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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로마의 역사 1388 : 로마 제국 1093 ( 콘스탄티우스 황제 41 )

로마의 역사 1388 : 로마 제국 1093 ( 콘스탄티우스 황제 41 )

 

 

 

콘스탄티우스 황제 41

(제위 : 서기 337 ~ 361 )

로마에서 거행된 마지막 개선식 (계속)

도심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지나 행렬은 포로 로마노로 들어갔다. 콘스탄티우스도 과거의 로마가 구가했던 압도적인 힘과 영광의 기념비로 가득 메워진 포룸을 보고는 말이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가 시선을 어디로 돌려도, 이 포로 로마노에서는 로마 역사를 장식해온 수많은 업적을 기념하는 건물과 부딪치게 된다. 그것을 보는 사람은 그 업적이 이루어진 시대를 회고하며 짓눌리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한 모퉁이에 서 있는 원로원 회의장에서 콘스탄티우스는 원로원 의원과 유력자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회의장 밖의 연단에서는 몰려든 민중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역대 황제들의 거처였던 팔라티노 언덕에서도 사람들은 그를 환호로 맞이했다. 평소에는 무표정한 콘스탄티우스의 얼굴도, 갈망하고 있었던 행복감에 도취된 기쁨으로 조금은 느슨해진 것 같았다.

그후 이어진 날들도 역대 황제들을 본받아 경기대회를 주최하거나 시민들이 기뻐할 만한 정책을 몇 가지 발표하면서 보냈지만, 지나친 원조로 시민 생활이 자유방임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균형을 충분히 고려했다. 그래도 다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부과한 의무도 수도 시민에게는 부과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것도 과거의 역사와 현재 상태를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

로마에 머무는 동안 황제는 날마다 일곱 언덕으로 이루어진 이 도시를 정력적으로 돌아다녔다. 도심만이 아니라 도시에서 벗어나 성벽 바깥까지도 날바다 보고 다녔다. 이렇게 멋진 것을 내일은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물론 이 생각은 이튼날이 되면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카파톨리노 언덕 위에 서 있는 최고신 유피테르의 웅장하고 화려한 대신전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들이 불사신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게 했고, 그것만으로도 속주 하나를 이룰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이는 대규모 공중목욕장, 티볼리산 대리석으로 건설되어 인간의 눈으로 한눈에 다 포착할 수 없을 만큼 높고 거대한 원형경기장, 둥근 지붕으로 덮인 광대한 원형 건물로 눈이 휘둥그레지게 하는 판테온, 높은 원기둥 표면 전체에 새겨진 부조나 나선형으로 정상까지 이어지는 트라야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념비, 그리고 수많은 신전과 포룸, 반원형극장, 음악당, 경기장 등등. 이 영원의 도시를 장식하고 있는 모든 것을 콘스탄티우스는 열심히 보고 다녔다.

어느날 크라야누스 황제의 포룸을 찿아갔을 때의 일이다. 이 포룸은 태양 아래 출현한 모든 인공물 중에서도 유일 무이한 건조물로, 신들조처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는 평판이 날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하다. 콘스탄티우스도 압도당하여 말이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자기도 로마 황제인 이상, 팔장끼고 찬탄만 하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포룸의 핵심적 존재인 광장 한복판에 서 있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가마상과 같은 모양의 것을 자기도 만들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페르시아에서 망명한 왕자 오르미즈드가 황제 옆에 서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 폐하, 기마상을 만들게 하기 전에 이 포룸 못지않은 마굿간을 짓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완성된 폐하의 말이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 콘스탄티우스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말로는 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오르미즈드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로마를 보고 어떤 감상을 느꼈냐고. 그러자 페르시아 왕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 이만한 것을 만들어낸 사람들도 역시 마지막에는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더니, 겨우 마음의 안정을 되찿을 수 있었습니다." >

'영원의 도시 로마'에는 많은 공공건축물이 있는데 불 만한 건조물은 공화정 시대에는 개선장군, 제정 시대에는 역대 황제들이 만들어 시민들에게, 곧 국가에 기증한 것들이다. 39세의 콘스탄티우스도 개선식을 거행한 이상 자신도 선례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무엇을 기증하면 좋을 지 알 수가 없었다. 로마에는 벌써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대제도 다른 것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공중목욕장을 건설하여 기증했다.

곰곰히 생각한 끝에 도달한 결론은 오벨리스크(고대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웠던 거대한 돌기둥)를 기증하여 대경기장에 세우자는 것이었다. 오벨리스크는 아버지 대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세우려고 이집트 구석에서 끌어냈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것을 로마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대경기장에는 이미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무찌른 뒤 가지고 돌아온 오벨리스크가 서 있었다. 약 15만 명은 너끈히 수용할 수 있는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검투사 경기와 더불어 로마인들이 가장 열광했던 전차경주를 위해 세운 대경기장이기 때문에, 트랙 중앙에는 '등뼈'라고 불린 띠 모양의 공간이 옆으로 길게 놓여 있다.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기증할 오벨리스크는 띠 모양의 그 공간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오벨리스크와 한 쌍을 이루도록 세우기로 했다. 아우구스투스의 오벨리스크는 지금은 포폴로(인민) 광장으로 옮겨져 있고, 콘스탄티우스 오벨리스크는 로마의 4대 교회 가운데 하나인 성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앞 광장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