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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늦겨울 5 : 자본주의 비탈에 서다

 

 

강남의 늦겨울 4 : 자본주의 비탈에 서다

 

 

                                                                                 삼성전자 본사 전경

 

지난 토요일은 영하 1도, 주간 날씨를 보면 일요일부터 영상권으로 다음주 내내 영상으로 기온이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봄이 본격적으로 다가옴을 느낄수 있다. 일요일 아침에는 미세먼지가 서울 하늘에 가득한 상태로 공기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마스크를 단단히 하고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매연과 미세먼지가 가득한 서울 하늘 아래서 용케도 살아가고 있는 천만 서울 시민들이 대견하다. 국력의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 모여 있는 한국은 휴전선이 불과 수십 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북한의 장사정포, 스키드, 대포동.노동 등 각종 미사일 사거리 안에 위치하여 있어 언제라도 북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 그래도 삶의 터전인 서울에서 살고 있는 천만 서울 시민은 이런 위협에는 만성이 된 듯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다.

 

그래서 서울 시민들은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그런 위협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자살, 교통사고, 폭행, 질병, 사고사 등으로 죽는 사람이 세계적으로 상위권을 점하고 있는 현실을 보더라도 북한의 위협쯤은 아무것도 아닌 듯하다. 우리는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정신병자처럼 절대로 북한이 서울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로 하루하루 생존과 죽음의 사이길로 묵묵히 걸어가는 정신줄을 놓고 무감각한 동물처럼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죽은 남편이 부활하기를 기대하며 죽은 시체를 방부처리하고 수 년째 한집에서 살아온 방배동 어느 여자약사 사건이 생각난다. 우리는 그녀처럼 허망한 꿈과 기대에 젖어 현실을 잊고 광신도처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요일 새벽에는 잠원성당 앞에 두부파는 아줌마가 있다. 오늘도 성당 앞 도착하니 멀쩡한 중년 거지가 상당 입구에 앉아 있고 변함없이 아줌마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두부 두 모 주세요. 요즘 날씨가 좀 풀려서 다행이네요."

"네~~에~~"

 

비닐봉지에 싸주는 두부를 바구니에 담고 4천원을 지불하고

 

"아줌마 많이 파세요~~"

"네~~에~~"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 두부 두 모를 바구니에 담고 다시 출발했다. 아마 아줌마도 이제 습관이 되어 이런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두부 두 모를 사가는 나를 은근히 기다리는 듯하다. 아줌마는 두부를 포함하여 된장, 국수, 묵 등을 파는데 제조하는 중년 나이의 사람이 실어다 주면 아줌마는 단지 팔기만 한다고 한다. 아마 무자료 판매로 현금을 받고 별도로 세금을 내지 않고 파는 모양이다. 파는 만큼 실적에 따른 수고비를 받는 다고 했다. 아마 매출이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물건을 모두 팔면 대략 50만원 이상이 될 것 같다. 또 경남 아파트 근방 성당 앞에도 다른 아줌마가 파는 데 같은 사람이 공장에서 물건을 제공하여 파는 듯하다.

 

아줌마는 작년 이전에 어느날 십대 딸이 같이 나와서 아줌마 새벽일을 도우고 있었는데, 어느날  '딸이 대학 들어갔느나'고 물었더니 아줌마는 힘없이 '지금 재수를 하고 있다'고 했다. 세부적인 가정사를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추측컨데 남편도 없이 딸만 데리고 키우면서 살고 있는 듯하다. 번듯한 벌이 없이 딸을 키우느라 이 아줌마가 얼마나 힘들 것인가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명절이나 년말 등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일요일 새벽에는 항상 어김없이 이곳에서 몇 년째 두부를 팔고 있다. 지난번 세모녀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이런 아줌마가 복지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된다. 지금 생각하니 추운 겨울날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아니면 년말쯤 불우이웃 돕기라도 좀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삼성전자 본사 입구

 

 

강경우익으로 치달으며 주변국의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던 일본 아베총리가 갑자기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발언을 했는데, 아베 일본 총리의 이 발언을 박대통령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뜻을 토요일(15일) 밝혔다.

아베총리의 이러한 발언으로 그동안 독도분제, 위안부 문제, 교과서 역사왜곡 문제, 신사참배 문제 등으로 경색국면으로 치닫던 한일간에 봄이 오는 것처럼 서서히 훈풍이 불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발언이 진심에서 우러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두가 미국의 조정역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박대통령의 단호함을 문제삼는 것보다 과거사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일본이 먼저 양보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미국의 중재노력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일이 서로 감정싸움에 휘말리고 있는 한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은 공조하기 힘들다는 전략적인 판단에 따른 것일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 중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한 그 틈바구니 속에서 새우꼴이 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공조하여 대중국 포위전략에 동참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이 지난 역사에 대한 정리문제로 감정싸움을 하고 있는 한 두터운 공조가 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최근 한일간의 화해주문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들이 가장 우려하는 일본의 핵무장을 미국이 묵인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일방적으로 불평등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철저한 통제로 일관하고 있는바, 미사일 개발 통제는 물론 핵물질 재처리 문제까지도 철저한 통제를 가하고 있으며 기타 제반 불평등 조약을 일방적인 강요를 당하고 있다. 원전에서 나오는 각종 핵물질을 이제는 저장할 공간도 없고 배출되는 양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을 우려하여 실시간으로 강압적인 태도와 통제로 일관하고 있으며, 뿐만아니라 미군의 노후장비를 처리하는 장소로, 미군을 훈련시키는 장소로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군 장비 도입 후 각종 장비 부품과 정비 소요 비용을 엄청나게 부풀려도 아무런 소리도 못하고 구매해야 하는 입장이다. 또 각종 다국적 기업을 포함하여 외국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엄청난 국부가 유출되고 있다. 론스타 등 기업사냥꾼들이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마음껏 장난을 치고 엄청난 이득을 챙기고 빠져나가도 말 한마디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현실이다. 한국의 국익이 줄줄새고 있는 현실을 언제까지 감수하고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볼 일디다.

