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예수, 그는 누구인가? 본문

카테고리 없음

예수, 그는 누구인가?

두바퀴인생 2008. 3. 15. 11:58

 

 

예수, 그는 누구인가?

예수는 과연 실존 인물이가? 그는 인간이었는가 신이었는가? 아니면 예언자 또는 선지자인가, 아니면 메시아인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게 사실인가? 그는 과연 하느님의 아들인가?하느님은 다른 방법도 많을 것인데 왜 굳이 마리아란 인간의 몸을 통해서 자신의 아들을 탄생시켰을까? 그러면 요셉과 그의 다른 자녀들은 무엇인가? 요셉과 마리아가 다윗의 후손이라면 예수는 다윗의 후손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아들인가? 예수가 태어나고 자란 역사 기록은 왜 없는가? 예수에게 하느님의 음성이 정말로 들렸는가? 그는 왜 자신은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고 이야기는 했는가? 예수는 왜 가장 극형인 십자가형을 받았는가?  재판은 공정했는가? 정말 부활을 했을 것인가? 복음서를 기록한 사가들은 예수를 왜 신격화해야만 했던가? 그리스도가 세계화된 이유는 무엇인가?

 

                      /

 

예수의 이름

 

예수(Jesus)는 고대 그리스어 이에수스(Ίησους)의 라틴어 표기이며, 이에수스는 다시 히브리어 여호수아(Jehoschua) 혹은 예슈아(Jeschua)를 고대 그리스어의 코이네로 옮긴 말이다. Jehoschua는 어원학적으로 접두어 Je- (JHVH/YHWH:Jahveh, 하느님)와 Hoshea(구원, 구세라는 뜻을 가진 호산나)를 덧붙여 이루어진 말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로 예수를 가리킬 때에는 흔히 그가 자란 고장의 이름을 덧붙여서 "나사렛(Nazareth) 예수"라 부른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의 부모의 이름을 앞에 붙여 부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요셉의 아들 예수"(루가 복음서 2, 21), 나사렛 요셉의 아들 예수(요한 복음서 1, 45) 또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마르코 복음서 6, 3, 마태오 복음서 13, 55).

 

예수에 따라 붙는 그리스도(Christus)라는 낱말은 또한 고대 그리스어의 "기름을 부은" 이라는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 한국어로는 크- 대신에 그-의 발음을 쓰고 있다)라는 말을 라틴어로 표기한 것이다. 크리스토스는 다시 히브리어로 "maschiach"에서 풀이한 것이다. "기름을 부음 받은 사람"이라는 뜻은 유대인의 종교적 예법에 따르면 드높은 사람, 다시 말해 왕이나 선지자, 제사장, 메시아에게 주어지는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메시아 예수라고 풀이될 수 있다.

 

또한 예수를 한자로 음역하면 耶蘇(어조사깨어날)라고 한다.

 

 

예수가 태어난 때와 장소

 

 

예수의 출생에 관한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 앞에서 말했다. 복음서를 쓴 복음사가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예수의 출생일과 태어난 장소를 오늘날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역사상의 예수는 기원전 약 7-4년 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우선 마태복음(2장 1-12절)에 따르면 예수가 태어난 해에 하늘에 기이하게 빛나는 별이 나타나 당시의 팔레스타인의 왕인 헤로데스 1세를 불안하게 하여 그로 하여금 갓난 아이들을 살해하도록 명을 내리게 하였다고 한다. 뒤에 '베들레헴의 별'로 알려진 이 의문의 별은 천문학상 목성 토성이 수평으로 놓일 때 일어나는 드문 현상으로서, 뒤에 천문학자 케플러에 의해 800년을 주기로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천문학적 현상을 바탕으로 하여 거꾸로 계산할 경우 예수는 아마 기원전 7년에 출생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누가복음서에는 예수가 태어났을 때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인구조사가 실시되었으며 당시 시리아 지방의 총독이 퀴리누스(Quirinus)였다고 루카는 기록하고 있다(루카 2,1-7). 퀴리누스는 서기 6년에서 서기 9년까지 총독으로 있었으며, 인구조사는 그의 부임 초기(서기 6년)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루카에 따르면 예수는 서기 6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보다 5-6개월 먼저 태어난 동갑내기이며 헤로데스 1세는 기원전 4년에 사망하였다.

