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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핵, 유태인' 13 본문
'갈등의 핵, 유태인' 13
* 유태인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1. 디아스포라 시대의 개막
시냐고그와 랍비의 등장
나라가 망한 후 유태인들은 세가지의 시련을 맞게 되었다.
�째는 망국의 아픔이요
둘째는 신앙의 구심점인 성전 등이 상실된 것이요
셋째는 유태교 내에서 기독교의 등장으로 인한 분열이다.
같은 창조주 하느님을 두고 예수가 등장하여 새로운 이단 종교가 나타난 것이다.
이 세가지 가운데 어느것 하나 유태인에게는 치명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모두가 유태민족의 운명과 직결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앞선 시기에 출현하기 시작한 랍비의 등장으로 이 세 가지 충격에서 벗어나게 되는 길을 만든다. 랍비의 출현으로 성전이 없어도 훌륭히 유태교 신앙이 유지되었고, 살아가야 할 땅이 없이도 유태인의 문화와 전통을 무난히 지켜 나갈 수가 있었으며, 기독교의 압박 속에서도 유태교를 지킬 수가 있었다.
랍비라는 인물은 이미 기원전 6백 년경 유태인들의 '바빌론 유폐'를 통해서 유태인 사회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때 유태인들은 망국과 더불어 신앙의 구심점 상실에 충격을 받고 그들의 종교와 민족 문화와 전통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종교 지도자를 양성하고 집회소를 만들어 가면서 성전 없이도 가능한 유태교 신앙 방법을 개발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랍비의 지도 아래 '토라'를 연구하고 해석하면서 상황에 따라 적응하는 새로운 신학 체계가 자리잡게 되었다. 이들의 집회소가 회당으로 알려졌고 뒷날 '시나고그'로 발전한다. 토라의 신학적 해석을 '미쉬나'라고 하며 토라 자체는 절대적인 하느님 가르침이라고 믿는다. 토라는 '씌어진 율법'이라 부르는 반면에 그 연구에서 비롯된 해석인 '미쉬나'는 '구술된 율법'이라고 부르면서 구분한다. 토라는 이미 기록되어 있어 변경이 불가능한 반면, 그 해석인 '미쉬나'는 변천하는 시대 상황과 연구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방랑하는 종족, 공부하는 종족
'디아스포라(Diaspora)'란 말은 희랍어에서 유래된 말로 '흩어진다', '산재한다'라는 뜻의 이 단어는 원래 보통명사지만 나라를 잃어버린 유태민족의 이산과 방랑을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렸다. '디아스포라' 시대 이후 유태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 단어로 '포그럼(Porgom)', '게토','홀로코스트' 겉은 것들을 들 수 있다.
'포그럼'은 러시아 및 동구권에 거주하던 유태인들에 대한 탄압.추방을 의미하는 말로, 1881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러시아는 자국 내 유태인들에게 정부단위의 조직적이며 대대적인 박해를 가했다.
'게토'는 13세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처음 생긴 이래 유럽 전 지역에 생긴 것으로 유태인 집단 거주 지역을 뜻한다. '홀로코스트'는 1941년부터 자행된 히틀러의 '유태인 집단 학살'이다.
기원 직후 '디아스포라'의 주요 지역은 로마 제국의 세력이 미치는 전역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서도 이탈리아 북부와 오늘날의 남부 독일 등지에 유태인들이 많이 정착했다. 그러다가 로마 제국이 동.서로 나뉘면서 그 일부가 비잔틴 제국 쪽으로 뻗어갔고 그 발길이 동구와 러시아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중세 시대부터는 전유럽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뒷날 이 유태인들이 러시아와 유럽 지역의 박해를 피해 신생국 아메리카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이러한 디아스포라의 기나긴 여정은 오늘날 유태인들을 여러 모로 보아 아주 단련된 민족으로 만들어졌다. 비록 수적으로는 적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일당백의 정예분자가 된 것이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피가 오늘날 유태인들의 혈맥속에 살아 있다고 할 것이다.
종족 생존을 위한 전략
유태인들의 결속을 위해 유태인 지도자들이 생활 수칙으로 만든 몇 가지 중요한 규정들이 있다.
�째, 모든 유태인들은 피를 나눈 형제들이므로누구든 유태인이 노예로 끌려가면 반드시 인근 유태인 사회에서 7년 안에 몸값을 지불하고 �아와야 한다.
둘째, 유태교 분파를 방지하기 위하여 기도문과 토라 독해를 일률화한다.
셋째, 13세를 넘어선 남자 유태인 10명 이상이 있는 유태인 거주지에는 반드시 최소 단위의 종교적인 집회를 갖도록 한다.
넷째, 13세 이상의 남자가 120명이 있는 유태인 거주지에는 독자적인 유태인 사회 센타를 만들고 유태인 생활을 관할하는 유태법(토라에 따른 해석)에 의한 규법을 유태인 거주민 전체가 준수하게 한다.
다섯째, 유태인 사회는 독자적인 세금 제도를 만들어 거주 국가로부터 재정적인 부담을 받지 않토록 한다. 그리고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예금을 비축해 둔다.
여섯째, 자녀 교육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유태인을 방치하지 않으며 유태인이면 누구나 유태인 사회에 도움을 청하고 받을 권리가 있다.
일곱째, 유태인 사회는 독자적인 유태인 자녀들의 교육기관을 만들어 유지하고 경영할 의무가 있으며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은 무료로 교육시키고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 제도를 만든다.
이러한 7가지 사회 준수 규약은 5세기 전후에는 모든 유태인 사회의 자활 규범으로 확고한 뿌리를 내렸다. 디아스포라 시대를 사는 유태인에게 유태인들의 정체성을 유지시키는 생존 전략이며 이러한 대원칙은 시대에 따른 개혁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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