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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의 겨울 10 : 환상에 빠진 나라와 국민들......

두바퀴인생 2012. 2. 18. 16:37

 

 

우면산의 겨울 10 : 환상에 빠진 나라와 국민들......

 

  

 

                                                                                 구 경남아파트 뒷 길

 

어제는 영하 9도, 오늘은 영하 8도 날씨지만 자전거를 타고 5시경 새벽 운동을 출발했다. 이제는 새벽 운동을 하지 못하면 하루 종일 몸의 커니션이 좋지 않을 정도이다. 이런 추운 날씨에 새벽 운동, 그것도 바람이 쌩쌩 차가운 자전거를 탄다니......저런 미친눔...... 나도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우면산을 처음 오를때 조그만 언덕도 올라가는데 헉헉거리며 쩔쩔매던 나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나의 몸이 세속의 모진 풍파에 찌들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별로 가진 것도 없고 번 것고 없지만 하루 세 끼 따뜻한 밥이라도 가족과 같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느낀다. 자식들이 별 탈없이 잘 자라서 시집.장가를 갔고 손주까지 보았으니 이제 무얼 더 바라겠는가? 차가운 도로에서, 불의의 산사태로, 어이없는 화재로, 갑작스런 재난으로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 남은 이들에게 쓸픔을 안겨준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가?  내가 별로 없으니 손 벌리는 눔도 없고 내가 아쉬워 손 벌리지도 않는다. 남들처럼 큰 집에 고급차에 좋은 옷, 고급 식사는 아니더라도 하루 세끼 먹는 것은 입 속의 혀를 즐겁게 해 줄 뿐이지 사는 것은 다 똑 같지 않을까?

 

이런 추운 날씨에는 아파트 공터 운동 기구에는 사람들도 없다. 아마 추운 날씨라 바깥 운동을 포기한 모양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밤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또 새벽 일터로 나가는 사람,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 새벽에 어디론가 바삐 가는 사람......등으로 새벽길 서울 거리는 분주하다.

 

 

                                     

 

지난번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허구와 실제를 섞어 재미있게 진행되었지만 핵심은 세종의 한글 창제의 과정을 보여주었던 작품이다. 우리는 공기를 마시면서 살고 있지만 공기가 얼마나 생명 유지에 소중한 것인지를 잘 모른다. 마찬가지로 한글을 사용하면서 한글이 얼마나 뛰어나고 우수한 글인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글이여  IT 시대를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재 자판의 구조조가 단순하고 글 구성 작성 속도가 빨라 한글이 다른 나라 글에 비해 속도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세게에서 가장 뛰어나고 우수한 한글을 세종이 과연 어떻게 창제하였을까? 세종 대에 수많은 업적이 일궈졌지만, 당언컨데 그 모든 업적을 합한다 해도 훈민정음 창제에는 필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은 누가 만들었으며, 언제부터 연구되었는가? 이 물음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잇는 것이 학계의 현실이다. 그러나 실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에 대한 대답은 명백하다.

 

흔히 훈민정음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공동으로 만든 것으로 이해되거나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고 세종이 후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해이다. 훈민정음은 세종이 거의 홀로 만든 것이다. 아니 홀로 만들수밖에 없었다.

 

당시 훈민정음 창제 작업은 공식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런 까닭에 창제 작업에 집현전 학자들을 투입할 수 없었다. 물론 훈민정음 창제에 집현전 학자들 중 일부가 세종에게 도움을 주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종의 질문에 답하는 정도의 조력자 위치에 불과하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인지 등의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이 무슨 의도로 운학(언어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몰랐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공식적으로 공표할 때까지 그들은 왕이 스스로 문자를 만들어낼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종의 창제 작업은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세종이 홀로 비밀리에 창제 작업을 진행하지 않었다면, 적어도 실록에 그것에 관한 언급이 한 마디라도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세종이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까지 문자 창제에 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다. 임금이 공식적인 행동과 말이 모두 기록되던 그 당시에 공식적인 사안이 전혀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록에 무기 제작과 같은 극비 사항마저 기록된 것을 감안한다면 훈민정음 창제는 극비리에 진행된 국가 사업도 아니었다는 뜻이다. 즉, 훈민정음은 그야말로 세종이 홀로 극비리에 진행한 일이었던 것이다.