 

오늘날 "서기" 혹은 "기원"이라는 낱말을 붙여 서양에서 달력의 연대를 구분하고 있는 것은 물론 예수 탄생 연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위의 모순되는 사실을 고려할 때 '서기 몇 년', '기원후 몇 년' 이라고 일컫는 것은 약간 우스운 사실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나 이 역법은 525년에 교황의 명에 따라 로마 제국의 건국 해인 기원전 754년을 기준으로 하던 이전의 바로의 달력 계산을 수도자 디오뉘시우스 엑시구우스가 수정하여 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원 1년으로 정한 것이다.

태어난 곳

신약성서 시대의 팔레스틴 지방
      신약성서 시대의 팔레스틴 지방
 

예수가 태어난 곳은 4복음서 가운데 루카 복음서 마태오 복음서에 베들레헴이라고 쓰여져 있는 반면, 마르코 복음서 요한 복음서에서는 다만 나사렛이 예수의 출신지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성탄절의 구유에서의 출생 이야기는 오로지 루카 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으며,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예수가 태어나게 된 동기를 루카는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인구조사 때문에 예수 가족은 고향 갈릴레아 지방의 나사렛이라는 마을을 떠나 팔레스타인의 남쪽 지방인 유대의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베들레헴으로 갔다고 말하고 있다. 그 까닭은 요셉 성모 마리아 다윗 왕의 후손이기 때문에 다윗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호구 등록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루카의 설명과는 약간 달리 마태오는 메시아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는 예언자 미가(5,1)와 이사야(7,14)의 예언대로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으며,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예수 가족은 헤로데스 1세의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가서 살다가 헤로데스 1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이 아니라 나사렛으로 돌아와 그 곳에서 살았다고 쓰고 있다. 그래서 가톨릭 작가인 엔도 슈사쿠는 《예수의 생애》(홍성사)에서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마태오의 주장은 예수가 예언자 미가가 예언한 그리스도임을 설명하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비평하였다.

 

* 해석

  1. 이 두 기록들은 언뜻 읽기에 서로 모순이 없는 것 같지만, 복음사가들의 편집 의도가 담겨 있다. 자세히 분석해 보면, (1) 예수를 다윗 왕의 후손으로 소개하려는 복음서를 쓴 사람들의 편집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2) 이에 따라 갈릴래아에서 지리상 완전 동떨어진 유대로 예수 가족이 이사를 한 것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이며, (3) 예수의 첫 활동 무대가 나사렛이었던 관계로 그의 고향을 다시 나사렛으로 삼은 것으로 추측된다. 사도 성 바울로나 다른 사도 그리고 교부학자들은 예수의 고향을 나사렛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학계에서는 예수의 베들레헴 탄생설을 구약성서에 맞춘 기독교의 교리로 해석하기도 한다.
  2. 마가복음 1:9에, '예수께서 갈릴리의 나사렛으로부터...'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예수의 출생지가 나사렛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요한복음 1:45에,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되어 있으나, 이것이 출생지라고 근거할 수 있는 논거가 되지 않는다.
  3. 따라서,복음서 내의 전반적인 문맥을 따라 살펴보면, 베를레헴을 '출신지'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개신교에서는 예수의 탄생지는 베들레헴이나, 나사렛에서 오래 전부터 살아왔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로 불린 것으로 보고 있다.

수의 생애

 

예수의 가계에 대한 사실은 현재 남아 있는 문서 가운데 마태오 복음서 루카 복음서에 기록되어 전하는 것이 전부이다. 두 복음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는 성모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예수의 양아버지 요셉은 목수였다고 하며, 어머니 마리아는 어떤 집안에서 자랐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루카 복음서의 기록을 참조했을 때, 그의 가계가 세례자 요한을 낳은 엘리사벳과 친족 관계였던 것은 분명하다(루카 1,36). 예수의 잉태 및 탄생과 관련된 기록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기 전에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아이를 낳을 것을 고지 받았다(루카 1,26-38) 그리고 나서, 약혼한 몸으로 동거하기 이전에 성령에 의해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신앙심이 두터운 약혼자 요셉에게 고백하자, 아마 요셉은 적지 않은 심적 갈등을 겪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요셉은 나중에 꿈에 나타난 대천사 가브리엘의 계시에 따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였고, 예수를 낳았다고 한다 (마태 1,18-25).

