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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6.25 전쟁을 되돌아보며......

 

 

 

6.25 전쟁을 되돌아보며......

 

 

                                                                                               작년 어느날 서울 강남대로 거리 풍경

 

 

 

이념과 사상의 함정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7년째, 오늘이 그날로 지난 과거를 되돌아 보며 그 의미와 의의를 음미해보고자 한다.

 

최근 우리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친북 좌익 세력들에 의해 편향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어린 청소년들에게 인지시킴으로써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 폄하는 물론 역사를 왜곡시키고 북한 정권을 은근히 한반도의 유일한 정권으로 인정하며 정통성을 부각시키려는 음모가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최근 북한의 탈북자를 포함하여 지난 천안함 사건 등을 북한 내부의 김씨 세습 정권의 부도덕성 내지 일당독재통치의 문제점은 도외시한채 북한 정권의 통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미국의 경제제제 내지 남한의 자작극으로 몰아가려던 세력들이 대부분 그런 세력들이다.

 

 

또 그들은 일당 독재와 김씨 세습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내부적인 경제발전보다 공산당 지배층의 호의호식과 무력증강에 혈안이 된 결과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은 물론 삶이 극도의 가난과 굶주림으로 탈북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왜곡시키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친북.용공.좌익 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하게도 70~80년대 대학가를 휩쓴 몇 몇 골수 공산사회주의 사상에 매료된 반정부 이론가들에 의해 유포된 서적에 의해 장래가 촉망되던 똑똑한 많은 젊은이들이 맑스-레닌 사상에 심취하여 운동권에 투신하여 앞장서서 반정부 투쟁 전사로 이름을 날리고 감옥을 수차례 들락거리다가 영웅이 되고 나중에는 정치권에 뛰어들어 정계에 입문한 정치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또 검.경찰 등 법조계에 입문한 머리가 붉게 물든 법조인들, 그리고 언론계.교육계.문화/예술계.기업체.군대.공무원 사회 등 사회 전반에 분포하고 있는 그들과 그들에 의해 물든 비슷한 사고와 사상을 가진 친북, 용공 세력은 젊은날 심취한 붉은 사상의 함정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북한의 인권에는 무감각하고 북한 체제의 폭력성, 비인간성, 부도덕성, 비윤리성, 비이성적인 면에서 아무런 이야기를 않는 사람들이다.  이 지구상에 국민들이 내란이나 전쟁이 아닌 굶주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의 나라를 탈출하는 나라는 오로지 북한뿐이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이 자라고 살아오면서 보고 배운 것으로 머리가 채워지게 된다. 그러나 그 지식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선전.선동에 동조하기 쉬우며 사이비 종교에 빠지거나 다단계에 빠지는 것처럼 자신이 똑똑한 것 같지만 실제 머리 속에 든 지식은 태평양 바다에 떠 다니는 낙엽 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모든 통치 권력은 권력을 분산시키고 아래로 위임해주며 국민들이 자유와 인권을 향유하며 모두가 더불어 누구나 인간답게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대부분 새로운 사상이나 이론을 내세우며 무리를 선동하여  반정을 일으켜 기존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였지만 대부분은 처음 내건 이상에 비해 점차 일부 지도층만 권력을 독식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고 백성들은 예전이나 변함없이 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인간이 권력을 향유하게 되면 탐욕이 생기게 되는데, 그 탐욕이 인간의 이성을 잃게 하여 도덕과 윤리, 이상과 비젼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대부만을 위한 나라였던 조선 시대와  아무 것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며 가난과 배고픔을 벗어 날 수 없다면 권력이 민중에게 있지 않았고 대부분의 권력이 상층부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 지배층은 부도덕하고 민주적이지 못한 탐욕스런 계층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을 북침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역사 인식은 왜곡되어 있다. 먼저 침공했던 나라가 초전에 박살나고 주력 부대들이 무너지고 전선이 밀려 여지없이 낙동강까지 밀려나던 나라가 있었던가 역사를 좀 살펴보라. 침략을 먼저 시도한 나라는 초전에 적 지역을 순식간에 유린하게 되어 있는데 2차 세계대전시 독일이 그랬고 일제가 그랬다.