 

이런 처사는 약 600여년 전 몽고가 지배하던 100년 동안 고려가 당하던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중국 명이나 청나라는 조공 이상을 무리하게 조선에 요구하지는 않았다. 일제의 강압수탈정책을 비롯하여 소련의 북한지배와 비교하여 볼 때 현재의 미국이 한국에 대하는 태도는 우방이라는 미명하애 동맹국의 국익을 착취하는 형태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미국의  일방적인 처사는 모두 북한이라는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서 적절히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전력수준을 제한하고 국방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한국 정권이 미국에 절대 의지하도록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사시 한국 정권의 존손여부까지도 그들 손에 쥐고 있다는 점을 은근히 부각시키며 불평등을 감수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등한 위치에서 우리들의 국익을 챙기며 자주국방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를 식견있는 한국의 지도층이고 지식인이라면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 새벽 풍경

 

 

한반도에는 두 개의 체제가 존재하는 데 바로 북한의 공산주의와 남한의 자본주의다. 종전과 더불어 일제 관동군의 무장해제를 담당하기로 했던 소련이 만주를 점령하고 빠른 속도로 남진하자 대본영 직속 부대를 무장해제 하기로 한 미군이 늦게 한반도에 상륙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자 미소 실무자들에 의해 잠정적으로 급하게 그어진 선이 바로 38도선이었다. 당시 38도선이 그어지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소련에 의해서 석권되었을 것이고 지금쯤은 비록 통일된 상태로 김일성 후손인 김씨 일족에 의해서 공산화되어 굶주림과 폭압 속에 비참한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소가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누어 점령하면서 북에는 소련식 공산주의 정치체제가, 남한은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 섰고 각각 반세기 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고 있다. 다행히 남한은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여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해 나가는 과정에서 남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하에 숨어 있던 조선공산당 등 좌익세력에 의해 연합국의 신탁통치안에 대해 찬탁과 반탁 등 좌우혼란이 극도로에 달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좌익폭동이 반발함은 물론 제주 4.3폭동, 국군 14연대의 좌익세력에 의한 여순.순천 반란사건, 대구폭동 사건 등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시기를 겪다가 김일성에 의한 민족통일전쟁이라는 미명아래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소련의 지원하에 일어난 대리전쟁인 한국전쟁 3년 동안 또다시 한반도는 수많은 인명과 재산이 무참하게 사라졌고 참전한 미군을 포함한 수많은 유엔군이 목숨을 일어야 했다. 불행히도 통일을 앞 둔 상황에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은 다시 물러나 현재의 휴전선에서 지리한 공반전을 펼치다가 결국 휴전조인이 되고 전쟁은 끝났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전후복구에 전념하는 한편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장기집권을 확책하다가 3.15 부정선거 등 국민적인 분노를 불러 일으켜 4.19 혁명이 일어났고 결국 이승만이 하야하면서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고 말았다.

 

혼란의 극을 달리던 사회를 보다못한 군부가 박정희에 의해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경제개발에 매진할 결과 오늘의 풍요를 이루는 바탕을 이룩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민주화를 이루었고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자리메김하게 되었으며 주변국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풍요롭게 살고 있다. 중국교포를 포함하여 동남아. 중동, 러시아, 유럽, 미국, 아프리카, 남미까지 한국 사회를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여 외국인들이 물려들고 있다. 한국으로 시집오려는 동남아 여성 등 외국 여성들이 줄을 서고 100만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인들이 꺼리는 각종 힘들고 더러운 직종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노예처럼 악착같이 밤을 지새고 있다. 2만이 넘는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인 풍요 뒤에는 사회정신적인 개혁이 뒤따르지 못했고 돈이면 무엇이던지 다 되는 인간존엄성이 사라진 비정상적인 병리현상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어 자본주의 말기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자생적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미국에 의해 심어진 자본주의다. 우리는 시민혁명이나 산업혁명을 거치치 않았고 합리적인 절차와 단계를 거치지 않은 도입자본주의, 주어진 자본주의에 해당된다. 해방 후 미국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자본주의가 강제되면서 전통적인 사상과 정신은 점차 사라지게 되엇고 제 것을 무시하고 미개한 문화로 치부하고 멀리하기 시작하였고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져 인륜이 사라진 사회로 변질되었고 그런 사회체제에 쉽게 적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자본주의 뿌리와 발전단계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돈만 많이 벌면 최고요 자신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자본주의로 착각하고 있다. 돈이면 무엇이던지 할 수 있다는 망령에 사로잡힌 저질자본주의 사회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촌놈이 로또 대박을 터뜨려 갑자기 부자가 되어 큰 저택에 외제차를 굴리며 명품 옷과 구두 등 외모를 꾸미고 가난한 사람들 앞에 돌아다니며 거드름 피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이 동남아 등 외국으로 골프나 보신여행을 나가서 저지르고 있는 갖가지 추태와 나라망신 행동은 상상을 초월한다. 통계치를 보면 로또 1등 당첨된 사람 대부분이 패가망신하여 알거지가 되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가 그런 길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심히 걱정이 된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명치유신을 계기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며 정치.사회.문화적인 개혁을 이루면서 경제적인 부를 이루었고 국제적인 양육강식 시대인 1900년대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태동하면서 식민지 쟁탈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자 한반도를 식민지로 강점하기 위해서 청일, 러일전쟁을 일으켜 세계가 놀라는 승리하였고 그후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하여 식민지로 삼아 강압통치로 일적.물적으로 철저한 수탈로 일관하면서 뒤이어 만주침략, 중국침략을 시도하였다.

 

일제의 팽창에 두려움을 느낀 미국이 원유수출 중단 등 경제통제를 가하자 이에 반발하여 일제는 진주만 공격과 동시에 동남아로 진출하여 필리핀, 말레이, 싱가포르, 버마, 뉴기니아 등을 포함하여 태평양 제섬으로 진출하자 미국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산호해 해전, 미드웨이 해전을 고비로 일제의 해군 주력 항공모함들이 수장되면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전세는 점차 미군측으로 기울기 시작하였고, 레이테 해전, 필리핀 상륙, 오키나와 상륙, 일본 본토 공습 등 전쟁은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던 중 일본본토 상륙에 많은 인명의 살상을 우려한 미국이 새로 개발한 원자탄 두 방을 히로시마, 나카사끼에 터트리자 일제는 원자탄의 엄청난 피해규모에 놀라 전일본민족이 공멸할 수도 있다는 판단아래 일본 천황이 무조건항복하면서 전쟁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패전을 당하였지만 국체를 보존하여 나라가 망하지도 않았고 두 동강 나지도 않았으며 신탁통치도 받지 않았다. 미군정 체제하에서 전후복구에 전념하던 일제는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이라는 전쟁 특수기를 맞아 일본 경제는 급속하게 부흥하였고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빠른 성장을 거듭하였다. 참으로 운도 좋고 명도 길고 축복받은 민족이 일본 민족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변국에 갖가지 알랄한 못된 짖을 다해도 저런 축복을 받으니 말이다.

