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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사 1410 : 로마 제국 1116 ( 율리아누스 황제 18 )

로마의 역사 1410 : 로마 제국 1116 ( 율리아누스 황제 18 )

 


 

율리아누스 황제 18

(제위 : 서기 361 ~ 363 )

기독교에 대한 선전포고 (계속)

<데오도시우스 법전>에 기록되지 않은 법률 가운데 기독교를 믿는 교사의 교직 추방령이 있었다. 이런 정책을 결정하고 실시해온 이유를 율리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교사의 임무는 학생을 기르치는 데 있다. 그때 사용되는 교과서는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쓰인 작품들이다. 그 저자인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은 자기네 신들을 경배하고 숭배했다. 그들의 저작은 그 정신의 결정체다. 한편 기독교는 이런 신들을 악마라고 단정한다. 그렇게 믿고 있는 기독교도들에게 신들이 없으면 작품을 창조할 수 없는 그리스.로마 사람들의 정신의 진수를 어떻게 설명하고 가르칠수 있겠는가."

제우스나 포세이돈, 아폴론이나 아테나는 사교의 신이라고 가르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율리아누스는 이런 말도 한 모양이다.

"기독교를 믿는 교사는 교회에 가서 가르치면 된다. 그들이 믿고 있는 성서를 교재로 사용해서."

현대의 로마사 전문가로 울리아누스의 이 주장을 "논리적으로는 상당히 옳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열성적인 기독교도인 로마사 학자들은 로마 정신의 진수에 대해 다가갈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기독교를 믿는 교사의 교직 추방령에 대한 반대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일어났다. 기독교도 교사가 아니라 이교도 교사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자녀교육에 열성인 것은 기독교도인데, 기독교도 교사를 추방하면 그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게 되어 수업료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이 반대하는 이유였다. 당시에는 사립학교가 일반적이어서 , 교사에게는 학부모가 다달이 내는 수업료가 중요했다. 그런데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으로 밝혀진다. 기독교도인 부모들은 기독교도 교사가 없어진 뒤에도 여전히 자녀를 학교에 보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의 교육은 읽기, 쓰기, 셈의 초등교육을 마친 뒤에는 오늘날에도 '리버럴 아츠'라는 교양과목 교육이 시작된다. 나이로 말하면 8~9세부터 16~17세까지의 기간에 해당한다. 그동안 배우는 것을 과목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 올바르고 품위있는 언어 표현을 습득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문법.

* 언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적절히 표현하는 기능을 배우는 수사학.

*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경우에 필요한 논리성을 습득하기 위한 변증학.

* 수학, 기하학, 역사, 지리.

이런 과목을 배우는 데 사용되는 교재는 대부분 선인들이 남긴 저작이었다. 기원전 8세기로 알려져 있는 호메로스에서 시작하여 서기 2세기의 타키투스에 이르는 저작은 이 시대에도 이미 고전이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그런 저작이 교재로 사용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작품의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기독교도 중에서도 중류층이나 상류층 사람들은 대부분 신흥계급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녀 교육에 열심이었고, 정부 고관이나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려면 교사가 이교도든 아니든 관계없이 자녀를 이런 사립학교에 계속 맡겼던 것이다.

여기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기독교도 교사들도 반격을 시도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나 그리스 비극이나 소크라테스의 대화에 등장하는 신이나 인간을 성서나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람으로 바꾼 교재를 만드려고 시도한 것이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실패였다. 현세적인 그리스.로마의 신들과 인간을 엄격한 기독교의 신과 그 가르침에 충실한 인간으로 바꿀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이교도는 자기가 믿지 않더라도 남이 믿는 신이라면 인정해주는 다신교도들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기독교도라는 이유만으로 교사를 추방하는 것 자체가 '관용' 정신에 벗어난다. 기독교도 학생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율리아누스의 이 정책에 계속 반대한 이교도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군인이자 역사학자인 암미아누스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하지만 율리아누스는 이교도들의 그런 반대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교도 교사만 가르치게 되면 기독교도를 부모로 둔 아이들도 세상에는 기독교적인 사고방식만이 아니라 다른 사고방식도 있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