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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미래사회

노블레스 오블리주

<포럼>고소득 전문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일보 2006-10-1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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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를 의미한다. ‘귀족의 의무’라고도 번역되는 이 말은 초기 로 마시대의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공공정신에서 비롯 된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전쟁을 비롯한 공동체의 위험에 앞장서는 솔선수범이고, 다른 하 나는 부(富)의 사회적 환원이다.
 

로마시대부터 귀족층의 자발적인 전쟁참여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 였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로마가 카르타고와 벌인 16년 간의 2차 포에니전쟁중 로마의 최고 지도자 집정관이 13명이나 사망 했으며, 제1, 2차 세계대전중 영국의 고위층 자녀가 다니던 이튼 칼리지 출신들이 앞장서 전쟁에 자원하여 2000여명이 전사했다.

비율로 쳐서 귀족들의 죽음이 평민의 죽음보다 크게 앞선다.

 

부의 사회적 환원도 서구 사회에서는 하나의 전통이 됐다.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가 자신의 재산 대다수를 사회에 환원했고 , 워런 버핏을 비롯한 거부들이 경쟁적으로 뒤따르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상속세 인하를 추진하려 하자, 수많은 부 자가 집단적으로 이를 반대했던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 때문에 기득권층이나 엘리트층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공고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존경까지 받 게 된다. 이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도덕률이면서, 이와 동시에 사회를 통합하는 구심점이 된다.

 

우리 사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몹시 취약하다. 전쟁과 혼란으 로 귀족다운 상류층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 등장한 엘리트나 기득권층은 아직 이런 도덕을 정립하지 못했다. 최근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가 집단의 탈 세 의혹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득권층과 소외계층의 갈등과 반목은 매우 격렬하고, 사회적 분열은 심각한 상태다.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가 집단이 아마추어 집단에 밀려 권위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요즘의 상황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부 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중소기업가 천신일 회장이 개인 재산 110 억원을 고려대와 연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과 박물관에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인재를 양성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조건 없이 기부 했다는 기사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몇 년 전, 벤처 사 업으로 성공한 정문술 회장이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바이오, 전자 , 기계의 융합 기술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부응하는 학과를 신 설해 달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개인 재산 300억원을 쾌 척한 일과도 비슷하다. 이런 선행들은 모두 우리 사회에서는 보 기 쉽지 않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들이다.

 

도덕적 측면에서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제대로 형성 된 사회가 선진사회다. 사회가 분열됐을 때, 이런 전통의 유무는 결정적인 차이가 난다. 분열을 통합할 권위가 없는 사회는 발전 되기 어려운 위험한 사회다. 극단적으로 파편화된 우리 사회의 분열을 치료하고 국론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층이나 엘리트 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중에게 보여주는 자세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동시에 잘못을 질책하기보다는 선행을 더욱 빛나게 하는 사회적 기풍의 전환도 필요해 보인다. 선진사회와 비교해서 우리는 질투 심이 너무 강하고 다른 사람의 칭찬에 지나치게 인색하다. 노블 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더욱 부각시키고 최고의 명예와 찬사로 가문의 영광이 되게 아낌없이 보답해줄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