 

일본의 자본주의 체제와 시스템은 견고하고 우리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정도 단계와 절차를 거치면서 성장한 자본주의 국가이다. 훙내내고 외국문물을 받아들이기를 좋아하는 일본은 서구나 미국과 대등한 자본주의를 거치면서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였고 태평양 전쟁 당시 항공모함 건조 수는 미국을 앞질렀고 제로센 전투기는 미군 무스탕 전투기를 성능을 앞질렀다. 그래서 미군 전투기는 일제의  제로센 전투기를 보면 도망치기 바빴고 공중전을 벌이면 격추되는 것은 대부분 미군 무스탕 전투기였다. 당시 어뢰도 일제 어뢰가 성능이 뛰어나 함선 격침시 미군이 10개 정도 어뢰가 공격해야 침몰되었으나 일제 어뢰는 3~4개 정도면 침몰이 가능하였다. 그래서 미국은 일제가 알류산 열도 공격시 불시착한 일제 제로센 전투기를 분해하여 연구한 결과 전쟁 말기에는 일제 제로센 성능과 비슷한 전투기를 생산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일제는 국민들이 단합하여 국가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일치단결하는 집단적 성향이 강한 민족이다.

 

그래서 변질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과연 자본주의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발전단계를 새삼스럽지만 다시 살펴보고 현재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미래의 새로운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현재의 신자유주의가 가야할 방향은 무엇인지, 변질된 자본주의를 합리적인 새로운 사상을 가진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해볼 것이다. 

 

 

 

 

                                                                                  강남역 8번 출구

 

자본주의 발전 단계

 

 

자본주의 이론 변천

 

자본주의 정의

자본주의(資本主義, 독일어: Kapitalismus, 영어: capitalism)는 재화사적 소유권사회 구성원의 양도 불가능한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사회 구성체이다. 또는, 생산 수단을 가진 자본가 및 기업가 계급이 그 이익 추구를 위해 생산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사회 경제 체제로 정의하기도 한다. 재화의 사적 소유권에 대한 인정은 곧바로 재화의 매매, 양도, 소비 및 이윤의 처분 등에 대한 결정을 개인에게 일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사적 소유권을 기반으로한 경제 체제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경제 체계에서는 상품 또는 용역가격, 투자, 분배 등이 모두 시장 경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고대에 이미 일부 자본주의적 특징을 보이는 조직이 존재하였으며 중세 말에는 상업 자본이 발달하기도 하였으나, 현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제도들은 대부분 16세기에서부터 19세기까지 영국에서 발달한 것들이다. 서양에서는 봉건 제도의 종식과 함께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사회 구성체로 자리잡았다. 20세기에 이르러 전 세계적인 산업화가 일어났고 자본주의가 세계 전체에서 지배적인 경제 체제로 자리잡았다.

 

자본주의는 세계 각지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수정되고 발전해 왔으며, 사회주의혼합 경제를 이루기도 하였다. 20세기에 걸쳐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공산주의 국가 경제 체제와 대립하였다.

 

 

관점

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은 시간에 따라 진화하여 왔다. 시장, 재산권, 투자 등과 같은 자본주의의 하위 요소 역시 시대에 따라 그 개념이 변화하여 왔다.

 

 

고전 경제학

 

 

고전경제학의 대표적 이론가, 애덤스미스

 

 

애덤 스미스로 대변되는 고전경제학은 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을 정립시킨 경제 사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데이비드 흄과 같은 초기 사상가들과 더불어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데이비드 리카르도, 장바티스트 세,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고전경제학자들의 생산, 분배, 교환 등에 대한 이론은 오늘날까지도 자본주의 경제의 기반이 되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 출간한 국부론을 통해 중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유방임 체계"를 옹호하였다. 이로 인해 스미스는 고전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스미스는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로 시장의 기능을 설명하였고, 절대 우위의 개념을 들어 무역의 이점을 설명했다. 한편, 데이비드 리카르도는 1817년 《정치경제학 및 세무 개론》을 출간하여 비교 우위의 개념을 통해 무역의 이점을 설명하고 자유 무역을 지지하였다. 고전경제학은 세이의 법칙을 근거로 공급 중심의 경제 정책을 주장하였다.

 

고전경제학은 자유주의적 신념에 따라 정부의 시장 관여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자유방임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정부의 역할을 야간 방범 정도로 제한하는 이른바 야경국가'로 제한하였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카를 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가이다. 그는 1848년공산당선언》을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공저로 발표한 이래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였으며 영국으로 망명한 후 고전경제학의 연구에 몰두하여 이를 비판한 《자본론》을 집필하였다.

 

카를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 《자본론》에서 자본주의란 생산 과정에서 사적 생산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생산물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생산양식으로 정의하였다.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은 역사상에 존재하는 생산양식은 자체 모순에 의해 붕괴를 거듭해 왔으며 자본주의 역시 이러한 역사적 생산양식 중의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정의(定義)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존재하는 계급이 생산수단의 소유를 기준으로 브르주아(유산계급)와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으로 양분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고전경제학이 주장하는 자유재산권의 자유만을 의미할 뿐, 노동자에게는 일하지 않으면 굶주릴 자유에 불과하다고 혹평하였으며, 멜더스의 《인구론》이 말하는 잉여 인구란 자본주의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잉여 노동(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산업예비군)일 뿐이라 비판하였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고전경제학에 대한 비평은 흔히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정부의 보이는 주먹에 의해 유지된다."는 말로 요약된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마르크스의 주장을 기초로 하는 경제학이다. 화폐, 가치, 독점, 생산관계, 자본주의 단계론 등이 주요 논점이며 루이 알튀세르 등의 학자가 널리 알려져 있다.