 

세종은 왜 이 일을 홀로 극비리에 진행하였을까? 그 답은 훈민정음 공표에 반대했던 최만리의 상소문에 잘 나타나 있다.  최만리의 상소문을 요약하면 첯째는 새 문자를 만들어 단독으로 쓴다는 말이 중국에 흘러들어가면 비난과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중화의 문자인 한자를 대신하여 훈민정음을 쓰면 스스로 오랑캐가 된다는 논리, 셋째는 설총의 이두로써 가능한 일을 굳이 훈민정음으로 대체할 필요가 없다는 것, 넷째는 창제 취지 중 하나로 훈민정음 보급이 억울한 사람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가 옳지 않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 내용의 골자는 '사대'와 '권위'였다.

 

당시 대개의 유학자들은 성리학을 삶의 지표로 삼고, 동시에 대국인 중국을 섬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이 두가지 원칙을 국가를 유지시키는 철칙으로 여겼으며, 이러한 철칙은 그들의 권력을 지키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또한 그들의 내면엔 학자 또는 선비로서 갖는 권위주의가 도사리고 있었고, 적어도 문자는 자기들만이 아는 것이고 학문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계급차별적인 사고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학문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유학과 한자였다. 그들에게 평민은 그저 이두 정도나 알고 있는 무식쟁이였고, 천민은 그것조차도 모르는 짐승같은 존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런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그 자부심의 밑천이 한자였던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평민이나 천민들이 쉽게 익힐 수 잇는 훈민정음의 등장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많은 학문 서적들이 훈민정음으로 번역되어 평민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그때까지 누리던 학문적 권위를 잃게 될 것이고, 그 연장선에서 권력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유신들의 폐쇄적인 사고는 조선 역사 500년 내내 조선 사회를 지배하였고 또 철저한 계급사회는 사회의 역동성이나 유동성을 상실하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결국 그것은 신하들이 권력을 잡고 왕을 형식적으로 떠받드는 신권주의 조정을 만들었으며 왕권을 극도로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급기야는 조신들끼리 권력을 두고 서로 죽고 죽이는 쟁탈전을 반복하는 사색당파 싸움이 계속되면서 정치적 지도력이 상실되고 말았고 비리와 부패는 심화되어 갔다. 그래서 사화가 반복되면서 수많은 인재들이 살륙을 당하면여 조선 사회의 인재풀 가동이 멈추면서 조정이 부패해지고 지방에는 유신들과 탐관들이 득세하면서 끓임없는 백성들의 수탈에 민심이 이반되고 국력과 군사력은 극도로 저하되어 갔다. 그로 인한 임진.병자 두 외침에 의한 피비린내나는 처참한 전쟁을 통해 국토와 백성들은 초토화가 되었다. 전란 이후 자성의 기회마저 상실하고 개혁의 의지도 사라지고 공리공론과 허례허식에 빠져 아까운 세월만 보내다가 외척들이 등장하면서 허약하고 무능한 왕을 옹립하여 전권을 휘두르며 탐욕을 부채질하다가 결국에는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최만리 등이 세종의 훈민정음을 거부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런 사대와 권위를 지키기 위한 것들이었다. 세종은 그런 현실을 미리 간파하고 만약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 위해 공식적인 회의를 거쳐 진행한다면, 그것은 시작도 하기 전에 엄청난 반대에 부딪힐 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만약 세종이 그 일을 강력하게 추진한다면 대신들은 중국 사신들의 힘을 빌려 세종을 협박했을 것임이 분명하였던 것이다.

 

세종이 쉬운 문자를 만들고자 했던 것은 훈민정음 창제 동기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세종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훈민정음 창제를 결심했지만, 당시 양반사회는 결코 그의 결심을 받아들일 수 없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그들은 일반 백성들이 법의 내용을 아는 것이나, 또 학정을 일삼는 관리를 고발화는 것조차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니 말이다.

 

세종은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직접, 그것도 비밀리에 창제 작업을 홀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백성들을 위한 애민정신이 바탕이 되어 있는 점이며 모든 것은 일반 백성들을 위한 것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세종의 모든 위대한 업적은 조정, 유신, 양반 사대부, 신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백성들을 위한 발명이었고 백성들을 위한 개혁이었으며 백성들을 위한 창제였다는 점은 오늘날 좌.우, 당리당략에 빠져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한국의 정치권이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나무나 많다. 

