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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역사에게 길을 묻는다 4




역사에게 길을 묻는다 4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를 마치며.....4


우리의 역사와 오늘날 우리 현실을 되돌아 본다. 

전설로 남아 있는 고조선, 기록이 거의 전무하여 삼국사기에도 신화로만 기록된 고조선의 뒤를 이어 태어난 고구려. 중원을 호령하며 중국의 통일 왕조인 수나라와 당나라와 당당히 자웅을 겨루던 고구려가 자체 내분과 분열로 인해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그후 만주에는 고구려 장수인 대조영에 의해 고구려의 후신인 발해가 들어섰으나 오래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거란족에게 멸망당한 이후 우리 민족은 통일 신라 이후 한반도에 안주하고 말았다.


고려 시대는 만주에서 발흥하여 중원 이북을 재패한 요나라와 금나라의 장벽에 막혀 북방으로 진출하지 못했고, 초기에는 거란의 3차례 침공을 물리치는 등 군사력이 강력했으나 후삼국 50년을 지내면서 호족들의 세력을 이용하여 통일을 달성했다. 그러나 통일 이후부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광종의 과거제, 노비안건법을 파격적으로 도입하여 호족을 제거하였고 왕권을 강화한 이후 고려 조정은 무보다 문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그러나 문신들의 타락으로 인한 무신들의 반정으로 무신정권이 들어서서 무려 80년이나 지속되면서 점차 내부적인 붕괴를 초래했다. 뒤이어 세계적인 강대국 몽고의 침공을 견디지 못하고 부마국으로 전락하여 100년 지배를 받는 동안 북벌은 미쳐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물론 고려의 해상무역은 활발하였으나 부를 국력신장으로 연결하지 못했고 몽고의 지속적인 침공으로 고려 조정은 강화도로 천도하였다. 또 몽고군에 대항하여 대몽항쟁의 주력이었던 최씨 무신정권을 호가하던 삼별초가 살아남기 위해 대몽항쟁을 벌였지만 결국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고려 조정은 몽고에 항복하고 부마국이 되면서 몽고를 등에 업은 권문세족들의 준동으로 고려 조정과 사회는 무너져갔으며 부국강병을 추구할 겨를이 없었다. 공민왕의 개혁과 고토회복 노력은 초기에는 소기의 성과를 가져왔지만 말년의 실정과 그가 살해되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고려가 망하고 이씨 조선이 들어섰다. 조선을 창업한 신진세력들이 지향한 사상은 고려 시대 타락했던 불교 사상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온 유교 사상이었다. 위선과 가식, 형식과 외양에 가득찬 유교사상은 한마디로 내실보다 형식, 평등보다는 차별, 공익보다는 사익, 백성보다는 양반 사대부, 즉 조선은 양반 사대부만을 위한 나라였다. 태종 당시 대마도를 정벌했으나 많은 섬에다 지형이 척박하고 사람 살기가 힘들고 별로 가치가 없고 조선군 주둔 문제시 경비 문제로 주둔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철수해버린 것이다. 대마도만 통치했어도 그 많은 왜구나 임진왜란은 사전에 방비가 가능했을 것이고 현해탄은 오늘날 우리들의 영역이 되었을 것이다. 원천적으로 유교의 조선은 물을 싫어했다. 하천이나 개천을 건너는 것도 노비에게 업혀야 건너는 양반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외진출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도전과 모험심이라고는 거의 없는 무리들로 오로지 한반도내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의 피땀을 빨아먹으며 궁궐같은 기와집에 많은 노비를 거느리고 평생 무위도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목표였다. 농사일을 포함한 각종 노역은 아랫것들인 노비, 상놈, 천민들이나 하는 것으로 양반들은 책이나 읽고 산천을 유람하며 시를 읊으며 기생과 어울려 유흥을 즐기고, 집에는 처첩을 여럿 두고 밤마다 돌아가며 말초적인 성적 쾌락을 즐기다가 처첩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서자라 과거에도 나서지 못하는 천하에 한량들을 양산했다. 집안의 여노비를 성폭행하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마음대로 했던 양반 사회였다. 조선의 신분제는 뛰어넘을 수도 없었고 고착된 신분제는 대를 이었다.


