랑스 인권 선언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로부터 민권은 천부 불가양(天賦不可讓)의 것으로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인권선언에 포함되어 있는 민권 이념은 그 후에도 발전하여 오늘날에는 국가의 권력이 소극적으로 후퇴함으로써 민권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직접 참여함으로써 민권을 북돋우는 방향으로 변질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근대적 의미로서의 민권 이념이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은 동학운동의 결실인 갑오개혁에 비롯되어 일제치하에서의 제국주의에 대한 독립투쟁인 3·1정신과 4·19, 5·18, 6·10의 반독재 민권투쟁으로 그 정신이 맥맥히 흐르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권리의 제약과 정의의 원리
존 스튜어트 밀 (J. S. Mill)이 우려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국가라고 하는 거대한 권력의 머신(machine) 앞에서 무기력한 개인의 권리행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랜 세월에 걸친 민권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되어 왔다. 권력은 그 속성 때문에 남용되기 쉬운 것이며 따라서 민권은 언제든지 불의의 유린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도전은 민권투쟁의 줄기를 이루고 있다.
애당초 국가권력이 왕권으로 표현되던 절대군주시대에서부터 이러한 움직임은 비롯되고 있다. 멀리 1215년의 대헌장 제55조에 명시되어 있는 "무릇 짐(朕)이 부정하고 불법하게 정한 벌금과 국법에 어긋나게 과한 형벌은 모조리 이를 면제한다…"는 것이 그 효시이다. 이와 같은 언약에도 불구하고 왕권에 대한 시민권은 계속 초라하기만 하였다.
이에 대한 시정책으로서 권리장전(1689)은 "또 모든 고통을 광정(匡正)하기 위하여, 또한 법률을 수정하고 공고하게 하기 위하여 의회는 자주 개설되지 않을 수 없다"(제1조 13항)고 규정함으로써 시민권을 정의롭게 보장하기 위하여서 의회의 힘을 빌리려 하였던 발전적 추세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보장에 있어서 권리 제약의 한계에 관하여는 아무런 원칙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민권 이념이 발전하면 할수록 왕권도 더욱 교묘하게 발전됨에 따라서 왕권 대 민권의 투쟁은 점차로 복잡화되고 또 다른 보장책이 필요하게 되었다.
시민계급은 이제 자연권(또는 천부인권설)으로써 이에 대항하기 시작했는데 프랑스 인권선언(1789년) 제5조 즉, "법률은 사회에 유해한 행위만을 금지하는 권리를 가진다. 법률이 금하지 아니하는 행위는 방해할 수 없다. 또 법률이 명하지 아니하는 행위는 누구에게도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그 주체적인 표현이었다. 이 조항의 의의는 이제까지 언급된 적이 없던 권리 제한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모든 권리 행사의 제약은 사회 정의에 입각하여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후의 민권 법안은 대개가 프랑스 인권선언의 이와 같은 정신을 그 모체로 삼고 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헌법 제37조 2항에서 이러한 민권 이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즉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라고 규정함으로써 권리행사의 제약에 대한 한계를 규정하였으며, 제10조에 명시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체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대헌장에서 비롯하여 현행 한국 헌법에 이르는 역사의 이론적 발전은 결국 권리 행사의 제약은 정의의 원리에 입각해야 한다는 논리로 일관되어 있음을 본다. 이와 같은 논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민권 이론에 의하면 국가 권력은 민권의 제약에 있어서 소극적 자세로써 최소한의 개입에 그쳐야 한다는 논리로부터 이제는 통치권이 적극적으로 민권에 작용하여 민권 행사를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되고 있다.
