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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역사에게 갈 길을 물어보라



역사에게 갈 길을 물어보라.





새해에도 어김없이 긴 어둠을 해치고 새해 아침 태양이 떠 올랐다. 새해라고 하지만 어제와 별다른 태양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정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5천 년 전에나 조선시대나 오늘 떠오르는 저 태양이 변함없이 불타는 빛과 열기의 따스함 때문에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들이 지구상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천지창조설을 부정하는 것이 과학이다. 그래서 종교는 과학을 배척하고 자연의 이치를 부정하며 인류를 감언이설로 정신적으로 지배하려던 것이다. 그것도 한뿌리에서 갈리진 형제 종교들이 갈라지면서 서로 영역 싸움을 벌이고 배척하며 오늘날까지도 피를 흘리는 싸움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고대 로마는 다종교 국가지만 정복 지역의 다른 종교를 탄압하지도 않았고, 그 종교가 로마에 들어와서 교세를 확장해도 그대로 인정해주었고 심지어 세금, 사법권 등 특혜도 인정해주었다. 유대교에 대해서는 자체적인 사법권까지 인정해주었다니까. 그러나 종교인이나 종교활동이 혹세무민, 유언비어, 선전선동 등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과도한 헌금 강요, 풍기문란, 정치 관여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로 이탈리아 반도 본토에서 국외로 추방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종교인 과세에 대해서 우물쭈물 하고 있다. 로마 시대와는 달리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구나 자신의 소득에 대해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각종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누리는 여러 혜택은 무임승차하여 누리면 한편 교세를 이용하여 정치적인 권세를 부리며 거대한 자본집단으로 성장하면서 도심의 요지와 고층빌딩 사이를 파고들고 있다.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재산을 별도로 치부하고 심지어 후손에게 세습까지 하려는 이기적인 사고와 태도와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만하다. 그들이 과연 종교 창시자의 기본정신인 '이땅에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자신들을 홍보하고 인간을 쇠뇌시키고 있다. 종교관련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정권을 선전하는 미디어가 반복적으로 방영되는 것은 자본과 권력이라는 힘을 가진 쪽에서 언론을 통제하고 길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도를 해야 병이 낫고 시주를 해야 소원이 풀린다고 믿는 우매한 사람들이 이런 새해 아침에는 전국의 유명한 산이나 바닷가에서 새해 아침 태양을 맞이하면서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블로그에는 매년 새해에 기대하고 소원하는 내용을 올린곤 했지만,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별로 없는 듯하다. 남들이 하니 나도 한 것이고 그러면 무언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기도하고 소원을 빈다고 인간의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인류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강원도 북한강변 어느 군에서 매년 열리는 산천어 축제가 또 열린다고 한다.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많은 다양한 축제를 벌이지만 이곳은 미디어를 타고 홍보되면서 서울에서 가까워 남이 가면 나도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어느 해에는 100만이 넘는 불가사의한 인파가 몰려들어 외신에까지 보도되었다. 그래서 오랜 세월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살아오던 군민들이 지금은 부자들이 되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한 유명 작가를 초빙하여 문학마을을 만들어 선전했고 여러 문인들 다양한 행사도 열고 장기간 거주하도록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군과 작가 간에 자존심 싸움이 벌어져 꼴싸나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누구나 권력이나 재물이 늘어나면 사람은 갑자기 거만해지기 마련이다. 군수의 지혜로운 구상으로 군민들의 수입이 늘어났고 재물이 늘어나자 사람들은 거만해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고대 로마인도 그랬고 중세의 유럽인, 근세나 오늘날의 지구촌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각자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남여가 만나 자식을 낳고 키우고 사회인이 되어 자아실현의 최고 경지에 다다르면 노년이 되어 죽음을 바라보게 된다. 자녀들은 어느새 시집 장가를 가서 자식을 낳고 다시 종족 번식의 가문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가문이 번창하고 부귀영화를 오래도록 누리며 행복하게 살도록 모두가 기대하고 가정을 일군다. 


