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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초봄 1 : 봄은 오는데......

 

 

강남의 초봄 1 : 봄은 오는데......

 

 

                                                                                                목련의 열정

 

 

지난주 금요일(21일)이 춘분이었고 토요일(22일)이 물의 날, 일요일(23일)이 기상의 날이었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 운동하기도 좋고 등산하기도 좋은 날씨다. 춥지도 덥지도 않으니 운동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인 듯하다. 가는 곳마다 목련, 개나리, 산수유 등 성급한 꽃망울이 탐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있고 나무 가지마다 새순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삶은 고달프나 봄은 어김없이 대지를 녹여주고 있다. 태양의 강렬한 열기가 지구를 덥히고 겨울내내 얼어 붙어 있던 땅이 서서히 녹자 식물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은 아직 얼어붙은 동토같다. 벌이는 별로요 취업도 어렵고 결혼도 어렵다. 주택대출로 많은 이자를 부담하며 깡통주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월세로, 이자로, 관리비로, 주부식비로, 교육비로, 교통비로 수입의 대부분을 지출하게 된다. 가진자들이 살아가기에 이처럼 좋은 세상이 어디있을까? 매일매일 노예처럼 살아가는 서민들만 힘들뿐이다. 그래도 가난하게 보이기 싫어 명품옷을 걸쳐야 되고 얼굴도 성형해야 한다. 그래야 대접받고 인정받으며 이성을 만날 수 있고 취업도 가능하고 돈도 벌 수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허상이지만 그것을 진실로 믿고 살아간다. 내면을 볼 혜안도 없고 실력도 없다. 더럽고 힘든 것은 하기 싫고 좋고 쉬운 것만 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백수다. 이 백수를 언제 벗어날 쥐꼬리만한 희망이라도 있을까? 아직은 빛이 보이지 않는다.

 

박대통령이 주관한 규제개혁을 위한 끝장토론이 청와대에서 열린 모습을 생중계 하는 것을 들었다. 대통령이 몸부림치지만 밑에서는 웃는다. 규제공화국의 오명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는 규제로 인해 기업활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국민들의 고충이 엄청나지만 그동안 여러 정권이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국회에서 법이 제정된다는 것은 대부분 규제일변도다. 그것이 공포되면 대통령을 포함하여 밑으로 내려갈수록 공무원들은 추가하여 각종 규제를 더 만들고 예규,내규,지침 등으로 더욱 세분화된다. 가이드라인을 정해주고 합리적인 정적선에서 과도한 질서문란 행위가 이루어질때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규제일변도로 확대 해석하여 하위 규제항목을 만들기 때문이라 한다. 책임회피를 위한 것, 감사에 지적받지 않기 위한 것, 타 법령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등이다. 깨지지 않는 철밥통을 먼저 깨야만 될 것이다.  

 

  

 

 

영겁의 역사 속, 순간에서 있는 우리들

 

역사를 보면 영웅이 나타나 위업을 이루고 자만에 빠져 있다가 새로운 영웅이 나타나 새로운 시대를 열듯이, 나라가 일어나 흥망성쇠를 겪다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탄생하듯이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혁명가와 영웅들에 의해서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였다.

 