 

 

 

베버의 경제학

 

 

 

1917년의 막스 베버

 

 

사회 과학의 몇몇 분야는 19세기 독일의 사회 이론가 막스 베버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베버는 생산보다는 시장교환이 자본주의의 본질적 요소라고 주장하였다. 베버는 길드에 속한 장인도제의 관계나 장원영주농노의 관계와 같은 노동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이전의 경제 체제에 비해, 자본주의가 보다 능률적이고 높은 생산성을 이룰 수 있는 근거로 시장과 교환을 들었다.

 

베버는 1904년에서 1905년 사이에 집필된 베버의 저서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자본주의가 전통적인 경제 활동의 양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베버는 전통적인 경제 체제에 대항하여 자본주의적인 교환이 이루어지고 근대 자본주의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합리성을 추구하는 "정신"을 들었다. 이러한 정신이 사회 전반에 점차 확산되어 법률, 임노동의 자유 등이 확산되고 공공의 영역과 사생활이 명확히 구분되게 되었다(노동자의 삶에서 집과 작업장이 분리됨으로써)는 것이다. 따라서 베버는 마르크스와 달리 자본주의의 형성이 생산 수단의 변화가 아닌 정치적 문화적인 영역에서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가의 등장이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베버는 이러한 정신이 개신교, 특히 칼뱅주의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

베버에게 자본주의는 인간의 역사상 가장 발달한 경제 체계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사회주의에 대해 반대하였다. 또한 베버는 관료제, 주식회사와 같은 현대 사회의 특징이 자본주의의 발전에 의해 갖추어졌다고 평가하였다.

 

 

독일 역사학파 및 오스트리아 학파

 

 

 

루트비히 폰 미제스

 

 

독일의 역사학파의 관점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시장을 위한 생산 체계이다. 이들의 주장은 여러면에서 베버와 비슷한 측면이 있으나 시장화폐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독일 역사학파는 자본주의의 형성을 본질적으로 화폐와 신용에 대한 제한이 있던 중세의 전통적 경제활동에서 근대 금융 체계로 변화하는 과정이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여러 복잡한 경로를 거치며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 이윤 추구를 지적한다.

 

19세기 말, 독일 역사학파로부터 오스트리아 학파가 분리하였다. 이러한 분리는 한계효용이론을 주창한 카를 멩거에 의한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이후 20세기에 들어 영향력 있는 경제 학파로 자리잡았다.오스트리아 학파의 대표적 이론가인 요세프 슘페터는 시장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면서 일어나는 창조적 파괴를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강조하였다. 슘페터는 제반 산업이 성장과 쇠퇴를 겪으면서 경제 규모가 성장함을 지적하면서 변화에 소극적인 산업은 결국 사라지고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산업이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고 기술하였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일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20세기에 대두된 사회주의계획 경제를 비판하면서 시장 경제를 옹호하였다. 이들은 시장 경제만이 복잡한 현대 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세이의 법칙, 즉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이론을 기반으로 공급자 주도의 경제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오스트리아 학파에게 있어 자본주의의 본질은 생산의 결정에 대해 국가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이다.

 

 

케인즈 경제학

 

 

 

존 메이너드 케인즈

 

 

1937년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를 출판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가 투자의 감소 국면에 접어들면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되는 것을 지적했다. 케인즈는 높은 실업 상태에서도 자본주의 경제가 균형상태를 무한정 지속할 수 있음을 들어 세의 법칙을 반대했다. 그는 대공황과 같은 자본의 쇠퇴 국면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상품이나 용역의 구입보다 유동자산을 더 선호하므로 자본의 쇠퇴가 더욱 커지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어느 정도의 투자의 사회화"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케인즈 경제학은 디플레이션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1930년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대공황의 해결책으로 케인즈의 이론을 수용하였다. 케인즈 학파는 불경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세금 감면, 국체의 발행, 경기 연착륙을 위한 지출 등 정부의 적자 지출 정책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킴으로써 사람들이 돈을 쓰게 만드는 방법이다.

 

피에로 스라파는 후일 케인즈의 이론에 바탕을 둔 네오 케인즈 학파를 세웠다. 스라파에게 자본주의는 생산 욕구에 기반한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총체적인 사회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스라파는 자본주의가 보다 높은 이윤을 추구하기에 역동적이나 동시에 그로 인한 사회 경제적 불안요소를 내포한다고 보았다.

 

 

신고전경제학과 시카고 학파

 

최근의 경제학 이론 가운데 신고전경제학이 미국을 중심으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소유권의 유지에 촛점을 두고 비교적 중립적인 형태를 보이는 정부 시책과 광범위한 시장 조정을 선호하며, 노동 시장 유연화, 대주주에 의한 기업 지배, 정부 금융보다는 자본 시장에 기반을 둔 자금 운용 등을 제안한다.

 

신고전경제학의 일파인 시카고 학파는 자유 시장 옹호와 통화주의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밀턴 프리드먼는 시장은 외부의 간섭이 없다면 고유의 안정성을 유지한다고 보았으며, 불경기는 오로지 정부의 개입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프리드먼은 대공황의 원인이 투자의 감소라는 케인즈의 견해에 반대하여 연방준비제도의 통화 공급 감소 정책 때문이라고 보았다. 현재 연방준비제도의 의장인 벤 버냉키는 프리드먼의 이러한 이론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고전경제학은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위치에 올랐다. 이들은 노동가치설을 부정하며 사람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가치의 주관성을 주장한다. 한계주의는 이러한 가치의 정도를 한계효용한계비용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자본가의 이윤 획득은 현재의 소비량, 위험의 선택, 생산의 조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신고전경제학의 정치적 실현은 흔히 신자유주의로 불린다. 이들은 오늘날 세계화를 주창하고 있으며 많은 나라에서 강력한 정책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신고전경제학에 대한 비판 역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신자유주의와 신고전경제학에 대한 찬반 양론이 격렬하게 벌어지기도 하였다.

 

 

현대 자본주의 발전단계

 

역사상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는 농업의 시작과 함께 제한적으로 존재하여 왔다. 일부 학자들은 중세의 길드를 자본주의적 관계의 맹아로 파악하기도 한다.(일례로 도제를 임금 노동자의 기원으로 파악하는 것) 그러나 중세 사회는 신분제에 의한 제한, 과도한 세금, 지역마다 부과되던 관세, 강제로 부과되는 고율의 이자 등으로 인해 이윤을 창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영국에서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고 이윤을 축적한 자본가가 등장하였으며 19세기에는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정착되었다.