누구나 자신의 후손들이 배부르게 먹고 자라서 출세를 하고 권세를 부리면서 사회적인 존경을 받고 자손만대에 걸쳐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기대할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열심히 부를 추구하고 권력과 권세를 탐닉하게 되어 있다.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학업과 경험을 쌓고 줄기찬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한 자녀를 위해 부모는 허리가 휘도록 돈을 벌어야 하고 자녀가 사회인이 되어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를 지속해야 한다. 


자녀가 출가하면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지속적인 수입이 보장되어야 하고 건강도 뒤따라야 한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못하거나 미래가 불안정하면 부부의 사랑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넘치는 정력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을 돌리거나 원조교제, 불륜 등에 휘말리면 이혼으로 끝장을 본다. 음주와 섹스에 벗어나지 못하고 마약이나 도박, 허영심과 사치에서 벗어니지 못하는 인생도 마찬가지다.


졸지에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각종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린 손주.손녀가 태어나면 맞벌이하는 자식을 위해 손주.손녀를 돌보아야 하고 재정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는 등 뒤를 봐주어야하고, 심지어 조부모의 재정적인 지원 정도에 따라 손주.손녀들의 장래가 결정된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의 힘든 삶을 보면 가슴이 저리다. 그래서 자식이 무슨 사업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이제 쓸일도 없는 재산을 넘겨주면 사업은 반드시 망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하면 그때부터 조부모는 자식과 며느리로부터 무시를 당하면서 구박을 받기 시작한다. 몰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고대부터 인간은 의식주가 해결되지 못하거나 남보다 가난하게 살게되면 심한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오늘날에 우리 사회는 결혼도 어렵고 결혼을 해도 바로 이혼을 밥먹듯이 하니 초고령, 초저출산 시대가 전개되어 가문의 번창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가정과 가문의 미래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봄이면 온갖 꽃들이 이 땅에는 곱게 피어난다. 질곡의 역사를 가진 땅이지만 지난 세월의 인골들이 썩고썩어 땅의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을 영양분으로 다시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는 것이다. 내 몸이 죽어 썩는다면 이런 들국화 한 송이라도 피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침 야채가게 전경


                          



아침이면 호평동 이마트 사거리 건너편 허름한 야채가게가 문을 연다. 야채 어물 과일 등이 신선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구름처럼 몰려든다. 줄을 서고 새치기를 하고 복잡한 가운데 물건값을 내지 않고 그냥 가져가는 아줌마도 있는 듯하다. 아마 오전중으로 물건을 다 팔고 문을 닫는다. 그래서 아침 9시면 줄을 서기 때문에 늑데 가면 물건이 없다.


우리 부부도 자주 이 야채가게를 이용하는 데, 욕심난 마누라가 열심히 사면 그 많은 물건을 모두 배낭이 넣고 돌아오는데, 토요일이면 이마트 뒷쪽에 있는 전주 콩나물 국밥집으로 가서 국밥을 먹으러 간다. 국밥 한 그릇 가격은 3.800원으로 저렴하다. 전주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원한 콩나물 국밥을 맛있게 먹고 돌아온다. 이마트에 들러거나 다이소에 들러 추가로 필요한 물건을 사서 돌아오는 데 나는 짐을 옮기는 짐꾼이다.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던 새벽 잠원 아파트에 열리는 새벽 시장이 생각난다.





뜨거운 여름이면 호만천 주변 수초들이 멋지게 자라고 산책로 주변 도랑에도 수초들이 무성하게 자란다. 주민센타에서 사람을 고용하여 수초를 자르고 정리를 하기도 한다. 이 지역은 분지라 비교적 기온이 높은 편이지만 우리집 아파트는 천마산 자락을 넘어 불어오는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수목이 자라서 그늘을 만들기 때문에 비교적 더위가 적다. 그래도 삼복더위 때 한창 더울 때는 냉방기를 커야 한다.