유럽이 로마의 문화 영역이라면 동양은 중국의 문화 영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든 정치, 경제, 문화의 뿌리와 기원이 이러한 동서양의 역사적인 두 강대국에 의해서 각각의 문명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유럽문명권에 병행하여 페르시아는 별도로 중동의 아랍인들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두 세력이 서로 쟁패하면서 어느 한쪽이 무너져 병합되지 않고 별도로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힘을 바탕으로 세력을 유지하였기에 가능하였다. 이에 비해 동양권의 몽고는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하여 넓은 대제국을 건설하고 세계를 지배하였으나 지금은 그 흔적을 몽골 사막에 국한되어 남아 있다. 요나라와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인 여진족, 금나라를 세운 거란족의 민족과 문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국가가 사라지면 민족도 문화도 같이 사라지는 법, 정복 민족에 동화되고 병합되어 민족 고유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원전 지중해 일대는 이집트 라일강 일대, 유프라테스강 일대에서 일어난 고대문명을 발판으로 지중해 문명권이 고대 그리스를 포함하여 찬란한 융성을 이루었으나 그리스 문명권이 페르시아와 패권전쟁을 벌이면서 국력이 분산되어 갔다. 동시에 북아프카의 카르타고가 지중해를 장악하고 무역으로 번성을 누리던 시절, 고대 로마가 태동하기 시작하여 카르타고와 재중해 패권을 두고 3차에 걸친 포에니전쟁을 벌이게 된다. 당시 2차 포에니전쟁에서는 이베라아 반도 식민지 총독이었던 한니발 장군이 9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혹한의 겨울 알프스를 넘어 로마 본국의 이탈리아 반도를 침공하여 16년 동안 칸내전투 등 종횡무진하면서 로마군을 무찔렀으나 강력한 로마연합체제를 깨뜨리지 못했다. 지구전으로 대응한 로마와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자 로마군의 젊은 장수 스키피오 장군이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본국을 침공하자 이탈리아 반도의 한니발은 급거 귀국하여 스키피오의 로마군과 자마평원에서 일전을 벌이게 되는 데 바로 자마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한니발은 일생일대에 마지막 한 번의 패전을 하게 되는 데 그후 카르타고는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로마는 카르타고와 벌인 300여 년 동안 벌인 3차례 포에니전쟁 결과 로마가 승리하여 로마는 지중해 일대에서 최강자로 군림하게 되었고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다. 당시 알프스 이북 유럽지역 일대는 밀림과 맹수, 원시부족이 살아가던 암흑기였다.

 

로마문명은 유렵문명의 기원이기도 하다. 시이저에 의해 갈리아(오늘날 중부 유럽 일대)정벌이 이루어졌고 영국까지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서로마가 멸망하고 동로마가 지속되면서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고 십지군 전쟁, 중세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문예부흥을 이루었고 증기기관차 발명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각국은 원료공급과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식민지 개척에 노력하였으며,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정복은 유럽 문명을 더욱 왕성하게 발전시켰다. 세계 패권은 초기에는 역내무역으로 성장한 네들란드에서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포르쿠투칼으로 넘어가 주도하다가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해군에게 패하면서 세계패권은 영국으로 넘어갔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렵의 각국가는 각자 식민지 개척에 혈안이 되었고 그것은 국력의 척도가 되었다. 신대륙 미국에는 유럽에서 이주한 자들이 원주민 인디언을 몰아내고 영국과 독립전쟁을 통해 미국을 건설하였다. 세계 1, 2차 대전은 미국이 세계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오늘날의 세계판도를 이루었다.

  

 

동양의 중국은 기원전 21세기 이전까지 원시시대를 거쳐 하나라-상나라가 기원전 1060년까지 전개되었고 뒤이은 주나라가 서주와 동주로 나뉘면서 기원전 256년까지 존속하였다. 서주가 망하면서 춘추시대가 전개되었고 전국시대가 기원전 221년까지 전개되었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 진시황제는 강력한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했으며 북방의 흉노족을 차단하기 위해 불가사의한 역사적 걸작품인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진나라가 망하고 항우와 패권을 다투던 유방이 기원전 206년 한나라를 세우고 봉건제와 군현제의 장점을 살린 군국제로 한왕조의 기틀을 잡았다. 전한의 한무제는 흉노족을 토벌하면서 한나라의 전성기를 구가하였고 기원전 108년 한무제는 5만 대군으로 고조선을 멸망시켰다.

 

전한은 무제 이후 내부 권력다툼으로 서서히 무너져 갔고 신나라가 잠시 들어섰으나 후한 광무제에 의해 다시 후한이 세워졌다. 이후 한나라는 다시 기원후 220년까지 존속되었다. 이후 한나라는 서한, 동한으로 나누어 존속하다가 위, 촉, 오의 삼국시대를 맞아 영웅들의 쟁패를 이루는 시대가 280년까지 전개되다가 진나라로 통일을 이룬다. 진나라는 서진과 동진으로 나누어 전개되다가 5호 16국시대가 439년까지 계속되면서 극도의 혼란한 시대가 전개된다. 이후 남북국시대가 581년까지 남쪽은 송-제-양-진, 북은 북위, 동위, 북제, 서위, 북주가 혼란스럽게 들어섰다가 수나라 양제에 의해서 581년 수나라가 성립된다.

 

수나라는 과도한 팽창정책으로 고구려를 무리하게 침공하였고 내부적인 엄청난 토목공사와 권력다툼으로 체제가 무너지면서 창업 37년 만에 당나라 이연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618년 당이 성립된다. 