 

마태오 복음서 루카 복음서는 또한 예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요셉은 다윗 왕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서(1,2-17)는 요셉의 선조를 아브라함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반면, 루카 복음서(3,23-38)는 심지어 아담까지 족보를 까마득히 펼치고 있다. 두 복음서는 여기서 약간의 계보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마태오는 다윗에서 요셉까지 28대를 손꼽고 있는 반면, 루카는 요셉이 다윗의 42대 자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이 부분에 대해서 역대기 상 3:10-24를 참조). 이러한 족보의 차이는 이들이 입수한 족보들이 한 쪽은 아버지인 성 요셉의 가계도를, 다른 한쪽은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가계도였기 때문이라고 신학자들은 설명한다. 교부들은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이라고 말하였으며, 교회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마리아를 다윗의 후손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면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 된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복음서에 보면 예수는 자신이 다윗의 후손이라는 점을 부정하고 있다. 다윗의 후손이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후대 복음사가들이 예수의 아버지 요셉,어머니 마리아를 다윗의 후손들이라면서도 예수를 신의 아들로 격상시키기 위해서 안감힘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복음서의 내용으로도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닌 인간의 아들에 불과하며 신이 내린 예언자 또는 선지자에 불과하다는 결론이다. 이것이 유대교에서 예수를 평가하는 내용이다. 복음사가들이나 후대 신학자들은 예수를 신격화하는 과정에서 꿰맞춘 복음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대의 신학자들이 편리할대로 해석하고 근거없는 주장으로 예수를 신격화하려 하고 있으나 사실은 역사적 사료와 근거가 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하느님 음성, 그리고 천사 이야기도 이러한 맥락에서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많으며 결국은 하느님도 아브라함,모세, 예수, 마호메트를 포함한 많은 예언자들을 상대로 이야기했다는 결론이다. 하느님은 왜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서로 다른 약속을 하신 것인가? 유대교는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선지자나 예언자에 불과하며 만약 예수가 메시아라면 이 세상은 이미 행복한 세상으로 바뀌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나타난 이래 2천년이 지나도록 이 세상은 변함없이 고통과 악의 구렁텅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그리스도교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유대민족의 민족종교인 유대교와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였으며 이단종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신에 대한 이론이 다를뿐이기 때문이다.

 

예수에게 성 마리아 성 요셉 이외의 다른 가족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평생동정설을 성서적인 근거 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성공회 개신교에서는 그의 직접적인 형제가 있었다고 성서를 해석하고 있다. 반면, 성모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믿는 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서에 언급된 자들은 그의 사촌 동생들이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점도 하느님의 성령으로 예수를 낳은 마리아를 신성시하려는 꿰맞추려는 것으로 형제 자매가 갑자기 사촌으로 변한다. 이는 후대에 갈라진 그들 계파별 신학자들의 생각의 차이다. 쿰란의 사해문서는 공개적으로 알려진 내용이 발표되기전에 문서를 처음 입수하고 연구한 기독교 신학자들에 의해서 전체적인 내용은 철저하게 함구되어 오고 있다. 그들은 예수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신격화와 반종교적인 문제가 될 문구를 �아내어 삭제하고 감추기 위함일 것이다. 이처럼 종교 관계자들은 위선과 거짖으로 점철되어 우매한 민중을 속이는데 전문적인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왜 알려진 바가 거의 없을까? 이상하지 않는가? 그토록 위대한 메시아가 나타났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하였다면 그의 출생에서부터 성장에 대해서 엄청난 기록이 있어야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추측을 할 수 있다. 유대교의 이단으로 출발한 그리스도교는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의 이단적인 언행은 유대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했으며 핍박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예수와 관련된 사람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되면서 예수에 대한 구체적인 사료를 모세의 묘지 위치를 비밀에 부치듯이 유대인들이 모조리 그 흔적을 없앴을 수도 있다. 그래서 후대 복음 사가들이 예수와 관련된 사료나 자료를 �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발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려는 복음사가 루가의 편집의도가 들어 있는 루가의 복음서의 몇 구절이 조금이나마 예수의 어린 시절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예수가 언제 유대 율법을 그토록 공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복음서에는 예수의 나이12세 때 유월절에, 유월절을 지키려고 부모와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전례를 마치고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물렀지만 부모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하룻길을 갔다가, 방황하면서 아이를 찾았다고 한다. 예수를 찾은 지 사흘 뒤에 다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만났을 때, 예수는 유대교 랍비, 곧 율법교사들과 율법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가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겼다고 했다. 이에 부모가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묻자, 예수는 '제가 제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는 예수 자신과 온 인류의 아버지가 하느님이라는 것을 이 때의 예수가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보여 준다(루카 2,41-51)고 루카서는 기록하고 있다.