                                                               곱게 물들어가는 가을 단풍


                                                     금곡가는 자전거 전용도로 전경



                                                                      곱게 물들은 은행잎




                 

                                                      단풍이 물들어가는 자전거 전용도로 옆 야산 전



여름 더위와 씨름하다보면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이곳으로 아사와서 두번째 맞이하는 가을이다. 추석을 전후하여 천마산 자락과 자전거 도로 주변 밤나무에서는 알밤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베낭을 메고 전문적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산책하던 사람들도 알밤을 보고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주워가기 전에 줍기 위해 새벽 일찍 후라쉬를 켜고 알밤을 좁기 위해 산책로 주변 일대와 야산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에는 나도 알밤을 주워 매일 삶아 먹었는데, 산밤이라 맛이 좋다. 아직도 우리집 냉장고에 남은 일부가 보관중이다. 



시내 공원에서 작은 음악회도 열리고 가을의 정취가 넘쳐나는 곳이다.




이런 가을이 지나면 이내 겨울이 찿아온다. 


지난해 겨울 11~12월에는 에는 눈도 자주 내리고 빙판길이 많아 새벽 자전거 타기를 자주 못했다. 겨울 가믐을 해갈시켜주어 고맙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처음 내릴 때는 더러운 온 천지를 하얗게 덮기에 보기 좋지만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이런 눈이 내리면 언덕진 곳에 사는 사람들의 고충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서울에 살 때 우리집 입구가 약간 비탈길인데 눈이 내리면 마누라가 퇴근할 때 비탈을 올라오는 데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시멘트로 계단을 만들고 거칠게 바닥을 만들기도 했지만, 새벽에 밖을 보면 많은 눈이 내리면 눈쓸기에 바빴고 구입해둔 염화칼슘을 뿌리기도 했다. 만약 미끄러져 골절이라도 되면 병원비가 더 들었을 것이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언덕길이 생각난다. 가파른 언덕길 눈을 누가 쓸기나 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구청에서 눈을 치우게 되는 데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눈을 치우기 좋으면 다행이지만 얼어붙은 경우 대책이 없다


우리 아파트 맞은 편에 'ㄷ' 아파트가 있는 데, 비탈진 언덕에 아파트가 위치하여 오르내리는 길이 모조리 비탈길이다. 우리 아파트에 비하면 경비원들이 무척 부지런하다. 눈이 내리면 아파트마다 경비원들은 비상이 걸린다. 눈을 열심히 치우지만 눈이 계속 내리거나 새벽에 내려 얼어붙은 경우에는 치우는데 애를 먹는다. 그래도 비탈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 넘어져 부상을 당한 사람이 더러 있을 것이다.


우리 아파트는 응달진 빙판에는 염화칼숨을 뿌려야 되는 데, 잘 뿌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주요 도로와 보도에만 뿌리고 만다. 아마 염화칼슘 한 포대에 만 원 이상가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한 번만 참으면 무척 절약이 가능할 것이다. 아파트 통로에 염화칼슘을 잘 뿌리지 않으면 그런 속셈도 있을 것이고 예산이 적어서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인데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다. 자기 식구가 다니는 길이라면 생돈을 써서라도 염화칼슘을 뿌릴 것이다.


또 새벽에 호평동 사무소 소속 제설차가 염화칼슘을 뿌리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로 응달진 곳까지 구석구석 꼼꼼히 뿌리는 것이 아니라 제설차 기사가 대략 뿌리더니 동사무소에 제설차를 새워놓고 퇴근하기 바쁜 모습이다. 아마 새벽에 불려나와서 한바퀴 돌면서 대략 뿌리고 아침 먹으러 가기 바쁜 모습처럼 보인다. 주인이 아닌 노예나 머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저런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주에도 또 눈이 내렸고 기온이 급강하하여 산책으로 대치하고 있다. 빙판길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눈 내린 호만천 전경








3년 전 새해 아침에 올린 글에서 다시 내용을 발췌하여 글을 올린다. 


