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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해외여행,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시골풍경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은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포도,밀 등을 재배하던 곳으로 곡창지대였다. 시칠리아 등 식민지 지역이 넓어감에 따라 식민지로 부터 밀이 대량 수입되자 이 지방의 밀 농사는 가격이 폭락하고 농민들은 농토를 처분하고 로마시로 대거 몰려 들게 된다. 그들은 로마시에서 무직자로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자 로마는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게 된다. 군인들에게 급료를 주고 전장터로 나갔다가 승리후 돌아올 경우에는 로마가 지정한 국경선에서 군대를 해산하게 된다. 집정관들은 자신의 세력기반인 군대를 해산하면 개인자격으로 로마시에 들어올 경우에는 원로원의 반대파에게 공격당할 것을 예상하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카이사르(시이저)는 갈리아 전쟁후 로마로 복귀시 루비콘 강에서 군대를 해산해야 되나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서 군대를 대동하고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병사들이여! 나를 따르라!" 

 

해상강국이었던 카르타고 제국의 한니발 장군이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침공하여 '트리노' 기병전투,'트리비아' 보병전투 등 1.2차 전에서 로마군을 전멸시키고 아드리아해가 아닌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 토스카나 지방으로 넘어 왔다. 로마군은 아드리아해 방향과 아펜니노 산맥 서쪽 토스카나 지방 양쪽에 군대를 분산해서 배치했다. 로마군은 한니발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추적하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한니발군이 토스카나 지방에 도착했을 때, 지중해 기후의 특성상 겨울철인데도 많은 비가 내려 이 지방의 땅은 거의 늪지대로 변하였다. 수만명의 한니발군은 코끼리를 포함하여 이 늪지대에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남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때 한니발 장군이 이질에 결러 한쪽 눈을 잃게 되는 비운을 겪는다.

 

토스카나 지방을 빠져나온 한니발 장군은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로마군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자, 로마군은 한니발군을 추적하면서 동쪽 부대와 합류하기로 한 파루자 방향으로 이동중 안개 자욱한 트레메시아 호수 북쪽 구릉으로 된 분지에 먼저 도착하여 3면에서 매복하고 있던 한니발군에게 로마군 수만명이 전멸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처럼 한니발 장군은 적정수집,분석,판단을 정확히 하여 항상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연전연승하게 된다.

 

그후 남으로 이동하여 많은 로마의 동맹도시를 공격하고 약탈을 서섬치 않던 한니발군은 이탈리아 반도 중남부 '칸나'에서 로마군 식량저장고를 기습하여 군량미를 확보하게 되자, 로마군은 한니발군과 정면대결을 벌이는데, 8만5천명의 로마군이 4만명 정도의 한니발군과 대결에서 한니발 장군의 기병에 의한 양익포위로 로마군은 7만명 이상이 전멸하게 된다. 한니발 장군의 막내 동생 '마고내'가 전과보고를 하기 위하여 카르타고 원로원에 가져간 로마군의 손가락 반지가 원로원 로비에 산을 이루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