 

일단의 학자들은 9세기에서 12세기에 걸친 칼리파 치하의 이슬람에서 상업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들은 단일한 화폐(디나르)에 의한 통화 체계의 성립, 활발한 금융 활동과 무역이 이루어진 시장 경제를 근거로 제시한다. 이 시기 이슬람에는 무역회사, 수표, 계약, 장거리 무역, 대기업, 동업, 유한회사와 같은 자본주의적 요소들이 성장해 있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는 16세기 이후 유럽의 경제 체계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특히 18세기 중엽 영국의 산업혁명에 힘입은 바 크다.

 

 

중상주의

 

중상주의(重商主義)는 세계 경제와 무역의 총량이 불변이라는 가정 아래 자본의 공급에 의해 국가가 번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제 이론이다. 역사적으로는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유럽의 국가들에서 채택되었던 국내 산업의 보호와 해외 식민지 건설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경제 정책들 역시 중상주의 또는 중상주의적 경제체제라 불린다. 중상주의를 경제 체제와는 별개의 것으로 파악하는 일부 학자도 있으나 대부분 중상주의를 초기 자본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다.

 

 

산업혁명

 

산업 혁명(産業革命, 영어: Industrial Revolution)은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까지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의 혁신과 이로 인해 일어난 사회, 경제 등의 큰 변혁을 일컫는다. 산업 혁명은 후에 전 세계로 확산되어 세계를 크게 바꾸어 놓게 된다. 산업 혁명이란 용어는 아놀드 토인비가 《Lecture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the Eighteenth Century in England》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자본주의

 

19세기말 자본주의는 산업 자본주의에서 금융 자본주의로 전환한다. 금융 자본주의는 은행과 같은 금융 기관이 시장과 생산에 대한 주도권을 갖는 자본주의의 형태이다. 이러한 금융자본에 의한 기업 지배는 주식회사와 같은 기업형태를 발전시켰다.

 

 

대공황

 

대공황(大恐慌, 영어: the Great Depression, the Great Slump)은 1928년부터 일부 국가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공황이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에 의한 이른바 검은 목요일에 의하여 촉발되어 세계로 확대된 전 세계적 공황을 의미한다. 이로 인하여 기업들의 도산, 대량 실업, 디플레이션 등이 초래되었다. 개별 국가경제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고, 자본의 흐름도 자유로웠기 때문에 공황은 세계적 규모로 짧은 시간 내에 확대된 반면,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규제는 그 당시 아직 발전되어 있지 못하여 피해의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세계자본주의는 대공황에 의하여 1920년대의 황금기가 종언을 고하였다.

 

 

수정자본주의

 

대공황으로 인해 자본주의는 더이상 세이의 법칙과 같은 공급위주의 경제에 대한 확신을 유지할 수 없었으며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적극 고려하게 되었다. 이 결과 케인즈 경제학과 같은 적극적인 정부 주도의 경제가 도입되었으며, 이를 기존의 자본주의와 구분하여 수정자본주의라 한다. 수정자본주의는 일정정도의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를 자본주의에 도입하여 시장을 규제함으로써 투자의 유지와 불경기 국면에서의 시장 회복력을 얻고자 하였다. 또한, 수정,혼합자본주의는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을 통한 사회 구성원의 인간다운 생활권의 보장을 도모하는 복지국가를 보다 나은 국가 형태로 보았다.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 영어: neoliberalism)는 1970년대부터 부각하기 시작한 경제적 자유주의 중 하나이다. 토머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920년대 제창했던 새로운 자유(The New Freedom) 정책, 그리고 정치적, 문화적 자유에도 중점을 두었던 자유주의와는 다른, 고전적 자유주의에 더 가까운 것이며, 사회적인 면에서는 보수자유주의적인 가치를 지향한다.

 

국가 권력의 개입증대라는 현대 복지국가의 경향에 대하여 경제적 자유방임주의 원리의 현대적 부활을 지향하는 사상적 경향이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국가개입의 전면적 철폐를 주장하는데 비해, 신자유주의는 강한 정부를 배후로 시장경쟁의 질서를 권력적으로 확정하는 방법을 취한다.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의 영국 대처 정부에서 보는 것처럼 권력기구를 강화하여 치안과 시장 규율의 유지를 보장하는 '작고도 강한 정부'를 추구한다.

 

1980년대 이후 마거릿 대처, 로널드 레이건 등이 시작한 일련의 경제 정책은 정부의 개입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하는 신고전경제학의 입장에 입각한 것이었으며 흔히 신자유주의로 불린다. 이러한 경제 정책은 현재까지 미국, 영국 등을 비롯한 제 나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미국에서 경기 침체가 불어닥쳐 세계적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신자유주의는 한국에서 주로 노동 시장의 유연화 (해고와 감원을 더 자유롭게 하는 것), 작은 정부, 자유시장경제의 중시, 규제 완화, 자유무역협정(FTA)의 중시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 정치·외교적 측면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국제체제를 무정부적으로 규정하며, 국가를 유일한 합리자로 간주한다. 국가의 보호에 있었던 국민들이 더 이상 국가의 보호 없이 세계 자본에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레짐에 대한 관점

국제사회의 무정부 상태는 국가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주의와 달리 무정부 상태의 본질을 국가간 게임규칙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핵심체의 부재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것이 곧 상호간의 배신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보고 있다. 또한 개별 국가들의 행동이 권력의 지배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레짐과 같은 제도들을 통해 국가간 제한적 협력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국가간 제한적 협력이 가능하도록 돕는 것을 국제제도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개별 국가들은 상호주의 전략을 통해서 상대방을 감시하고 비협력적 태도에 대해서 처벌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점에서 국제관계에서 국가간 협력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여기서 국제제도는 국가간 협력의 어려움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가정된다. 특히 이같은 제도를 통해 국제협력이 용이해질 것으로 보는 이유는 제도들이 행위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수익구조를 바꿀 수 있으며, 다수 행위자들 사이의 게임과 소수 행위자들간 게임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치적 측면

 

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고전적 자유주의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오랫동안 서구 자본가들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였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세계를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수많은 이기적인 개인들로 이뤄졌다고 묘사하면서, 고전적 자유주의를 시장 자본주의와 다양한 친자본가적 정부로 봉건적이고 공동체적인 구조를 대체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했다. 정치적 삶은 어느정도 공유된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조직된 직업적 정당이 통제하는 형식적 선거를 통해 이루어졌다. 다원주의라는 허울에 가리운채, 실재의 민주주의는 투표권을 보유한 사람들과 그들에게 로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한정됐다.