 

그 뒤에, 계속해서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는 요셉의 직업을 이어 목수 일을 배우며 자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루카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느님과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고 (루카 2,52) 간단하게 적고만 있을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예수는 어느 정도 성장한 이래 나사렛을 떠나 출가하였다. 그 이후에 당시 먼저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먼저 광야로 나가 세례를 베풀고 있었던 세례자 요한에게로 나아갔다. 예수를 본 세례자 요한은 오히려 자신이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왜 받으러 왔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를 통하여 '모든 의를 이루기를' 바랐고, 마치내 세례를 받기로 했다. 세례를 받은 뒤에 물에서 올라오자마자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왔고, 하늘에서 한 소리가 있어 말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했다(루카 3,22). 이러한 예수의 세례 장면에 대한 언급은 세례자 요한을 추종하는 종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투쟁에서의 우위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신학자들은 설명한다. 교회력을 신앙 전통으로 지키는 교회들은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 공적인 생애를 시작한 날을 '주의 세레주일'로 기념한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뒤에, 홀로 광야로 들어가, 40일 동안 금식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에, 높은 곳에 올라가 마귀에게서 세 가지의 유혹을 받았으나 이겨냈다고 한다.

 

이러고 난 뒤, 사탄은 그를 떠났고, 천사들이 나아와 그를 도왔다고 하였다. 하지만 사탄의 유혹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신약성서 학자들은 예수가 받은 유혹을 고난의 그리스도가 아닌 영광의 그리스도의 길을 가라는 유혹으로 해석한다. 다시 말해, 유혹 내용들이 모두 명예욕을 채울 수 있는 조건들이었기 때문에, 모두 사람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는 그리스도의 길을 가라는 유혹으로 해석하는 것이다라고 신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예수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했다는 것을 누가 증명한단 말인가? 사탄의 유혹도 마찬가지 석가모니와 같은 이야기다. 이처럼 모든게 현대인들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이야기를 복음서는 나열하고 있다. 이렇게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예수에 관련된 이야기를 자신들이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첨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처음 행한 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이다.(2,11)

 

당시 유대인들은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대접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 혼인 잔치에 갔다가 예수와 제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가 생겼다. 이를 안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아들인 예수에게 이에 대해 문제를 해결해 주도록 일렀고, 예수는 하인들에게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붓게 했다. 하인들이 시키는 대로 모든 물을 가져오자, 예수는 잔치를 맡은 이에게 그대로 갖다 주게 했는데,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바뀌어 있었다. 이를 본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된다(요한 2,1-11). 좀 황당한 이야기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사실로 인정하고 있다는데, 이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우둔함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초기에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모이자,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산 위에서 이들에게 설교하였다. 이를 담은 내용이 마태오 복음서 5장부터 7장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설교 내용은 마태오 복음서 5,3-12, 즉 팔복 부분으로, 어떤 사람이 행복한지에 대한 가르침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공동번역)

 

                                              산상수훈

 

이 밖에도 다소 파격적인 내용(악인을 대적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 은밀히 구제하라, 비판하지 말라)이 있다. 현재 전체 기독교에서 쓰이는 유일한 예수의 기도인 주기도문도 여기에 씌여 있다.

 

또한 예수는 청중들이 알기 쉬운 비유를 통해서 가르침을 행했다. 이를테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르코 복음서 4,3-20)는 밭을 갈지 않고 그대로 뿌리던 이스라엘 농부들의 농사 방법을 소재로 하고 있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수많은 병을 고쳤다는 기적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까닭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변증하고자 하는 복음서 편집자들의 신학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예수가 병을 고친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닌,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명한 자기 증명인 것이다.

 

초기에 시작되는 신흥종교의 대부분이 병자를 치유하는 기적을 행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교세를 확산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치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종교를 �는다. 그리고 자신의 전재산을 다바치고 맹신하게 된다. 자신의 건강은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병에 약한 동물이기에 속임수를 쓰던 자연치유가 되던지 인간들은 자신이나 가족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나고 맹신하게 되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능력에 의한 치유가 아니다는 사실이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간다.(마태 20:17-19, 루카 18:31, 마르 10:32)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는 민중들의 환대를 받는데, 이는 예수를 정치적 혁명가로 생각해서였다. 실제로 마태오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 놓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아 놓기도 하였다.'라고 하는데, 여기서 나뭇가지는 당시 유대교 종교 권력의 횡포로 소작농으로 전락한 이들이 재배하던 종려나무의 가지였다. 하지만 예수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죽음을 위해서 왔기 때문에, 이들의 인기에 편승하지 않고,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떼어 감사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죽음이 뜻하는 바를 설명하였다.(마태 26,26-28)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제1밀라노시대(1482∼1499년)에 그린 최후의 만찬