 

세종이 직접 훈민정음을 창제한 근거는 또 있다. 세종 대에 쓰던 모든 책엔 편찬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열거되어 있고, 또 당대에 만들어진 모든 과학적 산물에 대해서도 제작자와 참여 인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러나 훈민정음만 유독 "임금이 친히 언문 28글자를 만들었다."고 실록은 적고 있다(세종실록 25년 12월 30일). 훈민정음의 창제 취지와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훈민정음>에서도 '세종어제'라고 표현하고 있어 세종이 직접 훈민정음을 만들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는 단순히 세종 대에 만들어졌다는 표현이 아니다. 만약 이것이 세종 대에 만들어졌다는 표현이라면 당대에 편찬된 모든 책과 과학 기기도 같은 표현을 쓰야 한다. 그러나 '친제'와 '어제'라는 표현을 사용한 예는 훈민정음밖에 없다. 이는 훈민정음을 세종이 직접 홀로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세종은 정말 문자를 창제할 만한 언어학적 소양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세종의 언어학에 대한 깊이는 대단했다. 당대 최고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은 최만리의 훈민정음 반대 상소문을 읽고 그를 불러 "네가 운서를 아느냐?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이나 되느냐?" 며 최만리의 운학에 대해 무식함을 꼬집었다. 또 최만리의 언어 가치관에 대해 논리적인 결함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설총이 만든 이두의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는 세종이 설총의 이두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를 했음은 물론이고, 언어학 서적도 두루 섭렵했음을 의미한다.  또 최만리에게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누가 이를 바로 잡을 것이냐?" 는 말에서도 언어학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홍무정운역해>와 <동국정운>, <훈민정음> 등의 서문에 세종의 언어학적 가치관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정인지를 위시한 당대의 언어학자들이 모두 세종의 영향을 받았다는 뜻인데, 이런 사실은 세종이 당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언어학에 대한 지식이 깊었음을 확인시켜준다.

 

 

                                                                                       05시 30분경 강남대로 새벽길 사람들

 

이동통신사들의 횡포가 20년째 변함없이 여전하다. 휴대폰 판매, 사기 요금제, 담합, 고가의 기기값, 소비자 우롱, 요금 폭탄 등으로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간지가 벌써 20년이 넘는다. 그로 인해 90년대 당시 중견기업에 불과하던 선경은 노태우 정권 당시 사돈 기업이라는 특혜로 한국통신을 민영화시키면서  SK텔레콤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휴대폰 가입자 확산 정책에 의해 정부보조금을 지원할 당시 선두기업으로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2000년도 이후부터 거의 매년 약 2조원 가까운 순이익을 올리면서 한국의 3위권 대기업으로 성장하였고 휴대폰이 절대생필품이 된 지금까지도 갖가지 추악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자신들 주머니처럼 털어가고 있다. 과거 SK 그룹 회장이 조 단위 정치자금을 정치권에 뿌리면서 비호세력을 형성하여 왔고 기업을 확장시켜 왔다. 그래서 정치권을 등에 업고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이동통신시장을 주도하여 온 기업이며 재계에서 문어발식 기업 확장으로 자리메김한 기업이다. 

 

요즘  대리점에는 이제 3세대 이하 일반폰은 찿기 힘들고 저요금을 사용하는 사람들, 특히 노인, 어른들의 휴대폰은 2~3배의 요금제를 선택해야 스마트폰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잘 터지지도 않지만 산이나 밖에서 요즘처럼 영하의 추운 날씨에는 밧테리 문제로 통화가 안되거나 꺼져버린다. 또 가정에서 요금 폭탄이 연일 터지고 있다. 인증절차도 없이 유로화가 가능하도록 만든 통신사의 사악한 횡포 때문이다. 이웃 일본만 해도 유로화는 모든 인증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다. 게임에 빠진 어린이들이 부모들의 스마트폰을가지고 게임을 하며 놀면서 모르고 마구 누르다가 요금 폭탄을 맞은 가정이 한 둘이 아니다. 모두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마음대로 게임을 하도록 놔 둔 부모도 문제지만, 이동통신사가 더 나쁜 눔들이다. 

