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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사 1404 : 로마 제국 1110 ( 율리아누스 황제 12 )

로마의 역사 1404 : 로마 제국 1110 ( 율리아누스 황제 12 )

 


 

율리아누스 황제 12

(제위 : 서기 361 ~ 363 )

구조조정 대작전

 

율리아누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들어가자마자 황궁을 개혁한 것은 참으로 상징적인 일화를 발단으로 삼고 있었다.

율리아누스가 머리를 자르기 위해 황궁의 이발사를 불러오라고 명령했을 때의 일이다. 율리아누스가 방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 나타난 것은 지체 높은 고관으로 여겨질 만큼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율리아누스는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면서, 내가 필요한 것은 이발사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보다 다욱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오면서 자기가 이발사라고 대답했다. 율리아누스가 그러면 '저 사람들은 누구냐'고 묻자 이발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한테 딸린 조수들'이라고 대답했다.

관료 기구는 그들이 자기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에 내버려두기만 해도 비대해진다. 다른 세계와는 달리 관료 세계는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 자기 보존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동류, 즉 기생충을 늘리는 방법으로 실현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자기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로 끝나게 되기 마련이다. 관료 기구의 개혁은 관료 기구를 '강제하고 복종시키는 힘을 가진 권력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율리아누스는 황궁 개혁을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발사만이 아니라 황궁 모든 분야를 축소할 작정이었다. 의상 담당, 요리사, 마부도 어이없을 만큼 직무가 세분되어 있었고, 분야별로 제각기 계급 조직을 형성하여 거기에 많은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로마 제국의 후기의 비대해진 황궁 실태가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앞의 이발사를 예로 들면, 가치가 떨어질 염려가 없는 금화로 지급되는 연봉이 보장되어 있는데다 황궁에 근무하는 날마다 일당이 가산되고, 게다가 20명의 조수를 유지하는 경비도 지급되고, 말 20마리를 유지하는 데도 필요한 경비도 교통 보조금으로 지급된다. 복잡해진 황궁 내부의 직무의 모든 분야가 이런 식이었다. 게다가 직무가 무엇인지 확실치도 않은데 매사에 참견하는 환관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환관 집단도 완전한 계급 조직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 우두머리는 갈루스를 사형으로 몰아넣고 율리아누스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이의를 제기해온, 콘스탄티우스 황제의 최측근인 에우세비우스였다. 에우세비우스가 꼭대기에 서서 황궁을 좌지우지해온 환관 집단을 키우는 데 필요한 1년 경비가 갈리아에서 야만족을 격퇴하기 위해 피를 흘리고 있는 병사들의 연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는것을 알았을 때 율리아누스는 아연실색하면서 격분했다.

환관 집단은 모두 해임되어 황궁에서 쫓겨났다. 또한 황궁 직무의 모든 분야는 꼭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으로 축소되었다. 이발사도 직장은 잃지 않았지만 조수 한 사람만 남고 모두 잃었다. 넓은 황궁이 시원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로마 제국 황제의 직무 수행 기지라 해도 좋은 황궁이 이렇게 복잡해지고 비대해진 것은 지배자인 황제와 피지배자인 일반 시민 사이에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부터였다. 이 황제가 시작한 로마 황제의 오리엔트화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에 더욱 강화되었고, 그 아들인 콘스탄티우스 황제 시대에도 계승되었다. 로마 제국의 오리엔트화 역사는 그동안 7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렇다면 기득권층은 무려 77년 동안이나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런 기득권층이 호락호락 물러날 리가 없었다. 황궁이 시원해졌다며 웃는 것은 황궁과 관계없는 일반 시민들이 하는 이야기이고, 황궁 관계자들은 대부분 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