 

자신들에 대해 비판적인 예수를 위험 인물로 본 유대교의 대제사장들은 가리옷 사람 유다와 결탁하여 그를 체포하였다. 체포된 그는 유대인들의 자치기구인 의회에서의  빌라도의 재판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해서 루가 복음서는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여 풀어 주고자 하였으나, 유대인들의 압력으로 십자가형에 처해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루가 23,14-25). 하지만, 빌라도의 총독으로서의 위치를 생각해 본다면, 예수를 그의 의지에 따라 십자가형에 처한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실례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그의 십자가에는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민족 지도자를 뜻하는 '유대인의 왕(INRI)'라는 죄패가 달렸으며 예수를 처형한 세력은 로마 제국의 공권력이었다. 더구나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환호를 받을 만큼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유명 인사였으므로 빌라도에게 그는 위험 인물이었다. 다시 말해, 루가는 교회가 로마 제국와의 관계를 염두해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여,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지지했으나 마지못해 십자가형에 처한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예수는 두 명의 강도들과 함께 로마시대 가장 잔인한 처형 방법인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이대목에서도 복음서는 가식적인 표현을 서슴치 않고 있는데, 그당시 예수는 분명 로마 지배에 항거하는 민중의 힘을 은연중에 과시함으로써 치안을 담당하는 로마 총독에게 위험인물로 비쳤기때문에 유대 왕과 유대민족들과 관계없이 가차없이 체포되고 십자가형에 처해진 것이다. 예루살렘 반란이나 마사다 저항처럼 유대민족의 끈질긴 반란과 저항은 그당시 사방에서 수없이 계속되어 왔기에 로마 총독 입장에서 그대로 방치해 둘 수 없는 사안이었다.이를 로마 총독은 처형하지 않으려 했으나 배신자와 유대민족 제사장들이 그를 처형하도록 권유했으며 그래서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변질시키고 있다.

 

그래서 유대인은 오늘날까지도 하느님이 바라지도 않았지만 예수를 죽인 원흉으로 그리스도교와 철천지 원수가 되어 있다. 그리스도교가 암흑시대인 중세를 지배할 당시 수많은 유태인들이 그리스도교인들에 의해서 살육당하고 학대받았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뿌리를 같이한 종교일수록 더더욱 서로에 대한 뿌리깊은 감정이 내제되어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예수가 설파한 사랑의 종교가 될 수가 없는 대단히 이기적이며 배타적인 종교라고 볼 수 있다.

 

 

 

가상칠언은 그리스도께서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형으로 죽어갈 때 십자가 위에서 언급한 일곱 개의 말들을 모두 이르는 말이다. 본 글에서는 기독교 교파 간 균형을 위해 공동번역 한글개역판을 동시에 인용한다.

1.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
     이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 누가복음 23:34
2.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 - 누가복음 23:43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보라 네 어머니라'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요한복음 19:26-7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마태복음 27:46
5. '내가 목마르다' - '목마르다.' - 요한복음 19:28
6. '다 이루었다' - '이제 다 이루었다.' - 요한복음 19:30
7.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 누가복음 23:46 죽은 이후부터 부활하기까지

예수는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박혔다. 오후 12시에서 3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죽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 로마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고 피와 물을 흘렸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었다. 토요일은 유월절이었으며 안식일이었다.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돌이 옮겨 간것과 예수의 시체가 무덤에 없는 것을 보았다. 천사들이 나타나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말했다. 예수는 다시 살아나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났다고 한다.

 

과연 부활이 정말 이루어졌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런 증거도 없으며 과학적으로 규명되지도 않는 일이다. 다만 복음사가들이 기록으로 남겼을 뿐이다. 그래서 모든 역사 기록은 기록자의 생각과 마음이다.

 

 

예수의 가르침과 그리스도교

 

신의 아들 예수

 

예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인가? 통상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이슬람교는 3대 유일신교, 또는 계시종교로 불린다. 게시란 일반적으로 신이 나타나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그 어떤 본질적 비밀스런 의도를 특정한 인물에게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보통 이런 계시를 처음으로 경험한 인물이 계시를 가르치고 확산시키는 창시자, 즉 그 종교의 창시자가 된다.