이런 나라에서 무슨 과학 기술이며 해외 무역이며 모함과 도전 정신으로 해양으로 진출을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저들끼리 권력쟁탈전을 벌이며 돌아가며 반대파를 죽이거나 왕권을 강화한답시고 신권우위를 주장하던 무리를 죽이고 세자는 물론 심지어 형제까지 도륙하는 불경을 저지르기도 했다. 삼촌이 왕위를 찬탈하고 조카를 죽이고 그를 비난하며 반정을 도모하려던 충신들을 도륙하는 살인마 같은 짓도 서섬치 않았다. 공자의 가르침이 나오는 유교 경전을 그토록 공부하고도 실제 행동은 정반대였으니 위선과 가식이 아니고 무엇인가. 조선 초기 그런 일을 거치면서 외적의 침입이 없이 소위 평화기를 200여 년 가까이 누리면서 삼정은 극도로 문란해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임진왜란 초기 종잇장에 불과했던 조선군은 부산포, 동래성에서 분전, 신립의 탄금대 전투 이외에는 전투다운 전투 한번 치루지 못하고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북으로 도망쳤다. 조선실록의 기록에는 고려말 이성계의 반란을 은폐하기 위해 '위화도 회군'이라 명명했고, 선조의 도망을 '파천'이라 표현했다. 솔직하지도 못하고 가식적인 글로 위장한 것이다. 조선의 유교 사회에서 유교에서 가르치는대로 충실하게 충효사상을 실행한 인물 중 유일하게 성공한 인재는 충무공 이순신이 단연 으뜸이다. 물론 그외 의병을 일으킨 많은 유교 인재와 진주성 전투, 행주산성 전투 등에서 분전한 인재들이 장렬하게 전사했지만 이순신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의해 조선은 위기에서 되살아났고 망할뻔했던 조선을 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광해군의 폭정으로 인조반정이 일어나 인조가 즉위했으나 그는 왕재가 아니었다. 정묘.병자호란이 발발하여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다가 40여 일 만에 굶주림과 혹한을 참지 못하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했다. 한양 길바닥은 백성들의 시체로 지나갈 수가 없을 정도였고, 세자와 왕자, 3학사를 포함하여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청나라 포로로 끌려갔다.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을 외쳤지만 양반 사대부들이 극렬히 반대했고, 사실 그 당시 청나라는 삼번의 난을 진압할 정도로 군사력이 강대했던 시점이다. 이처럼 국제정세도 어둡고 국방력이나 재정 능력, 인구 등 국력도 부족하면서 북벌을 한다는 이야기는 허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효종 이후 국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해양 진출이나 해외 무역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모두는 아니지만 조정이나 관리들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기 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별로 없이 오로지 추수 때가 되면 수탈하는 데 열중했다. 지방 관리는 관기를 데리고 연일 주지육림에 빠져 쾌락을 즐기다가 백성을 수탈하는 데 앞장섰고 그들은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데 열중했다.


숙종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환국정치를 실시했고, 극심했던 당쟁을 잠재우기 위해 영.정조의 탕평책과 과감한 개혁은 노론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다시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외척이 권력층에 집입하면서 세도정치가 시작되었고 풍양 조씨, 안동 김씨 세상이 되고 말았다. 말년에는 허약하고 어리거나 무능한 왕을 골라 세우고 대를 이어 세도정치가 전개되면서 조선은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마지막 고종대에는 흥선과 며느리 민비가 대립하면서 왕족끼리 권력다툼을 벌이다가 일제에 나라가 망하고 강제 합병되는 세계 역사상 보기드물게 웃지못할 망국을 초래했다. 



고대 로마와 우리가 무엇이 다른가?

지리적인 조건은 비슷하지만 생각과 사고가 달랐다.


민주적인 공직 선거, 완벽한 정치체제, 지도층의 국가에 대한 헌신, 지도층이 경제 관념이 뛰어났고, 규정과 법에 따른 국가 운영, 원로원의 효율적인 기능, 내치보다 외치에 치중,  토론과 협의에 의한 의사결정,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른 신속한 변화, 관용과 포용 정신, 정의, 공정, 평등 의식이 강했다.


이러한 정신은 귀족과 평민이 똘똘뭉쳐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 주변 강대국과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했다. 내부적인 통치보다 외치에 치중하여 속주와 동맹국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하고 재정을 확보했다. 한 집단이나 무리가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거나 분산시키는 지혜를 가졌다. 개혁과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했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다. 


