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마지막회)
통곡의 벽
2. 무엇을 배울 것인가?
역경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찿는다.
어느 민족에게나 영광스런 역사가 있는 반면 감추고 싶은 치욕스런 역사도 있다. 그래서 영광스런 역사는 크게 내세우고 치욕스런 역사는 뒷전에 슬며시 감추려고 한다. 그러나 유태인은 그렇지 않다.
구약을 보면 덮어버리고 싶은 고난과 치욕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남아있다. 유태인들의 독특한 전통민족 역사관으로 치욕과 역경에 대한 나름대로의 주관적인 해석이 있다. 그들은 고난과 역경이 극복과 영광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며 잘못되어서는 안된다는 단순한 교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은 영광을 낳는 디딤돌이 된다는 보다 긍정적인 신념이기도 하다.
그들은 하루의 시작이 아침이 아니라 어둠이 시작되는 저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일요일이 아니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둠속에서 동이 터야 새벽이 오기 때문이며 어둠이 있기에 새벽이 있으며 어둠은 새벽을 준비하는 과정이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이 어둠과 같은 고통과 시련을 먼저 주고 그 뒤에 오는 밝은 새벽의 참뜻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런 순서를 마련했다고 해석한다. 그들은 이러한 역사관으로 그 숱한 고난을 긍정적으로 극복해 왔으며 그들의 역사를 보면 그들이 가진 그런 '어둠의 의미'를 잘 소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들의 축제인 과월절, 로쉬 하샤나, 하누카, 푸림 등을 찬찬히 살펴보면 모두가 고난이 앞에 있고 영광과 승리가 뒤따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새해맞이 축제인 로쉬 하샤나는 속죄일 욤 키푸르와 맞물려 있으며 푸림도 페르시아 거주 유태인이 도륙되기 직전에 구출된다는 축일이며 건국기념일은 현충일 바로 다음날이다. 결혼 전에도 자기죄를 뉘우치는 기도를 해야하고 금식이 권유되기도 한다. 그래야 행복한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일상 생활의 모든 고난과 영광을 통해서 그들은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않으며 결국은 이런 시련이 극복되고 보다 나은 내일이 자신들 앞에 놓여 있다고 믿는다.
같은 고난의 역사라도 그 해석과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긍정적이며 전향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역사 현실을 단순히 교훈의 영역에서 한 차원 높여 새로운 도약의 역동적인 토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날 피로 얼룩진 이스라엘의 현실이 바로 고난과 역경의 시기이지만 그들은 끄떡하지도 않고 잘 견디어 내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역사 인식 때문이다.
한국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특이한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끓임없이 피압박의 오랜 역사를 되풀이해왔다. 그 결과 망국의 치욕과 일제 식민지 36년 동안 갖은 고초와 수탈을 당하고 해방을 맞이했건만 남북분단으로 이민족은 반도와 함께 반토막 났다. 어쩌면 이스라엘과 비슷한 반쪽 나라로 갈라졌으나 반도의 주인이 되고자 북이 먼저 강대국을 등에 업고 남을 침략했다. 그 결과 남이나 북이나 각자 강대국을 등에 업고 반도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한국전쟁을 치루었다. 그래서 수많은 같은 민족 사람끼리 서로 총뿌리를 겨누며 처절한 사상적 대립으로 피를 흘렸다. 이는 민족의 동질에 앞서 민족 전통의 역사관이나 사상, 문화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며 자신의 주체성과 전통문화를 상실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남의 것을 숭상하고 자신의 역경을 극복하기보다는 이웃 강대국에 의지하여 자신의 무리들이 이득을 쟁취하려는 신라시대 이래부터 잘못된 역사관이 태동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남이나 북은 서로의 민족이라는 생각보다 각자 정권에 대한 이기주의를 앞세우고 반세기가 흘러왔다. 생각도 달라지고 말씨나 언어 그리고 의지하는 강대국도 다르다. 통일을 위한 길은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독일민족의 통일을 보면 참으로 대단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이러한 모습에 견주어볼 때 우리들을 유태인이나 독일민족에 비유하기에는 역사관이나 정신, 문화의 모든 면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상실하고 자신을 망각한체 살아온 지난 과거를 탓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과 우리들을 비교하기에는 너무나 큰 민족 기질 차이로 인해 창피하여 비교하기조차 힘들다.
