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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위(魏)나라 맹장 방덕이 관우와 맞섰다. 그는 죽기를 각오해 관(棺)을 메고 싸움터에 나서 관우와 호각을 이뤘다. 관우에게 화살을 맞혀 사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결국 사로잡힌 그는 내내 무릎을 꿇지 않고 선 채로 꼿꼿이 버텼다. 관우가 물었다. “당신을 장수로 삼으려는데 왜 투항하지 않는가.” 방덕이 맞받았다. “내가 국가의 귀신이 될지언정 어찌 적의 장수가 되겠느냐.” 관우는 아쉬워하며 방덕의 목을 벴다.
▶후한서(後漢書)에 ‘질풍 앞에 유독 꼿꼿이 선 풀에서 그 굳셈을 안다(疾風知勁草)’고 했다. 조선후기에 장원급제한 문신 박세당은 당쟁을 혐오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소론계(少論系)인 그는 당대 실권을 쥔 노론(老論)에 맞서 주자학을 비판하다 유배 중에 죽었다. ‘끝내 세상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가 남긴 자신의 묘비명이다.
▶1910년 중국 망명 길에 평북 정주에 들른 단재 신채호를 오산학교 교사 이광수가 찾아갔다. 신채호는 허리를 구부리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은 채 세수를 하느라 옷이 다 젖고 있었다. “일본놈들에게 고개 숙이는 것도 분한데 세숫대야에까지 고개를 숙이겠는가.”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기개와 지조를 꺾는 것이다. 충용(忠勇)을 생명으로 아는 군인, 장수(將帥)에겐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국군 야전교범에도 “허리를 굽히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흔들어 아첨하거나 비굴해 보이는 듯한 저자세 악수법을 삼가야 한다”고 돼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나눈 모습이 화제다. 지난 2일 환영행사장에서 대부분 남쪽 수행원들은 고개를 숙이며 김 위원장과 악수했다. 김장수 장관만은 상체와 고개를 곧게 세우고 김 위원장의 눈을 주시하며 악수를 나눴다. 4일 남북정상선언 서명 직후 김 위원장이 남쪽 인사들과 악수할 때도 다시 꼿꼿한 모습을 보였다.
▶국방장관의 악수는 바로 앞에서 김만복 국정원장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두 손으로 김 위원장의 손을 움켜쥐었기에 더 돋보였다. ‘고개 숙인’ 국정원장과 ‘고개 세운’ 국방장관이 대비됐다. 국방부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군에 오래 몸담으면서 몸에 밴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국방도 5일 기자들이 묻자 “악수할 때 고개를 숙이면 이마가 부딪칠 게 아니냐”고 받아넘겼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알고 한가닥 위안 받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