 

당나라는 수나라의 멸망을 교훈 삼아 안으로는 중앙집권제를 확립하고 밖으로는 영토를 확장하여 당왕조 3백년의 기초를 튼튼히 하였다. 당태종은 수차례 고구려를 침공하였으나 실패하였으나 결국 당고종 시대에는 한반도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907년까지 지속하다가 5대 10국으로 분리되어 979년까지 전개되다가 960년 조광윤에 의해서 송나라가 성립된다.

 

송나라 태조 조광윤은 무신들에 의해 혼란한 5대 10국 시대를 경험한 결과 무신들에 의한 나라들의 무질서한 흥망을 본 사람인지라 문치주의를 내세우며 무신을 천대하고 중앙집권화에 노력하였으나 많은 관제와 제도가 문제점을 낳았다. 문치를 숭상하던 송나라는 군사력의 허약함으로 거란족의 요나라, 티베트계 탕구트족의 서하, 여진족의 금나라가 연이어 일어나 중원을 위협하자 북에서 남으로 밀려나 버티다가 몽고가 침공하자 결국 1279년에 멸망하고 말았다.

 

몽고는 역사상 유래를 찿을 수 없는 세계적인 대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이 세운 나라로 징기스칸 사후 권력다툼이 일어나 제국이 분열되었고 본국에는 쿠빌라이가 후계자 싸움에서 승리하여 중국을 정복하면서 원나라를 세우고 금나라와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 다음 30년 동안 고려를 수차례 침공하여 복속시켰다. 명나라가 일어나면서 점차 부패해가던 원나라는 기황후 시절 명의 압력으로 북으로 쫓겨갔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원나라의 정치가 문란하고 국력이 쇠진한 틈을 타 한족국가 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1368년 명나라를 세워 중국을 통일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전란에 시달려온 백성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감세와 면세를 실시하고 수리사업과 개간사업을 추진하여 생산촉진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원나라 지배 아래 만연된 여러 가지 몽고풍의 제도와 풍습등을 씻어내고 한족의 문화를 재건하기에 힘썼다.

 

명나라는 300여년 동안 전개되다가 국력이 약해지고 내부적인 붕괴조짐이 일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이자성이 반란군을 통합하여 북경을 점령하고 명왕조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만주에서 일어난 여진족의 청나라는 이자성을 몰아내고 청왕조야말로 명나라의 뒤를 승계한 중국의 전통 왕조임을 선언하였다. 1644년 제 4대 강희제 때에 이르면 오삼계등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중국을 완전히 통일하면서 중국 지배를 공공히 하였다.

 

이후 청나라는 내부적인 부패와 권력다툼, 팔기군의 무능이 점차 확산되면서 국력이 쇠약해졌고 태평천국의 난 등 각지에서 반란이 속출하는 등 치세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1840년에 일어난 아편전쟁은 중국 역사상 일대 전환점이자 중국 근대사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로 변한 중국은 점점 목을 조여오는 외세의 위협에 대처하고 효과적으로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온 힘을 기울였다. 중국은 양무운동, 변법자강운동의 실패 이후 마침내 손문의 신해혁명으로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성립되었고 장개석에 의해 북벌을 전개하여 통일을 기하기 위해 군벌과 공산당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만주침략과 본토 침략으로 항일전쟁과 동시에 국공내전을 전개해야만 했다.그러나 공산당 세력과 2차례의 국공합작을 전개하면서 대일항쟁을 벌였으나 국민당의 무능과 군벌의 부패 등으로 인민들로부터 배척당하자 수세로 밀리면서 공산당 세력이 장개석을 포함한 국민당군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중국을 통일하였다.

동서양의 긴 역사 속에 태어나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 개개인 누구나 한순간 찰라에 불과한 삶을 살다갔다. 영웅이었던 병졸이었던지 부자로 살았던 가난한 사람으로 힘들게 살았던 누구나 찰라의 삶이었다. 대부분 나라는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역사에는 영원한 흥함도 영원한 쇠함도 없이 시대와 인물에 따라 흥망성쇠를 반복하여 왔다. 지혜로운 지도자를 만나면 배가 불렀고 태평성대를 누렸으나 무능한 지도자를 잘못 만난 백성들은 나라가 망하고 노예로 끌려가거나 천민이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인간은 패자에서 승자로 탈바꿈하는 순간부터 타락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정복당한 약소국의 백성들은 대부분 피지배민족이 되어 대를 이어 노예가 되어 살아야만 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수한 전쟁터에서 이슬처럼 사라져 갔다. 목숨을 부지하고 살기만 해도 행복한 삶이었다. 좋은 것도 원치 않았고 넓은 집도 필요없었다. 가지면 가질수록 수탈당했고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면 현대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소나무와 새벽달