 

이러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와 농민은 주로 비선거적인 대중운동을 통하여 국가로부터 몇몇 양보를 얻어냈다. 1930년대 있었던 이러한 노력의 성공은 2차대전 이후 기간의 케인지언 복지국가를 낳았으며, 자본주의적 발전을 구조화하려 했던 이 국가는 민중의 생활수준을 일정정도 향상시켰다. 1960년대의 민권운동으로 새로운 시민들이 투표권을 얻었으며 새로운 양보를 얻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운동은 복지국가의 지평을 벗어나게 되었고 급기야 복지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오늘날 케인즈주의가 위기에 처함에 따라, 신자유주의는 전통적인 공동체들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과거 시장의 압력으로부터 사람들을 방어하는 투쟁의 승리로 얻어진 정부의 사회프로그램 마저 파괴하는 것을 합리화한다. 신자유주의는 삶의 모든 영역에 시장적 가치를 강조한다. 공공프로그램의 사적 영역으로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시장적 힘으로부터의 어떠한 보호조치도 제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권력이 입법부에서 행정부로 넘어감에 따라 삼권분립이 강화되어 과거와 같은 일방적인 입법부의 횡포가 줄었다는 평가가 있다. 여기에 대한 반론으로 아래로부터의 로비가 갖는 효력은 줄어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신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저항

이러한 모든 변화는 저항에 직면해 왔는데, 그러한 저항은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프로그램을 보호하려는 노력처럼 단편적인 기반에서 이루어졌거나, 아니면 현재의 정치체제내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민주주의를 방어 하려는 노력과 같이 때때로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들 투쟁에서 얻어낸 성공사례는 우리가 종래에 알고있던 것보다 많았다. 신자유주의자들이 하고자 했던 것과 그들이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비교해보면, 그들의 실패정도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저항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단지 제한적 개혁만을 희망함으로써 체제의 구조 그 자체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데 있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최선의 방법은 신자유주의의 비민주적 구조 외부에 있으며, 그러한 구조에 반해서 저항하는데 있다.

 

 

경제적 측면

경제 대공황을 계기로 케인즈의 유효 수요 이론이 경제학의 주류로 자리잡았으나 그 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에 따라 케인즈 학파의 이론의 타당성에 대하여 반기를 든 시카고 학파 (Chicago School of Economics)가 생성되었다. 시카고 학파는 "통화주의자"라고도 불리며 이 이론은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레이거노믹스의 근간이 된다.

 

신자유주의는 예전의 자유주의와 같이 경제적인 자유를 추구한다. 즉, 자유 시장, 규제의 완화, 재산권 등을 중시한다. 신자유주의는 정치적 방법들을 통해 타국의 시장을 여는 것을 선호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개방을 자유 무역과 국제적 분업 (Division of Labour)으로 지칭한다. 또한 세계무역기구 (WTO), 세계은행 (특히 IBRD; 국제부흥개발은행), 아시아 개발은행 (ADB; Asian Development Bank)을 통한 다자간 압력의 시장 개방 역시 선호한다.

 

 

철학적 측면

신자유주의는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 진화론 (Social Darwinism)", 즉 적자 생존설로 우수한 자들이 살아남아 인류는 계속 사회적으로 진화 발전한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옹호

 

신자유주의가 세운 큰 공은 파이를 키운 것이다.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시민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줄 때 파이가 커진다는 생각이다. 즉, 시장의 원리를 중시하는 생각이다. 자유가 바로 '시장'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아담 스미스가 제창한 자유주의와 다른 점은 후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부의 개입을 바람직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지만 '신'자유주의는 정부가 보통 때는 뒤에 비켜서 있어야 하지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데 꼭 필요한 경우에 한 해서는 시장에 개입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지난 20~30년 동안 세계의 파이를 엄청나게 키웠다. 이루어 준 가장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업적은 한 마디로 세계화이다. 신자유주의가 자유를 세계 전체로 확대시킴으로써 세계는 더 가까워지고, 더 하나가 되었고, 무엇보다 더 자유로워졌다. 이것이 파이를 엄청나게 키운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경쟁을 격화시켰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신자유주의 이전까지는 대체로 자국 내 몇몇 기업들과 경쟁하면서 만족하며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기업들은 해외에서는 물론 나라안에서도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해야 되는 상황을 맞게 되면서 경쟁의 강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세졌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혜택은 낮아진 값 덕분에 인플레이션이 잡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이 잡히니 이자율이 낮아졌다. 즉 돈의 값이 싸진 것이다. 돈 값이 싸진다는 것은 기업들이 투자하기가 그만큼 쉬어졌다는 것이고 월부 인생인 선진국의 소비자들은 월 납입액이 줄어 들면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투자와 소비가 같이 늘어났고 이러한 선순환이 전 세계의 파이를 키워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파이를 키우는 것을 본 세계의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한다.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의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가 지금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을 지향해 온 대한민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현재는 민간 주도의 경제로 전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자유무역이나 규제 완화는 경험에서 얻는 교훈이다. 냉전 체제 하에서 경제를 정부의 보이는 손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길 것인가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세계 각국이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인해 시장의 손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구소련에서 70여 년간 걸쳐 행해진 사회주의 실험의 패배는 귀한 교훈을 주었다. 또한 불공정한 분배가 자유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지만 현실적으로 분배와 평등을 앞세운 사회주의보다 결과적으로 자유주의 국가들에게 보다 평등이 실현되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중앙 정부의 부패로 인해 오히려 평등이 저해된 반면 비판을 허용한 자유주의 하에서는 지나친 부의 불균형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면서 복지 문제가 강조되고, 결국 보다 높은 형평성을 달성하게 되었다.

