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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이 납치된 지 31일로 13일째, 협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사이 이미 두명의 인질들이 목숨을 잃었다.
백종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을 면담하는 등 정부가 총력 외교전을 펼치고 있지만 두번째 인질 살해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수감자 석방’ 요구에 대해 한국 정부가 아프간과 미국 정부를 설득해 내지 못한다면 인질들은 더욱 힘겨운 처지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의 해법을 시나리오별로 살펴봤다.
물질적 대가 제공=정부가 초기에 관심을 보였던 접근법이다. 하지만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자신들은 ‘수감된 탈레반 동료’와 피랍 한국인들의 교환을 원할 뿐이지, 돈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 율법은 사람 목숨을 돈과 연계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에 비춰 이 방법만으로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정부가 가즈니주 지역 원로 및 아프간 정부의 협조를 끌어내는 데 개발 원조 확대 제공 방안 등이 도움이 될 수는 있다.
인질-포로 교환=탈레반 쪽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해법이다. 탈레반과 ‘내전’ 중인 아프간 정부 쪽은 “헌법과 국익에 어긋나는 협상을 할 뜻이 없다”며 공식적으로 이 방안에 반대하고 있지만,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려면 어떤 형식으로든 ‘교환’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정부가 대통령 특사까지 보내 아프간 정부의 협조를 얻으려고 애쓰는 것도 이런 대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런 방식에 원칙적 의견 접근을 보더라도 탈레반 쪽은 ‘단계적 교환’을, 정부는 ‘일괄 타결’을 선호하고 있어 쉽게 타결에 이르기 어려울 전망이다. 탈레반 쪽은 최근 석방 요구 수감자 명단을 상대적으로 교섭이 가능한 여성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수감자 석방 성과를 중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아프간과 미국 정부의 반응이 변수였지만, 현재까지 한국은 이에 대한 ‘협조’를 얻어내지 못했고 결국 두번째 인질 피살 소식이 전해지고 말았다.
군사작전=무니르 망갈 아프간 내무차관 등은 지난 주말 대화에 실패할 경우 무력 사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정부는 ‘한국 정부의 동의 없는 군사작전 불가’ 방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두세 명 단위로 분산 억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피랍 한국인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가능성이 낮지만, 탈레반 쪽이 피랍자를 더 살해하는 등 다른 해법이 없다고 판단되면, 강행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교착 국면 속 사태 장기화=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장기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통상 납치 사건의 해결에는 5주 남짓 걸린 전례를 고려해, 정부도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는 분위기다. 이미 두명의 인질이 살해됐고, 탈레반의 인질 추가 살해를 막는 것이 최대 과제다. 탈레반과 아프간 및 한국 정부가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아프간 현지 민심을 얻는 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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