지난 한해도 우리는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온 것처럼 박근헤 정권의 국정농단을 촟불집회의 뜨거운 국민들의 저항으로 결국 박근헤 정권은 탄핵을 받아 권좌에서 물러났다. 10년 보수정권이 무너지고 정권을 내주고 야당으로 밀려나 분열로 당명을 바꾸고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정권을 잡고 저지른 무능과 탐욕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고 문정권은 복수의 화신이 되어 전정권인 보수정권을 적패로 몰아 보수정권 핵심 정치인들이 검찰에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권력의 무능과 남용, 정책 실패, 엄청난 국고의 손실에 대한 책임 등에 대한 징벌적 조치라고 보지만, 전정권에 대해서 복수의 일념으로 적폐를 청산한다면 추후에 정권이 바뀔 경우마다 복수에 대한 앙갚음을 반복할지 모른다는 게 걱정이다. 이런 정리가 없다면 지금처럼 국고를 마음대로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엄청난 국고 손실을 초래해도 아무런 처벌이 없다면 정권이 바뀔때마다 국고 빼먹기에 혈안이 될 게 분명하다. 국민의 혈세로 기치료를 하고 얼굴을 꾸미고 옷을 사고 마치 삼지돈처럼 사용했던 그들이 과연 국가를 위한 정치인들인지 냉철한 심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라를 거들낸 보수정당은 무리를 앞세워 아직도 거품을 물고 재기를 꿈꾸고 있는 모양이다. 가는 곳마다 막말로 듣는 사람들의 귀를 의심케 하는 저질 정치인이 야당 대표라면 그 정치인이 권력을 잡았을 때 저지를 무능과 저질스러운 언행은 존경받지 못하고 비난받을 것이 보나마나 예측이 가능하다. 우리의 유능하고 똑똑한 유권자들이 지난 10년의 과오와 만행을 쉽게 잊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가 경악한 촟불집회와 박정권 탄핵은 인류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사실이 되었고 우리 국민들의 의기를 드높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정치는 아직도 고대 로마 시대보다도 못한 후진적인 정치로 실망만 안겨주고 있다.


무능했던 조선이 내부적인 부패와 무능으로 결국 일제에 병합되면서 망하고, 일제 강압통치 36년간 우리 민족은 어둠의 긴 터널 속에서 노예처럼 초목을 뜯어 먹으며 살았다. 못난 조상을 만나 처절하게 살아야만 했던 민족, 나라가 다행히 자신의 힘도 아닌 강대국의 힘에 의해 어느날 갑지기 해방을 맞이했다. 당시 임시정부와 독립군들이 목숨을 걸고 항일투쟁을 벌였지만 사실 우리 자력으로 해방을 이루기에는 불가능했다.

 

역사를 가정하지 말라지만, 만약 일제가 미.소.중국과 전쟁 중 휴전을 맺고 평화회담이 이루어졌더라면 우리는 아마 지금도 일제의 식민지로 그대로 남아 있거나 병합되어 지금쯤 국민 대부분이 일본말을 사용하며 일제에 동화되어 일본인이 되었을 것이며 조센징이라는 냉대와 차별 속에서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민족도 문화도 역사도 모두 사라지고 일본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문화를 숭상하며 일본인이 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은 폭도나 반적으로 낙인찍혀 해외를 떠돌다가 소리없이 사라졌을 것이며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보다도 더한 가난과 차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번 다시 역사의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번영을 구가하며 동북아의 존재감을 가진 나라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치.사회가 변혁의 구조조정을 하루빨리 이루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고구려의 위대한 영광도, 신라의 천년사직도, 백제의 화려한 문화도, 고려의 끈질긴 대몽항쟁의 의기도, 이씨 조선 500년 고난의 역사도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고 인걸은 간 데 없다. 우리들의 시대도 언젠가는 흔적없이 사리질 것이다. 부귀영화도, 명예도, 화려한 문화도, 풍요한 삶도 시간이 지나면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양 성벽의 그 수많은 석축에 묻은 민초들의 눈물을 아는가? 남해의 한려수도 푸른 바닷물에 이순신의 피빛이 물들어 있는 것을 아는가?  홍제동 개천에서 치욕의 몸을 씻던 환향녀들의 눈물과 슬픔을 아는가? 한강대교 교각에 묻은 수많은 시민들의 핏자국을 아는가? 이 나라가 어떻게 오늘까지 존속하여 왔는가?