주체성을 지키고 자존심을 높인다.
유태인은 수천 년에 걸쳐 자기 민족의 전통 문화유산을 통한 주체성을 고수해 왔다. 이런 주체성의 유지는 유태교의 교회격인 시냐고그와 유태인 학교를 통해 이루어진다. 유태인 사회의 지도자인 랍비는 목사나 신부같은 성직자라기보다 친근한 선배나 선생같은 존재여서 유태민족의 역사와 전통문화의 폭넓은 전도사 역활을 겸하였다. 최근 이스라엘 전쟁에서는 랍비 출신의 장군이 이스라엘군을 지휘하여 전투에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도 있다.
유태인들의 민족문화 교육의 역사는 대단히 깊다. 로마에 의해 나라가 망한 후에 최초로 만들어진 민족문화 연구센타인 '예시바'는 예루살렘 가까운 '야네브'란 곳에 세워졌는데, 이와 흡사한 에시바는 그후 팔레스타인 그리고 유럽과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유태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대도시 주변에 예시바가 만들어져 저명한 학자들이 자기의 학풍을 일으키고 제자들을 양산했다. 이런 예시바에서 배출된 제자들이 지방에 새로운 예시바를 세우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또 예시바를 돌아다니면서 지식을 쌓아가는 학자들도 있었다. 예시바에서는 토라와 탈무드 연구뿐만 아니라 온갖 유태민족의 전적.전설.설화.민담 등이 수집되어 책으로 엮어 후세에 전해졌다. 이런 에시바를 통해서 유태인들은 역사와 문화의 연구는 물론 주체성 확립과 후세들에게 유태인으로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유태인의 역사, 문화, 풍습, 인성, 관습을 전수했다. 그들은 이러한 예시바를 통해서 전세계에 산재한 유태민족과 서로 종횡적으로 연결되어 통일된 주체성을 확립해 나갈수가 있었다.
민족문화 교육을 통한 민족 주체성의 유지는 자존심과 직접 연결되는 효과를 낳는다. 2천 년에 걸친 박해와 차별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통해 고난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긍심은 대단한 민족이다.
원래 유태민족은 스스로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선민사상은 유태인의 전통문화 교육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그런 말은 하지 않으며 다른 형식을 빌어 은근히 드러낸다.
민족문화 교육은 일종의 우월감 심기로 볼 수 있다. 그런 우월감과 자심감을 갖고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천양지차이다. 최근 인기 베스트 책 중에 '시크릿'이란 책의 내용도 바로 '긍정의 효과'가 핵심이다. 자기 긍적은 무한한 '자기 마음속 거인'을 깨울 수가 있으며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이 가져오는 효과는 엄청난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현실은 그들과 너무나 차이가 많다. 외국의 한인학교 운영이나 교민들간의 동족의식이나 상호 도움, 그리고 동족간 협조는 퇴색되고 있으며 2세, 3세들의 한국말 수준은 이미 거의 제로 상태이다. 자신의 아기가 미국의 시민권을 받기 위해 해산전 미국으로 출장가는 한국의 산모들이나 외국에서 조국을 잊어버린 후손들이 무슨 한국 민족에 대한 우월감이나 자신감을 가질 수가 있을까? 한국의 역사와 전통은 이미 이땅에서 퇴물로 사라지고 있으니 우리들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민족 고전과 문화를 충분히 익힌다.