 

정유사들도 마찬가지로 유류가가 고공행진하는 가운데 매년 수조 원씩 순이익을 남기며 그들끼리 축제를 벌이고 있다. 휴대폰과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생활 필수품이 되어 버린 요즘 휘발유는 매일 소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품이 되어 버렸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자동차가 길마다 홍수를 이루고 매일 소비되는 휘발유가 엄청나다. 그래서 정유사들 끼리 가격을 담합하고 주유소를 통제하며 휘발유가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조세 수입을 이유로 세금은 내리지 않으면서 정유사를 두둔하고 일반인들의 고통스런 피해를 모른채 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자동차의 무분별한 운행을 제한시키려 하고 있다. 유사석유가 자동차에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환경에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를 제대로 분석도 하지 않고 정유사들의 로비에 세금 포탈을 이유로 불법이라며 정부에서는 유사석유 판매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세금이 문제가 아니고 자동차나 환경에 큰 문제가 아니라면 굳이 유사석유를 통제할 필요가 있을까? 원하는 사람은 사용할 수 있도록 양성화시키면 안될까?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순이익이 넘쳐나는 정유사들의 은밀한 로비에 놀아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유사석유는 철저하게 판매가 금지되고 무인주유소, 절약형 주유소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가운데 소비자들의 고통은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는 현실이다.

 

농수산물, 축산물, 과일, 채소 등 고물가는 장보기가 겁이날 정도이다. 생산지는 값이 내려도 소비자 가격은 오르거나 요지부동이다. 가격이 그대로면 내용물이 형편없이 줄엇고 첨가제도 줄엇다. 질이 그만큼 떨어진 제품을 포장은 그대로 하여 같은 가격을 받고 있다. 모두 유통구조의 문제이며 정책적인 헛점이 문제이다. 서민들의 수입은 문닫고 퇴출당하고 부도나고 사기당해서 줄어들고 있는 데 물가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백화점 명품 코너는 긴 줄을 서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속은 썩었으나 겉모양을 명품으로 바꾸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200억 원어치의 이른바 명품 잡화 세일이 시작됐다. 17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에비뉴엘 해외패션 대전'을 찾은 소비자들이 백화점 개장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코치, 에트로, 발리, 멀버리, 돌체앤가바나 등 해외 패션브랜드의 이월 상품은 30∼70% 할인 판매된다.

 

김대중 시절, 신용사회를 내세우며 신용카드를 남발하여 전국민들이 빚쟁이를 만들며 대란을 부추기더니 이제 또 다시 신용카드 대란이 일어날 모양이다. 개인부채는 날로 늘어만 가고 있으며 정부부채도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선거철을 맞아 여야 할 것 없이 복지 포플리즘이 날개를 달고 춤을 추고 있으며 국민들이 환상에 빠져들고 있다. 전세, 월세가가 치솟던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꺼질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박시장의 부동산 정책 비틀기로 개포동 주민들이 흥분하고 있다. 시유재산 침해라며 재개빌 부도 위기에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개인이나 나라가 부도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카드 수수료 차등 문제로 사회가 씨끄럽다. 대기업에는 유리하고 중소상공인들에게는 불리한 수수료, 약자들만 죽어나는 세상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에서 수수료를 강제하기 위한 법안이 통과된 모양이다. 반발이 예상되지만 그것은 카드사들의 탐욕의 횡포도 극에 달한 결과이다.

 

서기호 판사 재임용 탈락으로 법관들이 흥분한 모양이다. 법관 재임용은 권력의 하수인으로 철저한 지배통제를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고 생각된다. 검찰의 독립? 웃기는 이야기다. 검찰은 바꾸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비호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검찰의 역활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수부는 끝가지 파헤쳐지지지만 형사부는 눈치를 보고 대략 마무리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청와대, 장관이나 검찰총장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돌출행동을 일삼는 검사는 지방으로 전출되어 한직을 떠돌다가 결국 80%는 옷을 벗는 다고 한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철저한 계급사회요 피라미트 조직이기 때문이다. 역대 총장치고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기용되지 않았다. 처세와 실세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권력조직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실세와 가깝거나 법조계 연줄이 강하거나 한 20%의 잘 나가는 검사들이 80% 검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스폰서 검사 등 검찰의 부조리는 모두 이런 20% 부류에 속한 검사들이 저지르는 추악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 경찰 고위층 출신들이 대거 출마하는 모양이다. 권력을 한 번 맛 본 눔들은 그 달콤한 향기를 잊지 못한다. 또 대학 교수들이 대거 총선에 출마할 모양이다. 대학에 직을 그대로 두고 정치권에 뛰어들었다가 떨어지거나 물러나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웃기는 세상이다. 대학에서는 그동안 시간 강사로 대략 강의 시간을 떼우고....물론 유능한 인재를 정치권에 등용하는 것은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 교육의 부실을 가져오는 지금같은 제도는 재고 되어야 할 것이다.