 

이성을 가지고 역사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6.25전쟁이 누가 먼저 침략을 시도하였는지는 자명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북침이던 남침이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휴전 이후 지금까지 남과 북의 두 체제가 어떻게 백성들의 삶을 인간답게 살게 만들어 왔고 가난과 배고픔을 이겨내며 부국강병을 이루었는지를 이성적인 사고와 생각으로 면밀히 비교하여 잘 살펴보라. 권력의 하향성, 백성들의 삶과 질, 복지 혜택, 자유와 인권, 민주화와 법치주의, 국민들의 기본권 등이 어떤지를 단순 비교하여 살펴보라. 

 

 

우리 젊은이들이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북자나 북한 사회의 실상을 보고 느끼면서도 쉽게 북한 정권을 비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어린 시절 쇄뇌교육의 영향이다. 노동자를 위한 나라, 다 같이 노동하고 똑같이 배급받으며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는 모두가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천국같은 나라,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 사회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맑스-레닌 이후로 전개된 공산주의 사회는 이상론에 불과했으며 허상에 불과했고 그 공산주의 사회가 결국은 실패한 사상이라는 점은 이미 소련의 붕괴와 전세계 공산국가들의 실패와 붕괴를 통해 밝혀 졌다.

 

그래서 중국도 모택동의 강력한 지배체제속에서 오랜 진통을 겪다가 그가 죽고 후계자들이 교체되어 오면서 등소평에 의해 과감하고 재빠르게 개혁.개방을 통해 철의 장막을 걷어내고 부국강병을 노력한 결과 지금은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루며 선진국 대열은 물론 세계 최강의 강대국 대열에 올라서서 미국과 자웅을 겨루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우물안 개구리같은 북한 김일성 정권은 중국의 예를 보면서도 개혁.개방을 두려워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개혁.개방은 바로 철저한 신격화로 김일성.김정일 우상숭배 제국을 만들었던 김씨 세습 왕조의 붕괴를 가져올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변하는 데도 그들은 세습 왕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여 생존을 담보받으려는 최후의 수단을 강구하려 하고 있으며 세계인들이 이미 버린 낡은 허상인 공산주의 통치 체제를 유지하며 일당독재 김씨 왕국을 유지하려 안감힘을 쏟고 있는 지구상에서 남은 마지막 최후의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역사를 보라. 독재정권이 얼마나 오래 갔으며 백성을 노예처럼 부리며 철저한 신분제로 그들만의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던 지난날의 역사를 잊었는가? 똑같은 고통을 다시 당하고 싶은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편향된 사상에 빠져 이상적인 사회를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지금 먹고 살만하고 너무 배가 부른가? 적화통일되어 식량 배급제를 실시하여 지독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싶은가? 북에 의해서 남한이 무너지고 통일되면 그대들은 영웅으로 대접받을 것 같은가? 역사를 보면 통상 대부분의 개국공신들이 결국에는 토사구팽을 당하였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남한의 친북.용공 세력을 얼마간 이용해 먹고는 대부분 과거 남로당처럼 김씨 정권에 의해 토사구팽 당할 지 모른다. 총칼과 힘으로 일어선 권력은 반드시 똑같이 역사의 인과응보를 당하게 되어 있다는 점을 잊지말라.