히브리 성경인 구약은 그 양이 방대하다. 대충 읽기에도 부담이 될 정도다. 그만큼 많은 기록이 전해져 왓다는 것이며 토라라고 불리는 창세기.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만 해도 그 양이 적지 않다.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로 시작되는 창세기 첯 장에서부터 신명기 마지막 부분을 이루는 감격에 넘친 '모세의 마지막 노래'에 이르기까지 토라의 내용은 장대하며 감동스런 이야기로 가득하다. 토라 이후의 역사서와 예언서도 그 내용이나 스토리가 흥미를 끈다. 창세기에는 인간과 지구의 태동을 이야기하면서 인간들의 원시 생활부터 중근동의 각종 신화까지 종합하여 만들어진 대서사시 같다.
엄청난 배를 만들어 온갖 동물을 싣고 바다로 변한 산야를 표류한다는 노아의 이야기, 강물에 버려진 노예의 아들을 이집트 공주가 왕자처럼 키워 나중에는 유태인 노예를 이끌고 탈출하는 출애급기는 뒤쫒아오는 파라오의 전차부대를 뒤로하고 홍해 앞 바다에 다다르 모세의 기적같은 바다의 갈라짐, 그리고 파라오 군대가 바다물 속으로 사라지는 그 웅대함, 영웅 삼손의 사랑 이야기,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위대한 다윗왕의 배신, 솔로몬의 지혜와 방탕, 너무나 아름다운 이방인 롯의 이야기 등등 유태인 민족사이기도 한 구약의 이야기는 믿음과 배신,미움과 사랑, 전쟁과 평화, 음모와 갈등, 영광과 좌절, 절망과 희망, 삶과 죽음의 뭇 인간사의 축소요 집대성된 문학작품이요 상상의 요람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욥기, 시편, 잠언, 아가, 이사야, 에레미아서, 애가 등에 이르는 방대한 장편 시들은 또 어떤가. 시문학의 보고라 할 수 있으며 서구 시문학의 원천이 구약성경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닌것 같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경우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역사 기록, 전적, 민화, 설화, 민요 등이 전해온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주로 중국의 역사서를 기준으로 우리 역사서를 참고로 하였으며 사기를 다 쓴 후에는 우리 역사서를 모조리 다 태워 없애 버렸다. 우리가 중국과 대등한 국가로 전쟁을 수행하거나 나라를 건립했다는 자체가 중국 역사서에 맞지 않는다하여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관련 역사서를 없애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단군 신화의 장엄한 이야기, 고조선의 웅대한 역사,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모본왕들의 장엄한 대장정과 중국을 굴복시킨 민족의 웅지와 기개, 천년 사직의 통일 신라, 그리고 외세를 끌여들인 신라의 잘못된 통일과 불행한 고구려, 백제의 멸망, 발해의 부흥과 고려의 고토회복을 위한 대륙 정벌 노력 등 장대한 드라마가 어찌 유태인 구약보다 못하랴마는 그런 기대는 모두 잘못된 사대주의에 빠진 사학자에 의해 영원히 민족의 웅지가 사라져 버린 안타까운 일이다.
민족의 정신을 이어줄 많은 구국.애국 정신이 살아있던 신라의 화랑도와 고구려의 선인 이야기를 체계화하고 민족 전래의 문화와 풍습을 연구 발전시켜 나라의 기틀로 삼고 민족 고유의 신앙과 풍습을 선양하고, 상호부조 정신을 주창하여 서로돕고, 공리주의와 형식보다 마을마다 서당에서 민족 고유의 역사, 문화, 풍습을 교육시키고, 유학이나 관료주의를 배격하며 실학을 일으키고 상업과 장인 정신을 높이 하였다면 우리들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기부와 자선행위를 일상화한다.
탈무드에는 부자의 크고 작음은 자선을 얼마만큼 했느냐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많이 베푼 사람이 진짜 부자이지 인색한 사람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부자라고 부를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유태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많은 기부금을 내놓는 민족이다. 생활비 항목 속에는 반드시 기부금 항목이 들어 있다.
