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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봄을 기다리며......3

봄을 기다리며......3

 

 

 

도봉산의 웅장한 자태

 

 

 

이제 겨울 추위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듯하다. 오전 기온은 다소 영하이지만 낮 기온이 올라 땅이 서서히 녹고 있다. 자전거 도로 주변 산하는 검푸른 색깔로 점차 변하고 수목마다 뿌리가 땅 속에서 녹아 흐르는 물기를 열심히 줄기로 올리고 있기에 줄기색도 점차 푸른 색깔을 띠면서 새순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이 땅에도 봄은 어김없이 찿아오고 있다.

 

새로 구입한 모타를 장착한 전기 자전거는 1단으로 표준 몸무게로 평지만 주행하면 거의 180~200킬로미터를 갈 정도로 파워가 엄청나다. 주로 밧테리는 1~2단으로 주행하는데, 1단은 다소 약하지만 2단에서는 시속 20~25킬로미터 정도, 3단에서는 30킬로미터를 넘는다. 그래서 주로 1~2단으로 주행하고 언덕에서만 2~3단으로 올라가는데 큰 힘 안들이고 쉽게 올라갈 수 있다. 과속은 사고를 유발하기에 4단 이상은 겁이 나서 주행해보지는 않았다. 예비 밧테리가 필요없고 무게도 가볍고 힘을 들이지 않고도 잘 굴러간다.

 

처음 사서 타다가 계속 세워두었던 전기 자전거 알톤 쉐보레 21M은 중고로 처분하려 한다. 예비 밧테리 포함하여 매각하려고 사능 점포 주인과 상의했다. 그런데 이동 준비를 하다가 열쇠를 잊어 버려서 종일 찿았지만 찿지 못했다. 물어보니 열쇠가 없으면 자물쇠 뭉치를 통째로 바꿔야 한다고 한다. 비용 3만원. 속상하다. 며칠 더 찿아보다가 가져가기로 했다. 요즘 기억력이 가물가물하여 생각날 때 바로 하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중랑천을 올라가다가 바라보니 도봉산이 웅장한 모습이 나타났다. 도봉산도 봄기운을 받아 지열을 내뿜고 있는 듯 그 자테에 스스로 외소함을 느끼게 된다. 난 도봉산을 한두 번 올라간 적은 있으나 자주 가지는 못했다. 산이 높고 험하고 가파르다. 주말이면 도봉산 등산로는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룬다. 

 

입구에는 각종 음식점이 즐비하고 등산 후 이곳에서 음주오락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대부분 등산 모임이 많고 가정적이고 용기없는 사람은 부부 등산 모임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용기있는 사람들은 남의 남편과 아내들이나 독신들이 모이는 모임이 많다. 회식이 끝나면 가까운 노래방으로 몰려가 스트레스를 푼다. 돈 자람, 멋 자랑, 미모 자랑이 난무하는 이런 모임이 아름답게만 끝나지 않는 이유는 지겨운 인생의 탈출구를 찿아 헤매는 애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불행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결국은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때문인데 말이다.

 

 

 

 

 

중랑천 자전거 도로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는 사람도 많고 지나가는 자동차도 많다. 모두가 자신의 건강과 인생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새로이 돋아나는 초목의 새순이 자라 피는 꽃보다도 못한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인생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그래도 모두가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은 항상 남과 비교하면서 살아간다. 부귀영화는 사람마다 주어진 환경과 유산, 능력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인간 사회는 똑 같을 수가 없다. 생각과 사는 방식이 다르고 태도와 습관이 다르다. 다른 것을 인정하고 나의 분수와 처지를 생각하면서 살면 된다. 남을 부러워하고 욕심을 부리고 탐욕이 과하면 인생은 망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말년에는 마음을 비우고 주변의 모든 사치품을 버려야 한다. 산 속에 사는 자연인처럼......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며 편안하게 살려면 부귀영화를 버리면 된다. 