 

 

한국전쟁 발발 전 김일성의 사주를 받은 남한의 남로당 세력들이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서 남한 내에서 벌인 내란 사건을 기술하려 한다. 북한에서 보면 그들은 어쩌면 영웅이라고 치겨세우고 있을 것이며 열사묘지에 안장해 두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김일성에 이용당하였고 무의미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주민들은 선전.선동하여 정권에 대항하고 일정 지역을 무정부 사태로 만들려고 했으며 군대를 몰아 내란을 홱책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바로 한국전쟁에 대비하여 남한 이승만 정권을 무력화 시키고 남한 군대를 남쪽 내란과 반란 진압에 묶어 두려는 속셈에서 저지른 무모한 짓이었다. 제주.4.3사건, 여수.순천 반란 사건, 대구 폭동 사건 등이 바로 그런 사건들이다.

 

제주 사건은 일부 남로당 요원들이 주민들을 선동하여 경찰과 군부대를 습격하여 무장하고 한라산에 은거하면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군부대 반란 사건인 여.순 사건에서는 죄없는 병사들이 수없이 무참하게 죽었다. 또 전쟁 중에는 지리산 뻘치산들이 잔류하여 항거하면서 수많은 양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낮에는 국군, 밤에는 빨치산과 무장공비들의 지배하에 주민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공비가 되었고 빨치산이 되었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많은 제주 도민들이 당시 일본으로 밀항하여 지금은 제일 조총련 주체 세력이 되어 남한 정권에 대해서 철저히 배타적인 세력이 되었다. 인민군에 끌려가 포로가 되었던 반공 포로들이 이승만에 의해 석방되자 남과 북이 아닌 제3국행을 선택하여 타국에서 지금은 노인이 되어 쓸쓸히 죽어 가고 있으며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한을 품고  죽어가고 있다. 납북 어부를 포함하여 KAL납치 승무원들, 납북 지식인들, 국군 전쟁 포로들이 하나 둘 북한 땅 수용소에서 쓸쓸히 죽어 갔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누구의 잘못인가?

 

 

사상이 무엇이며 통일이 무엇이며 권력이 무엇이냐. 생각과 사고가 다른 사람들은 같이 살아 갈 수없다면 여당과 야당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인권과 권익을 빙자하여 침투한 친북.종북 세력들에 의해 점점 극력 투쟁으로 노동운동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부 노동자들은 무노동 무임금, 노동 세습 등 귀족 노동자가 양산되고 있으며 기업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탈 한국에 줄을 서고 있다. 임금도 임금이려니와 노동운동이 점차 집단화, 투쟁화, 좌경화, 종북화되어 가고 있기에 더 이상의 노사협력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권익을 대변하는 척하면서 내부에 침투하여 혼란을 조성하여 한국 경제를 발목잡고 기업을 무력화시켜 경제성장을 둔화시킴으로써 한국의 발전을 저해하려는 세력들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잘 살피고 척결하지 않으면 한국전쟁 전과 같은 사회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똑바로 보라. 어느 것이 국민들을 위한 체제인지는 스스로 생각해보라. 파업과 시위가 자주 일어나야 백성들의 귄익을 되찿을 수 있다. 그만큼 민주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사회는 파업이나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다. 철저한 통제와 억압으로 공산당 일당 독재 외에는 어떠한 정당이나 언론이나 사상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견제가 없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며 부패한 사회는 백성들의 삶은 보나마나다. 바로 조선이 그러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아래는 한 지식인의 글을 싣는다. 

 

 

역사 교육의 딜레마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자료집에 실린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1970년대 어느 지방도시에서 고등학생들이 교련복 차림으로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이다. 학생들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에는 ‘6·25의 비극을 아빠한테 물어보자’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1970년대는 6·25전쟁이 끝난 지 2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6·25를 직접 겪었던 국민이 대다수였으며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던 시절인데도 벌써 많은 청소년들은 6·25에 대해 잘 모르거나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부모에게 6·25에 대해 물어보라는 구호가 등장하게 된 배경일 것이다.