 

질곡의 역사, 고난의 역사를 지나 치욕의 역사, 고통의 역사를 겪고 반쪽이 되어 부평초 같은 신세가 된 대한민국. 임진왜란 당시 조선 최고의 장수라던 신립이 7천 기병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일본군과 대적하다가 전멸한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은 배수진을 치고 삼면에 바다를 끼고 북에는 호전적인 북한과 대치중이며 서에는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중국이, 남에는 군국주의를 부활시켜 한반도를 삼키려는 일본이, 더 북쪽에는 음흉한 러시아의 곰이 한반도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동쪽 이억 만 리 태평양 바다 건너 우리의 유일한 우방국인 강대국 미국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식물인간과 같은 꼴인 이 나라.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는 국토도 좁고 인구도 적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약소국의 운명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핵무기로 무장한 주변국은 언제라도 한반도를 유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큰 소리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우리가 핵무기를 당할 재주나 있을까?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단기간에 핵무기를 가질 능력이 있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만 비핵화를 주장하며 미국의 우산 아래서 노래부르며 놀고 있는 꼴이다.


북의 김정은이 핵단추 공갈로 미국을 위협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할 모양이다. 강온양면 전략을 구사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드러내려는 모습이다. 국제적인 비난과 봉쇄에 내부적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 무언가 돌파구를 찿으려고 하고 있다. 무능한 외교로 일관하던 여권에서는 환호를 지르며 대적인 환영을 할 것이고, 마치 현 정권이 추구하는 외교전략이 결실을 맺은 것처럼 자랑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속내를 누가 알 것인가. 체제 유지와 존속을 위해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개발한 그 업적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며 현실화 되어 있다. 강력한 힘을 가진 김정은 정권의 등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대한 자주적인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사회는 뒷걸음질 치고 있고 시대정신을 호소할 만한 지식인은 사라졌고 위선과 파벌,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촟불 덕분에 권력을 잡은 문재인 정부는 보수정권에 대한 과거사 정리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물론 국익 손실을 초래한 잘못된 정치적 문제는 책임을 추궁하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일이지만, 과도한 앙갚음식 파헤치기는 대외적인 신뢰도를 상실함은 물론 국론을 분열시키는 부정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종결을 짓는 것이 국가발전의 영속성을 추구한다는 대국적인 면에서 문대통령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하면 야권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호남 세력이 타당할 조짐을 보이고 중도와 보수 세력이 결집하는 통합은 어쩌면 좌경화한 여당과 큰 오점을 남긴 보수정당보다 더 큰 국민들의 기대감을 불러올 지도 모른다. 아마 총선에서 그 결과는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우리 나라 정당은 상대 당의 정책이나 언행을 무조건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경향이 강하다. 국가의 위기시에도 우리는 여야가 힘을 합치지 못한다. 마치 고대 카르타고 의회와 비슷하다. 그리고 조선의 붕당, 망하기 전의 월남과 나라 돌아가는 꼴이 너무나 닮아가고 있다. 여당은 한마디에 야당을 비롯한 반대파들의 주장은 모조리 부정적이다. 야당 대표가 지금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서 정치적인 비판과 비젼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여당 흠집내기에만 메달리는 꼴이 조선시대 내내 벌어졌던 당쟁과 다를 바가 없다. 야권에서 한 사람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잘못된 내용은 비판하는 태도가 아니라 무조건 전면 부정적이다.

 

이처럼 우리는 편가르기에 상대는 무조건 나쁘고 나만 옳다는 깊은 편견의식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집단이기주의.지역이기주의가 시대정신이 되고 말았다. 친북.종북.용공 세력들이 사회 각처에서 날뛰고 둥지를 틀고 있다. 정신은 목줄을 놓은지 오래고 정의도, 공정도, 평등도, 양심도 사라진지 오래다. 모두가 국부 빼먹기에 여념이 없고 비리와 부패가 만연하고 있으며 오로지 돈에 양심도, 체면도, 명예도, 윤리.도덕도 모두 버리고 목숨을 걸고 있다. 경제는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물거품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긴 아픔과 고통의 역사를 가진 이 땅에도 긴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밝아오는 새해 아침이다. 5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태양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비치겠지만 살아가는 방식과 의미는 각자 다르다. 강대국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약소국으로 항상 강자에게 빌붙어 알랑거리며 강대국의 힘에 의지하여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려는 민족도 있다. 어치피 생명을 연장하지 못한다면 강자에게 먹히고 그들에 빌붙어 권세를 누리려는 친일파가 전형적인 사람들이다.