 

모세가 좋은 예다. 신은 모세를 통해서 노예 상태의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고, 시나이 산에서 십계를 내렸다. 물론 아브라함,이삭,야곱에게도 나타났고, 모세 이후에도 수많은 예언자 앞에 나타났지만 모세 앞에 나타난 신의 행동은 어떤 의미에서 결정적으로 십계를 받았고 신과 계약을 체결한다. 이슬람교의 경우도 예언자 마호메트에게 구체적으로 나타나신 알라가 말씀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코란>이다. 이슬람에서 신의 계시는 절대적이며, <코란>은 신의 섭리 그 자체라고 한다.

 

 

복음서

 

복음서는 마태오의 복음서, 마르코의 복음서, 루가의 복음서, 요한의 복음서를 말한다. 전통적으로 저자들은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으로 여겨지는데, 모두 유대 사람이었을 것이다. 19세기까지는 역사성이 있는 것으로 곧, 예수의 행적을 보고 쓴 것으로 여겨왔으나, 20세기 초에는 역사성이 가장 있는 것으로 여겨져 온 마르코의 복음서조차 역사성이 희박하며, 성격도 그리스도교 독자들을 위한 신학문서나 설교문서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복음서는 실제로 예수의 행적을 보고 쓴 게 아니라, 예수에 대한 교리를 전하기 위해 예수 전승을 편집한 신학문서인 것이다. 이는 요한이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요한 20:31)"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복음서는 저자들이 독창적으로 쓴 게 아니라, 서로 의존하여 마태오와 루가는 첫 복음서인 마르코의 복음서를 의존하였다.

 

사도 바울로는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역사 속의 예수를 직접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개종 후, 사도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예수 전승)를 들었으며, 이를 근거로 지중해 지역에서 활발히 선교 활동을 하였다.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 교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하느님)의 외아들인 동시에, 피조되지 않고 하나님에게 나신 하나님이며, 성모 마리아에게 혈육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고 믿는다.(니케아 신경/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 그 외, 사도신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칼케돈 신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칼케돈 신경 에페소 신경에서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었다는 네스토리우스에 반대, 성모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는 호칭을 붙임으로서 예수를 하느님이자 인간으로 고백하는 등 예수를 하느님으로 만들고 있다.

 

일부 신학자들은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에 대해서 로마제국의 황제숭배에 반대해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로마제국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는데,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여 황제 숭배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유대교적인 관점에서는 신은 야훼 뿐이라는 유일신 교리에 따라서, 예수를 하느님의 외아들 또는 하느님으로 보지 않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온 예언자라고 본다.

 

이슬람교에서는 에서 예수를 이샤(عيسى)라고 하며,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예수를 신의 외아들 혹은 하느님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신은 알라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슬람교도은 예수를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고 부르며, 신이 보낸 가장 중요한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성사(聖使)로서 존경한다.

 

기타 관점에서도 예수의 실존 여부는 여러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방면에 걸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일부 연구가들은 예수는 실존 인물이 아닌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허구로 지어진 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당시 유대 사회의 혼돈상

예루살렘은 전체 유태인들의 경제.정치.사회.종교의 핵심 역활을 했다. 갈릴리 같은 먼 곳에 사는 유태인들도 대축일 등 큰 종교적인 행사에는 예루살렘 대성전을 �아 희생 제물을 바치곤 했다. 일반 사람들은 지방 회당을 중심으로 종교를 포함한 일상생활을 연결시키면서 삶을 영위했다.

 

이 시절 유태인들은 사두가이파를 제외하고는 가난했다. 전통적인 종교 행사와 성전 관리비,성년이 되면 내는 인두세, 지배자인 로마에 의한 노역과 잡다한 거주세.도로세.재산세.장례세 등 세금이 많았다.

 

당시 팔레스타인 전역에는 로마의 4개 군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런 2만 명이 넘는 주둔군의 유지비도 유태인들이 내야 했으며 해롯 대왕의 성전 신축 등 유태인 자치 기구에 내는 세금도 많았다.

 

그래서 일반 주민들은 각종 세금에 짓눌려 종교적 양반 계급인 사두가이파를 제외하면 입에 풀칠하기 위해 허덕여야 했다. 로마는 유태인 세금 징수원을 두고 유태인들의 세금을 거두고 있었는데 사사건건 크고 작은 싸움과 협박이 난무했다. 동족끼리도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이 사회 곳곳에 팽배해져 갔다.

