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 |||
돈을 받고 회사의 비밀을 경쟁사에 몰래 팔아넘기는 행위, 이것은 물건을 훔치는 것과 달리 큰 죄의식 없이 이뤄지기 쉽다. 그리고 한 번 해치우고 나서 시치미를 떼고 있으면 증거를 확보하거나 추적하기도 어렵다. 유출 과정도 e메일 등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알기 어렵다. 그래서 산업스파이 사건이 생기고, 또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며칠 전 조선(造船)기술을 중국으로 넘기려던 산업스파이가 구속기소됐다. 이전에는 정보·기술(IT) 등에 집중됐던 산업기밀 유출 문제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같은 기술 유출은 그 피해가 해당 기술의 당사자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경제나 안보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업기술의 부정한 유출을 방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 지난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산업 기밀의 중요성이 사회·국가적 차원에서 다뤄진다. 기술 보안을 위한 업계와 국가의 의무를 정하며 기술 유출 사범에 대해 엄격히 처벌한다.
이 법은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은 산업기술을 국가 핵심기술로 분류하고, 이런 기술을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하게 할 목적으로 유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한층 강력한 제재를 규정하고 있다.
이미 산업스파이 사건으로 문제가 된 조선기술이나 와이브로 등 정보기술의 경우,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할 것이다. 국가 핵심기술은 대부분 특허법상 발명에 해당하므로 특허권으로 보호한다. 또, 영업비밀에 해당하므로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해서도 보호받을 수 있다.
기술 개발자의 입장에서 특허권으로 보호된다면 20년의 보호기간에 강력한 독점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은 일반 공중에 통째로 알려질 뿐 아니라 특허로 보호되기 위한 요건이 충족돼야 하며 특허 요건이 심사-등록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산업기밀이 특허로 보호되면 내용이 알려지는 만큼 산업기술 유출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반면, 영업비밀로서 보호를 선호한다면, 특허의 경우와는 정반대의 장단점을 가지게 된다. 특허 요건보다 느슨한 정도에서 영업비밀에 해당되기 위한 요건은 충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비밀성이 유지되는 것이라면 시간이나 비용에 상관없이 법리상 반영구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영업비밀의 관리에 허술하여 일반 공중에 공개되면 더 이상 영업비밀로 보호 받을 수 없게 된다.
산업기술이 부당하게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제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법·제도는 이미 상당히 갖춰져 있다. 그러나 강력한 법제가 갖춰져 있다고 해서 산업기술이 유출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산업스파이 행위로 인한 보상이 위험 부담에서 오는 두려움보다 큰 경우 사건은 계속 일어난다. 법·제도는 어느 정도의 예방효과만 가질 뿐이다. 법·제도와 아울러 업계 및 국가에서 보다 철저한 유출 방지 노력이 기울여졌을 때 산업기술은 보호된다.
산업 비밀 유지를 위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조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산업기술과 관련된 인력을 대상으로 근로계약기간은 물론이고, 퇴직 후에도 산업기술이 부당하게 유출되지 않도록 비밀관리 시스템을 한층 철저하게 갖춰야 한다. 법이나 제도에 앞서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문화적인 정착이다.
산업스파이가 가져올 수 있는 국부(國富) 유출 등 부작용이 얼마나 심한지에 대해 모두가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는 다양한 홍보도 필요하다.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범죄행위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는만큼, 일상적인 경각심이 높아져야 한다.
[[박익환 / 인하대 교수·법학,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