권리행사(權利行使)의 한계에 있어서의 정의의 요소
오랜 시간의 민권 투쟁을 통하여 시민계급이 그들의 기본권을 쟁취하였을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신의 권리가 비대함으로써 일어날지도 모르는 부작용의 가능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권리를 쟁취함으로써 모든 것이 잘 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즉 지나친 기본권의 행사는 지나친 기본권의 제약에 못지않게 사악(邪惡)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던 것이다. 이 때부터 권리는 의무를 수반한다는 원리에서 비롯되어 권리행사의 제약을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에서 최초로 일어났다. 그들은 청교도적 금욕주의에 입각하여 자제(自制)하지 않는 한 권리란 사회에 유해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이에 대한 시정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1776년의 버지니아 주 권리장전 제15조에서 "모든 인민은 모름지기 정의와 절제와 질소(質素)와 덕성에 입각하여 때때로 사회의 제반 원리에로 되돌아가서 처신하지 않는 한 자유정부도 자유의 혜택도 향유할 수가 없다"고 강조함으로써 민권을 스스로 제약한 최초의 시민이라는 영광된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정신 즉 시민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정의의 원리에 입각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 후의 모든 민권법안에 그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경우를 본다면 이상과 같은 민권행사의 제약 이론은 '민주적 기본질서'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란 어휘로 표현되고 있다. 즉 헌법 제8조 4항에 의하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거나 국가의 존립에 위해가 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민권의 전형적인 발표 현상인 정당도 결국은 '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정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활약하지 않는다면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음을 밝히고 있으며, 제32조 2항에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 권리의 행사는 법 이전에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에 모순되는 바가 없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권리행사를 제약하는 것은 근대 자유주의가 만개(滿開)하면서부터 발생한 권리의 지나친 행사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권리란 그 행사에 있어서 즐거움에 못지않은 의무의 부과가 있다. 바꾸어 통치권의 행사면에서도 의무의 부과에 못지않은 권리의 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관관계를 주름잡는 가장 중요한 벼리(網)는 곧 정의의 원리이다. 이 원리에 입각하지 않는 어떠한 권리행사나 제약은 사실상 입법의도에 위배되는 것이다. 루돌프 폰 예링 (Rudolf von Jhering)이 그의 명저 『권리를 위한 투쟁 (Der Kampf uns Recht)』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권리자의 주장은 권리자 자신의 인격의 주장이며, 권리의 주장은 곧 사회 공공에 대한 의무인 것이다."
법과 정의
법은 정의를 직접으로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법(私法)은 배분적 정의를 실현시키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며 공법(公法)은 일반적 정의 내지 배분적 정의를 실현시키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공정(公正)함은 정의의 단지 한 양상일 뿐, 그 전체는 아니다. 오늘날의 법에서는 공정거래법과 증권법 분야에서 두드러진 정의 개념일 뿐이다.
2010년 대한민국 잃어버린 정의를 찾아서
 |
사실 이 땅에 정의가 온전히 실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의가 승리한 적도 드물다. 옳은 자는 이기지 못했다. 강한 자가 이겼다. 그러다 보니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과 재력을 거머쥔 자들은, 강한 것이 이기는 것이고 승리하는 것이 곧 정의라는 믿음을 키워왔다. 한국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향한 갈망이 커진 것일까. 정의롭지 못한 자들이 정의의 사도로 포장하고 득세하는 것을 보면서, 2010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묻기 시작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무엇이 정의인가?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펴냄)가 ‘정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인문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30만 부를 돌파했다. 이는 단지 미국 명문 대학의 명강의를 정리한 책이라는 이름값이나 대형 출판사의 뛰어난 마케팅의 힘만은 아닐 것이다.
‘정의 열풍’ 이전부터 조짐은 있었다. ‘잃어버린 10년’을 주장하면서 집권한 세력의 퇴행의 정치를 보면서, 행동하는 양심과 사람사는 세상을 강조했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인권·평화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자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해 힘을 실어주는 이들도 늘어났다. ‘정말 이건 아닌데…’ 하고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던 이들이, 아주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온 ‘정의’라는 단어에 끌린 것은 아닐까.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의가 무엇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구체적인 사례를 실감나게 제시함으로써 정의라는 추상적 개념을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샌델 교수와 함께 정의의 딜레마를 고민하고 아리스토텔레스·벤담·칸트·롤스에 이르기까지 정치철학사를 여행하면서, 추상적인 정의라는 개념의 윤곽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한겨레21>은 그 여정을 반복할 생각은 없다. 대신 2010년 대한민국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정의가 잘 실현되고 있는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먼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노무현 정부)과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명박 정부)의 ‘정의 대담’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각각 진보개혁 진영과 보수 진영의 논객이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으로 학생운동을 했고 국정 운영에도 깊이 간여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정의의 원칙이 무너졌을 때 국가권력은 얼마나 어떻게 개입해야 하느냐, 세금과 복지·교육정책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또 정계·학계·문화계·시민사회 영역의 오피니언 리더 37명에게 ‘한국 사회에서 정의는 무엇인가’를 물었다.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것이 정의였다. 다양한 대답 속에서 정의는 완성태가 아니라 끊임 없는 지향이고 과정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바야흐로 정치권에서도 ‘정의 담론’이 득세하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허울뿐인 단어였던 ‘정의’가 비로소 본뜻 그대로 살아날 것인가. <한겨레21>이 독자 여러분을 정의의 토론장으로 초대하며 던지는 질문이다.