 

요즘은 초호화 호텔 결혼식이 유행인 모양이다, 권력층이나 좀 있다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수억을 웃도는 호텔 결혼식을 하려고 야단인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경조금을 회수하고 은근히 부를 자랑하며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재물을 전하고 눈도장을 찍기 위한 결혼식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호텔 경혼식이 남는 장사단다. 유교 사회, 조선 사회의 산물인 허례허식의 극치다. 얼마전 가까운 친지들만 초대하여 초졸하게 자녀 결혼식을 치른 반기문 총장을 기억하는가? 천민과 양반의 차이, 졸부와 부자의 차이, 현실과 이상의 차이, 둔재와 천재의 차이, 후진국형과 선진국형의 차이, 형식과 내면의 차이에서 비롯될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강남의 한 어머니가 딸을 유학보내기 위해 사기를 친 모양이다. 부모의 교육열은 인정하지만 남들이 간다고 내 자식도 유학을 꼭 보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생각이 너무나 짧다. 자녀들은 어학연수보내고 유학가서 돌아와서 성공하고 취업하였던가? 라면 끓여 먹으며 외로움을 달래다가 알콜 중독에 빠지거나 바람난 기러기 아빠만 불쌍할 뿐이다.

 

재혼! 얼마전 '짝'이란 프로를 보았는데, 재혼을 바라는  남여들이 참가하여 짝을 찿는 프로그램이었다. 남자나 여자나 전부부에게 태어난 자녀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나 자녀 없는 사람을 선호하는 사람을 모두가 비선호하였다. 자신이 낳은 자녀를 자신이 키우지 않는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은 있겠지만 대부분 자신이 키울 수 없다고 거부했거나 상대가 자녀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녀를 대려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대부분 낭비벽이 심하거나 심한 바람끼, 도박, 알콜 중독, 폭언 및 폭행, 더러운 성질, 질병, 불안한 수입 등의 사람일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로 자녀 없이 재혼하여 문제가 생겨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한다면 재혼하지 않는 게 났지 않을까? 그럴바에야 차라리 자녀가 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재혼한다면 그 고마움에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한 재혼 전문가의 이야기다. 엄청난 문제와 단점이 숨겨진 사람의 한 치 속을 누가 알겠는가?   

 

 

                                                                            새벽 강남 고속터미널 전경

 

  

배우 이미숙씨가 도마위에 올랐다. 배우 고장자연씨 관련 문제와 17세 연하의 남자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기자들이 불을 지피고 있다. 그녀는 파격적인 노출신이나 베드 연기로 세간의 사람들에게 충겨을 주었던 여인으로 관상도 그렇지만 한 남자에 만족할 상도 아니다. 그러나 욕하지 마시라. 누구나 젊은 이성에 대해 한 번쯤씩은 마음을 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이제 남의 섹스 이야기는 모른체 하는 게 어떨까? 각자의 밤의 역사를 되새겨 보면 떳떳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는 고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고로 변해야 하는 이유는 도덕적. 윤리적 기준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조선 500년 내내 양반들과 유신들은 자신들은 여러 처첩을 거느리고 호의호식하면서 종눔의 여식이라도 얼굴만 반반하면 무조건 대려다가 범하였고 서자를 낳았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조정과 탐관들, 양반들에게 철저하게 수탈을 당하면서 피죽으로 연명하며 먹고 살기에 바빠 유흥과 향락, 처첩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것처럼 겨우 잘하면 동네 물방아간에서나 만나 사랑을 불태우기도 하였지만..... 그러던 나라가 이제 변하고 있다. 가부장제 폐지, 일부일처제 붕괴, 가족제도 붕괴, 독신주의, 자유연애, 성의 개방, 당당한 뷸륜, 원조교제, 혼전 임신의 자유, 매춘의 자유......