 

명나라에 빌붙다가 청나라에 빌붙다가 일제에 빌붙다가 공산당에 빌붙다가 이제는 미국에 빌붙어야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민족. 우리에게 과연 희망과 미래가 있는 것일까? 현실을 볼 때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의지하여 배수진을 치고 동토의 세습왕조 북한과 한국이 각각 중국과 미국의 종속국이 되어 서로 등에 업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두고 서로 극심한 갈등을 빚으면서 어느듯 세월은 반세기를 지나왔다. 500여년 동안 사대부들이 지배하던 조선이 후손들에게 남긴 치유하기 힘든 상처다. 한 시대의 과오는 이처럼 후손들에게 극심한 이산의 고통과 힘든 삶을 남겨준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그들 가문이 조선 시대 충신, 영의정, 정승, 대사헌 등을 수도 없이 배출한 명문 집안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그들 가문이 명문이라고 하나 임금을 농락하고 백성들의 피눈물을 바탕으로 자신들 가문의 부귀영화를 추구하였던 점에서 유명 인재를 배출한 가문이기 전에 공보다 과가 더 많은 조선 망국의 주역이었다는 점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조선을 지배하였던 전주 이씨 문중과 권력을 농단한 안동 김씨 등 양반 사대부 가문에 대해서 적개심과 분노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조선 사회처럼 사대부들을 위해 백성 대부분이 노예처럼 살아가야 했던 시절이나 지금의 극심한 양극화로 가진자인 양반과 갖지 못한자인 상눔들이 나뉘어 갈등이 유발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지금의 극심한 빈부의 차이는 세도정권하의 조선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각처에서 홍경래의 난, 진주민란, 동학란 등 민란이 일어나고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 대안으로 천주교를 극심하게 탄압하였다. 또 오호작통제라는 감시체제를 운용하여 천주교도를 잡아내고 숨기거나 방조한 경우 다섯 가구가 모두 잡혀가 극형을 당하는 시절이었다.

 

허수아비 임금 헌종과 철종에 이어 조대비와 흥선군의 밀약으로 등극한 임금은 흥선군의 둘째 아들 고종이었다. 흥선대원군의 급진적인 개혁정책과 척화외교는 정치적 기반이 약하던 그에게 무리였고 그 과정에서 민비와의 권력 갈등이 유발되어 세력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래서 결국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는 실패하고 만다. 그후 고종이 친정을 시작하였지만 고종과 민비를 포함하여 조정이 부패하고 매관매직이 극심하였고 그래서 관리도 부패하고 사회 곳곳이 썩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늘날의 우리 정치권과 사회와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점이다. 당시 평양감사 자리는 민씨 일족에서 거의 차지하였고 민생을 제대로 돌 본 관리가 없었다. 오늘날 수천 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무이도식하며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오늘날의 낙하산 인사와 진배없다. 그러다가 흥선대원군이 민비로부터 권력을 되찿기 위해 청.일. 러 등 외세를 서로 끌여들여 세력다툼을 벌이다가 두 사람 모두 정치적 구금과 죽임을 당한다.

 

양반과 사대부의 나라 조선은 오늘날 가진자들 5%가 갖지 못한자 95%를 지배하면서 살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배는 부르지만 마음이 공허하고 정신이 상대적 불만에 가득차 있으며 부에 대한 갈증으로 목이 탈 지경이다. 물론 능력대로 치부하며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지만 지금처럼 부의 흐름이 차단된 경직된 사회 시스템에서 부의 재분배가 정치적인 부패와 무능으로 차단되어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지금의 중장년층은 50~70년대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다 경제개발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주인공들이다. 그래서 경제가 부흥되고 수출이 늘어나면서 중장년층은 열심히 노력한 결과 지금은 그런대로 조그만한 집이라도 한 채 장만하여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가난하고 배가 고팠지만 그래도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개천에서 용이 아니라 미꾸라지라도 태어났다.