 

 

용어 남용

한편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는 한국에서 유독 많이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전 세계 모든 웹을 검색하는 구글을 이용해 '신자유주의'를 검색하면 2011년 7월 20일 현재 약 423만개의 웹문서가 검색된다. 반면 영어로 neo liberalism을 검색하면 397만개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로 검색할 때 4억6천6백만개, 'economy'로 검색할 때의 7억 4천 6백만 개에 비교해서도 월등히 한국 문서에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가 많다는 점을 의미한다.

 

 

비판

 

미국에서는 지나친 시장주의와 규제 완화로 인해 갖가지 부작용이 나오자 이에 대한 비판이 크게 제기되고 있다. 예일대 경제학과 로버트 쉴러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는 규제가 없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며, 우리에게는 착한 행동을 강요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선의를 갖고 있는 게 아니며 모두가 관대하고 공익 정신을 갖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을 제한할 규칙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딘 베이커(Dean Baker) CEPR(공공정책연구소) 소장은 "우리는 물론 파이를 원한다. 하지만 파이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 미국은 그동안 이러한 규제를 완화하는 데 있어서 너무 지나쳤다. 파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었다."라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는 결과로서의 불평등도 사회 진화론에 따라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서민의 삶을 파괴한다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자들이 시행한 정책들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레이거노믹스 시행 10년 후 발표된 미 통계청 자료는 미국의 지니계수가 심각하게 악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부동산 시장에 대한 지나친 규제 완화와 이로 인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발생을 계기로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신자유주의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포퓰리즘적 과다한 주택 담보 대출 완화 정책으로 인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자유 무역

무역자유화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의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예)멕시코는 자유화 전 3.1%성장에서 후에 0.3%성장, 코트디부아르는 관세축소 후 직물, 화학, 자동차산업이 무너지고 실업률이 높아졌다. 개발도상국은 관세로 인한 세입을 줄여 교육, 의료, 사회간접자본필수 분야에 지출이 줄어들어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부자국가들은 개발도상국에 자유무역을 권장하면서 자신들이 모두 완전한 자유무역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역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6살 먹은 아이 부모에게 성공한 어른은 부모에 의지하지 않으며 자립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며 일자리로 보내라는 충고와 같다. 실제로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했기 때문에 자립한 것이지 자립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즉, 부자나라들은 자국생산자들이 준비를 갖추었을 때에만 그것도 점진적으로 무역을 자유화했다. 역사를 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또한 부자나라들은 자국 형편에 맞는 분야에만 경쟁을 평평하게 만든다. 국내보조금이 대부분 금지되어있지만, 농업, 기초개발, 지역균형에 관련된 산업의 보조금은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25000명의 땅콩농장에 40억달러의 보조금을 사용하지만 개발도상국은 그림의 떡이다. 겉보기는 중립적이지만 이중적이다.

개발 도상국이 무역을 통해 발전을 하려 한다면 부자나라들은 1950~1970년에 했던 비대칭적인 보호주의를 용인하고 자국에 대한 보호의 수준을 개발도상국들보다 훨씬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개발도상국 유치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인 보호관세, 보조금, 외국인 투자규제 등을 자유롭게 사용해야 한다.

 

 

가짜 만병통치약

케인즈경제학에 따르면 경기가 하강할 때 일반적으로 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줄여 경기를 부양한다. 그런데 자유주의 경제학을 지향하는 IMF는 1990년대 말 대한민국에서 심각한 경기하강 징후가 뚜렷이 드러났을 때 긴축 정책을 요구했다. 아르헨티나, 태국, 인도네시아에도 IMF는 같은 정책을 처방했다. IMF와 세계은행이 20년 넘게 전 세계에 강요해 온 워싱턴 합의는 대체로 낮은 인플레이션,긴축 재정, 민영화, 자유화를 강조한다. 이에 2000년대 후반 IPD(정책대화구상)이 생겨났다. 대한민국은 가장 빠르게 IMF를 탈출한 나라로 꼽히는데, 여기에는 긴축 재정의 효과도 없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자본시장의 자유화가 개발도상국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견해가 있다. 단기성 자본 흐름을 자유화하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 돈이 흘러들어가 거품이 만들어 지고 이 거품이 붕괴되면서 개발도상국의 경제가 불안정해진다는 것이다. 그 의견에 따르면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있을 때 정부가 금리를 내리거나 재정적자를 늘려 경기를 부양하려 들면 들어왔던 단기 자본이 유출되면서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 자본시장이 발달돼 있지 않은 개발도상국은 단기 자본 흐름의 충격으로 변동성이 증폭되기 쉽다. 이는 동아시아 위기 때 증명됐다. 자본시장을 개방한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고통을 겪은 반면 통제 국가인 중국, 인도,대만은 위기를 피했다. 또 재빨리 자본 통제를 실시한 말레아시아 경제는 신속하게 회복됐다."는 것이다. 즉 거시경제 정책을 수립할 때 물가 안정과 장기 성장, 발전, 분배를 동시에 고민하고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뿐만 아니라 조세 구조와 규제 정책을 비롯한 미시경제적 개입을 동원해야 한다.

 

반면, 외환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해 IMF를 겪은 대한민국이 시장 자유화 이후 빠르게 회복세를 찾은 것에서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긍정적인 면을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현실경제의 문제와 부동산 투자 전망

 

러한 미국이 주도하고 있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은 세계 금융자본가들에 의해 국가의 경제가 쥐락펴락하면서 휘둘리고 있다. 그런가운데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원래의 취지를 상실하고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부정적인 분야만 특이하게도 확산되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본연의 가치를 상실하고 인간이 돈의 지배를 받는 저질자본주의 형태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픙로 우리 사회는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체제로 변화시키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자체가 붕괴의 길을 걸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요즘 부동산 공부를 하고 있는 바, 현실경제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과 부동산 투자 전망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글로벌 경제 공동현상

8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도입되면서 세계경제는 점차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는 금융경제가 실물경제를 대폭 앞서면서 발생하였는데 2009년 현제 약 15배 규모로 성장하였다. 그래서 경제규모 중 95%가 금융경제, 5%가 실물경제의 규모로 전환하였으며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금융마피아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개인과 정부가 부채로 유지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사항이다.