 

우리나라는 이제 바야흐로 소돔과 고모라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미국과 일본이 섹스 문화가 극도로 난잡하게 변하고 있고 그런 영향으로 우리나라도 곧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다. 스와핑, 집단섹스, 섹스레스토랑, 섹스 카페, 섹스 노래방, 섹스 단란주점, 길거리 무작위 섹스 등등...길거리를 나가보면 온 천지가 섹스 관련 전단지가 뿌려져 있고 방송, 인터넷, 스마트폰, 잡지, 신문, 오락 등에서 섹스 관련 홍보물이 범람하고 있는 세상이다. 여배우들은 벗는 게 다반사요, 축제일이나 영화제, 시사회 등에는 레드 카펫을 만들어 놓고 배우들이 한 사람씩 등장하면서 비싼 드레스에 메이크업, 보석, 패물을 주렁주렁 달고 각선미를 뽐내며 나타난다. 누가 얼마나 노출을 멋있게 많아 하는가 경쟁장처럼 스타라는 여배우들이 등장하여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다. 하의실종, 상의; 실종, 반라체 등장, 속옷 기만 등 기자들은 드레스를 평가하고 노출, 각선미를 평가한다. 공항패션도 마찬가지, 기자들의 홍보 전략에 국민들의 눈은 현란하게 돌아간다. 그런 것만 바라보다보니 이제 생각도 날개를 달게 되었고 옆에서 코골며 퍼저 잠만자는 마누라나 남편이 곱게 보일리가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접대, 불륜, 성폭행, 매춘, 키스방, 마시지방, 안마시술소, 노래방 도우미, 성인방, 혼전임신, 삼각관계, 외도가 보통 용어가 되어 버렸다. 순결은 구시대 이야기요 매춘은 현대판 생활용어가 된 지 오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 만능의 시대에 돈으로 몸을 사고 돈을 벌기 위해서 매춘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당신은 불륜과 외도를 꿈꾸어 본 적이 없는가?  그리고 그런 과거 경험은 없는가? 오늘도 토요일, 이런 추운 날씨에 아침 일찍 바리바리 음식을 싸들고 등산 베낭을 메고 종종 걸음으로 등산을 출발하는 아줌마의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인도에 뿌려진 전단지들

 

 

 

 

요즘 가상 역사 드라마 '해품달'에 대한 인기가 대단한 모양이다. 거의 40%대를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드라마 '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의 한굴창제에 대한 과정을 허구와 섞어 재미있게 그렸던 작품이며 그로 인해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 세계 각국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엇으며 정보화 시대에 한글의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며 영어, 한자, 일본어를 제치고 가장 우수한 글이라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해품달 드라마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가상 왕을 내세워 만든 역사 멜로 드라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멜로 드라마에 심취한 듯하다. 지난번 방여되었던 인기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재벌 2세와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이야기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주인공 현빈을 좋아했고 현빈은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이 재벌 2세가 자신을 선택하기를 기대하게 되었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번에는 주인공이 한 나라의 왕이다. 나라를 이끌고 있는 혈기방자한 왕이 한낱 지난 사랑의 여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환상에서 헤메고 있다. 아마 그는 신하들에게는 날카롭게 지적하고 정무를 주관하지만 세종같은 성군은 아닌 듯하다. 세종은 일과표를 보면 새벽 5시 반경에 일어나 하루 종일 신하들과 정무회의에다 독서하기에 밤을 지샐 정도였다. 아마 드라마의 왕은 나라을 토탄에 빠뜨려 백성들이 유랑민이 되어 떠돌고 탐관들이 넘처나고 조정은 비리와 부패로 썩을대로 싹은 나라였던 임진왜란.정유재란의 선조나 정묘.병자호란의 인조대가 아닌가 생각된다. 외세의 침공에 변변히 대응 한 번하지도 못하고 나라를 쑥대밭이 되었으며 치욕스런 외세개입과 비참한 항복을 하였던 무능한 선조나 인조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모두가 환상에 빠져들고 있다. 나라도 선거 환상에 빠져 있고 국민들은 로또나 연금복권, 또또복권 환상에, 재벌 2세 환상, 대박 환상에 빠져 있다. 축구, 배구, 야구에 이어 경륜까지 나라 전체 프로 스포츠가 도박과 승부조작 비리에 빠져 몰락의 길로 가고 있다. 선수들이 돈의 유혹에 빠져 승부조작을 했단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돈 있는 눔은 인간이요 돈 없는 눔은 천민에 불과한 이 세상! 조선 시대를 방물케 하고 있는 작금의 우리 사회 구조가 조선의 망국의 길로 간 것처럼  우리들이 지금 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희망이 없는 우리들은 지금 환상에 모두가 빠져 있는 듯하다. 우리들의 인생이나 삶 자체가 환상이지만 그 환상을 그리며 현실의 고난을 잊어버리려는지도 모른다.