이로부터 40년 안팎의 세월이 경과한 오늘날 젊은 세대들에게 6·25전쟁은 더욱 흐릿한 안갯속의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받거나 대중문화를 접하면서 학습 또는 상상을 통해 6·25를 이해하고 바라볼 뿐이다. 1990년대 이후 6·25전쟁이나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 가운데 북한을 우호적으로 다루거나 연민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이념적 성향이 강한 일부 영화인들이 우리 사회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작을 해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6·25에 대해 백지 상태인 청소년들의 의식을 선점하기 위한 정지 작업이다.

6·25를 경험한 세대들은 이런 현실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홍익대 총장을 지낸 경제학자 심상필 씨는 ‘나의 6·25’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그는 ‘한때 시중에서 상영된 영화나 문학작품 가운데 남과 북은 형제인데 미군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한 작품이 꽤 있었다’면서 ‘진실을 은폐 조작하려는 우리 사회 일부 세력의 횡포를 참기 어려워 사실을 알리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혔다.

6·25 발발 당시 서울에 살고 있던 심 씨는 북한의 서울 점령으로 같은 해 9월 28일까지 3개월 동안 북한 통치를 경험했다. 그의 옆집에서는 남한 인사와 가족에 대한 끔찍한 즉결 처형이 연일 이뤄졌다고 한다. 그는 ‘북한은 남한을 점령하자마자 체포와 고문, 처형을 시작했고 김일성 신격화에 나섰으며 서울 시민들은 기아선상에 허덕였다’고 전했다. 심 씨는 ‘누가 전쟁을 도발했고 그것이 어떤 고통과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 분명히 진실을 밝혀야 하는데도 일부 지식인들은 되도록이면 덮어두려 한다’고 개탄한다. 심 씨처럼 사명감을 갖고 6·25 증언록을 남겨 놓은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6·25를 겪었던 세대들은 속수무책으로 울분을 삼키고 있다.

다음 달이면 6·25의 포성이 멎은 지 꼭 64년을 맞는다. 이른바 정전 64주년이다. 한때 6·25를 북한과 남한 중 누가 일으켰는지를 놓고 치열했던 논란은 1990년대 중반 옛 소련의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것으로 정리됐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의 신경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쟁 명칭에서부터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방부는 1999년 ‘6·25전쟁’을 공식 용어로 정했다. 초중고 교과서도 6·25전쟁으로 표기한 지 오래다. 반면에 진보 진영 학계에서는 ‘한국전쟁’이라고 달리 부르고 있다.

한국전쟁은 외국의 시각에서 바라본 명칭이다. 한국에서 일어났던 전쟁이라는 뜻이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처럼 전쟁이 일어난 시점을 앞세우는 것이 그동안 일반적인 전쟁 표기 방식이었다. 한국전쟁 쪽을 선호하는 학자들은 6·25전쟁이라는 명칭이 발발 시점을 강조해 북한에 대한 증오를 내포하는 용어라고 주장한다. 6·25전쟁이라는 명칭이 싫어 한국전쟁을 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인식에는 6·25전쟁이 북한 침략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드러내길 꺼리는 정서가 깔려 있다.

좌(左)편향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도 북한의 남한 침략에 대해서는 ‘북한의 전면적인 공격으로 전쟁은 시작되었다’고 간단하게 기술하면서 상당 분량을 6·25 직전 남북한 간에 군사적 충돌이 그치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북한의 침략 사실보다는 그 이전에 남북한이 서로 으르렁댔던 상황이 더 중요하며 따라서 남북한 모두에게 전쟁의 책임이 있다는 식의 시각을 보여준다. 각종 사료에서 6·25가 소련 중국 북한이 기획한 침략 전쟁임이 분명히 드러났는데도 일부 학계에서는 북한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역사에 무지한 청소년들에게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역사교과서의 편향과 왜곡은 6·25전쟁뿐 아니라 근현대사 전반에 걸쳐 있다. 역사 교육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지금과 같은 여건에서는 잘못된 교육이 진행될까 걱정이 앞선다. 역사 교육 강화는 객관적인 역사 교육이 가능해진 다음에 이뤄져야 옳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