 

 

만남과 이별

 

아직 양지쪽에는 생명력이 강한 잡초들이 벌써 피어나고 있다. 봄이 벌써 성큼 우리 곁에 다가온 모양이다. 시대와 세월을 초월하여 만남과 이별은 우리 모두에게 삶의 한부분이 되고 있는 듯하다. 우리들의 삶에서 만남은 순간이나 이별은 영원이다. 우리들이 인연을 만들고 사랑을 나누며 정을 쌓고 다투면서 살아도 같이 얼굴보며 살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한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혈육이라도 만나지 못하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얼굴보며 대화하고 목소리라도 듣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행복이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는 마음과 태도가 중요할 것이다.

 

지난주 송파구에서는 광란의 버스가 질주를 하다가 여러 대의 택시를 받고 신호대기 중이던 버스까지 들이받는 바람에 한 여대생이 안타까운 죽음을 당했다. 사고를 낸 버스기사도 현장에서 사망한 탓으로 그 원인을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버스 엔진 결함인지 운저기사의 발작적인 병세인지는 몰라도 너무나 안타까운 사고였다. 사망자의 유가족은 그녀의 시신을 장기기증한다니 울먹이면서 이야기하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다.

 

만남에서 이별은 우리 인생사에서 누구나 겪는 아픔일 것이다. 정들었던 전우, 제자, 스승, 친구, 동기생, 친척, 흠모하던 멘토, 시대의 지식인, 존경하던 지도자를 포함하여 혈육인 가족이나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로 같이 지지고 복으며 앙탈부리고 싸우고 말을 안들어도 막상 자신의 곁을 떠날 때는 누구나 그동안 정들었던  마음이 편치는 못할 것이다. 군대간 자식의 죽음, 집을 나간 후 행불, 삶에 대한 비관으로 자살, 본인의 잘못이 없는 예기치 않은 우연한 교통사고, 지진, 폭설, 혹한, 강풍, 해일, 화산 폭발, 붕괴, 화재, 익사 등 각종 재난재해로 인한 사고사, 음주운전 사망사고, 집단 혹은 개인 폭행치사, 성폭행, 인신매매, 암매장, 살인강도, 방화살인 등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이나 연인이 헤어질때, 사랑하던 부모나 형제자매가 이 세상을 달리할 때, 반려동물이 내 곁을 떠나야 할 때, 우리는 누구나 정이 들었던 관계로 쉽게 보내지를 못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요 정서다. 물론 세월이 지나면 그 아픔이 자연치유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말도 사실은 거짓말이요 사랑하기에 보내준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상대가 무언가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신의 기준에 미달하였기 때문에 보낸 것이고 포기하고 버린 것이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부모는 쉽게 자식을 버리지 못한다. 태어난 과정이 어떠했던 태어나서 고생고생하면서 키운 자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이유던지 간에 집을 나간 자식을 그리워 하는 부모의 심정은 동일할 것이다. 동네 골목길을 자주 처다보게 되고 불현듯 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이 자식이 환상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마음은 정들었던 반려견이나 애완견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으로 시집보낸 동남아 국가의 외국여성들이 친정을 방문하면 부모가족들이 모두 마중나와 하나같이 반기며 부동켜 안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은 피부색갈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지구상 어느 민족이라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래서 타인을 깔보고 무시하고 외국인에 대하여 피부색과 모양이 다르다고 멸시하고 왕따시키는 사회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가 없다.

 

 

 

 

옛날의 우리 부모들은 태어난 장애우를 위해 평생 가슴에 한을 품고 정상인으로 고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신체던 목숨이던 무엇이던지 던질 각오가 되 있는 것이 부모라면 요즘은 시대가 변하면서 장애아기를 몰래 갖다 버리는 부모가 많다고 한다. 또 자식도 중풍이나 몹쓸 병에 걸린 병든 노모를 양로원에 보내거나 길바닥에 버리는 자식이 많다고 한다. 대부분 맞벌이를 해야 하는 젊은 부부가 어린 자녀도 돌보기 힘든 시대에 병든 부모를 모시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부모가 가진 재산이라도 얼마간이라도 있다면 몰라도 다 물려주고 빈털털이가 되는 순간부터 부모는 부모가 될 수 없다. 멀쩡한 부모가 아들 부부를 대신하여 자식집에서 손자를 돌보다가 병에 걸리는 경우도 많고 며느리가 부모에게 수고와 이해는 커녕 조금이라도 손자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눈을 홀끼고 막말을 하는 시대다.