조혜정 기자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 |
"한국도 정의에 관한 갈증 있어" |
|
-m500379_38704.jpg) |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이병화 기자 photolbh@ | 국내 서점가에 인문서 열풍을 몰고 온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정치철학과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하버드대 역사상 최고 인기 강좌로 평가받는 ‘정의(Justice)’의 강의록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국내에서 지난 5월 24일 출간된 직후 인문서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샌델 교수는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 초청으로 19일 방한, 이날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정의로운 사회의 개념에 관해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언급했다.
"서로 다른 윤리적, 도덕적 가치가 경쟁할 수 있는 사회,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샌델 교수는 "지난 50년 동안 미국과 유럽, 한국 등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경제성장 등 경제적 문제를 우선 과제로 삼아왔으며 좋은 삶은 무엇인가 등 삶에 중요한 도덕적, 영적 문제들은 도외시했다"면서 "그러나 풍요해지면 질수록 사람들은 공허함을 느끼게 되고 존재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서도 더 깊은 논의에 대한 갈증이 있다고 본다"면서 자신의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흥분감을 안겨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30년간 샌델 교수가 하버드대생들에게 강의했던 '정의' 이야기를 담은 '정의란 무엇인가'는 실생활에서 부딪치는 도덕적 딜레마를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토론하는 내용이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부터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정치철학의 흐름에서 정의를 탐색했다.
출간된 후 3개월 여 만에 32만부(8월 12일 기준)가 판매된 이 책은 인터넷 카페 등에서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성폭행범의 화학적 거세나 형사 피의자 얼굴 공개 등을 주제로 한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지게 하기도 했다.
샌델 교수는 "한국에서 많은 이들이 내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 놀랐다"면서 "한국에서도 정의란 무엇인가, 공동선은 무엇인가 등 건전한 논의에 대한 배고픔 과 갈증 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는 "철학과 윤리 등에 관련된 질문들은 우리 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서 "내게 꿈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정의와 관련된 공공적인 논의가 촉진됐으면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오는 20일에는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예정이다.
5000명이 참석할 예정인 독자 대상 강연회에 대해 "하버드대 수업처럼 토론 방식으로 강연을 진행할 것"이라면서 "5000명이라는 많은 인원이 이 방식을 통해 정의와 관련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실험이 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하버드대에서 1980년부터 30년간 정치철학을 강의해온 샌델 교수의 저서로는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와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동녁) 등이 국내 출간됐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제1강 '옳은 일 하기'로 시작된다. 샌델 교수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을 사례로 든다.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부대 소속 미군 4명은 비밀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염소를 몰고 가는 아프간 농민 2명과 14살가량의 남자아이를 만났다. 민간인으로 보였지만 이들을 놓아주면 미군의 소재를 탈레반에게 알려줄 위험이 있었다.
고민하던 미군은 이들을 풀어줬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시간 반쯤 지나 미군 4명은 무장한 탈레반 요원들에게 포위됐고 이 중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구출 작전에 나선 미군 16명도 탈레반 손에 죽었다.
실제로 이들처럼 운명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처한 딜레마를 고민하다 보면 개인의 삶이나 공적인 영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도덕적 주장을 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샌델 교수는 말한다.
제1강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샌델 교수는 최대 행복 원칙,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대리인 고용하기, 중요한 것은 동기다 등 10개 강의를 통해 추상적이어서 어렵게만 느껴졌던 정치철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실제 이슈와 연관시켜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창신 옮김. 404쪽. 1만5000원.
|
 |
|
| 샌델 교수의 또다른 저서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는 2001년 그가 부시 행정부 시절 대통령생명윤리위원회에 참여했던 경험과 하버드대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유전자 선택 등 유전공학과 관련된 윤리적인 문제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유전공학이 초래하는 윤리적 문제를 살펴본 그는 스포츠 선수와 유전공학, 우생학, 배아줄기 세포를 둘러싼 논쟁 등으로 논의를 이끌어간다.