  


오늘날 우리 현실과 비교하면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일제가 망하고 타의에 의해 독립되어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고 친미파였던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김구.여운형 등 반대파 숙청하고 친일청산도 중단했다. 그리고 친일파들을 재등용하여 관직과 경찰, 군에 포진시켰다. 그러다가 6.25 전쟁이 발발했고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선은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오르내리며 3년을 끌다가 휴전이 되어 남북이 대치하면서 반세기가 넘었다. 전후 전국토는 초토화되었고 미국의 원조 물자로 끼니를 이어갔다. 전후 복구가 진행되면서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장기집권을 획책하려고 3.15 부정선거를 저지르다 전국민들의 공분을 싸면서, 학생들에 의해 4.19 혁명이 일어나고 장면 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학생 혁명파들의 무질서한 정치행동으로 극심한 사회적 혼란이 조성되자, 박정희에 의해 5.16 군사쿠테타가 일어나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박정희의 제3공화국은 경제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월남전에 국군을 파병했고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여 차관을 얻어냈다. 새마을 운동과 경제개발의 성공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우리는 5천 년 동안의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두루마리 휴지 하나 만들지 못하던 우리가 오늘날의 경제대국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전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메고 가발 공장과 염색 공장에서 힘든줄 모르고 일했다. 명절이면 양손에 선물 꾸러미를 들고 열차와 버스를 타고 고향을 찿아가서 친구들에게 밤새 성공담을 늘어놓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아들을 둔 가정은 논밭을 사고 집을 고치는 등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들의 경제적 소득이 늘어나면서 삶의 질이 향상되었고 농촌의 근대화와 도시 집중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양극화 현상도 뒤따라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치는 혼란을 거듭하는 가운데 국민들은 개화되어 갔고 정보.통신의 발달로 정보 교류가 보편화되면서 급격하게 시대는 변화해갔고 국민들의 의식도 깨우쳐졌다.


깨우친 민중은 독재와 탄압에 항거하고 인권과 차별에 대항하며 민주화를 이루고 월드컵 4강 신화도 이루었고 세계 각지로 널리 퍼지고 있는 K팝 열풍과 한국 문화의 확산으로 한국인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능한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치적인 선진화도 구현하여 세계인을 놀라게 했고 이번 동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세계인들이 격찬을 하고 있다. 먹거리가 넘쳐나고 방송마다 먹방이 방영되며 장수 식품이 날개돋히듯이 팔리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정부의 국민 건강관리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다른 나라 국민들이 부러워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수도 서울의 수려함과 쾌적함에 놀라고 다양한 음식에도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먹거리가 넘쳐나면서 비만인도 넘쳐나고 지자체마다 축제 열풍으로 가는 곳마다 노래와 춤, 음식으로 한마디로 5천 년 역사상 한번도 보지 못한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다. 노래하는 가수와 배우 등 연예인들이 최고의 삶을 누리는 시대가 되었고, 스포츠를 통해 종목별로 세계적인 선수도 거듭나고 거부가 되기도 하고 올림픽에서도 나라 규모에 비해 월등한 높은 수준의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공적인 경제건설로 한강의 기적으로 풍요를 이루었지만 정신적으로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한국 고유의 전통이 사라지고 말았다. 해방 후 친일파 정리를 소홀히 함으로써 애국에 대한 개념이 흐려졌고 어느 편에 붙던지 자신의 안위만 도모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지고 있다. 국가보다 나를 우선하고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데 전념하는 사고가 자리잡게 되었고 개발을 빌미로 군부대는 모조리 쫒겨났다. 여기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헌신한 사람들과 후손들에 대한 허울뿐인 국가보훈정책도 일조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근대를 지내면서 일제 식민지배를 받은 관계로 과정과 절차도 없이 설익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미국으로부터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바람에 경제구조와 정치 시스템에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조선 시대와 일제 시대의 통치를 청산하지 못하고 가진자와 권력층은 국민 위에 군림하며 정의와 평등이 바로서지 못하고 있다. 권력과 자본이 결탁하여 국민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는 흡혈귀가 되고 말았고 바뀌는 정권마다 그 무리들이 국고 빼먹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견제가 아니라 부정이며 타협이 아니라 밀실 야합이며 정권마다 적폐청산을 빌미로 정책의 지속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조선의 양반 사회의 파벌의식과 무리의식의 악습이 전래되어 자기나 자기들이 아니면 안된다는 독선적인 사고가 확산되어 정권마다 정권쟁취에만 혈안이 되어 국가 발전에 헌신하는 정치인은 찿아보기 힘들다. 일부 민주적인 정권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슬픈 역사도 가지고 있다.