 

 

부동산 거래 현실

전세보증금의 위험성, 상가 투자의 위험성, 부채가 있는 부동산 투자의 위험성, 신축빌라는 30%이상이 거품이지만 20~30년 된 오래된 빌라는 토지가치에 투자, 또 부동산 거래사고 유형은 법률적 거래사고, 경제적 거래사고, 기술적 거래사고, 직거래의 위험성 등이 있다. 그 중 법률적 거래사고는 권리분석사고가 주를 이루고 등기부상 공시권리보다 미공시된 권리가 반드시 확인되어야 한다. 그중 국세, 지방세, 압류가 최우선이다. 경매도 그런 미공시된 권리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면 엄청난 손해를 본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가등기.가처분 권리하자, 대항력 임차권사고, 미공시 권리사고, 무권대리사고, 소유자사칭사고, 소유자 이중매매사고 등이다. 이런 공부를 하다보니 부동산 매매가 걱정이 되지만 믿을 수 있는 부동산 중계인을 잘 만나야 하고 주인도 잘 만나야 안전한 부동산 거래가 이루어질 것같다.

 

 

 

                                                                                                 신촌 차없는 거리 먹자골목

 

생존경제학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존경제학이 필요하다. 집은 없어도 좋은 차를 가져야 한다는 요즘 젊은이들이 많다. 집을 소유개념에서 임대개념으로 생각하고 정부의 임대주택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다른 재태크 수단이 거의 전무한 우리나라 경제 현실에서 부동산만큼 메리트 있는 종목은 찿아 볼 수가 없다. 또 집을 담보로 내야하는 대출이자, 카드 돌려막기, 사채이용 등  비싼 이자를 주면서 부채로 살아가고 부채로 외식과 여행을 즐기는 우리들 현실을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이러한 거품 경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국민들의 과다한 소비풍조는 금방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생필품은 시장보기가 겁날 정도로 양도 줄고 포장만 그럴싸하게 만들어 가격을 올리고 있다. 외모지상주의 풍조에 빠진 우리나라는 성형을 비롯하여 명품 옷, 가방, 구두, 시계 등 사치품이 넘쳐나고 너도 나도 사치품에 목숨을 건다. 남들이 가니 나도 가야하고 남들이 사니 나도 사야하는 사회다. 연예인 속옷도 내놓기가 무섭게 고가에도 불티나게 팔리고 성형은 젊은 남녀 누구나 필수코스로 인식하고 있다. 비싼 새 휴대폰이 출시되면 너도나도 새것으로 갈아탄다. 외모지상주의 우리나라 사회에서 미모와 옷, 휴대품 등은 고가로 치장하여야 인정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성형한 얼굴의 여자아이돌 얼굴을 구분하기도 힘들 지경이 되었다. 이러한 외모지상주의 생활태도와 사고로는 절대로 남보다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 절약과 저축을 미덕으로 생각하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경제관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생존경제학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부채를 제로화시켜라, 과다한 소비거품을 제거하라, 수입의 30% 이상을 저축하라, 월세 폭등시대가 도래한다, 저비용 취미활동을 하라, 시골농지 300평으로 노후를 대비하라, 화폐경제, 금용경제를 공부하라, 100세까지 일할 수 있는 평생직업을 준비하라, 복지정책과 국민연금에 노후를 의지하지 마라, 화폐가치 인플레는 주기적으로 도래한다 등이다. 이러한 내용이 나에게는 구구절절 많은 도움이 된다.

 

 

부동산 투자 전망

 

금년도 부동산 시장 전망과 투자방향은 긍정적이다. 부동산 경기 방정식은 화폐량과 유통속도.부동산 정책. 경제성장율의 함수이다. 한국 경제 예상경제성장율 전망은 IMF 3.7%, OECD 3.9%, ADD 3.5%, 한국은행이 3.8%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평균 순수경제성장율이 3.76%로 예상하고 있으며 잠재 성장율 3.5%를 고려할 때 한국의  부동산 경기는 저속으로 살아날 것이다. 그 이유로 통화량은 2012년 1,809조원에서 2013년 1,898조원으로 늘어났다. 2009년 이후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은 4.8%로 일본의 0.7%에 비해 7배 이상 늘어났다. 따라서 통화량의 증가에 따라 부동산 가격도 상승하게 될 것이며 부동산 정책도 2013년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왔으며 2015년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부동산 경기는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다만 변수로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미국의 경제성장율이 2.0%에서 3.1%로 전망하고 있으며 중국 경제 7%로 지속성장이 예상되고 유럽경제가 중앙은행의 무제한 유로화 양적완화로 인해 부도직전의 국가들이 탈피하여 경기부양이 지속될 것이다. 일본 엔저의 악영향이 염려되지만 110엔은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또 세계경제는 3.1%, 한국 경제성장율은 3.7%까지 예측하고 있으며 경제가 성장하고 부동산 부양정책이 지속되며 화폐통화량도 증가할 것으로 다만 유통량의 유통속도만이 변수이지만 금년도 부동산 시장은 긍정적인 전망이다.

 

 

아파트 투자 전망

2014년 전국 아파트 시장 전망과 투자방향도 긍정적이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지난 7년간 아파트 실거래가는 42.1% 상승했다. 2008년 금융위기 발생시 -25%까지 급락했던 아파트는 14개월만인 2009년 8월에 원래 지수로 반등하였고 2년 10개월만에 21.3% 상승했다. 년간 7% 상승한 셈이다. 2012년에 -3.99%까지 하락했다가 2013년 9월 2011년 전고점을 회복했다. 가격전망은 2013년 2.8%에서 2014년 3.7%로 +0.9% 상승할 것이며 화폐량도 2013년 4.8%에서 2014년 5.2%로 +0.4% 증가할 전망이다. 따라서 금년도 아파트 가격 예상 상승율은 3.65%까지 전망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세계경제의 흐름과 같이 변한다. 고려해야 할 항목으로는 달러환율, 구리가격, 미국10년 만기 금리, 무역거래량, 국제유가, 국제금값, 유로지수 등을 고려하고 미국.중국.한국 증시, 그리고 언/달러, 엔/달러/ 유로/달러 환율도 고려하고 콜금리, 3년 국고채 금리, 3년 회사채 금리 등도 고려한다. 주택시장은 전국, 서울, 수도권, 인천, 경기, 5대 광역시, 기타 지방을 고려하고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세종시의 주택 동향도 고려 대상이다. 서울의 전세, 5대 광역시의 매매, 대구시의 매매와 전세가 상승세을 나타내고 있다.