 

각종 잡기에 능한 사람은 잡기를 접고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기를 버려야 한다. 마약, 도박, 음주, 과식, 사기, 성에 과도한 집착 등 중독 상태를 버리지 못하면 그것도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다. 고급 자동차, 골프채, 사치품, 귀금속, 고가품 등 자신이 아끼고 자랑하던 모든 것을 버리면 된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것을 끝까지 가지고 가려한다. 그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될 것이다. 

 

 



입학식 현수막

 

호평동에서 퇴계원, 별내역을 지나 화랑로를 따라 태능입구 역으로 가다보면 육군사관학교가 나온다. 옆에는 태능 푸른 동산이 옛 모습 그대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고 생도 시절 미팅을 하던 소나무밑 잔디밭은 옛 모습이 그대로다. 후문 입구에는 신입생 입학식 현수막이 걸려 있다. 2월초 경에 소집되어 그동안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이제야 입교식을 정식으로 하는 모양이다. 보모님들이 달려오고 화랑연병장에서 예복을 입고 자랑스런 육사 생도로 정식 입교하는 것이다. 

 

약 반세기 전 입교식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때는 어머님과 큰 누님이 오셨는데 장한 아들의 모습을 보려고 노구를 이끌고 오신 어머님은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 육군 장교로 입관하게 되었으니까.   

 

 

화랑회관

 

 

지금은 화랑회관이 정문 밖 아파트 근방에 세워져 있지만, 옛날에는 후문을 지나 언덕 위에 있었다. 그곳에서 면회도 하고 간식도 사서 먹기도 했던 곳이다. 당시 유명하던 삼립빵을 친구와 같이 수북히 샇아놓고 열심히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미국의 군원이 끊어져 생도들의 식사가 엉망이었으니 배가 많이 고팠던 시절이었다.

 

잠시 여기서 풋풋한 나의 생도시절 풋사랑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생도 2학년 시절, 겨울 방학 동안 대구 YMCA 화관에서 육사 홍보전을 열었는데 그때 만난 미모의 경북고 여고생이 홍보전에 보러와서 그녀의 주소를 알고 다음날 집을 찿아가 그녀의 아버님을 만나게 되었다. 대문 앞에서 만난 그녀의 아버님은 알고보니 육사 초기 단기 육사 대선배였다. 

 

제주도 4.3 폭동 당시 육군 중위로 진압 작전에 투입되어 작전을 벌이면서 만나게 된 미모의 하숙집 딸인 부인을 만나 나중에 결혼하게 되었고, 그후 군에서 승승장구하다가 대령을 달고 논산 훈련소 부소장을 하던 시기에 특무대장 김창용 사건에 휘말려 용공분자로 모함을 받고 강제 전역을 당했다고 했다. 아마 가슴 속에서는 울분이 치솟고 있었을 것이다. 후배인 나를 보자 과거 자신의 군대 시절 앨범을 꺼내 놓고 일일이 설명하면서 과거를 회상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님과 이야기를 끝내고 그녀 방으로 안내되어 같이 서로 쳐다만 봐도 웃으면서 눈에 콩깍지가 덮히기 시작했다. 그녀 어머님이 주시는 차와 과일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깊은 이야기는 못하고 서로 편지를 주고 받기로 약속하고 집을 나섰다. 그후 그녀는 나의 생도 시절 3년 동안 열심히 서로 격려하는 편지를 주고 받았고, 특히 여름철에 받게 되는 하계 군사 훈련이 힘들 때는 그녀의 편지가 단비처럼 내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며 용기를 주었다. 어느날 편지에 어머님께서 군인이 될 나와 사귀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다. 군인을 만나 평생 많은 고생을 한 어머니 입장에서 자신의 딸이 군인을 선택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도 그녀를 놓아줄 어느 정도 입장 정리가 되었다. 군인의 아내는 고생길이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는 미모의 아내를 만나 평생을 자부심으로 살아가고플 것이지만, 나의 진급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가난한 군인의 아내가 경제적 어려움에 고생하는 모습이 상상되어 양심이 하락치 않았다.