미국의 매년 기부금으로 평균 약 36억 달러의 기부금이 걷히는데 전체 미국인의 2%밖에 안되는 유태인들로부터만 기부금을 거두고 있는 유태인 자선단체인 '유나이티드 쥬이쉬 어필'은 매년 10억 달러를 거두어 들이고 있다 한다. 예로 1997년 한 해에 유태인들이 내놓은 기부금은 약 45억 달러나 된다고 한다. 1994년 월간지 <위스>가 특집기사로 발표한 내용으로 정기적으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고 있는 미국의 부호 100명 가운데 35%를 유태인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최고의 기부가는 유태인 금융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로 20억 달러, 세계 최고의 부자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15위로 1억 9천 6백만 달러를 기부했다고 한다.
유태인들이 물론 돈도 많지만 유태인들의 자선 행위는 중세시대 이전부터 뿌리를 내린 그들의 생활관행이다. 유태인이라면 누구나 동포를 도울 책임이 있고 또 유태인이니까 동포의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유태인 모금액이 뒷받침되어 오늘날 세계에 군림하는 유태인 학자,기업인들이 양산되었다. 능력은 있는데 돈이 없어도 학업을 중단한다든가 연구실을 가지 못하는 유태인은 없다. 아이디어가 있는데 자본이 없어 기업을 일으키지 못하는 유태인도 없다.
대체로 유태인들은 구두쇠로 알려져 있다. 인색하며 지출을 꼼꼼히 챙기고 낭비도 없다. 그렇게 한푼 두푼 모은후 공공기구의 기부금에는 전혀 아끼지 않는다. 자기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모금단체를 비롯한 자기가 원하는 기구에 찬조금으로 내 놓는다. 그리고 한군데 모아 능력있는 동포를 돕는다. 그러면 나중에는 자신이 필요할때는 그런 동포들이 그를 돕는다. 그것보다 확실한 축재 방법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식이 최상의 가치임을 강조한다.
유태인들은 세계 어느 민족에 비해 교육을 중요시해 왔고 또 실천하고 있는 민족이다. 지식이 결국은 남보다 앞선 생각을 낳을 수 있고 그것이 생존은 물론 향상된 생활을 보장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부동산이나 기업 같은 유형자산을 물려주기에 앞서 실용적인 지식 습득에 정력을 쏟는다. 유형자산은 경기 영향으로 가격이 폭락하면 망할 수도 있으나 지식은 어떤 위기에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다.
그런 전통이 발전하여 오늘날에는 전문직종 교육을 자녀들에게 중점적으로 실시한다. 유태인 부모들은 자녀의 자질을 아주 어렸을때부터 면밀히 관찰하고 그 자녀가 장차 갖게 될 직업에 관련된 전문교육을 선택하게 한다. 이런 부모의 결정은 부모들의 독단이 아니라 유태인 사회 내 전문가와 상의한 후에 내리는데, 일단 내려지면 엄하게 시행한다. 이런 부모의 일방적이다시피 한 결정에 대부분의 유태인 자녀들은 따른다. 그 이유 역시 유태인 교육에서 비롯된다. 유태인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일반 정규학교가 끝나면 평균 일주일에 3일 정도 히브리 학교에 가서 유태인 사회가 마련한 전통역사문화 과외 공부를 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자기 민족이 지난날 겪은 고난의 발자취와 가혹한 현실 세계에 몸을 익히게 되고 부모를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표현을 극대화 한다.