 

그러나 사회는 너무나 빨리 변화하고 있다. 전쟁도 모르고 어려움도 모르고 자란 오늘날 젊은이들은 부모들의 과거에 관심도 없다. 그것은 바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상실에서 비롯되었고 시대정신을 상실한 급격한 경제적인 성장이 가져다 준 결과였다. 지금의 현실은 학업, 취업, 결혼, 이혼, 양극화, 초고령, 초저출산 현상이 초래되었고, 로봇화, 인터넷, 컴퓨터 등의 발달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사회적 구조 변화가 유발되어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사라지고 서울 강남이나 부자집에서만 용이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젊은층들이 배는 부르지만 삶의 각종 어려움에 봉착하여 방황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너무나 피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담쟁이 넝쿨이 많은 열매를 맺으면서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열매의 무게에 무거워 가지가 떨어져도 열매를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과도한 욕심은 항상 화를 부르는 법,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들 누구나 역사의 수레바퀴에 묻어 흩어지는 먼지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다가 소리없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이 나라의 미래에 조금이라도 공헌하고 보람찬 인생을 살다가 사라지는지, 아니면 자신과 가문의 치부를 일삼고 이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고 발목잡으며 앙탈을 부리고 데모하고 촟불들고 편협한 잘못된 광신도 같은 사상과 이념, 종교에 빠져 민중을 선동하며 우리들 후손들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고 가는 것은 아닌지를 말이다.

 

우리 평균 인생 80세, 1초를 1원이라고 간주한다면 누구나 80 평생은 하느님으로부터 약 25억원이 입금된 인생 통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누구나 각각 하루 86,400원의 인생 시간 일당이 주어진다. 하루를 통장 금액으로 계산하면 (1초=1원)*24시간*60분*60초=86,400원이기 때문이다. 한 달이면 약 270만원, 1년이면 약 3,000만원 연봉을 깍아먹으면서 누구나 살고 있는 셈이다. 누구는 인생 시간을 매일 헛되어 까먹고 있고 누구는 매일 보람차게 살고 있는지는 스스로 자문해보면 잘 알 것이다.

  

헛된 상념에 빠져 탐욕과 욕심을 채우는데 급급하다 파멸에 이른다면 그 사람은 시대의 낙오자요 실패자요 패배자가 된다. 돈에 미쳐 눈이 먼 자, 빠징고, 경마. 경륜, 경정, 축구, 야구, 바둑 등 각종 도박에 빠진 자, 욕정을 못참고 저지르는 각종 성범죄자, 출세와 재물에 눈이 멀어 뇌물을 바치는 자, 눈 먼 돈이라고 장애인, 독거노인, 극빈자층 보조금 등 국가 보조금을 빼먹는 자, 권력과 권세를 이용하여 약자를 억누르거나 재물을 빼앗는 자, 편협한 사상에 빠져 선동.선전으로 대중을 현혹시켜 우두머리가 되어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자, 종교적 교리와 권세를 이용하거나 천국을 선전하거나 행불행을 점쳐주며 탐욕을 채우는 자, 결혼,장례를 빙자하여 갈취하는 자, 다단계로 사기를 치던가 아니면 다단계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을 해체하는 자, 부부가 결혼 후 여러가지 욕심으로 자녀를 팽개치고 이혼을 하는 자, 각종 게임에 빠져 가정과 가족을 잊고 게임방, PC방, 방구석에서 세월을 허비하는 자, 각종 사기를 치는 자, 수시로 술 먹고 폭행 등 주변인과 가족을 못살게 구는 자, 폭력조직에 가담하여 불법을 저지르며 인생을 허비하는 자, 매춘, 불륜 등 성을 매개로 한 각종 돈벌이에 관여 하는 자, 뒷돈을 받고 형벌을 주무르는 검찰,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 뇌물을 받고 편의를 봐주는 정치인, 경찰, 헌병, 기무, 국정원, 감사원, 세무서, 말단 공무원, 교직원, 공공기관, 사학재단 관계자, 시주와 헌금, 등록금으로 치부하는 종교 단체, 승려, 목회자, 사이비 종교 지도자, 교육기관 관계자, 불법과 부정으로 공사대금을 유용하는 회사와 관계자 등은 모두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고 사회를 혼탁스럽게 하는 암적인 존재로 이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졸리운 눈으로 항상 내 옆을 지키는 우리집 애견 땅콩이