 

그러니 병든 부모를 누가 모시려고 할 것인가? 그래서 같은 고생을 하면서 키운 자식이 장가를 가면 남보다 못한 아들로 변하는 게 요즘 세태이다. 그래서 병든 부부가 자식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혼자서 병수발을 들다가 지친 나머지 부부가 자살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되고 있다. 또 자식 부부가 부모를 양로원이나 기도원에 보내는 순간부터 죽음의 자름길로 급속도로 빨리 가게 된다.  

 

그래서 오랜 세월 같이 지내면서 정든 사람이 떠난다면 그 사람은 떠나지만 정든 마음은 쉽게 정리하지를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사랑했던 부모, 자식, 형제자매, 반려견 등이 싸늘한 죽음으로 나타났을 때, 그 이마에 손을 얻는 순간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이 온 몸에 전해올 때 전율이 흐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피가 통하지 않는 육신은 금방 얼음처럼 차가워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따뜻한 몸을 유지하는 것은 심장이 뛰면서 신체에 골고루 뜨거운 피를 순환시키지만 심장이 멋는 순간부터 육체는 점점 차가워진다. 그래서 사람에게 삶에 대한 열정이 식으면 그 사람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누구나 자신과 자신의 가문이 자손대대로 부귀영화와 행복을 누리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거나 피해를 주고 사기를 치고 폭행하고 심지어 권력과 재물을 이용하여 반대파를 제거하거나 약자에게 위에 군림하며 수탈하며 가문의 부귀영화를 누리려다 새로운 세력에 의해서 제거되고 그 새로운 세력이 다시 부패하고 썩게되면 다시 새로운 혁명 세혁이 나타나 제거하는 과정을 반복해온 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였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기황후'는 세계 최강국 원제국의 황후까지 올랐고 자신의 아들이 원 황제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지만 원나라를 멸망의 길로 끌고 갔고 기씨 가문을 멸망시킨 공민왕을 제거하고 가문의 복수를 위해서 자신의 조국 고려를 침공하다가  최영장군에 의해 격퇴되어 실패했다.

 

 

 

이제 옛날의 정겨움이나 소박함, 그리고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시대는 사라지는 듯하다. 디지털 세대를 살면서 아날로그의 서정이 한 번쯤 생각나기도 한다. 손가락으로 꼭꼭 눌러쓴 삐뚤어진 글씨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진정성은 디지털 자판기로 쓴 편지보다 또 다른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함께하는 공동체적 체험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저녁시간 아버지와 아들이 대청마루에 앉아 오늘 일어난 얘기를 나누며 찐 감자를 먹던 시절의 추억은 소설의 한 장면으로만 만날 수 있는 대목이 됐다. 안방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휴대폰 게임에 열을 올리고 있고, 아이는 컴퓨터의 채팅 대화에 정신줄을 놓고, 초등학생 아이는 새로 개발된 휴대폰 게임놀이 다운로드를 위해 눈이 충혈된다.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근원에 닿는 질문을 던져보면 ‘함께’라고 주저 없이 말했던 것이 고루한 옛날전통으로 치부되고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의 뿌리로 더듬어 올라가면 이 모든 것들이 문명의 이기인 과학이 발명해준 증기기관과 전기가 만들어준 환상이고 일시적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지구상에서 전기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문명의 삶이라고 칭하는 현대인의 생활패턴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시인이라고 무시했던 이들의 살아가는 방법이 모범답안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공동체적 체험이나 이를 통한 사랑의 감정이 점점 무뎌지고 있다. 사랑은 없어도 살지만 휴대폰 없이는 못살겠다고 하는 세태가 현재의 주소다. 집은 없어도 살지만 차 없이는 살 수 없어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생활방식이다. 근원의 삶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고 즉각적인 현상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의 반영이다. ‘내가 죽고 나면 지구가 폭발하든, 사라지든 무슨 상관이 있어’라며 즉물적이고 몰시간적인 가치관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상을 주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