 

내가 생도 4학년이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고등학교에서 4명이 명문 대학에 합격했는데, 그녀도 그중 한 사람으로 모두가 어렵다는 서울 명문 대학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녀는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나는 기숙사로 편지를 보내며 주고 받았고 육사에도 한 두번 면회를 다녀갔다. 

 

그러나 이미 대학생이 된 그녀는 점차 빠르게 변하고 달라져 갔다. 엄청난 미모로 인해 수많은 남자 대학생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미팅 때마다 프로포즈가 난무했다고 한다. 마치 오랫동안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새장을 열고 넓은 세상로 나와 마음껏 하늘을 나는 새처럼 그녀는 도도해지기 시작했고 자만심이 차올라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꿈이 여자 대통령 내지 수상이 되는 것이라고 나에게 망언을 할 정도였다. 

 

그러다 그녀는 갑자기 소식이 끊어져 한동안 연락이 없었는데, 어느날 누가 면회를 왔다고 해서 나가보니 처음보는 여자였다. 그녀는 같은 기숙사에 기거하는 사람인데 주인이 찿아가지 않는 내 편지를 여러 차례 본 후 용기를 내어 나를 찿아온 것이다. 나를 찿아온 사연을 듣고 나는 '남의 편지를 보면 나쁘다'면서 나무랐고 내가 마음을 줄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지만 난 그녀를 단호히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지만......ㅎ ㅎ ㅎ

 

그후 등록금 문제로 오빠와 교대로 잠시 휴학을 했다며 나의 졸업식 때 갑자기 나타난 대구 소녀는 나의 졸업식 날 가까운 동기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만남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소식이 끊어지고 헤어졌다. 당시 무슨 말을 하면서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도 없다.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호평동 사전 투표 현장, 오후에는 줄을 설 정도였다.

 

 

요란하던 대선도 이제 막바지에 도달했다. 지난 토요일에는 호평동 주민 센타에서 사전 투표도 했다. 미우나 고우나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선거 방식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한 표를 던졌다. 안후보와 윤후보가 단일화를 하는 바람에 대선 판도가 예측 불허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똥파리들은 열심히 줄잡기를 하다가 어떤 똥파리는 줄을 잘못 잡았다고 판단하여 좌절하기도 하고 어떤 똥파리는 줄을 잘 잡았다고 반색하기도 할 것이다.

 

 

 


중랑천 전경


 

 

동해안 지역에 한 미친 인간이 저지른 방화에 동해안 일대가 사상 최대급의 산불이 강풍을 타고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피해 주민들도 잠을 설치며 발을 동동구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재산상 피해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난 저런 산불이 대규모로 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티비 프로그램에 나오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의 자연인들이 혹시나 저런 깊은 산 속에서 지내다가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인생의 마지막 보금자리가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누리며 산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저런 재앙에 피해를 당할 우려가 많아 보인다.

 

 





한양대 앞 살곶이 다리

 

 

한 탐욕스런 지도자가 전쟁을 일으켜 강대국인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침공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독재자와 전쟁 유발 지도자는 대부분 역사에서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경우가 많다. 러시아의 불법적인 전쟁 도발에 우크라이나 군과 국민들이 저항하고 있으나 서방의 군사적 지원이 없는 한 러시아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서방 군대와 러시아 군대가 직접 맞딱뜨리게 되면 아마 3차 세계 대전으로 비화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방측은 군사적 대응을 자제하고 경제적 제재로 맞서고 있다. 서방의 경제 제재에 러시아가 얼마나 버틸지는 알 수 없으나 서방의 대응 강도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의용군이 몰려들고 해외의 우크라이나 청년들이 고국을 구하기 위해 귀국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추세로 세계적인 대응이 확산된다면 러시아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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