제3공화국은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잡고 경제적인 놀라운 성공으로 이 땅의 가난은 물리쳤지만, 군사 독재, 장기 집권, 유신 헌법 등으로 장기 집권을 획책하다가 10.26 사태와 12.12 사태로 무너지고, 전두환 정권의 권력 찬탈, 강압 통치, 광주 5.18 민주화 혁명, 노태우의 북방정책 등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었고 결국 민주화를 이룩했으며,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변 4대 강국은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은 안보적인 차원에서, 미국은 대중국 봉쇄와 대륙 진출 발판으로, 일본은 안보와 경제적인 잇점으로, 러시아는 한반도를 통한 태평양 진출 전진 기기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일국이 한반도를 자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무력은 완성단계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곧 정상회담이 열리겠지만 김정은의 자신감이 눈에 비친다. 5월에 미국과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면 어느선까지 김정은이 물러설 것인지 의문이다. 체제 안정, 핵무기 폐기 조건으로 주한미군의 한반도 철수가 이루어 질 것에 대비해서 외교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번 대화 성사로 문재인 대통령의 줏가가 계속 올라기고 있다. 만약 원만히 북미간 대화가 이루어져 평화로운 해결이 이루어진다면 노벨 평화상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런데 여당 진보파 인사들의 성추문에 정치적인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김정은이 핵무력을 확보하고 남북이 은밀히 협의하여 통일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두 강대국이 남북을 후원하고 자신의 안보를 앞세워 버티는 한 두 정권 중 어느 쪽도 자기 마음대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남북 정상이 화해무드를 조성하여 남북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점진적인 통일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미국의 끈질긴 핵무력화 시도는 말로는 세계 평화를 위한다지만 속으로는 이미 핵무력을 가진 미국은 핵무력으로 세계를 장기간 지배하겠다는 속셈이다. 미국의 배신의 역사에서도 밝혔지만 미국인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대한민국은 태평양의 화와이만도 못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유사시 언제라도 한반도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극동 정책이다. 그들은 일본을 우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대중국 포위에 일본의 능력을 이용하겠다는 것이며 한국은 전초기지에 불과하다. 독도 및 위안부 문제 등 한일 문제에 은근히 일본을 편들고 일본의 군비 증강을 눈감고 있는 점도 그렇다. 올해 일본의 국방 예산은 무려 50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사면초가의 입장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험난하기만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이런 국제 정세에는 무감각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전방위적인 '미투 운동'운동 확산으로 밤잠을 설치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일부는 공갈과 협박을 당하며 금전을 갈취당하는 사람, 하루 아침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는 고관대작, 유명인, 지식인, 인기인 등을 본다. 아마 살해당하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때도 이러한 악습은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데, 여성을 성적인 노리개로 생각하는 사고 방식이 우리 사회에 면면히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남존여비 사상이 주류를 이루는 유교 사회인 조선은 유교적인 윤리.도덕을 겉으로는 외치면서 뒤로는 여러 처첩을 거느리고, 집안의 여자 노비를 마음대로 성폭행하고, 음주 가무로 주지육림에 빠져 세월을 보내던 조선의 양반 사회의 문화가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다.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탐욕과 자만은 결국 추락을 불러오는 법이다. 한치 속을 누가 알리요마는 일국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인재가 성폭행범으로 밝혀져 하루 아침에 추락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최고 높은 지도층의 의식 구조가 아직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파렴치범 수준이라면 다른 지도층 인재라고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자라면서 자신의 곁을 지나쳐갔던 수많은 여성들 중, 한 사람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유명인 한사람 추락시키기엔 충분한 것이 지금의 분위기다. 유명인이 안 된 것이 천만 다행인 사람도 많을 것이다.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미투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고 본다. 화간이든 강제든 이러한 성행위를 빌미로 사람을 파멸시키는 도구로 이용된다면 먼저 언론에 고발하는 자가 이기는 고대 로마 시대 티베리우스 황제의 말년에 공포정치 시대와 비슷하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유명인사가 되거나, 출세하거나, 고관대작이  되거나, 인기인이 되려면 스스로 몸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성범죄가 많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이며 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동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지라 이런 성범죄는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권력과 재물을 가진 사람들이 함정에 빠지기 쉬운 성적 욕망과 쾌락은 결국 인생을 망치는 허망한 짓거리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 올 때까지 말초적인 욕망을 감추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건전한 성에 대한 사고를 가지고 몸가짐을 반듯하게 하지 않으면 언제, 언론에 폭로될 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가까이 하지도, 옆에 앉추지도 앉지도 말고, 그런 자리는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회식도 피하고 만남도 피하고 가까이 다가오면 몸서리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아마 여성들의 일자리도 상당히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칩이 지나면서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새벽 자전거 타기도 열심히 할 것입니다.

저의 블로그를 찿아주시는 모든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새봄을 맞아 건강유의하시고 행복한 봄 맞이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남양주 호평동에서 ~ 서초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