 

이런 혼미한 사회 상황에서 예수가 나왔던 시기다. 새로운 차원의 새 진리를 설파하며 부조리한 기존층을 비판하면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특권층에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낸 것은 당연하였다. 틀림없이 예수를 예언자나 메시아로 보았고 혹은 다윗같은 위대한 행동적인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따른 무리들이 대다수였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무슨 수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유태인들의 절박한 현실이 그런 지도자를 원했기 때문이다.

 

유태인 역사 속에서 그런 식의 예언자들을 익히 보아왔다. 모세, 다윗같은 행동적인 인물들이 있었다. 기적을 일으키기까지 하는 예수를 보고 사람들은 그런 현실적인 기대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와 자기 희생의 이웃 사랑을 설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차원의 사람이 아니었다.

 

같은 뿌리의 새 적자(嫡子)

마태복은 � 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시작한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이러하다"로 되어 있다.  이렇듯 예수는 유태민족의 정통 적자 가족 계보를 갖고 태어났다. 족보만 보더라도 성골임에는 틀림없다. 

 

기독교와 유태교는 예수의 족보에서 보았듯이 뿌리가 같다. 그러나 자라난 가지는 전혀 달랐다. '원죄'에 대한 개념 차이다. 기독교에서는 금단의 선악과를 따먹은 최초의 인간이 지은 잘못을 '원죄'라고 본다. 이 원죄로 인해 사람은 죽음을 맞아하게 되고 태생적으로 씻을 수 없는 죄의 멍에를 지고 살아야 하는 죄인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죄가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대신 속죄되어 인류가 그 원죄에서 벗어나게 된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이 원죄 의식은 기독교 교리의 가장 큰 핵심이 되었다.

 

그런데 유태교에서는 이 사건을 그리 대수롭게 보지 않는다. 물론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으나 원죄 같은 것은 아니다고 본다. 유태교는 기독교처럼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엄청난 죄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런 것은 물론 큰 죄이지만 이로 인해 대대손손 원죄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9백 년 이상 자손들을 낳고 살았고 그 자손들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번성했다.

 

유태인들은 이 구약성경 창세기가 강조한 점은 "세상 여러곳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의 조상은 하나이며 어떤 인종도 한 뿌리에서 뻗어난 형제라는 뜻"으로만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느님은 그 이후에 사람이 살아야 할 법을 주셨고 그 이후부터 죄란 그 율법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라 죄를 지을 수도 짓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유태인이 보는 예수 그리스도

유태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태교 윤리와 유태교 전통생활에 아주 충실했던 출중한 랍비로 보고 있다.그리고 당시 대다수 유태인들은 예수를 위대한 예언자로 보았으며 예언자관은 로마 치하에서 유태민족을 해방시켜주는 행동주의자적인 인물상이었다. 모세 ,여호수아 등으로 이어진 유태민족의 예언자들이 그런 유형의 리더였다. 

 

억눌린 유태인 군중들이 예수를 예언자라고 따르니까 로마 통치자들이 예수를 대단히 위험한 행동적인 인물이 될 것으로 생각했고 그런 연유로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형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 이유는 군중 선동으로 로마 통치에 저항하는 모험주의적인 지도자로 비춰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음서에는 예수를 처형한 로마 총독인 '빌라도'는 온건한 인물로 부각되어 있으나 로마 기록을 보면 실제로 빌라도는 대단히 잔인한 총독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벌레 죽이듯 죽였기 때문에 로마 원로원은 그를 지역 총독으로 두었다가 민중 반란이 계속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해임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십자가형은 로마의 극형에 해당했고 이미 그때까지 유태인을 비롯한 여러 종족의 저항자들 수만 명이 십자가형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당시의 유태인들은 예수가 새 종교를 만들려고 한 사람으로는 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윗의 후손답게 충실하고 경건한 유태교도로서 지냈다는 것이다. 예수는 순수한 종교적인 열정에 가득찬 랍비로 부각되었으며 유태인 사회에 간혈적으로 출현하는 예언자로 부패한 기존 정치권의 지도자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에 대한 유태인의 견해

기독교를 창설한 '바울'의 원래 이름은 '사울'이며 유태교 바리사이파의 가물이엘이라는 랍비를 따른 유태교도였다. 그는 처음에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핍박했으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 눈이 멀고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한다. 그 이후부터 목숨을 내놓고 열렬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인이 되었고 본격적인 기독교 전도의 전위로 활약했다. 초기 기독교 성장에서 바울만한 업적을 쌓은 인물은 �기 힘들다.