교육을 중요시하는 전통은 생활관습을 가졌다는 점에서 유교전통의 한국인과 유태인은 차이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교육방법이 다르다. 한국의 방법은 주로 암기식인데 반해 유태인 교육은 토론식이다. 유태인 학생은 선생에게 무엇인가 질문을 해야하고 선생은 그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이다.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유태인 어머니는 오늘 무엇을 배웠는가를 묻지않고 무엇을 질문하였는가를 묻는다. 각종 축제일 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축제일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을 하게 한다. 그러면 어른들은 그 축제일의 진정한 의미를 자녀들에게 설명해 준다. 과월절에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4가지 이상 질문을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문답식 교육은 유태인 고유의 교육방법이다. 토라의 보충 해설판 같은 탈무드는 유태인 학자들의 끓임없는 의문 제기와 그 의문에 자기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고 굽힘없이 제 목소리를 높이고 요구할 것은 주저없이 내놓으라는 것이 유태인 생활 규범이다. 이러한 표현 능력이 사업 추진이나 법적인 문제 상황은 물론 직장생활에서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 한다고 보고 있다. 어떤 직종이던지 이러한 표현 능력은 도움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말재주를 늘리는 노력에 이어 외국어 구사 능력의 강조도 유태인들의 민족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유태인들은 아주 일찍부터 모국어 외에 서너 개의 외국어를 배워 일상화하는 조기교육을 부모로부터 받고 있다.
강한 개성과 차별화 감각을 기른다
유태인들은 대단히 강한 개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의심이 많다. 아무리 보기 좋아도 남의 것은 일단 비판적인 안목으로 본다.
지난 세기 인류사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물로 아인슈타인, 프로이드, 칼 마르크스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기존의 틀을 깨고 자기만의 외고집으로 일관한 창의적인 인물들이다. <유일신 사상>을 주창한 아브라함이나,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 <무의식의 존재를 과학의 영역으로 이끌어낸> 프로이드, <자본론>을 쓴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 등이 바로 대표적인 유태인들이다.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살피고 생각하라', '너만의 생각을 펼치라' 라는 것이 유태인들의 일상적인 사고방식이다. 유태인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많은 학습 과제를 강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개성을 살리는 교육을 실시한다. 남들처럼 예의바르게 처신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형식이나 외형적인 겉치례에 해당하는 소위 양반 교육이나 신사 교육은 시키지 않는다. 남들과 달라야 네가 돋보이고 주목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유태인들의 성공은 대부분 기존의 틀과 맞지 않는 무엇인가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에서 나왔다. 그런 개성이 창의력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도출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벤쳐기업에 진출한 유태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도 동일하다.
세계화한 민족 성원의 역활을 찿는다.
유태민족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세계화를 실천한 민족이다. 그들의 오늘날 성공은 바로 누구보다도 일찍 세계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진국을 넘나들면서 시대마다 앞서가는 문명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상이한 시대, 상이한 종교, 상이한 문회권에서 현장을 체험하고 배워왔다. 중세시대에는 북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의 문화 용틀임을 보았고 유럽이 세계 문명의 핵심 역활을 할 때에는 유럽의 심장부 속에서 호홉하고 있었다. 오늘날 세계에 군림하는 슈퍼파워 미국의 심장부 뉴욕에 그들이 군림하고 있으며 세계 지배를 꿈꾸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들 사회가 남의 것에서 탈피하여 유태인을 배우고 그들과 연계하고 그들의 우수성을 우리가 배우고 그들의 좋은 생활관습을 우리들이 제대로만 배울 수가 있다면 미래를 가꾸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나, 수천 년 질곡과 고난의 모진 역사속에 강대국에 의지하여 자신의 운명을 맡겨온 우리들로서는 지금같은 생각과 사고로는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가 없을 것이다. 유태인, 그들의 어쩌면 현명하고 참으로 지혜로운 삶을 살아오고 있다. 만약 그들 삶의 방식을 우리들이 조금씩 배워 나갈 수가 있다면 우리들의 운명도 달라질 것이 아닌가? 그것은 우리 지도층과 지식인들의 몫이며 이 시대의 우리들 모두가 유태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생각으로 국민들의 사고를 전환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바꿔 나가야 할 것이다.
(끝)
"끝까지 읽어 주시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서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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