 

 

 

아래는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글을 옮긴다. 

 

가상 역사드라마 '해품달'에 대한 농담

    

매년 새롭게 변주되지만, 멜로의 문법은 사실 뻔하다. 선남선녀의 운명적인 만남, 그걸 가로막는 ‘악의 축’들, 끔찍한 고난, 그럴수록 깊어가는 사랑의 불꽃. 그 불꽃은 아름답고 순수하다. 어찌나 순수한지 성욕 같은 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손목 한번 잡은 것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고 키스는 ‘일생일대의 대사’가 된다. 그럼 뭘 하는가? 멀리서 그리워하고 만나면 운다. 울면서 ‘시적인 고백’을 주고받는다. 마침내 둘 중 하나는 죽거나 기억을 상실한다. (이 대목에서 농담 한마디. 운명론적으로 보자면, 멜로의 주인공들은 ‘전생의 원수들’이다. 서로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데 헤어질 수도 없으니 말이다. 이거야말로 ‘복수혈전’의 최고 경지가 아닌가.)

이번에도 역시 여주인공이 죽었다 깨어났다. 그 사이에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주인공들의 신분도 엄청나게 달라졌다. 세자는 왕이 됐고, 세자빈은 무녀가 됐다. 그런데 똑같다! 동일한 공간을 배회하고,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서로를 애타게 찾고 또 찾는다. 대사마저 동일하다. 그래서 아름답다고? 그럼 이런 가정은 어떤가? 전생에 내 돈을 떼먹은 사람을 이생에 다시 만나 또 당한다면? 20년 전에 짝사랑하던 이를 중년에 다시 만나 또 죽어라고 쫓아다녀야 한다면? 사랑이 반복된다면 삶도 반복된다. 삶이 동일한 궤도를 되풀이하는 것을 윤회라고 한다.

인류의 스승들은 이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는 것을 ‘진리’요, ‘대자유’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멜로적 사랑이야말로 가장 ‘자유와 진리에 반하는’ 행위가 아닐까? 아마 앞으로 두 주인공은 서로를 죽도록 힘들게 할 것이다. 그래야 서로의 사랑을 증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비극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원천이라고. 이것이 멜로가 생을 잠식하는 원리다.

<시크릿가든>의 주인공은 재벌2세였는데, 이번엔 한술 더 떠 군주다. 군주는 재벌 회장이나 대통령과도 다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지만 대신 천하를 가슴에 품어야 한다. 첫사랑에 사무치고 내시나 호위무사 등과 은밀한 정을 나누고 대신들과는 건건사사 각을 세운다. 이건 무슨 뜻인가? 폭군의 징후다. 하긴, ‘해’를 품은 ‘달’이면 가는 곳마다 환하게 길을 밝혀줘야 할 텐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인생까지 온통 어둠침침하게 만들다니, 무슨 ‘해’와 ‘달’이 이런가. 요컨대, 사랑의 화신은 성군이 될 수 없다. 성군에겐 ‘첫사랑’은커녕 한순간의 잡념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편으론 명분과 이념을 구축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론 백성들의 생업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이 그랬듯이.

하지만 멜로는 현실을 움직이는 이 모든 원리를 간단히 잠재워 버린다. 그래서 자가당착에 빠진다. 사랑의 화신이 되려면 삶을 외면해야 한다. 그런데 삶을 외면하는 이는 결코 사랑의 화신이 될 수 없다. 그럼, 그가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열병이자 중독일 뿐이다. 겉보기엔 서로를 위해 아낌없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서로를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하여, 이런 판타지를 사랑의 척도로 삼으면 삶은 말할 수 없이 황폐해진다. 그래서 결국 서로를 파국으로 인도한다. 멜로의 판타지와 가족의 참극이 ‘나란히, 함께’ 가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냥 재미삼아 보는데 뭐 그렇게 까칠하게 구느냐고? 딴은 그렇다. 그래서 농담이다. 하지만 멜로는 전 국민의 연애 교과서다. 사람들은 멜로를 통해 사랑에 대한 감정과 신념을 훈련받는다. 그래서 그 어떤 정치적 개혁도 이 멜로적 감성을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걸 바꾸지 않는 한 삶의 근본적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만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