새해를 맞아 우리는 좌절과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가져야 한다. 고난과 위기 속에서 항상 영웅이 태어나고 새로운 기회가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어치피 정치란 권력을 잡은 자들이 부를 독점하고 대다수의 백성들은 수탈당하면서 노예처럼 살기 마련이다. 지금은 조선 시대보다 더한 가진자인 양반과 가난한 자인 천민이 양극화로 갈라져 있다.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끌고 시나이 반도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듯이, 이순신 장군이 모진 모함과 역경 속에서도 23전 23승의 놀라운 전승을 이루었듯이, 나라가 망한 암울한 시대에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하여 조신 민족의 의기를 드높였듯이...... 조선의 전설적인 거상인 임상옥의 드라마 '상도'에 나오는 것처럼 "장사란 돈을 번다는 것보다 사람을 얻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진정한 내 사람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여 왔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병철과 정주영이 여건이 좋아서 오늘날 그들의 후손들이 한국 최고의 대기업인 삼성이 되었고 현대가 된 것이 아니다. 모든 어려운 환경은 어느 시대나 존재하였고 수많은 민초들이 좌절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모두가 배부르고 태평성대를 누린 적은 별로 없다. 나라를, 정치를, 사회를, 조상과 가족을 탓해봐야 자기만 손해다. 국난을 당하였을 때 역사적인 영웅이 나타나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기회가 찿아온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잘 살고 못 사는 것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손주 녀석들

 

 

드디어 새해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다. 매년 해가 바뀌어도 똑같은 해가 떠오르듯이 역사는 반복되는가? 우리가 고난을 선택하는 가 아니면 역사가 우리를 고난에 빠뜨리는가? 과연 지금의 배부른 행복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어느 사회나 갈등이 없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을 잠재우고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이끌 지도층이 필요하다. 지도자는 국민들이 존경하고 강력한 리더쉽으로 갈등을 극복하고 상대를 포용하며 강도 높게 정책을 추진하는 강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세월에 지도층이 어떤 오류를 겪었고 그 결과 어떠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였고 그러한 오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지도층 스스로의 변신은 물론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고 구조조정 되어야 할 것인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5천년이 반복되듯이 지난 1000년, 100년.10년, 1년이 반복되었고 이제 또 새해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억울한 불행과 죽음을 당하지 않고 살아온 것에 감사하고 오늘 새해를 또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새해 태양을 다시 볼 수 있음에 감사할 것이다.

 

오늘도 화장터에는 수많은 죽음의 행렬이 지나가고 있지만 새 아기의 울음소리도 힘차게 울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삶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인데 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 보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고뇌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손과 발바닥, 위장이 닭아 구멍이 나지 않고 평생을 견디어내는 것은 바로 상처나고 낡아버린 세포는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세포가 증식되어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들이 일구어 놓은 조그만한 풍요가 우리 후손들에게 더 큰 풍요가 돌아가도록 우리들이 오늘의 현실을 미래를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후손들이 인간답게 대접받으면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여 노예처럼 살아갈 것인지는 우리들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남의 행복을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자신은 왜 저런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지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부모를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하기에는 전에 자신이 어떻게 노력하며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는지를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면 알 것이다. 자신이 어떤 사고와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자신의 정신상태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오로지 높고 거창한 허황된 꿈에만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이 사회에서 신분의 벽을 치고 오를 상황이 어렵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자신의 눈 높이가 과도하지는 않은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마다하고 쉽고 편안하며 빠른 돈벌이에만 급급하여 그런 일만 찿지 않았는지? 주관도 없고 비젼도 꿈도 없으면서 남이 하니 나도 하는 그런 인생을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저의 블로글 항상 방문해 주시고 저의 글을 애독해 주시는 모든분들께, 새해에는 더욱 알찬 보람과 소망이 이루어지고 추구하시는 모든 일이 잘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서초동 올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