 

바울에 대한 유태인들의 생각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당시 예수를 따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가 유태인들로 율법을 충실히 지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스승인 예수는 죽었지만 메시아로 다시 나타나 유태인들을 해방시켜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바울은 이들에게 토라의 율법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야만 하느님에게 갈 수 있다고 선포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울은 하느님으로 가는 길은 토라의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며 그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다.

 

바울은 토라를 철저히 지켜야만 하느님께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히려 토라는 사람들에게 있어 축복이 아니라 장애와 멍에이며, 진정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한다고 했다. 구약에 하느님은 토라를 위반하는 사람들을 벌한다고 가르쳐 야훼 하느님은 공포와 보복의 하느님이라는 인상을 일반 유태인들에게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바울의 주장은 아주 강한 설득력으로 일부 유태인 사회에 파고들었으며 그런 유태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종교로 성장한 기독교의 초기 신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아주 분명한 새로운 신앙관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바울은 유태인들 영역을 넘어 이웃 종족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전파하였다. 이 문제로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한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과  의견 대립도 있었다. 할례를 받고 유태교도로 개종한 후에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믿기도 했으나 바울이 이 장벽도 깼다.

 

어쨌던 유태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유태인들은 메시아의 내림을 믿는다. 그러나 전통적인 유태교의 메시아관에 따르면 메시아는 단 한번 오는데, 메시아가 오면 세상의 불의가 없어지고 가난.고통.불화가 사라지는 그런 평화의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냐고 반문한다. 그것이 메시아가 세상에 오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상은 어디까지나 유태교인들의 주장이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 탄생 이후 유태교와 기독교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다른 길이라기보다 기독교는 세계 종교의 대종으로 성장한 반면 유태교는 게토의 한구석에서 외롭게 존명해야만 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러나 공통점이 적지 않다.

 

우선 신약을 제외한 성서를 함께 나누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구약성경이 유태교에서는 약간의 편집 차이는 있으나 히브리 성경이다. 창세기,아브라함,이삭,야곱 등 선조들의 기복에 찬 이야기 기록을 함께 일고 감동한다. 모세의 십계명을 굳게 믿고 지킨다. 그리고 여러 예언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사람의 가치는 귀중한 것이고 하느님의 정의와 선의 근원이며 피조물인 사람은 하느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평화롭게 살아야 할 본분이 주어졌음을 두 종교가 함께 믿는다.

 

기독교도들의 주기도문도 유태교의 기르침과 다를게 없다고 한다. 결국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이 펼쳐지는 새 세상이 온다는 믿음도 같다. 일 주일 단위로 하루의 안식일을 갖는 점도 같다.기독교는 일요일, 유태교는 토요일로 요일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유태교가 하느님.하느님 말씀인 토라.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의 삼각관계를 이룬데 비해 기독교는 하느님.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백성인 크리스천의 삼각관계를 설정한다.

 

구약이 야훼 하느님과 아브라함 후손들과의 계약에 중점을 둔 반면, 신약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새로운 계약이 성립되어 기독교 교회에 속하는 크리스천이 그 계약 당사자로 되었음을 밝힌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영역이 전인류로 확산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기원 초의 박해를 승리로 이끌어내고 마침내 세계 만민의 종교로 뿌리를 내린다. 기독교는 새 아침의 떠오르는 태양이 되었고 유태교는 저물어 가는 한밤의 초생달이 되어 존립을 위해 숨어 지내야만 했다.

 

예수 이후 유태인의 역사는 박해와 억압속에서 간신히 명맥을 이어온 몰골이었다. 구세주를 죽인 '천추에 씻을 수 없는 영겁의 죄인'으로 인식되어 종교적.사회적.문화적으로 유태인들은 근세까지 2-3류 민족으로 취급되었고 떳떳이 살 땅도 없는 유랑민 신세가 되었다.

 

어떤 신앙이 가지는 아집과 독선은 이토록 같은 민족이지만 사상과 이념을 떠나 배타적이며 포용력을 상실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며 그러한 특성을 당연시 생각하고 있는 신앙인들의 실제 삶은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차 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일면을 감추고 있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