샌델 교수는 치료용 줄기세포 연구에는 찬성하지만 유전공학을 통한 유전자 조작, 유전공학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한다.
그는 우리의 기원이 사람 손에 닿지 않는데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자유롭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는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이론에 근거해 유전공학 등을 통한 인위적 통제가 인간 자유의 본질을 해친다고 역설한다. 강명신 옮김. 224쪽. 1만1000원.
<전혜원 기자 > | |
'정의란 무엇인가' 샌델 교수 신드롬
서점가 열풍 너머 방한 강연에 5000명 신청 폭주
학부모 교육열까지 가세… 지방서 버스대절 상경도
샌델 "한국서 정의에 대한 배고픔과 갈증 큰 듯"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정·관계, 학계 인사 등 1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정·관계, 학계 인사 등 1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주영기자 will@hk.co.kr | | |
"마이클 잭슨 공연도 아닌데…."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57)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방한 강연을 준비하던 출판사 김영사 관계자들은 독자들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해외 학자, 그것도 정치철학자의 강연에 마치 유명 팝스타의 공연처럼 참가 신청이 폭주했기 때문이다.
김영사는 지난달 26일부터 인터넷 카페를 통해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샌델 교수의 강연 참가 신청을 받았는데, 당초 1,000명 정도로 신청자를 예상했다가 하루 500명꼴로 신청이 몰리자 지난 3일 서둘러 마감했다. 신청자가 무려 5,000명에 육박한 것이다. 강연 장소도 코엑스로 잡았다가 부득이 4,700석 규모의 경희대 평화의전당으로 바꿔야 했다.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는 지금도 "뒤늦게 강연 소식을 알게 됐는데, 강연을 꼭 보고 싶다"며 초대장을 양도해 달라는 호소글이 적지않게 올라와 있다.
올해 상반기 32만여부가 판매되며 국내 출판계를 강타한 <정의란 무엇인가>가 저자의 방한으로 다시 한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0~30대 독자층의 '정의'에 대한 관심은 물론, 우리사회의 뜨거운 교육열까지 가세하고 있는 양상이다. 독톡한 토론식 강의로 유명한 샌델 교수의 강연에 중고교생과 학부모들이 대거 참가 신청을 한 것이다. 김영사 관계자는 "지방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강의를 듣겠다는 학부모들도 있고, 45인승 버스를 대절해 학원생들을 이끌고 오겠다는 학원도 있다"며 "하버드대 교수가 직접 영어로 하는 강의를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열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샌델 교수는 20일 오후 7시 열리는 강연에서 하버드대에서 20년 동안 최고 인기 강좌로 꼽힌 '정의(Justice)' 수업과 똑 같이 청중과 직접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19일 방한 기자회견에서 "5,000여명이나 되는 청중과의 토론식 강의가 유효할지, 나에게도 흥미로운 실험이다"라고 말했다. 강연 참가자들이 사전에 제출한 샌델 교수에게 던질 질문에는 '대북정책' '군 복무 가산점 제도' '연고주의' 등 우리사회 현안에서부터 자본주의 체제 문제, 사형제도 등 심도 깊은 주제까지 망라돼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초청으로 18일 밤 방한, 22일 출국할 예정인 샌델 교수는 19일부터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이날 오전 대학생들과의 조찬 간담회에 이어 기자회견을 가진 그는 오후 5시 아산정책연구원 강당에서 정ㆍ관계 인사 및 각국 대사 등 170명을 상대로 1시간30분가량 정의론에 대해 강연했다. 강연에는 한나라당 정몽준 원희룡 전여옥 의원, 민주당 신낙균 추미애 의원,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여야 정치인들이 참석해 샌델 교수의 정의론 바람이 정치권에도 불고 있음을 보여줬다.
샌델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내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며 고무된 표정이었다. 자신의 저서가 정치철학서로는 드물게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한국인들의 갈증을 반영하는 것이란 그간의 분석들처럼, 그도 "한국에서도 정의에 대한 배고픔과 갈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몇십년 간 미국과 유럽, 한국 등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가 경제성장에만 치중해서 '좋은 삶'과 '공동선' 등 삶의 중요한 문제를 도외시했는데, 풍요해지면 질수록 사람들은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며 "윤리적ㆍ도덕적 가치가 경쟁할 수 있는 환경, 즉 의견의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첫 단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